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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제에 대한 상이한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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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ee of Life, evolutionary-tree
죽음의 문제에 대한 상이한 관점
죽음의 문제에 대한 민속과 각 종교간 상이한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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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東洋)의 혼백(魂魄)
혼백(魂魄)의 관계를 음양대립(陰陽對立)과 의존(依存)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張景岳(장경악)의≪類經(유경)≫에 그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그 의미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魂神(혼신)과 魄靈(백령)은 魂陽(혼양), 魂陰(혼음)으로 불리고 魂(혼)은 動(동)하고 魄(백)은 靜(정)하고 사람이 살아있을 때 魂(혼)은 魄(백)을 싣고 다니고 魄(백)은 魂(혼)을 감시하고 사람의 생명이 유지될 때 서로 교류하고 사람이 죽게 되면 魂(혼)은 하늘로 흩어져 올라가고 魄(백)은 땅에 묻혀 이 둘은 나뉘게 된다.
※ ”(魂神而魄靈, 魂陽而魄陰, 魂動而魄靜. 生則魂載于魄, 而魄檢其魂;
혼신이백령, 혼양이백음, 혼동이백정. 생칙혼재우백, 이백검기혼
死則魂游散而歸于天, 魄淪墜而歸于地), 權寧斗發行.
사칙혼유산이귀우천, 백륜추이귀우지), 권녕두발행.
欽定四庫全書子部五醫家44類經. 서울:대성문화사. 1995:38, 485.
흠정사고전서자부오의가44류경.
➪ 혼비백산(魂飛魄散) 사람이 죽게 되면 이 둘은 나뉘어 魂(혼)은 하늘로 흩어져 올라가고 魄(백)은 흩어져 땅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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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과 혼백(魂魄)
넋은 살아 있는 사람의 육신에 깃들어서 생명을 지탱해주고 있다고 믿어지는 가장 으뜸가는 기(氣). 혼(魂)·혼령(魂靈)·혼백(魂魄)·영혼(靈魂)·얼 등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기(氣)란 기운 또는 운기(運氣)라고 설명되기도 하는데, 때로는 감각적인 형상을 띠고 나타난다고도 믿어져 왔다. 넋은 육신의 죽음과 무관하게 그 자체의 실체를 존속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에서 초월성을 지니고 있기도 한 것이다.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야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정몽주(鄭夢周)의 유명한 단심가(丹心歌)는 넋의 초월성에 관한 믿음을 부분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사후에 넋이 누리게 되는 초월성은 생전에도 상당한 정도 발휘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도 넋은 육신을 빠져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 들어온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육신을 자유로이 출입하는 넋에 있어서 육신이 단지 집이나 그릇 같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육신의 어느 부분을 통하여 드나드는지도 분명하지 않으나, 대개 코나 입을 통한다고 여겨지고 있다. 넋빠진 사람, 또는 얼빠진 사람이라는 말들에서도 넋의 육신 출입이 자유롭다는 관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혼(魂)은 넋과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백(魄)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혼은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이 양쪽에 걸쳐 쓰이나 백은 죽은 이의 신격화된 넋을 주로 뜻한다.
조상령의 경우가 백에 해당되는 것이다. 혼령(魂靈)이 넋과 동의어인 것은 사실이나 영(靈)이 따로 쓰이는 일은 흔하지 않다. 신령(神靈)은 신(神)으로 관념된 영혼 또는 신격화된 영혼이라는 뜻으로, 신명(神明)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자연이 신격화되어 신앙될 때도 신령(神靈)이라고 하거니와 산신령(山神靈)과 산신(山神)이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것이 그 좋은 보기이다. 따라서 영(靈)은 사람에게만 한정되어 쓰이는 혼(魂)과는 달리 사람과 자연 양쪽에 걸쳐 쓰인다.
이와 같이 넋이란 말은 혼·혼백·영혼·얼 등과 어느 경우에나 동의어로 쓰일 수 있는 포괄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것이 신격화되었을 때 신령(神靈)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 신령에는 자연의 영(靈)도 포함된다.
韓國神話와 巫俗硏究(金烈圭, 一潮閣,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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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관한 8가지 관점
삶과 죽음의 문제만큼이나 우리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는 없다. 아마 인간에게 죽음이 없었더라면 철학과 종교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인류의 정신적 寶庫인 각 종교가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것은 서로를 차별화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죽음의 문제에 대한 각 종교간 상이한 관점을 조명해 본다.
