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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1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족 모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다니 의외의 일이 생겼다. 그러나 단 하루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아들과 딸에게는 불편했을지라도 추억으로 남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개통 보름밖에 되지 않은 최신식 화장실에서 세면을 하고 식당에서 소고기 해장국으로 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비가 내린 어제 저녁 배고프고 졸리던 시간과는 완전히 반대로 오늘은 시원하고 상쾌한 8월의 아침이다. 장모님 칠순 행사가 오후에 있어 가평을 벗어나 청주로 방향을 잡았는데 쌩쌩 달리던 차가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는 행락객 차량들로 정체가 심해졌다. 아내에게 차를 맡기고 고속도로에서 처음으로 운전을 하게 했는데 아무런 문제없이 오후에 청주 복대동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율량동에 위치한 라마다 호텔로 5시에 이동하여 오늘 행사에 참석한 친척들과 반가운 마음으로 만나 인사를 주고받았다. 2년 전 장인어른 칠순 때 함께한 사람들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악수는 했어도 그 사이 나에게는 변화가 많았다. 밤이 될 때까지 맛있는 식사를 하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마지막에는 가족들 노래자랑도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아들이 나서게 되었고 최근 유행하는 샤방샤방 노래를 흥이 나게 불러 잔치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인창중 클럽에서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감과 여유가 있었고 나로서는 노래하는 아들의 모습을 오늘 처음 볼 수 있었다. 9시에 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냈는데 언제나 맏사위인 내 역할과 위치가 클 수밖에 없었다.
2일 큰 행사가 있으면 가족의 구성원이 많기 때문에 아침에는 아파트 근처 식당으로 이동하여 모두 소고기국으로 식사를 주문하여 먹었다. 오전에 가족들이 나들이를 한다고 집을 출발했고 1시간을 달려 문의면을 통과하여 도착한 곳은 대청댐 건너편 후곡 마을이다. 과거에 수몰된 지역으로 현재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여기가 육지인가 싶을 정도로 산 속의 섬 같은 곳이다. 조용하고 시원하여 휴가지로서도 부족하지 않아 가을이 돌아오면 도시락을 가지고 다시 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가족 모두 여기저기 1시간 이상을 걸었는데 아들과 딸은 힘들어 하고 나와 아내는 호젓한 길을 재미있게 걸었다. 오는 길에 여기에서 재배했다는 복숭아와 포도 등도 구입했고 복대동 집으로 돌아와서는 처외삼촌과 수육으로 술을 마셨다. 늦은 오후에 긴 시간을 함께한 재규네와 동렬네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사업으로 부산에 내려간 영식이한테 전화가 왔다. 식사를 마친 저녁에 장인어른과 장기를 두는 것 외에 특별히 일이 없어 건너 방으로 이동하여 일찍 잠이 들었는데 덥고 모기가 많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10시에 밖으로 나와 에어컨이 있는 차 속에서 보내다가 자정을 넘어 잠자는 아내와 아들 딸을 깨워 서울로 돌아왔다.
3일 청주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막히지 않고 서울에는 도착했지만 2박3일의 여행으로 피곤하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막막한 아침이다. 식사를 마친 아들이 보충수업 한다고 학교에 나가고 방학특강이 시작된 나도 학원으로 출발했다. 저녁에 하던 강의를 오전에 하려다보니 결석생도 많고 어수선함이 있었지만 재미있게 마치고 점심을 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휴가철이라 거리도 한산하고 식당이 많은 뒷골목 시장통에도 오가는 사람이 없어 썰렁한 한여름의 시간임을 실감케 했다. 수업을 마친 오후에 신설동 방수공사로 친구를 만나러 출발했는데 내일과 모레 비가 온다고 하여 할 수 없이 공사를 다음 주로 미루었다. 이틀 동안 휴가라고 강원도에서 충청도까지 다니고 새벽에 운전하여 돌아왔더니 여전히 피곤하여 바로 집에 들어와 쉬면서 보냈다. 저녁에 TV를 보는 중에 아내가 갑자기 아들 교육을 잘 시키라고 하여 불쑥 화가 났는데 자식들 교육은 누가 시키는지 따져보았다. 과거의 의식과 사고가 남아 있는 나로서는 당연히 밖에 있는 아버지보다 가정을 지키는 어머니의 몫이라 여겼고 맹모나 신사임당 그리고 한석봉의 어머니는 존재해도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시대를 살아온 의식과 사고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일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나로서도 전적으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분이 나빠져 일찍 잠을 잤다가 밤중에 일어나 TV를 보며 사소한 욕심과 아집으로 괴로움이 생기고 이기적인 사고와 판단이 갈등의 시작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4일 답답한 마음과 복잡한 머리를 풀기에는 산행이나 운동이 좋다. 아침에 식사를 하고 모처럼 북한산에 오르려고 정릉으로 차를 몰고 출발했다. 