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새 달린다. 하얀 선과 점점이 이어지는 노란 선을 따라 끝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길을...
아무리 피곤한 밤일지라도 잠들어 버리기엔 억울한 길이 먼 소록도 길이다.
내 소중한 아이들은 일찌감치 뒷자리에 앉아 잠이 들었다.
나보다 큰샘물 이모를 더 좋아하는 작은애도 이모 품에 안겨 잠이 들고,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소록도 길을 마주보고 앉았다.
순간 순간 상념으로 가라앉다가 옆을 보면 갈색눈님의 강하고 힘있어 보이는 눈은
밤길을 향해 있고, 리더로서의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진 나눔님의
잠들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엽기적인 기쁨조 역할에서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뒤에 앉으신 큰샘물님은 길 안내자 역할을 충실히 하셨으며,
쌈지님의 배려하는 마음에 따뜻함을 느끼고 배우며 봉사를 하기보다는
내가 위로 받기 위해 찾아가는 소록도의 길을 달렸다.
처음 부천에서 나눔님 부부와 준열이, 에미님과, 갈매님과 아드님, 쌈지님과,
경남님과, 제이비님, 늘감사와 나와 두 딸들이 갈색눈님이 운전하시는 버스에 몸을 싣고,
사랑한잔을 태우고, 몇 번 휴게소에서 쉬고, 익산에서 수수꽃다리님과 꽃다리님의 왕자를
태우고, 광주에서 몽실이를 태우고, 사닥다리 일행을 만나 잠결에도 반가운 해후를 하고...
아, 푸르게 밝아오는 여명... 어둠에서 희망으로...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로 시작되어 장사익 선생의 이름에 먹칠을 한
미룡이가 부르는 찔레꽃도 들었고, 트로트화 된 마징가제트는 잠에서 깨어난 자오 식구들의
웃음소리에 묻혔다. 간간히 내리던 비에 씻겨 어느새 구름사이에 얼굴을 드러낸 태양도
따라 웃는다. 녹동항 5분여 거리를 남겨두고 고개 하나를 넘자,
멀리 회색 빛 섞인 파란 바다가 보이고, 그 아래 펼쳐진 읍이라 하기엔 너른 녹동시가지가
노란 버스에 실린 일행을 반긴다.
아이들을 맡기기 위해 버스는 소록도로 보내고 나만 내려 집에 들르자,
학교를 정년퇴직하고 얼마 전부터 아파트 경비 일을 시작하신 아버지는
두 손에 밤을 새운 피곤과, 회 도시락 두 개와 상추를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 하셨다.
몇 달만에 만난 친정 부모님과 식사 후,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소록도 병원에 입원해 계신 할머니들의 목욕봉사를 하는 날인데 나 때문에 취소하셨다는
엄마의 말에 어차피 봉사를 하러 온 우리들과 함께 가자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를
모시고 나왔다.
소록도 입구에서 2번지 내에 위치한 동생리까지는 꽤 먼 길이다.
전화를 하자 몇 분이 어른들게 드릴 떡도 찾고, 더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녹동으로 나가셨다는 말을 듣고, 선착장에서 기다리다, 동성교회 장로님의 넉넉하신 웃음과
함께 오셨던 분들을 만나고, 조금 있자 눈에 익은 청년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런, 생각지도 못 했던 손가락걸기가 파란색 화물차를 운전해서 대전에서부터 새벽을 달려
혼자 와 준 것이다. 희망같은 자오의 젊은이들이다. 참 이쁜 사람들...
또 하나의 작은 감동을 안고, 동성교회에서 나온 차를 타고 교회에 도착하자,
오늘따라 소록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평소에 조용한 섬이 왁자지껄하다.
소록도를 체험하기 위해 많은 수가 달려 온 학생팀들도 있었고,
작게 시작했던 우리팀들도 광주에서 합쳐진 몇 팀들과 어울려 어느새 도착지에서는
몇 배로 불어나 있었다.
항상 정해져 있는 순서가 처음 도착하면 간단한 예배와 주방 일이다.
정성을 들여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일은 언제나 큰샘물님의 지휘로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늦게 들어왔더니 식사가 시작되고 있는 상태였다.
