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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27 - 초대 받지 않은 손님 2
S#1. 연못 가 / 밤
조용한 가운데 연못의 분수는 정지되어있다. 그 근처를 주욱 훑는 기분으로 보고..
이만치 어둠 속에 장비들이 세워져있다. 안테나와 땅 위에 늘어져있는 전선 줄 등...
어둠 속에 민재와 대욱, 자현이 자리를 잡고 연못 쪽을 보고 있다.
그들 뒤에 자리잡은 백곰. 속으로 아주 무섭다.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연못 쪽에서 뭔가 부시럭거리며 소리를 낸다.
백곰 기겁을 해서 손전등을 그쪽으로 비춘다.
대욱 : (낮은 소리로) 불 꺼요.
백곰 : 저...저기 무슨 소리가..
민재 : 오리들 소리에요.
대욱 : 좀 가만 계세요. 귀신이 오다가 도망가겠네.
백곰 : (할수없이 불을 끈다. 잠시 조용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으이이..해서 벌떡 일어선다)
대욱 : (덩달아 놀랐다가) 왜 그러세요 또.
백곰 : 모..모기가..
자현 : 모기가 뭐요.
백곰 : 모기 소리가 이상하잖아.
아이들 전부 한심해서 본다. 백곰, 민망해서 어물거리다가
백곰 : 저기 누구 나랑 같이 조오기 좀 다녀올래?
대욱 : 조오기 어디요.
백곰 : ..화..화장실
민재 : (상대하기 싫어서 외면하고)
자현 : 대욱아.
대욱 : 난 좀 전에 다녀왔는데? (백곰에게) 다녀오세요. 우리 걱정은 마시구요.
백곰 : 그..그래도 될까.. 뭔 일 있음 소리를 쳐요.
주위를 살피며 조심조심 멀어져간다.
민재 하품을 한다.
민재 : 대욱아.
대욱 : 예?
민재 : 오늘 이 밤에 있었던 일 제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어?
대욱 : 왜요.
민재 : 챙피하잖냐. 이게 뭐하는 짓이냐 도대체.
하는데 느닷없이 들리는 백곰의 비명소리.
아이들 전부 놀라서 달려가며 뭡니까? 왜 그래요? 소리지른다.
아이들 달려온 곳에 백곰이 땅에 쓰러져 난리를 치고 있다.
백곰 : 내 발.. 내 발. 이거 놔. 노라고!
민재가 상체를 굽혀서 뭔가를 백곰의 발에서 걷어낸다. 전선줄이다.
백곰 : 뭐야. 그거 뭐야. 그게 내 발을 잡았어. 뭐야.
민재 : 여기 웬 전선줄이 있지?
백곰 : 전...선줄?
백곰, 그제야 좀 정신이 나서 본다.
민재와 대욱, 전선줄을 따라 주욱 간다. 백곰 부리나케 맨 뒤에 가는 자현의 옆으로 붙는다.
민재, 어느만큼 가다가.
민재 : 이게 뭐 같으니?
자현 : (타이머 등을 살피며) 이거 타이머잖아. 가만있자.. (손전등을 비춰보며) 한시 20분에 작동되게 되있어.
민재 갑자기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백곰 : 뭐야? 뭐 찾는거야?
민재 : 여기 어디 다른 장치들도 있을 거 같은데요.
백곰 : 장치?
이미 대욱과 자현도 주변을 부시럭거리며 찾기 시작하고 있다.
//(시간경과)
대욱이 풀섶을 뒤지고 있다. 그 옆 저만치에는 자현이 나무 위를 들추고 있다.
백곰은 중앙에 서서 플레쉬만 여기저기 비추고 있다.
민재 : (E) 어이 찾았다.
아이들 민재에게로 달려간다.
민재는 나무 위를 랜턴으로 비추고 있다.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환등기 하나.
대욱이 재빨리 나무를 타고 오르려는데..
민재 : 가만 있어봐. 만수형이 울음소리도 들었다구 했지?
대욱 : 어. 귀신 우는 소리라고 했던 거 같은데.
자현 : (E) 이거야 이거.
모두 보면 자현이 나무 밑 풀섶에서 카세트플레이어를 집어든다.