날이 더워서 오전 중에 산행을 시작한 것인데 9시가 지나자 벌써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숲속을 걸어 보국문에 다다르니 10시30분이 되었다. 휴가철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없어 한가하여 좋았지만 역시 산행은 봄과 가을이 좋고 여름보다는 눈이 내리는 겨울이 운치가 있다. 보국문에서 대동문 근처까지 갔다가 그늘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니 마음이 상쾌하고 시원하여 가져간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1시간을 보내고 내려오면서 따져보니 욕심을 부리면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삶을 사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현실은 모순이 많다는 인식을 했다. 오후 3시에 정릉식당에 들어가 순두부와 북어찜으로 점심을 사 먹고 집에 돌아왔더니 부산과 영덕을 다녀온 영식이가 급하다고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서둘러 방배동에 갔더니 그의 친구들과 낮부터 술을 마셨다며 횡설수설 한다. 친구가 좋긴 해도 사업이 궁금하여 만나러 나간 것인데 특별한 일도 없고 오히려 처음 보는 그의 친구들과 어색한 동석을 하게 되었다. 사전에 양해도 없이 무작정 친구라고 소개시키면 공통되는 대화도 없는 자리에서 서로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영식이는 몰랐던 모양이다. 소고기와 해물찜으로 식사를 하고 늦은 시간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지만 흡족하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5일 어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새벽에 잤는데 은근한 스트레스로 아침까지 머리가 무겁다. 술을 마실 때는 편하고 신이 나는 자리가 되어야 건강에도 이로운 법인데 날도 더운 어제는 불편하게 억지로 보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9시에 학원으로 가서 수업을 하고 오전을 보내면서 선생들한테 강의료를 정산해 주었는데 수업한 시간이 적어 액수가 많지 않았다.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이제는 혼자만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어학원을 운영하리라 생각했다. 학원 임대료를 입금한 뒤에 중국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 체육관에 갈까하다가 날이 더워서 포기했다. 거실에 누워서 TV를 보는 중에 아들이 들어오더니 일본 학생들하고 축구경기를 했다며 상대의 실력이 월등하여 졌다고까지 말한다. 축구를 하고 온 날에는 날마다 자신이 골을 넣어 이겼다는 소리만 하더니 오늘처럼 아들이 지는 날도 있나 싶었고 그러나 인생은 그럴 수가 있다. 밤 8시가 지나서 딸이 이어서 수업을 마친 아내도 들어왔는데 내가 일찍부터 거실을 차지하고 누워 있으니 모두가 자유스럽지 못한 감도 있다. 오래 전에 영식이가 보내온 냉동되어 있는 방어를 시래기를 넣고 끓였더니 담백하기는 했어도 처음 먹는 생선이라 맛의 기준은 알 수가 없었다. 식사 후 TV를 시청하던 아들과 딸이 방으로 들어갔고 나도 컴퓨터를 하는 아내를 거실에 두고 일찍 잠이 들었다. 오늘 저녁도 그렇고 우리 집은 평소에 말이 없는 조용한 가족이지만 훗날 아들과 딸은 대화와 웃음이 넘치는 가정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6일 오늘부터는 금연을 하고 새로운 목표로 마라톤 준비를 한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10월25일까지는 80일 전인데 달리는 날까지 합하여 1000킬로는 연습을 해야 한다. 지난 3개월은 어머님을 기록했고 앞으로의 3개월은 마라톤에 대한 도전으로 지난 가을 평화통일마라톤의 고통을 나는 아직 잊지 않고 있다. 평소에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 고통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길이고 달리는 내내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과정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특례학생 자기소개서를 새벽에 1시간 작업을 했는데 컴퓨터 작동을 잘못하여 헛수고가 되어 버려 스트레스가 아침부터 생겼다. 김치찌개로 식사를 하고 오전 10시에 마라톤 연습으로 작년 늦가을 이후 거의 10개월 만에 홍제천에 나갔다. 실개천과 주변의 신록은 변함이 없이 그대로인데 나는 그 사이에 어머님이 돌아가셨고 투병기까지 완성하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 하루가 또는 일 년이 긴 것처럼 보여도 지나고 보면 순간이고 지금은 어느덧 2009년 8월의 초순을 맞이하고 있다. 한여름이라고 해도 출발할 때는 바람이 불어 선선했는데 모래네 다리를 돌아 7킬로를 달리고 돌아왔더니 땀이 흘러내린다. 내일부터 거리를 늘려가면서 매일 연습을 할 것이고 당당하게 살아있는 내 모습으로 10월을 만들어 갈 것이다. 홍제천에서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오후까지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은 후 학원에 갔다가 5시에 집에 돌아와 특례학생 수업을 마쳤더니 하루가 지나 버렸다. 저녁에 딸이 친구 집에서 잔다고 연락이 왔는데 처음 있는 일이라 불안함으로 나와 아내가 동시에 반대를 했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에는 술을 마신 영식이의 나오라는 전화가 왔고 내일 마라톤 연습과 강의 등으로 시간이 촉박하여 어렵다고 나는 응답을 했다.