▲ 1. 불교 :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지는 것
정병조 동국대 교수
1. 초기 불교의 경우
삶과 죽음의 번민은 인간에게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였다. 죽음은 단절이고 결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초기 불교도들은 이 죽음을 '영원한 별리別離'로 보지 않았다. 금생은 전생의 과보이며 내세 또한 금생의 결과로서 이해하는 업의 영속성을 믿었다. 업業, karma은 삼세를 관통하는 연쇄의 고리였다. 각자가 지은 업을 통해 끊임없이 우주를 윤회유전한다는 생각을 품었다. 따라서 선업善業을 닦고, 내세를 예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형태라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사고思考는 불교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인도종교에 있어서 공통적인 경향이었다. 석가의 경우는 이 죽음의 형이상학에 대해 대체로 많은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보다 소중한 것이 삶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2. 대승불교의 정토淨土 신앙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일기 시작한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번쇄적이고 철학적 경향을 실천적 의지로 바꿔 놓았다. 특히 내세에 대한 대승불교인들의 확신은 아미타阿彌陀신앙으로 발전한다. 서방에 정토가 있고, 그곳에 왕생하려면 정업淨業을 닦아야 하고 염불을 일상화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정토, 혹은 극락이라고 불렀다. 정토신앙은 확고한 내세관이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강력한 현실인정이라는 면으로 엄청난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비록 죄업은 지었어도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로 그 악업을 소멸시킬 수 있고, 적극적인 보살행으로서 정토에 왕생한다는 믿음은 민중들에게 큰 활력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종禪宗에서는 이 미타신앙의 타력적 요소를 부정한다. "마음이 밝으면 대지가 밝아진다"(心淨卽而土淨)는 주장은 결국 내 마음 속의 부처, 내 안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성미타自性彌陀신앙으로 발전해 간다.
3. 선종(禪宗)의 입장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지는 것, 삶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死也 片淨雲滅 生也 片淨雲起)". 이 싯구는 고려말의 명승 나옹懶翁이 읊은 죽음의 노래였다. 선사들의 일생은 '마음의 참구'로 일관한다. 본래적인 나를 회복하는 일은 견성見性이라고 하였다. 일상적 자아는 이기적이고 편협하여 죽음을 단절로서 이해한다. 그러나 본질적 자아는 '나'라는 개아個我를 전체적인 생명으로 승화시킨다. 즉 이기적 자아를 극복하고 내 생명은 우주적 생명의 일부라고 자각할 때 그 죽음의 고통은 극복된다. 왜냐하면 우주적 자아는 생멸生滅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선종의 생사관은 죽음을 일회적으로 보는 단견을 극복하였고, 더 나아가 죽음을 담담히 맞을 수 있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미학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 2. 도교 : 장생불사 長生不死 와 성선 成仙
최진석 서강대 교수
거의 대부분의 종교는 체계적인 내세관을 가지고 있고, 현세의 마지막이자 내세의 출발인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을 한다. 그것이 철학에 반영될 때는 현상계와 본체계의 분명한 구별로 나타난다. 사실 종교는 죽음의 문제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는 흔히 중국인의 특징적 사고 가운데 하나로 실용주의를 드는데, 실용주의의 다른 말은 현세주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 구체성과 그 구체성 사이의 관계 내에서 사고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중시하지 않는다. 구체적 삶의 범위를 벗어나는 능력과 힘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주장하는 부분이 바로 종교인데,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대 중국에는 종교가 없다고도 한다. 다른 문화권에서 종교가 했던 역할을 철학이 담당했다고도 한다. 중국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종교는 민간의 다양한 신앙을 제외하고는 유교와 도교인데 모두 중점을 현실에 둔다. 유교가 제사를 드리지만, 기독교나 불교에서 하는 의식의 그것과 의미가 다르다. 그것은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거나 귀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의 문화적 소양을 기르는 방편 즉 문식文飾의 성격이 강하다.