자현 : 여기도 타이머가 붙어있는데. 역시 한시 20분으로 되있어.
백곰 : (흥분했다) 아니 그러니까 누군가 이걸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거야?
민재 : 아마 저 환등기에도 타이머가 붙어있을 거 같은데요.
자현 : (카세트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소리 : (카세트에서 들리는 여자의 울음소리)
모두 어이없어 보다가 웃기 시작한다.
백곰만이 잔뜩 화가 나서. 카세트를 빼앗아 끄더니.
백곰 : 도대체 누굽니까? 내 반드시 이런장난친 자를 발본색원하고야 말겠습니다. 그리고 일단 이 장치들은 제가 압수하겠습니다.
이런 악질적인 장난을 한 사람은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고야 말겁니다.
여러분은 확실한 증인이 되주셔야 겠습니다. 아시겠죠?
하고 돌아보면 이미 민재네들을 어슬렁어슬렁 가며..
야 저 발전기 도로 들고 가야되잖아.. 안테나는 어쩌구.. 등의 얘기를 하고 있다.
백곰 : 어이 학생.. 학생들..
하는데 갑자기 분수대의 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백곰, 히익 놀라서 연못을 보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환등기가 작동하면서 백곰의 얼굴에 정면으로 빛이 비춘다.
백곰 기겁을 하여 소리를 지르며 방어자세를 취한다.
S#2. 기숙사 앞 / 밤
정태와 지원이 나란히 앉아있다.
지원은 말없이 자기 발밑만 내려다 보고 있고, 정태는 그런 지원을 흘낏 보고..
정태 : 그렇게 계속 아무 말없이 앉아만 있을거야?
지원 : (문득 고개를 들더니) 이제 됐어.
정태 : 뭐가.
지원 : 이제 좀.. 안정이 됐어.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일어선다)
정태 : 그래서.. 그냥 이대로 들어가겠다고?
지원 : 이제 가서 잘래. 요즘 좀 피곤했나봐. 잘 자.. (가는데)
정태 : (일어서 성큼성큼 걸어와 앞을 막더니) 너는 가서 자고, 난 이대로 밤새껏 아까 그게 뭐였나. 궁금해하란 얘기냐?
지원 : 궁금해할 거 없어. 그냥.. 헛거를 봤나봐.
정태 : 니가 본 헛거란 게 피아노를 치고 있었어? 아까 니가 말했잖아. 니가 거기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지원 : (벌컥 화를 내어) 아무것도 아니야. 뭐 그렇게 알고 싶은 게 많어? 내 말 모르겠어? 말하기 싫다고 하잖아.
정태, 그런 지원의 모습은 처음 본다. 말없이 보는데...
지원. 소리를 지른 자신을 당황해하다가 그냥 정태를 지나쳐 간다. 지원 몇걸음 가다가 멈추더니 돌아보지 않은 채.
지원 : 미안해. 정말... 피곤해서 그래. 그거 뿐이야.
지원 가버리고.. 정태, 가는 지원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짜증스러운 얼굴이 된다.
S#3. 도서관 일각 / 밤
구석에 나란히 앉아있는 재명과 옥주.
옥주는 재명에게 기대서 잠이 들어있고, 재명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잠이 들어있다.
두리번거리며 오던 마이클과 지민이 둘을 발견한다.
마이클 : (재명을 탁 치며) 재명.
재명보다 옥주가 먼저 엄마.. 놀라서 재명에게 달라붙는다. 재명 잠이 깨어 얼결에..
재명 : 뭐야 뭐.
마이클 : 에브리 가짜야. 가짜.
재명 : 뭐가.
지민 : 누가 장난 친거래. 좀 전에 민재오빠네가 찾아냈어. 누가 환등기랑 카세트루 장난친거래. 귀신장난.
재명 : (어이없어 보다가 옥주를 돌아본다) 들었어?
옥주 : (눈이 동그래서 보다가) 정말?
마이클 : 그러니까 옥주. 이제 무서워하지 마. 어떤 크레이지보이가 장난친 거야. 이거 아주 나쁜 장난이야.
재명 : 도대체 어떤 놈이야. 잡혔어? 어? 잡아놨대?