7일 새벽에 일어나니 밤새 비가 내렸다. 아내는 4시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일어나 서성대더니 6시가 되어 다시 곤하게 잠이 들었다. 마라톤 연습으로 홍제천에 나가 6시에 출발하여 어제보다 긴 거리 성산동까지 9킬로를 50분에 달리고 돌아왔다. 낮 기온은 높아도 시원한 새벽에 홍제천을 걷는 사람들이 많았고 명지대 부근에서는 에어로빅을 하는 팀들이 활기찬 아침을 여는 선봉의 역할을 날마다 하고 있다. 오늘의 목표치를 달리고 이마에 땀방울을 단 채로 집으로 돌아와 식사 후에 학원으로 나가는데 아들과 딸은 아직도 잠을 자고 있어 새벽을 달린 나와 대조적이다. 오늘과 내일 서울에 국지성 호우가 내린다기에 우산까지 준비하여 학원에 도착하여 고등부 금요일 수업을 시작했다. 영어선생이 오늘도 나오지 못해 국어수업만 연속으로 했고 점심을 한 뒤에 신설동에 임대료 때문에 갔다가 종로를 거쳐 5시에 집에 돌아왔다. 특례학생이 요청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저녁에 남영동 빈대떡 집에 가서 영식이와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8일 새벽에 일어나니 남부지방에 비가 내린다는 뉴스와 함께 서울도 잔뜩 흐린 하늘이다. 어제 늦게 들어와 오늘은 마라톤 연습을 못하고 아침에 아들이 남산 걷기대회 봉사활동 간다기에 중턱이라도 달려볼까 준비를 하고 아들과 출발했다. 서울역을 경유하여 후암동 언덕을 올라 남산 백범 광장에 도착하여 아들을 내려주었는데 이내 비가 거세게 내려 달리기를 포기하고 학원으로 이동했다. 밖의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학원은 조용하고 시원하여 강의를 준비해 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체육관으로 나갔다. 방학 중이라서 그런지 오늘은 젊은 대학생들이 눈이 많이 띄었고 그 틈에서 달리기와 기구운동을 하며 함께 땀을 흘렸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늦은 오후에 거실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으니 아빠도 이렇게 한가한 시간이 있는가 싶은지 아들이 의아해하고 딸은 친구와 민정이 생일 선물 산다고 교보문고에 나간다. 안산의 짙은 신록과 선선한 바람이 밀려오는 마치 강원도 어디쯤 피서를 온 듯한 착각에 빠지며 잠까지 자고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내일 북한산에 가자는 영식이 전화가 왔는데 할 일이 많아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한일전 올스타 TV축구경기를 계속 시청했다. 피곤한 모습으로 수업을 마친 아내가 들어와서 혼자만 밥을 먹기에 나도 따로 식사를 했고 얼음을 사용하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아직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목소리를 높였더니 갑자기 집안의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얼음을 채우라고 여러 번 당부했는데 오늘도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고 둘 중 한사람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거실에 누워있었더니 아내와 아들 딸이 금방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9일 일요일이라 거실에서 잤는데 편하지가 않아 새벽에 안방으로 들어가 그나마 깊은 잠이 들었다가 해가 환하게 뜬 8시에 일어났다. 날이 덥기는 해도 일요일이라 가족과 나들이를 계획했는데 아내와 아들 딸이 평소처럼 스케줄이 있어 나만 11시가 되어 안산에 올랐다. 산 아래에서 시원하게 불던 바람도 중턱에 이르니 멎었고 정상을 거쳐 그늘이 있는 바위에 앉아 가져온 오이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이 지나 집에 내려왔더니 스케줄이 많다던 아내와 아들 딸이 벌써 돌아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먹고 있다. 일요일이라 수업은 없지만 오후에 지하철로 시원한 학원에 가서 일정을 정리하고 6시에 다시 돌아왔는데 아내는 수업으로 논술교실에 아들은 학원에 갔다며 딸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오늘 기온이 31도를 넘어 금년 들어 가장 덥다고 하는데 작년에 비하면 그나마 견딜만한 편이고 선선하기까지 한 저녁에 딸과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8시가 지나자 수업을 마친 아내가 역시나 흥이 없는 얼굴로 들어왔고 정적만 흐르는 밤에 창문 사이로 밀려온 산바람을 친구삼아 거실구석에서 잠이 들었다.
10일 오늘 학원에 가서 일찍 수업을 하고 고향에 내려갈까 계획을 세웠는데 할 일도 많고 마음도 복잡하여 다음으로 미루었다. 신설동이나 대치동에서 처리해야 하는 금전문제가 있고 장원장과 만나서도 강사료 등을 정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식사를 마친 뒤에 학원에 나가서 1,2교시 국어수업을 하고 3교시는 새로 온 영어선생이 수업을 처음 진행했는데 강의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강사료부터 언급하여 피곤함이 생겼다. 면접을 할 때는 학생들을 위하고 오직 강의에 열정을 다하겠다더니 몇 시간 만에 자세나 눈빛에서 그런 모습은 사라지고 계산에 밝은 현대인이 되어 있다. 점심에 중국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는데 오후에 속이 편하지 않고 머리까지 어지러워 집에 일찍 돌아왔다. 기온이 높은 여름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를 잡탕으로 기름에 튀기는 중국요리는 불결할 수가 있고 위생에도 문제가 많을 것이다. 7시가 되어도 밖이 훤하여 산 중턱 약수터까지 올랐다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긴 호흡을 여러 번 하니 머리가 맑아왔다. 바로 내려와 저녁을 먹고 TV를 시청하는 중에 논술수업을 마친 아내가 들어오더니 바로 요가를 배운다고 현관을 나선다. 내일부터 전국적으로 또 300밀리 이상의 많은 비가 온다고 하는데 벌써 마파람이 불어오고 낮은 기온의 음습한 밤이 되어간다.
11일 일찍 일어났는데 비가 오려는지 날이 흐리다. 어제 잠자기 직전 아들과 마라톤 연습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여 새벽에 거실에서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웠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난다. 먼저 내려가 차를 준비하여 관리실 앞에서 기다리니 한참 후에 배가 아프다고 못 가겠다고 전화를 해 온다. 어쩔 수 없이 홍제천에 혼자 나가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까지 왕복 11킬로를 달리고 돌아왔다. 바람이 불어 선선하기는 했는데 마라톤 연습을 마칠 무렵에는 비가 내려 땀인지 빗물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집으로 8시에 들어와 식사를 하고 다시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오전 시간이 지나버렸다. 점심에는 아들과 식사를 했고 외출한 딸에게 비가 많이 내린다고 걱정하며 전화를 했더니 쇼핑하고 영화를 보려고 친구와 명동에 나왔다고 한다. 오후에 과학학원에 간다는 아들을 태우고 갔다가 내려주고 신설동으로 이동하여 일을 본 후에 학원으로 들어가 강의를 준비하고 교재를 점검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딸과 삼겹살로 저녁식사를 하고 나니 중앙대를 응시한다는 특례학생에게 마지막으로 보충을 했다는 아내가 9시에 들어왔다.