불교의 교지가 해탈이고, 기독교의 교지가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이라면 도교의 주지는 장생불사長生不死와 성선成仙이다. 해탈과 천당행이 모두 헛되고 헛된 현세를 버리고 더 큰 의미로 치장된 내세로 나아가는 매개로 죽음을 본다면, 도교에서는 죽음을 장생불사나 신선神仙의 경지로 이동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여전히 '현세'를 영원히 지속하려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의 저항세력으로 출발했던 도교가 발전을 꾀하면서 자신의 이론 근거를 노자에게 두고, 노자를 계승했다고 간주되는 장자를 비판하는 것으로 이들의 죽음에 대한 견해를 짐작할 수 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59장에서 장생("長生久視之道")을 얘기한다. 그러나 장자莊子는 생生과 사死가 기氣의 변화이기 때문에 같은 차원의 다른 형태로 보고("齊生死"), 삶과 죽음 사이에서 유희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도교의 대표적인 저작인 『포박자抱朴子』를 쓴 갈홍葛洪은 삶과 죽음을 같은 차원에서 보거나, 죽고 사는 일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반대한다. 즉 죽음을 피하고 수명을 늘리는 일에 힘써 최종적으로는 신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교에서 육체의 불사와 죽음의 방지를 목표로 하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죽음에는 봉착한다. 도교에서의 해석은 독특하다. 불사의 몸이 된 사람은 죽음이 구체적으로 있는 일상 사회를 혼란시키지 않기 위해 죽은 체한다는 것이다. 그는 평범한 의식에 따라 묻히지만 관에 넣은 자신의 검이나 지팡이에 시체의 모습을 부여하고 진짜 신체는 이미 떠나가 영생하는 사람인 신선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이것이 말하자면 시해尸解이다.
죽음에 대해서 도교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것이 피세적이라기 보다는 현세적인 종교라는 특징과 밀접히 연관된다. 도교의 모든 교의와 의식은 이 장생불사나 육체의 성선成仙에 맞추어져 있다. 초기 외단外丹에서는 이 길을 인위적으로 만든 약으로 확보하려고 하였다. 장기간의 실패 후, 나중에는 내단內丹으로 방향을 바꿔 정신적인 수양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 후 도교는 죽음을 이겨 낸 육체의 성선成仙과는 거리를 두게 되고, 정신적인 차원에서 종교적 경지를 담보하였다.*
▲ 3. 유교: 자연의 기로 돌아감
윤사순 고려대 교수
조선시대 유교의 사상 중에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 사고의 연장에서 씨받이라는 습속이 있었다. 앞의 사고에는 아들을 못낳는 부인을 쫓아낼 수 있음을 정당화하는 요소가 들어 있고, 뒤의 것은 부인이 그러할 경우 다른 여인에게서 아들을 낳아오던 습속이다. 이러한 사상이나 습속은 다 가부장 위주의 족벌절대시 사회에서, 자손의 끊임없는 계승을 위하는 뜻에서 나왔다. 가장인 세대주의 앞으로 있을 죽음을 예상하고 그것에 대비한 사고이고 습속이었다.
유교에서는 극락 지옥과 내세來世를 믿지 않는다. 유교는 다른 어느 종교보다 현세現世 치중의식이 강하다. 위의 현상도 현세만을 믿는 데서 생겨난 현세적 생명연장의 한 방법이다. 유교의 일반적 사고로는 한번 죽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현세에서의 자손 번식의욕은 실상 자기 영생永生의 한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유교에서는 자연히 생명 자체를 매우 소중히 여긴다.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효孝의 시작이라는 사고가 그 좋은 예이다.
원초유학에 의하면 인간과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하늘(天)로 말미암아 생성한다. 이때의 하늘은 창조주가 아닌 우주의 주재자일 뿐이다. 이러한“하늘이 인간들(蒸民)을 낳았다”고 하듯이, 생명生命은 곧 천명天命의 일종으로, 즉 하늘이 내리는 소명과 같은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에게서 천명이 운명運命의 뜻으로 쓰일 때 이 점이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죽음은 천으로부터 받은 명命이 다 끝난 것이다. 특히 천수天壽를 다 누렸다고 할 경우 그렇게 생각한다. 천수를 다 한 죽음은 70,80 고령으로 자손들이 지켜보는 가정에서 편안히 숨을 거두는 모습으로 상정된다. 오늘날은 그렇게 하기 어려운 여건이지만, 특히 자손이 있는 가정을 떠나 타지에서 맞는 죽음은 객사客死라 하여 큰 불행의 하나로 여기었다. 이런 점에서 유교에서는 공자 이외의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와 같은 성인의 죽음을 불행한 객사로 여긴다. 공자를 비롯한 성인의 죽음의 양상이 결국 이들 각인의 사상 유형과 특성의 단적인 표증이라고까지 해석하는 유학자가 있다.