지민 : 아직 못 잡았는데요. 백곰 아저씨도 화나서 찾고 있대요.
재명 : 잡으면 나한테 먼저 말해달라구 그래. 알았지? 내 그놈을 아주 반 죽여놀거니까.
(옥주를 본다) 거봐. 귀신이 어딨어. 이럴줄 알았다니까.
옥주 : (아직 미심쩍어서) 카세트로 장난쳤다구?
지민 : 어. 그러니까 언니가 들은 울음소리도 그걸거야.
옥주 : 그럼 손은.
지민 : 손?
옥주 : 손도 봤단 말야.
마이클 : 아유 옥주. 그건 옥주가 너무 무서워서 잘못 본거야. 사람은 그래. 너무 무서우면 진짜가 가짜로 보이고
가짜도 진짜로 보이고..
지민 : 헛거를 본단 말이지.
마이클 : 댓츠롸잇?
재명 : 옥주야. 이제 됐지? 이제 과제도 하고 잠도 잘 수 있겠지?
지민 : 언니 오늘 밤에 우리 지원이 언니 방에서 자자. 그 언니는 아주 세니까 든든하잖아. 그치?
옥주 아직 불안하지만 아무 말 못한다.
S#4. 밤 기숙사 전경
S#5. 지원의 방
침대 하나에서 지민과 옥주가 잠이 들어있다.
지원은 책상 앞 의자에 혼자 앉아있다. 책상 위의 스탠드 불빛만 있는 방.
모니터에는 화면보호기만 작동되고 있다. 지원 키보드에 손을 얹다가 그만둔다. 아직 무섭다.
벌떡 일어나 추운 듯 양팔을 안고 서성이다가 아이들이 자고 있는 침대 옆에 기대어 바닥에 앉는다.
어두운 방의 허공들을 조심스레 둘러본다.
문득 고개를 훽 돌려 본다. 거기 탁상시계의 초침이 돌아가고 있다. 초침 소리가 점점 크게...
S#6. 아침 이교수 랩
이교수가 한심해서 보고 있고.
그 옆에는 명환과 중희, 그 외 랩 식구들이 보고 있는 중에 만수가 혼자 서서 떠들고 있다.
만수 : 애시당초 저는 연못의 귀신은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공기의 밀도나 습도의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닐까...해서 간섭계를 이용.
공기 중의 미세한 변화를 검출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누군가의 악의적인 장난인 것으로 판명이 됐습니다만
참으로 아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교수 : 정만수.
만수 : (명랑하게) 예 교수님.
이교수 : 그 장난의 원리가 어떤 것이었다구?
만수 : 아주 간단했습니다. 연못에 분수가 있잖습니까? 그걸 일정한 시간이 되면 수량이 많아지게 조절하는 겁니다.
타이머를 이용해서요. 그럼 일종의 수막이 형성됩니다. 이게 스크린 역할을 하는 거지요.
거기다가 같은 시간에 환등기로 영상을 내보내서..
이교수 : (명환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니?
명환 : 정만수가 이번 사건을 통해서 많은 걸 배운 거 같습니다.
이교수 : (중희에게) 쟤가 말로 떠드는만큼 이해하고 있을까?
중희 : 솔직히 저는 그 점이 의심스럽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이번 검출장치는 학부생 애들이 준비한거라고 했거든요.
만수 : 아이 형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게 다 이 정만수가 배후에서 감독을 해서..
이교수 : 정만수.
만수 : 예 교수님.
이교수 : 방금 니가 말한 두가지 장치에 대해서 리포트를 작성해봐.
만수 : ...예?
이교수 : 간섭계는 레이저를 이용한 것과 전파를 이용한 것. 두가지로 정리를 하고. 분량은 A4용지 열장.
그림이나 수식이 들어간 부분은 장수에서 제외해야겠지.
만수 : 교수니임. (울고 싶다)
이교수 : 기한은 이번 주내로. 제출은 나한테 할거 없고. 잘 정리해서 비비에스에 올리도록 해.
그동안 귀신소동을 피운 것에 대한 사과문과 함께. 알았지?
만수 :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는다)
이교수 : 자. 우리 오늘 뭐에 대해서 얘기하기로 했지?