12일 태풍 모라의 영향으로 서울에는 바람이 불고 더 많은 비가 내린다니 은근 걱정이 된다. 어제 운동을 많이 했더니 오늘은 오히려 몸이 아플 정도이고 일찍 일어난 아내는 불쑥 장모님과 처제와 함께 KTX를 타고 부산으로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마 지난 밤에 기차를 타고 다니는 꿈이라도 꾸었나 싶은데 외국도 아니고 2시간이면 가는 곳이니 시간을 만들어 언제든지 다녀오라 이르고 콩나물국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늦게 일어난 딸과 아직도 잠을 자는 아들을 두고 수업을 하러 대학로를 거쳐 학원에 도착했더니 이 곳의 수강생들도 늦잠으로 대부분 지각을 했다. 아들과 딸뿐만 아니라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학생들의 공통된 이유는 대부분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늦게까지 사용하다 잠이 들기 때문이다. 오늘은 영어선생까지도 결석을 하여 혼란한 아침이 되었는데 평소에 학생들을 생각하는 열정적인 강의를 부탁하는 나지만 이해타산을 따지는 젊은 선생들에게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는 통하지도 않는다.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고 영식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평소에 체육관 근처도 가지 않는 사람이 운동중이라고 하여 놀랍고 반가웠다. 영식이는 나와 성격이 달라 산에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운동하는 것이 전혀 없어 수시로 독려를 했는데 아무튼 꾸준하게 자기 관리를 했으면 좋겠다. 비가 그친 오후에 시내에서 삼겹살로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왔고 늦은 밤에는 고향 후배와 향우회 건에 대하여 긴 시간 통화를 했더니 금방 자정이 넘었다.
13일 눈을 뜨니 9시가 되어 아침에 식사를 늦게 했다. 광복절 기념으로 나처럼 운전면허가 취소된 사람들에게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내리어 1년의 응시 제한이 3개월 만에 사라졌다. 이제부터 시험에 응시하여 면허증을 취득하면 되는데 대통령의 혜택을 직접 받은 운이 좋은 일이라도 앞으로는 음주운전은 없어야 할 것이다. 먼저 교육을 받아야 해서 모레 토요일 가까운 왕십리 도로교통 회관에 접수를 하려다가 향우회 야유회와 겹쳐 어쩔 수 없이 내일 금요일에 멀리 강남교육장까지 가기로 했다. 오늘부터는 기온이 오른다더니 집에서 학원광고를 만드는 오전에 벌써 30도를 넘어서 등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지경이다. 거실을 청소하는 아내는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잠만 쿨쿨 자는 아들 때문에 답답한지 연신 한숨만 내쉬어 나도 불편하여 집을 피해 학원에 나갔다. 에어컨을 켜 두고 잠부터 조금 잤더니 집보다 몇 배가 더 편하였고 내일 운전교육으로 강의가 불가능하다고 미리 통보한 터라 대신 오늘 수업을 실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어선생이 또 결석을 하여 영어교과서에 있는 단어 50개를 암기시키고 원장이라는 타이틀로 내가 지문까지 해석해 주었더니 의외로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다. 동대문 세무서에서 간이과세자 세금에 대하여 연락이 와서 직접 세무서를 찾아갔더니 담당자가 잘 처리해 주겠다며 대가를 요구한다. 내가 내야 하는 세금을 적은 액수로 조절해 주겠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일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고 오는 길에 서대문 충정로 지구대에서 경찰로 근무하는 친구 용만이를 만났다. 20대 초반에 술만 마시면 엉뚱한 행동을 많이 한 놈인데 지금은 경찰로 근무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현실이다. 집으로 돌아와 혼자 저녁을 먹었고 무심결에 달력을 바라보니 오늘은 무더위가 끝이 난다는 8월 중순 말복이다.
14일 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내가 새벽에 거실에 나와 있고 나로서는 오늘 자동차 교육이 있어 마라톤 연습도 포기한 채 집에서 아침 시간을 보냈다, 늦잠을 자는 아들과 딸 때문에 흥이 나지 않은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도로교통 소양교육을 받으러 지하철을 타고 양재역으로 출발했다. 원래는 내일 토요일에 받아야 될 것을 다른 일정과 겹쳐 오늘 강남까지 가게 되는 것이고 양재역에서 택시를 타고 청계산 입구 교통회관 강남연수원에 10시가 거의 되어 도착했다. 오전 2교시를 마치고 오후에 2교시 교육을 더 받는 과정인데 오늘 담당자는 원칙대로 강의를 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을 제공하여 효율적인 시간이 되었다. 교육을 마치고 어제 방문한 동대문 세무서에 갔더니 퇴근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례비를 요구한 세무담당자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해관계를 따져 본다면 내가 손해가 아니더라도 양심의 갈등이 많이 생겼고 마지막에 최저 금액을 요구하여 인출해 주었더니 내가 내야할 세금을 없애주고 자신이 서류까지 마무리 하겠다고 한다. 완성된 서류를 받으러 월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 수표번호를 증거물로 기록해 둔 내가 뇌물죄로 고발한다고 엄포를 놓아 열 배로 돌려받을까 생각도 했다.
15일 광복절 아침 날 재경 고향 마을 야유회를 가는 날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참가한 적이 없는데 후배 성일이가 총무를 맡아 간곡하게 부탁을 하여 참석을 해 보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용산에서 모여 단체버스로 출발하지만 목적지가 구파발 근처에 있는 일영유원지라 나는 먼저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개별적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낮 기온이 33도를 넘는 한낮에 계곡을 따라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휴일을 맞이하여 피서 나온 사람들이 많았고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40여 명의 낯익은 고향 사람들과도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임원진들이 준비를 잘하여 음식이나 선물이 푸짐했고 4팀으로 나누어 족구도 했는데 우리 팀이 우승하여 각각 와인 한 병씩을 상품으로 받았다.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막내 고모님도 참석하여 옛날 배구선수 출신답게 살아있는 운동감각을 보여 주었는데 60대의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7시에 집에 돌아와 푸짐한 상품을 풀었더니 밥주걱이나 플라스틱 제품 등 값이 나가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 고향 사람들의 모임은 해마다 광복절에 모임을 갖는다고 하는데 날이 덥기 때문에 가급적 봄이나 가을에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듯하다.