성리학이라는 유학이 대두하면서 죽음에 대한 이론이 더 세련되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현존재의 생성을 음양陰陽 오행五行이라는 기氣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고 함도 그 한 예이다. 반면 죽음은 인간을 이루었던 기의 흩어짐이다. 죽음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귀신이니 혼백 역시 음양의 기에 지나지 않고, 그런 만큼 시일이 지나면 마침내 그것들도 흩어져 없어진다고 한다. 조상신에 대한 제사祭祀는 조상에 대한 보은과 정감을 추념하는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생生과 사死를 천명에 의한 기氣의 집산으로 볼 때, 그 기의 최대 집산물은 우주 자연이다. 인간은 그 자연을 이루는 기의 아주 작은 집합이고, 인간의 죽음 역시 자연의 기로 돌아감이다. 이런 뜻에서 옛 유학자들은 천지天地를 인간의 부모로 생각하였다. 자연은 인간의 모태요, 본래의 고향이다. 따라서 죽음은 본래의 고향인 자연의 품으로 돌아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주 자연과의 영원한 합일에 해당한다. 이 때 우주가 영존함을 고려한다면, 그것과의 합일인 죽음은 인간의 변형된 영존永存의 시작에 해당한다. *
▲ 4. 기독교 - 하나님은 살아있는 이들의 신
정양모 성공회대 교수
1. 영혼불멸론(靈魂不滅論)
소크라테스는 서기전 399년 아테네 민회에서 배심원 501명 중 280명의 찬성으로 유죄판결(55.9%)을 받고, 이어서 361명의 찬성으로 사형언도(72%)를 받았다. 그리고 한 달 후에 태연히 독배를 마시고 고요히 죽었다. (플라톤, 『파이돈』, 115-118항). 인생이란 고귀한 영혼이 비천한 육신 안에서 옥살이 하는 질곡이요, 죽음은 고귀한 영혼이 비천한 육신 감옥에서 풀려나는 경사라고 소크라테스는 확신했기 때문에 그처럼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철학자들이 믿었던 영혼불멸설이 2세기부터 기독교에 흘러 들어와서 이른바 정통교리가 되었다. 중국에서 전도하다 종생한, 동서교섭의 선각자 마태오 리치(1552-1610)는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이 영혼불멸설을 그대로 받아들여 『천주실의』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람이 죽었다고 하는 것은 영혼이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백魄과 형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영혼이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마치 어두운 감옥에서 나와 손발의 매임을 벗어나는 것과 같아 더욱더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게 되고, 그 지능은 더욱더 정확해져 보통 사람보다 뛰어넘으니 이를 괴상한 것으로 생각해선 안됩니다. 군자는 그 까닭을 알고 있으므로 죽음을 흉하고 두려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기쁘고 편안하게 맞이합니다. 그리하여 본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영혼불멸설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온누리는 생성소멸의 법칙의 지배를 받지만, 영혼만은 영원무궁 존속한다고 예외를 인정할 까닭이 없다. 모든 창생의 기본 속성은 유한성이기 때문이다. 영원성은 오로지 하느님 한 분만의 속성이다.
2. 사도 바울로의 사관(死觀)
사도 바울로는 제3차 전도여행 중(53-58년 경) 지금의 터키 서남부에 자리잡은 항구도시 에페소에서 27개월 동안 전도할 무렵 로마군 부대에 끌려가서 모진 옥고를 치루었다. 바울로는 아무래도 사형을 받을 것만 같은 극한 상황에서 일생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과 내세를 두고 심사숙고한 끝에, 에게 바다 건너 그리스 필립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필립비서 1장 21-24절).
"나에게는 사는 것이 곧 그리스도이고 죽는 것이 이익입니다. 그러나 육신을 지닌 대로 계속 사는 것이 내게 보람있는 일이라면 어느 것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나는 두 가지 소원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한편으로 나는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원하니, 실상 그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육신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 때문에 더 필요합니다."