치아가 시원찮은 어르신들을 위해 부드럽게 삶아진 냉면에 계란과 오이채와 잘게 썬 김치를 얹고
시원한 육수를 부은 냉면에 떡과 수박이 함께 나온 상차림에 동생리 어른들은 50여분 정도 모여
식사를 하신다. 가위를 들고 상마다 다니며 긴 냉면 가닥을 잘라 드리며 인사 드릴 때만
그 분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넉넉했더라면, 정말 불편해서 오시지 못 한
분들을 직접 찾아 가 청소라도 해 드리며 많은 얘기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이 못내 아쉽다. 식사가 끝난 후, 몸이 불편하신 사닥다리 김송삼님 일행을
먼저 보내드리기 위해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나서 나눔님은 장로님께 드린 컴퓨터와
주변기기들을 설치하느라 진땀을 빼고, 한 편에서는 갈매님이 증정 받아 오신 주민들께 드릴
새 옷 박스들을 챙기고 나서, 나는 소록도를 처음 찾아 온 사람들을 위해 중앙공원을 안내
하기로 했다. 연신 밝은 얼굴로 웃고 계신 송삼님과 팀들을 보내드리고,
소록도에 왔으면 여기만큼은 봐야 한다고 우겨서 피곤한 몇 사람들을 데리고 중앙공원으로
내려갔다. 일제시대 원생들이 죄 없이 갇혀 지냈던 감금실과 시체를 검시하고 환자들의
종을 멸하기 위해 설치된 검시실과 소름끼치는 단종 기구들을 보고 나와, 생활전시관
에서 소록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방명록에 사인을 하고, 소록도 주민들이
예전부터 가꾸어 만든 중앙공원을 연신 감탄하며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와
다시 돌아가야 할 먼길을 준비한다.
소록도 주민들이 챙겨 주시는 마늘과 휠체어 여섯 대를 차에 싣고, 눈시울 붉히는
소록도 엄마들과의 아쉬운 이별을 뒤에 두고 소록도 일주를 하며 나눔님의 설명을 듣고,
동생리에선 꽤 먼 곳에 위치한 교도소와 주민들이 돌아가시면 사용하는 화장터를 돌아
멀리 납골당을 거쳐 녹동으로 나와 간단한 저녁 식사 후, 손가락걸기의 화물차에 휠체어
여섯 대와 마늘을 싣고 부천을 향해 출발...
짧은 시간으로 아쉬움 몇 가지들을 남기고 벌써 어둑어둑해지는 길에 올랐다.
집 앞에 엄마를 내려 드리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자, 잠깐이라도 들리게 되면 주려고
시장에 가서 마른 생선 몇 가지를 사다가 싸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는 말에 눈물이 난다.
다음부터 그런 식으로 가버릴 거면 다시 오지 말라고...
마음만 바빠 담배 한 벌도 준비 못 한 못난 딸에게...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 하신다.
피곤에 지친 몇 회원들은 하나 둘씩 잠이 들고, 운전하시는 갈색눈님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기 위해 쌈지님과 앞자리에 앉았다. 싸이버 상에서 알고 지낸 지 2년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많은 얘기를 나눠 보지 않았던 갈색눈님과 꽤 많은 얘기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만난 기간은 얼마 안 됐어도 꽤 많은 만남을 갖게 된 쌈지님께도 이제야 언니처럼
편안한 마음이 든다. 사람은 자주 봐야 정도 들고, 편안해 지는가 보다.
오던 길과 반대로 익산에서 꼬마공주를 안고 기다리는 꽃다리님의 남편에게 무사히
수수꽃다리님을 배달해 드리고, 창평에서 집 근처에 몽실이를 내려주고,
내일 부천에 들리겠다는 손가락걸기를 보내고, 도착 두어 시간을 남겨두고 잠이 쏟아져
마지막 들린 휴게소에서 그때 깨어난 늘감사를 앞자리에 앉게 하고 나는 뒤로 갔다.
그 후로 잠에 취해 비몽사몽 늘감사와 사랑한잔이 내리는 것을 보고,
부천사무실에 도착해 경남님과 우리들은 큰샘물님의 차로 옮겨 타고
다시 수원으로 가시는 갈색눈님과 인사를 하고 집에 도착.
정신 없이 자고 일어나 자오나눔을 알고 나서 99년 11월 첫 방문 이후
네 번째 방문한 소록도 후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