16일 일찍 잠이 들었다가 새벽 2시경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거실에 앉아 있는데 도로에서 자동차 사고가 크게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개인택시가 불법으로 유턴하다가 또 다른 택시와 부딪혀 차가 완전히 파손되었고 구급차에 사람이 실려 가는 잠깐의 실수가 큰 화를 낳았다. 바람이 선선한 새벽 3시에 시간을 잊고 배회하다가 날이 밝아 오면서 집으로 들어갔고 다시 자다가 더워서 깨었다. 뉴스를 보니 오전 현재 기온이 30도를 넘었고 산으로 갈까 하다가 어제 아들이 빌려온 자전거가 있어 반바지 차림으로 타고 홍제천에 나갔다. 평소 달리던 성산대교를 지나 한강변에 다다르니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취미생활을 하고 있어 푸른 강물과 함께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요즘 날이 덥다는 이유로 마라톤 연습을 게으르게 하는 나로서는 반성을 하며 집에 돌아왔고 식사를 마치고 학원에 나가서 강의를 하며 오후를 보냈다. 오늘은 낮 최고 기온이 34도를 넘어 막바지 늦여름이 시작된 느낌이었고
저녁에는 일찍 들어와 딸과 닭국물로 저녁을 함께 먹었다. TV를 보는 중에 수업을 마친 아내가 돌아왔고 늦게까지 아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17일 오늘은 수업도 해야 하고 세금과 자동차 면허시험 등 처리할 것들이 많다. 일찍 학원에 나가 수업을 하고 동대문 세무서에 가서 엊그제 수임료라고 받아간 담당 세무사를 만났다. 농담으로 고발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받은 돈을 돌려주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가 점심까지 대접한다. 하지만 많은 액수도 아니고 세금도 처리해 준 상황에서 내가 그렇고 비정하고 야비한 사람은 아니다. 학원으로 다시 돌아와 강의를 마친 점심에 수강생들에게 자장면을 사 주었더니 모두 좋아하여 학원과 관련된 모든 스트레스를 풀었다. 비가 오려는지 날이 어두워지고 오후에 신설동에 나가 세입자와 금전처리를 하는 중에 근처에 있는 콜라텍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나이든 어르신들이 운동이라고 열심히 춤을 추고 있다. 사람마다 취미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 여기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내일 응시할 자동차 학과시험 준비를 컴퓨터를 활용하여 암기하였다. 아내가 마트에서 주문한 쌀과 포도가 왔는데 포도는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쌀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벼고을(벽골제)에서 자란 내가 쌀을 사서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 일이다.
18일 오늘 운전면허 필기시험 날이다. 애당초 면허가 취소되었으니 처음부터 시험을 봐서 합격을 해야 신규로 취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일단 이론에서 60점 이상은 맞아야 하기에 어제 저녁처럼 새벽에 인터넷을 이용하여 이론과정을 반복하여 열심히 정리했다. 면허시험장에 달려가려고 식사도 거르고 시험을 마치고는 다시 마라톤으로 돌아와야 해서 운동복과 벨트에 신분증과 카드도 준비했다. 홍제천에서 출발하여 월드컵 경기장을 거쳐 8킬로를 달려 서부 면허시험장에 도착했고 신체검사를 마친 9시에 학과 시험장으로 올라가 40문제의 시험을 빨리 마치고 끝내기 버튼을 누르니 85점 합격을 알린다. 1층으로 내려와 3일 후에 기능시험을 보겠다고 접수하고 홍제천을 따라 다시 달려서 돌아왔다. 새벽부터 마라톤 연습도 하고 운전면허 시험까지 일석이조의 시간을 활용했는데 하루가 상쾌하고 보람이 있다. 오전을 보내고 점심으로 라면을 만들어 함께 먹으려고 아들을 불렀더니 무슨 일이 있는지 잔뜩 찡그리고 불만에 찬 표정으로 말없이 먹고만 들어간다. 3시경 학원에 도착하여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를 켰더니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 전직 대통령께서 서거를 하셨다. 놀라기도 했지만 전라도 사람들의 한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그와 얽힌 정치사가 여러 가지 떠올랐다. 오늘 저녁 딸이 친구 이린이네 집에서 잔다고 하여 호기심이 많을 때라 처음으로 외박을 허락해 주었는데 밤새 거실은 더 휑하기만 했다.
19일 오늘도 기온이 30도를 넘는다는 뉴스가 나오고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로 나라가 추모의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여,야간 국민장과 국장으로 대립하다가 국장으로 결정되었고 장지로는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을 조율하다가 서울현충원으로 결정되었다. 당연 국장과 서울현충원이 격과 위상이 높기 때문에 야당에서 반대를 했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한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내일은 강의가 없고 모레부터 저녁수업을 시작하는 것이라 개학을 앞두고 오늘 마지막 오전 강의를 실시했다.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이 결석을 하여 내가 연속으로 강의를 했지만 학원이나 회사나 식당이나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힘든 일이다. 오후에 지하철을 타고 대치동에 갔다가 마원장과 수익금을 논의하고 돌아오는 중에는 오늘부터 백수가 되었다는 영식이 전화를 받았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수학출판사에 문제를 점검한다고 일주일에 몇 번씩 다녔는데 그것마저 그만둔다니 고민이 생길 것이다. 형제처럼 내가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충무로까지 와서 4호선으로 학원에 돌아왔다. 기온이 높은 오후에 집에 왔더니 어제 친구와 밤을 보낸 딸이 돌아와 있고 아들은 친구 정목이와 축구를 하고 다시 외출을 한다는데 자유롭게 살아가는 아들이다.