이 글의 뜻인즉 이렇다. 바울로는 자기 자신의 처지만 생각하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다. 죽으면 허허무무하게 되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터이니까." 그러나 필립비 교우들의 형편을 생각하면 출옥하여 그들을 돌보고 싶다고 한다. 필립비서에 이어 고린토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로는 오래 사느니 차라니 "몸을 떠나 주님 곁에 눌러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고린토 후서 5장 8절)
요컨데 바울로는 사후생死後生을 일컬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다"(필립비서 1장 23절) "주님 곁에 눌러 사는 것이다"(고린토 후서 5장 8절)라고 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분명 흙으로 돌아간다. 그럼 사람의 그 무엇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며 주님 곁에 눌러 살 것일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로는 말이 없다. 아무래도 사람이 이승을 살아가면서 이룩한 자아, 곧 인격, 인품이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와 어울린다고 보고 싶다. 인격, 인품조차 허허무무하게 될 운명을 타고났지만, 은혜롭게도 하느님께서 그 소멸된 인격, 인품을 거두어 가신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느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두 가지 성경구절을 소개한다.
"하느님은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자들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지혜서 1장 13절)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신이 아니고 살아 있는 이들의 신이시다." (마르코 복음 12장 27절)*
▲ 5. 이슬람교 : 영생을 누리기 위한 變態의 과정
최영길 명지대 아랍어과 교수
신의 원서라고 불리우는 코란에서는 인간의 시조를 신神의 창조에 의해 존재하게 된 아담과 하와로 소급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죄의 구속을 받지 않고 원선原善의 상태로 창조된 후 천국에서 살았다고 한다. 아담과 하와가 천국에서 살았다는 코란의 이야기는 이미 인간은 영생永生의 생명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기에 우리가 필연·보편적 현상으로 알고 있는 죽음이란 운명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이 땅을 빚자 땅의 주인은 누구냐고 천사들의 질문이 있었다. 이에 신이 결정을 내렸다. 자기를 대신하여 땅을 다스리고 관리할 대리인으로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라 하였다.
천국에서 기거하고 있던 아담의 몸집은 키가 무려 60디라아로 그의 두 발이 땅에 닿을 때 머리는 하늘에 있을 정도로 컸었다고 예언자 무함마드는 전했다. 아담과 하와가 땅으로 내려올 때 어떻게 그리고 어떤 수단을 이용하여 지구에 왔는가에 대한 자료는 제시할 수 없지만 천국의 환경과 지구의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 코란의 견해라고 한다면 아담과 하와는 지구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상태로 변태變態하여 내려왔을 것이다.
신이 남녀를 둔 목적은 결혼을 통해 자손을 번성시켜 신을 경배하고 땅에서 신이 위탁한 임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코란은 강조하고 있다. 땅에서 신의 위탁임무를 수행하는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였다. 주어진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인간 각 개인은 아담과 하와가 머물고 있는 인간의 최초 고향인 천국으로 귀환하게 된다. 예언자 무함마드에 따르면 그가 부라크라고 하는 백마를 타고 천국여행을 하는 동안 아담은 첫 번째 천국에서 만났고, 예수와 요한은 두 번째 천국에서, 요셉은 세 번째 천국, 이드리스는 네 번째 천국, 아론은 다섯 번째 천국, 모세는 여섯 번째 천국, 그리고 아브라함은 일곱 번째 천국에서 만났다고 전한다.
천국으로 귀환하는 길목에서 연옥煉獄과 유사한 바르자크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슬람에서 본 인간은 원죄原罪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다. 죄罪란 현세의 일상생활 속에서 가정환경과 사회환경에 의해 오염된 때와 제한된 인간의 자유의지가 만들어 낸 자범죄를 죄의 개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염된 때와 자범죄가 씻음을 받지 않고서는 죄의 씨앗이 전무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바르자크 단계에서 씻음을 받은 후 천국으로의 귀환 여행이 계속된다.