명환 : (아주 즐거워져서) 동민기업에서 의뢰한 건인데요. 이게 그간의 실험을 정리한 겁니다. (복사한 것을 내준다)
S#7. 오리연못 / 낮
오리들이 떠가고 분수가 시원스레 나오고..주위에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학생들 몇이 지나간다.
그 한쪽에 지원이 앉아있다. 연못을 바라보며 뭔가를 골똘이 생각하고 있다.
S#8. 스터디룸
민재가 뭔가 열심히 써가며 공부를 하고 있다가 고개 들어 보면,
앞의 정태는 의자를 뒤로 기우뚱하게 해서는 흔들흔들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민재 : (손목 시계를 보고) 지원이가 늦네.
정태 : (말없이 자기도 시계를 본다)
민재 : 어제 니들 무슨 일 있었냐?
정태 : ...
민재 : 어제 밤에 지원이 만났대매.
정태 : ....
민재 : 아이구 관둬라. (다시 책에 신경을 쓰는)
문이 열리며 지원이 들어선다. 초췌한 얼굴이다.
민재 : 어서 와. 늦었다.
지원 : (몇걸음 들어와 선 채) 미안한데 오늘 스터디 쉬면 안될까.
민재 : 웬일이야. 천하의 구지원이.
지원 : 좀 피곤해서 그래. 미안해.
지원 돌아서 나가려는데 정태, 벌떡 일어나더니 문 앞을 막아선다.
정태 : 얘기해봐.
지원 : ...비켜줄래. 가서 쉬고 싶어.
정태 : (화가 나고 있다) 도대체 니가 무서운 게 어느 쪽이야?
지원 : ..
민재 : (뭔 일인가 해서 보는)
정태 : 너한테 보인다는 헛거보다 우리가 더 무서운거냐? 우리가 널 우습게 볼까봐.. 그게 더 겁나? 그래?
지원 : 비켜달라고 했어.
정태 : 그래서 차라리 혼자 귀신 상대하겠다는거야? 한밤중에 빈강당에 혼자 찾아가서?
지원 : (말없이 노려보는)
민재 : 니들.. 무슨 얘기야?
지원 : (차분하게) 비켜줘. 니가 막아 서있으니까 내가 그 문으로 나갈 수가 없잖아.
정태, 불끈하는 마음으로 보다가 옆으로 비킨다.
지원 그 옆을 지나 밖으로 나간다. 문이 닫기자 정태 못 참고 의자를 발로 차버린다.
민재 찡그려서 본다.
S#9. 도서관 밖 / 낮
지원 걸어나오고 있다. 옆에는 학생들이 오가고 있다.
걸어가던 지원 문득 멈춰선다. 어디선가 가늘게 들리는 피아노 소리.
지원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지원의 눈에 보이는 주변 모습. 어디서도 피아노 소리가 들릴만한 곳은 없다.
지원 소리를 떨치듯 걸어가기 시작한다.
S#10. 전자동 복도
지원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다. 이제 피아노 소리는 정확하게 들리고 있다.
지원 걸어가며 고개를 들어 앞을 본다.
저 앞에는 대여섯명의 학생이 뭔가 얘기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다.
그들이 지나가도록 지원 복도 옆으로 비켜서 잠시 선다.
그들이 지원의 옆을 지나가는 순간. 지원 흐윽 놀란다. 어린아이의 손이 뒤에서 지원의 치마자락을 잡아당기고 있다.
지원 기겁을 해서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고. 아까의 학생들만이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다.
지원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이제 피아노 소리는 그쳤다.
(심장 박동 느낌의 음악으로 바뀌며)
지원 미칠듯한 기분으로 거의 뛰듯이 걷는다.
S#11. 복도 다른 일각
지원 뒤를 살피며 코너를 돌아 나온다. 그러다 고개를 앞으로 돌린 순간 얼어붙는다.
저만치 학생들 몇이 얘기를 나누며 서있는데
바로 그 학생들 사이에 분홍색의 드레스를 입은 어린 지원이 서서 지원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학생들은 어린아이의 존재는 모른다.
지원, 믿고 싶지 않다.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치다가 몸을 돌려 달린다.