20일 새벽에 비가 내린다. 말복도 지났으니 이 비가 그치면 낮 기온이 내려가고 열흘이 지나면 9월이 돌아와 가을의 시간으로 접어들 것이다. 마라톤 연습을 나가려다 게으름을 피웠더니 금방 8시가 되었고 아침식사를 마쳤는데 다음 주부터 개학을 하는 아들과 딸은 오늘도 늦잠을 자고 있어 심난한 마음이 생겼다. 10시에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들은 멍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아내는 개학을 앞 둔 아들의 학교에 청소를 한다고 나간다. 김치찌개로 점심을 하고 28도의 기온을 즐기며 학원에 나가서 인터넷을 보았더니 김대중 대통령의 입관식이 끝나고 영면한 얼굴이 공개되어 나와 있다. 호남에서는 절대자인 사람이 영남에서는 불신의 인물로 인식되어 현실에서는 논쟁이 뜨겁지만 훗날 역사는 그를 평가할 것이다. 공과가 있을지라도 한 시대를 풍미한 민주투사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이 무상의 경지로 떠났고 이제는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강의를 마치고 일전에 개업한 신설동 2층 호프집에 들러 임대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9시에 돌아와 일전에 시골에서 올라온 여러 종류의 김치로 저녁식사를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머니께서 생전에 수시로 만들어 준 파김치였는데 오늘도 고향의 맛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일은 자동차 기능시험을 보게 되는데 20년 넘게 운전을 했기에 걱정은 되지 않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1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인터넷에서 기능시험 공부를 하고 홍제천 달리기 지점에서 7시에 면허시험장으로 출발하여 월드컵공원을 거쳐 서부 면허시험장에 땀을 흘리며 8시에 도착하니 8시 30분부터 이론교육을 실시한다. 기능시험 9시가 되어 차례가 되어 내가 출발을 했는데 시속 20킬로 지점에서 판단착오로 속력을 내는 바람에 불합격이 되었고 규칙을 몰랐다고 하지만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본관 건물로 이동하여 다시 접수를 하고 홍제동까지 마라톤을 하는데 이것도 시험이라고 기분이 나지 않아 걷다 달리다 하면서 서대문구청 폭포수 앞에 11시에 도달했다. 화장터 길을 걸어 집에 돌아오니 새벽에 오셨다는 장모님께서 8년산 도라지를 토종닭에 넣어 삶아 두고 가셨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7일장으로 거행되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장이 계속 되는 가운데 오늘은 그의 일기("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가 공개되어 화제가 된 날이다. 일기를 작성하는 것은 현재를 기록하여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는 바람직한 일이지만 인내심이나 지구력이 요구되는 힘들고 고독한 과정이다. 영식이가 오늘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영덕복숭아를 고향에서 가져왔다고 오라기에 방배동으로 차를 몰고 갔다가 싣고 집에 돌아오니 10시가 되었다.
22일 가족이 모두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함께 하고 내일이 대통령 장례일이라 모두 조문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가까운 시청에서 조문을 해도 되지만 장례본부이자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직접 찾아가니 아침 9시 전이다. 내일 영결식을 위하여 의사당 내부에 대통령의 사진과 유품 그리고 동영상 등을 관계자들이 준비해 두었는데 사람은 가고 없어도 돌고 있는 그의 유품 시계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화와 민주를 실현한 김대중의 명복을 빌고 국회의사당을 나와 아내와 아들 딸을 교보문고에 내려주고 친구가 방수공사를 하고 있다는 신설동으로 달려갔다. 인부를 대동하고 온 친구는 감독을 하고 크랙이 있는 옥상 일부만 인부가 손질했는데 3시간도 안 되어 오전 중에 마쳤다. 비용 60만원을 건네고 친구와 점심을 먹은 후 헤어졌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일을 맡겼더니 일일이 따지지도 못하고 금전적인 부분도 말할 수 없었다. 학원으로 가서 수업을 하고 10시가 지나 집에 돌아오니 낼 대통령 영결식 준비과정을 TV에서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23일 아침에는 선선하기보다 오히려 추울 정도이니 8월의 하순을 보내면서 가을의 기운이 많이 밀려와 있다. 오늘은 민족과 조국을 위해 헌신했고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고 실천한 김대중 전직 대통령 영결식이 있는 날이다. 문득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어떤 이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북한이나 미국 일본 등 각국의 애도 속에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사람이 있고 1년 전에 떠난 고등학교 동창 은식이처럼 상가에 한 사람의 조문객도 없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의 나는 어떻게 어디에 살고 있는지 반문해 보았다. 오전에 모처럼 안산에 올라 산길을 걷고 중턱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 대운동장에서 기구운동을 하고 12시에 내려왔다. 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영결식 중계를 시청하다가 영구차가 국회의사당을 출발하여 서강대교를 건너 동교동 대통령의 자택에 들렀다가 시청에 멈춘다기에 시간을 맞추어 집을 나섰다. 당연히 광화문부터 서울시청 주변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특히 서울에 사는 전라도 사람들은 모두 나와서 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영구차가 시청 앞에 도달하자 함성은 통곡의 소리로 변하였고 고종이나 이승만 박정희의 영결식을 능가하는 장렬한 행진이 계속 되었다. 추모식과 영부인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영구차를 현충원으로 보내고 교보문고에 들어가 책을 보고 7시에 집으로 가서는 라면을 끓여 딸과 저녁으로 먹었다.