인간이 지국地國에서 천국天國으로 귀환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변태과정을 거친다. 아담과 하와가 천국에서 지국으로 내려올 때 아담의 본래 상태로 오지 못하고 지구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태되어 왔던 것처럼 이번에는 천국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태된다고 보았다. 이와같이 지국地國의 생활에서 천국天國에로의 여정과 그곳에서의 영생永生을 누리기 위한 변태變態의 과정이 이슬람교에서 본 죽음의 개념이요 입장이다.*
▲ 6. 힌두교 : 마치 헌옷을 벗어버리고 새옷으로 갈아입는 것처럼
이거룡 동국대 강사
죽음의 신 야마가 바라문 나치케타스를 문 앞에 세워둔 결례를 범하여 그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게 되었다. 참된 지혜를 구하는 나치케타스는 세번째 소원으로 야마에게 죽음에 대하여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야마는 대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심지어 이전의 신들도 이 문제에 대하여 의심을 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로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것을 물어라. 그런 물음으로 나를 골치아프게 만들지 말라."([카타 우파니샤드],1.1.21) 죽음의 신 야마도 죽음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죽음에 대한 문제가 난해한 것은, 산 자에게 죽음이란 항상 경험 밖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이란 단지 죽은 자들이 남긴 산자의 죽음일 뿐, 죽은자의 죽음 그 자체는 산 자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산 자에게 죽음은 어차피 피상적이고 관념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믿음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라 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죽음에 대한 문제가 믿음을 전제로 하는 종교의 고유 영역에 속했던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힌두교의 믿음에 의하면, 죽음은 삶의 연속이다. "마치 사람이 계절에 따라 헌 옷을 벗어버리고 다른 새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이, 이 몸 속에 살고 있는 아트만도 낡은 몸뚱이는 버리고 다른 새 몸뚱이로 옮겨가는 것이다."({바가바드기타},ⅱ.22) "풀벌레가 풀잎 끝에 다다르면 다른 풀입을 잡고 건너가듯이 이 아트만도 지금 머물고 있는 육신을 버리고 다른 육신으로 건너간다."({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ⅳ.4.3) 다시 말하여, 죽음이란 삶의 끝에 일어나는, 삶의 최종적인 사건이 아니다. 죽음은 삶 속에 내재해 있다.
죽음과 삶의 연속을 담보하는 것이 곧 업과 윤회의 가르침이다. 윤회의 요체는 죽은 자와 다시 태어나는 자의 동일성 혹은 자기 연속성이며,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업설이다. 선악의 모든 행위는 반드시 그 결과를 나타내지 않고는 사라지지 않으며, 이와 같은 인과관계가 현생뿐 아니라 전생과 내생과 연결된다는 것이 업과 윤회의 가르침이다. 힌두교의 중심에 있는 업과 윤회의 교의는 결국 삶 속에 죽음이 스며있는 논리를 담보하는 가르침이다.
죽음이 삶의 연장이라 하여 모든 죽음이 있는 그대로 무조건 긍정되는 것은 아니다. 삶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윤회 세계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며, 그것은 삶과 죽음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 즉 해탈이다. 삶은 삶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있다. 죽음이 삶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죽음이 의미있게 되는 것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은 잘 죽어야 한다는 말이며, 잘 죽어야 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이 곧 해탈이다.
▲ 7. 티벳 <사자의 서> :죽음은 삶의 또 다른 한 과정
정창영 고전번역가/목사
이 책은 죽은 사람의 49일 동안의 사후 여행을 안내하여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인 파드마삼바바는 삶과 죽음을 이원론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삶의 또다른 한 과정으로 본다. 티벳 사람들은 이 책을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책>이라는 긴 이름으로 부른다. 여기에 삶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암시는 전혀 없다.
그런데 이 책이 『티벳 死者의 書』로 알려진 이유는 이 책을 처음 서구에 소개한 에반스 웬츠가 『The Tibetan Book of the Dead』라고 제목을 붙여 출판했기 때문이다. 웬츠는 자신의 책에 'The After-Death Experiences on the Bardo Plane'(죽음 이후에 경험하는 바르도 영역에서의 체험)이라는 부제를 붙여 놓았다. 그런데 만약 죽음이 존재의 소멸이라면 죽음 이후에 누가 무엇을 체험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 책의 기본 전제는 죽음이란 존재의 소멸이 아니며, 사후세계란 동일한 사람이 존재의 상태만 바꾸어서 새로운 체험을 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죽은 사람 보다는 육체를 벗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육체를 벗은 사람이 가는 곳을 '바르도'라고 한다. 그런데 바르도는 공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3의 장소가 아니라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티벳어 '바르도'를 한역漢譯 불경은 '중음계中陰界' 또는 중유계'中有界'로 옮기기도 하는데, 글자대로의 뜻은 '중간 상태'이다. 삶은 동일한 존재가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상태를 옮겨가며 새로운 상태를 체험하는 일련의 과정이며, 이 상태와 저 상태 사이를 '바르도' 곧 '중간 상태'라고 부른다. 죽음 또는 죽음 이후의 세계도 존재가 상태를 옮겨가는 일련의 과정 가운데 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삶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죽음은 없는 셈이다.