S#12. 복도 다른 일각
달려오는 지원. 마주오던 학생과 부딪치며 정신없이 달린다.
저 앞에서 어느 연구실인가 문이 열리며 학생 하나가 나온다. 지원 그 학생에게로 달려간다.
지원 : 저기 잠깐만요..
하다가 정지해본다.
학생이 나온 바로 그 문 안으로 어린 지원이 숨듯이 서서 고개를 내밀어 지원을 보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
학생은 지원을 보며 무슨 일인가 하는데, 지원 뒷걸음치다가 다시 달린다.
S#13. 박교수 연구실
문이 벌컥 열리며 뛰어드는 지원.
안에는 박교수와 진수, 남희가 모여서 뭔가 얘기를 나누다가 지원을 본다.
박교수 : 어 지원양. 웬일이야?
지원 : (거의 기절할 듯한 얼굴로 문을 다시 돌아보고 박교수와 다른 이들을 보고..)
남희 : 지원아. 너 왜그래. 무슨 일 있어?
지원 : (안나오는 목소리로 겨우) 나.. 여기 좀 있어도 되요?
박교수 : 그럼. 있어도 되지. 근데 나도 묻고 싶네.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꼭 시체 본 사람 같애.
그런데 지원의 시선이 박교수의 뒤로 간다. 비틀거린다.
진수 : 누나.
지원의 시선으로 보이는 박교수의 뒤.
어린 지원이 박교수의 뒤 책상 위에 걸터앉아 슬픈 얼굴로 지원을 보고 있다.
지원 실신하며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각자 지원을 부르며 받아드는 진수. 박교수. 남희.
S#14. 의무실
침대 옆의 창문으로 환한 햇살이 스며들고 있다. (혹은 얇은 커텐 너머로)
링거대에 걸려있는 링거병.. 연결된 줄..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던 지원. 가까스로 눈을 뜬다.
잠시 멍하다가 조금씩 정신이 들며 침대 옆 칸막이 너머에서 낮게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진수 : (E) 의무실 선생님 말로는 피로가 누적된 거 같대요. 좀 쉬면 괜찮을거라고 그러시던대요.
지원,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금 고개를 돌리고.
// 칸막이 너머
진수와 정태. 민재가 서있다.
민재 : 그냥 쉬면 되는거야? 다른 검사는 필요없고?
진수 : 글세요. 정밀검사라도 받아보면 좋겠지만 누나 성격에 그런 거 받으러 가겠어요?
민재 : (정태를 보면)
정태 : (아무 말 없이 서있다)
민재 : (진수에게) 너 실험있다구 그랬지? 가봐. 여긴 우리가 있을게.
진수 : (시계를 보며) 그럼 나 먼저 갈게요. 남희누나가 금방 온다구 했어요.
민재 : 그래. 애썼다.
진수 가고. 남은 둘이 멀뚱이 있다가..
민재 : 뭐 시원한 거 마실래?
정태 : 됐어.
민재 : 니 얼굴 봐서는 얼음물이라도 한사발 마셔야 될 거 같은데. 내 가서 사올게.
민재 나간다. 정태, 우울하게 서있다가 칸막이 쪽으로..
// 침대 쪽
정태, 칸막이 너머로 오다가 멈칫해서 본다. 지원이 눈을 뜨고 정태를 보고 있다가 일어나려한다.
정태 : (불퉁하게) 그냥 누워있지 그래.
지원 : (고집스레 앉는)
정태 : (보고 있다가) 내가 있으면 불편하냐? 나가 줄까?
지원 : ...놀라게 해서 미안해.
정태 : (어이없어 허 웃는)
지원 : (말없이 창문만 바라보는)
정태 : (불편해서 서있다가) 누워서 좀 더 자. 밖에 있을테니까. (나가려는데)
지원 : ******(피아노곡이름)였어.
정태 : ..뭐?
지원 : 피아노 연주곡 이름. 계속 들리던 거. 바로 그 곡이었다구. ***** ...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피아노 콩클대회가 있었거든. 그 때 자유곡으로 갖고 나갔던거야.