24일 월요일인 오늘은 아들이 개학을 하는 날이다. 거실을 나서는 아들을 바라보니 아무리 보아도 실력이나 인성이 엉망인데 몇 개월만 지나면 고등학생이 된다니 걱정이 많다. 학원에 나갔는데 일찍부터 영식이 전화가 왔고 용산에 볼 일이 있어 나왔다기에 점심을 하기로 하고 일단 학원으로 오라고 했다. 10시 지나 만나 선박 이야기와 필리핀에 투자한 자금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나서 40대 중반부터 학원을 떠날 것 같았던 내가 끈기 있게 강의를 하고 있다며 대단하다고 칭찬을 한다. 나도 그렇고 영식이도 그렇고 누구나 살아가면서 돈도 중요하지만 일이 있어야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이고 수입이 적어도 일에 보람을 느낀다면 그것도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도 행복이 있고 농촌에도 행복이 있듯이 큰 집에 사는 사람이나 소형 주택에 사는 사람의 행복의 가치 또한 결코 다르지 않다. 영식이와 점심을 함께 하고 집으로 가서 특례학생 수업을 했고 다시 성북동 학원에 나와서 고등부 저녁 수업을 마친 뒤에 밤 9시 집에 들어왔다. 거실에 있는 아내와 아들이 사진첩을 펼쳐 두고 옛날 사진 등을 보며 낄낄대고 좋아라 하며 보내고 있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다.
25일 새벽이 시원하다. 홍제천에 나가 마라톤 연습도 하고 서부 면허시험장에 가서 2차 기능시험을 보고 다시 달려서 돌아오는 일정이다. 6시30분 집을 나서 출발점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약 9킬로 50분 이상을 달려 시험장에 도착했고 8시 지나 맨 먼저 2차 기능시험을 실시했는데 이번에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속도에도 위반되어 또 합격하지 못했다. 사고도 없는 20년 운전경력을 가진 내가 연거푸 낙방이라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고 밖으로 나와 새벽에 마라톤 시간에 맞추어 다시 접수를 마치니 모레 목요일 아침이다. 홍제천으로 달려 돌아오는 길에 마음은 가볍지 않았지만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돌아와 음료수를 마시면서는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생각해 보았다. 집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내는 벌써 논술학원에 갔고 오늘 2학기 개학한 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있다. 오후에 학원에 지하철로 나가 수업을 하고 비가 내리는 저녁에 방배동으로 가서 영식이를 만나 식사를 하고 11시에 시내버스로 집에 돌아왔다.
26일 어제 늦게 자고 일어났더니 아침 8시가 지났고 아들은 벌써 학교에 가고 없다. 오후부터 내일까지 비가 온다는데 이 비가 그치면 분명 가을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오징어찌개로 아침 식사를 하는 중에 딸이 학교에 가고 아내도 동사무소에 가서 영어수업을 마치고 바로 산에 오른다고 준비를 한다. 방학을 마친 학생들이 개학을 하니 아내도 그렇고 나도 낮 시간이 많아 나도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가서 운동을 하고 부가세 납부로 은행에 들렀다. 집에 와서 산에서 내려온 아내에게 점심을 부탁하니 수업이 늦다고 내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고 그냥 나간다. 2분도 안 걸리는 밥상 차림을 외면하고 나가다니 나라는 존재는 누구인가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었고 서운함과 야속함이 많았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 있어도 때가 되면 남편 밥 차려 주어야 한다고 서둘러 일어나는 시골에서 보아 온 사람들의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혼자 밥을 준비하여 먹고 나가려는데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고 지하철로 학원에 도착했더니 날마다 지각만 하는 수학 선생이 오랜만에 일찍 나와 수업을 하고 있다. 2,3교시 국어와 영어를 지도하고 집에 9시에 돌아오니 아내는 안방에서 불을 끄고 앉아 있고 딸은 오빠와 싸웠다고 서럽게 울고 있다. 형제나 남매간에 자라면서 싸울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뛰어내려 자살이라도 하고 싶다고 외쳐대는 딸의 억울함이 보통이 아닌 듯 했다. 아들과 딸을 불러 타이르기는 했는데 내 마음이 극도로 편하지 않았고 낮에 원망스러웠던 아내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술과 함께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27일 새벽에 일어나 오늘 실시하는 자동차 기능시험 준비를 했다. 두 번이나 낙방하여 체면이 말이 아니고 오늘은 비가 내려 차를 몰고 면허시험장에 갔는데 길을 잘못 들어 고양시 방면에서 돌아와 8시40분에 도착했다. 지난 시험처럼 9시에 시작을 했는데 출발과 동시에 돌발신호음이 울려 당황하여 비상버튼을 누른 결과 15점 감점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출발하기도 전에 오늘도 탈락이다 싶어 체념을 하고 나머지 구간에서 평소 운전 솜씨대로 긴장 없이 했더니 이후 감점이 없어 85점으로 합격하였다. 집에 10시에 돌아와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하고 어제 많이 울고 오늘 아침에 학교에 갔을 딸에게 사랑한다고 힘내라고 문자를 보냈다. 나도 어제와 같은 삶이 우울하여 비가 내리는 오후에 고속터미널 근처로 나가 술을 마시고 방배동으로 이동하여 늦게까지 시간을 보냈다. 집에도 선뜻 들어가고 싶지 않아 거리를 배회하다가 눈앞에 보이는 찜질방에 들어갔고 오늘 다하지 못한 신설동 임대료 독촉 문자 등을 보내고 새벽까지 뒤척이며 지냈다.