『티벳 死者의 書』에는 육체를 벗은 사람이 중간계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상황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수많은 붓다와 보살을 만나고 여러 신들과 영적인 존재들을 만난다. 그들은 육체를 벗은 다음부터 다음 생의 몸을 입기 위해 자궁을 선택해 들어가는 순간까지 49일 동안, 때로는 밝고 자애로운 모습으로 또 때로는 어둡고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살아 있는 가족이나 친구는 육체를 벗은 사람의 중간계 여행의 안내자가 되어, 마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이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하라는 권고와 지시를 49일 동안 들려준다. 49제祭 라는 것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49일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시간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중간계를 여행하고 있는 사람의 의식意識 상태 변화를 편의상 49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책 마지막 부분에 가면 안내자가 중간계 여행의 거의 끝에 도달한 사람에게 "그대가 지금까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그대의 머리통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일러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생이나 저승에서의 모든 체험이 계측 가능한 상대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의식 상태의 변화일 뿐이라는 가르침이다.
▲ 8. 이집트 <사자의 서>
서규석 동아시아태평양경제연구소 소장
1. 육체와 영혼을 보전하기 위한 미라,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인만큼 사후세계에 집착한 문화를 가진 민족도 드물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 1976년 프랑스에서 세균 치료를 받으며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람세스 2세의 미라, 룩소르와 아브심벨의 대신전 등은 사자의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들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가진 내세관은 태양이 매일 뜨고 지는 것과 같이 생전에 자신들이 살던 것과 다를 바 없는 현세의 연장과 반복이며, 현세의 행동에 대한 심판을 거쳐 부활과 영생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믿었던 태양신학에 기초한다. 이런 사상은 오시리스의 부활, 이시스의 호루스 회임 등 신화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었고, 초기 기독교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육체는 언젠가는 죽지만 그것은 일시적 죽음에 지나지 않으며 육체를 온전히 보전하여 내세에서 심판을 받으면 영혼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미라를 만들고, 이를 보존하기 위한 피라미드를 건축했다. 고대이집트인들이 만든 약 1천만개에 달하는 미라, 80여기의 파리미드도 사후에 영생을 얻기 위한 신앙 때문이었다.
2. 사후심판에 대비하여 사자가 반드시 지녀야 하는 주문집, '사자의 서'
사자가 죽은 후에 부활하기 위해서 명계(冥界)를 다스리는 왕인 오시리스와 42명의 신들이 앉아 있는 '오시리스 법정'에 나아가 죄를 짓지 않았다는 부정고백을 하고, 저울에 자신의 심장을 달아서 죄의 유무를 판정받는 의식을 거쳐야 한다. 저울의 한 쪽에는 정의를 수호하는 '마아트 여신'의 타조 깃털이 놓여 있는데, 사자는 다른 한 쪽에 자신의 심장을 놓고 마아트 여신의 깃털로 죄를 판결받는다. 심장이 여신의 타조 깃털보다 무거우면 유죄를, 평형을 이루면 무죄를 선고받는다. 무죄가 선고된 사자는 내세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되는 반면, 무죄가 증명되지 않는 한 누구도 부활하여 영생을 얻을 순 없다.
이 때 사자가 오스리스 신 앞에 나가서 무죄를 선고받을 때까지 반드시 지녀야 하는 책이 있다. 그것이 '사자의 서'다. 사자가 육체를 깨끗하게 보전하는 주문, 오시리스 신 앞에 나가 무죄를 증명하는 부정고백, 부활하기까지 신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악신을 물리치기 위해 사자가 낭송하는 주문을 모아놓은 '사자의 서'는 기원전 3100년경부터 피리마드의 벽이나 파피루스, 관 등에 기록해 놓은 것으로 대개 190장으로 편집되어 있다. 사자의 서는 독일인 렙시우스가 최초로 편집하여 해석해 놓은 것으로 일종의 부활을 위한 경전이자 찬송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집트 문명의 모태는 태양이 매일 떠오르듯이 내세는 오늘의 반복이며 또 영원하다는 부활과 영생의 태양신학을 기반으로 한 것이며, 그 어느 문명권보다도 죽음의 의식과 문화를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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