28일 사우나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가 띵하다. 아침에 이름이 있는 콩나물 해장국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입맛이 돋지 않아 대충 먹고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지하철을 타고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했다. 점심이 지나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어디에 다녀왔냐고 물어 연락도 하지 않은 나로서 미안한 마음이 일어났다. 아내도 나와 아들이나 딸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을 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사는 것이 어떨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안타까움이 많은 사람이다. 4시에 학원에 도착하여 수업을 하고 오늘 장인어른 생신에 참석을 못하여 류승철 처남에게 미안하다고 전화를 했다. 초정약수에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님을 모시고 목욕을 나왔다고 하는데 쉬운 일도 아니지만 따뜻한 정이 흐르는 이것이 부자지간의 삶이 아닐 수 없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왔더니 아들은 학원에 갔고 딸은 거실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데 커가면서 자신의 정체나 미래에 대한 불안 등 딸만의 고민과 갈등이 있을 것이다.
29일 오늘은 기온이 18도라니 분명 선선한 가을로 들어섰다. 방학 동안에 학원에 다닌다고 아들의 수강료를 납부해 주었더니 개학을 했다는 이유로 중간에 그만두어 효과도 없을뿐더러 낭비만 생겼다. 내 마음이 편할 리가 없는데 아들은 아침식사도 안하고 학교에 가고 딸도 역시 식탁에 오지 않고 어두운 표정으로 현관을 나선다. 이른 아침부터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하게 변하여 아내에게 화풀이를 하고 차를 몰고 마라톤 차림으로 홍제천에 도착하니 9시30분이 되었다. 준비운동을 마친 뒤에 성산대교를 지나 양화대교 아래까지 갔다가 아름다운 월드컵공원 호수를 거쳐 출발점으로 2시간 만에 돌아왔다. 20킬로의 거리라 빨리 달린 기록은 아니지만 마친 뒤에 음료수로 갈증을 달랬더니 기분이 회복되었다. 12시가 되어 집에 왔더니 학교에서 온 딸이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있고 나는 마원장과 약속이 있어 바로 대치동으로 갔다가 이야기를 나눈 뒤에 3호선과 4호선을 갈아타고 학원으로 4시에 돌아왔다. 강의를 마친 저녁에는 남영동에서 삼계탕으로 영식이와 식사를 하고 생맥주 집에서 술도 마셨다. 친구는 요즘 하는 일도 없지만 매사 여유가 있고 성급한 나와는 대조적이어서 그와 만나 학원이나 집에서 생긴 답답한 것들을 하소연 하다보면 그나마 마음이 진정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30일 밤새 비가 오고 일요일 오늘 새벽까지 내리다가 그쳤다. 비가 온 뒤라 기온이 쌀쌀하여 마라톤 연습을 나가려다 거실에서 시간을 보냈고 늦게까지 잠을 자는 식구들 때문에 식사는 9시가 지나서 했다. 11시에 산에 가려고 나서는 중에 아내는 벌써 점심을 준비한다고 국수를 삶고 버섯과 다른 양념을 준비한다. 산에 올랐더니 아침까지 비가 와서 촉촉하고 나뭇잎에는 빗방울이 아직도 그대로 맺혀 있다. 정상에 오르고 평소처럼 중턱을 돌아 약수터 근처를 거쳐 내려왔더니 역시 다른 산에 가는 것보다 시간 낭비도 적고 경제적이었다. 아내는 벌써 논술을 하러 교실에 올라갔고 몇 시간 전에 만들었던 국수가 식탁에 있어 멸치국물에 먹었더니 맛이 있고 특히 평소에 좋아하지 않던 버섯이 오늘은 고기보다도 쫄깃했다. 오후에 학원에 나갈까 하다가 수업도 없고 피곤하여 집에 있으면서 딸과 대화를 나눠보니 엊그제의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다. 딸의 마음이 혼란스러워 보였는데 성장하면서 의식이나 판단이 바뀌고 특히 학교에서 친구관계 등 주변 환경으로 인하여 마음의 변화가 심한데 그래서 청소년기를 혼돈기라고도 한다. 성인이 되어도 굴곡진 삶의 과정은 멈추지 않는데 그러기에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자신감 자존감을 유지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무라이스와 제육덮밥을 시켜서 딸과 저녁을 먹었고 프로야구 경기를 시청하며 보내는 중에 수업을 마친 아내가 돌아왔고 아들은 12시에 왔다.
31일 이제는 새벽이 되면 오히려 서늘할 정도다. 오늘도 맑은 하늘이지만 아침에는 기온이 20도 이하로 떨어져 낮과 비교하면 일교차가 심한 날이다. 식사를 하는 중에 학교에 가는 아들에게 교복을 단정히 입고 가라고 했더니 대답은 안하고 눈만 부릅뜨고 금방 덤빌 기세로 바라보다가 그대로 나간다. 대치동 마원장이 금전거래를 하면서 주택을 담보로 설정해 주었는데 오전에 주소를 가지고 응암동에 찾아가 보았더니 영락중학교 근처에 있는 조용한 빌라 한 채다.곧바로 이동하여 체육관에 갔다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는 친구 부친상이라고 일찍 평택에 내려가고 없다.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오후 3시에 학원으로 나가서 임대료와 강사료를 정산하고 개인적인 금전관계를 점검하며 보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교무실에서 거울을 봤더니 얼굴이 부어 있는 사람처럼 내가 달라져 있는데 몇 달 사이에 3킬로의 체중이 늘어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군것질을 하지 않는 내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요즘은 과자나 튀김 등을 많이 먹고 있어 건강을 위해서라도 절제가 필요할 것 같다. 오늘 새로 등록한 수강생까지 포함하여 고등부 수업을 열심히 하고 집에 9시경 돌아와 저녁식사를 마쳤다. 열정으로 살아온 뜨거운 8월을 보내고 밤이 깊어가면서 청아한 바람소리가 9월의 노래처럼 창문을 통하여 들려온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8월처럼 내일도 오전에는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하지만 오후의 태양의 위력은 아직은 쨍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