정태 : (조용히 듣는)
지원 : 엄마는 분홍색 드레스에 분홍색 구두를 사주셨어. 난.. 몇 달동안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 우승을 하고 싶었거든.
근데.. 피아노 앞에 앉았는데.. 머리 속이 하앴어. 그렇게 열심히 연습을 한 곡인데
어느 음계로 시작하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 거야.
정태 : ..그런 거 있어. 나도 가끔 옛날에 있었던 아주 싫은 기억. 악몽을 꾸고 그래.
지원 : 나.. 그때 내 기분 잊어버리고 있었어. 그 때 내 기분이 어땠냐하면.. 다 죽이고 싶었어.
정태 : (보는)
지원 : (자기 앞의 공간을 보며) 강당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는데.. 모두 날 보며 웃는 거 같았어.
그 순간 그 사람들이 다 죽었으면 좋겠다구 생각했어.
정태 더 말을 못해주고 그저 본다.
// 칸막이 뒤.
민재가 손바닥의 동전 몇 개를 만지작거리며 듣고 있다.
그 옆에서 남희가 놀라 민재를 보며 뭔가 말하려는데 민재, 조용히 하라고 입에 손을 대고..
지원 : (E) 정말이야. 진짜 그렇게 바랬어. 난 그럴 수 있는 사람이야.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란 거. 이제까지 잊어버리고 있었어.
민재 눈살을 찌푸리며 듣고 있다. 뭔가 생각을 하고 있다.
// 침대쪽
지원 : 근데 그때의 내가 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거야. 그 피아노 소리하구 같이. 내가 대낮에 눈뜨고 악몽을 꾸는 거라고 생각하니?
정태 아무 말 못하고 그저 지원을 보는데,
민재의 헛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민재가 칸막이 안으로 들어선다.
민재 : 어.. 저 미안해. (괜히 동전 들어보이며) 동전이 모자라서 돌아왔다가 지원이 니 얘기 들었어.
남희 : (뒤따라 들어오며) 나도 미안해. 막 들어오다가 좀 들었어.
민재 : 근데 너의 그... 증세 말이야. 그거 옥주하고 관계있는 거냐?
정태 : (지원을 돌아본다)
지원 : ... (좀 망설이다가) 나도 그 생각했어. 시간상으로는 우리가 아르바이트하고 온 다음부터 생긴 거 맞어.
민재 : 뇌파검사였다고 했지?
정태 : 그럼 당장 거기부터 찾아갔어야 되잖아. 안 가봤어?
지원 : 가봐서.. 아무 상관이 없다고 그러면 어뜩해.
정태 : 뭐?
지원 : 그럼 더 이상 합리화할 데도 없잖아.
남희. 이건 또 무슨 소린가해서 이쪽저쪽을 보는.
S#15. 박교수 연구실
남희가 들어선다. 안에서 얘기를 나누던 박교수와 서교수.
박교수 : 어 남희양. 지원이는 어때.
남희 : 민재하고 정태가 데려 갔어요. 어디 가볼데가 있다고 하든데요.
박교수 : 그래서. 괜찮은거야? 너무 공부를 많이 했대지?
남희 : 그게요 교수님. 얘기가 좀 이상해요.
S#16. 동아리방
진수가 들어서다 보면 대욱과 자현이 낑낑대며 연못가에 설치했던 기기들을 한곳에 쌓아놓고 있다.
진수 : 지원이 누나 이리로 안 왔니?
대욱 : 지원이 누나? 아니.
진수 : (나가려다가 다시 보고) 뭐하는 거야?
자현 : 당분간 여기다 장물 좀 보관해야겠다.
진수 : 장물이요?
자현 : 아 덥다 더워. 여기 시원한 거 좀 없냐? (두리번거리고)
대욱 : 창고에 도로 갖다 놓으려고 했는데 말이지. 벌써 없어진 거 알고 과에서 난리가 났대. 그래서 일단 작전상 철수했지 뭐.
진수 : 어쩔 생각인데?
자현 : 자수할까 생각하다가 완전범죄로 맘을 바꿨어.
진수 : 괜찮아요?
자현 : 나중에 조용할 때 슬쩍 갖다 놓으면 돼. 아 사람들 참. 버려놓을 땐 언제고, 꼭 이럴 때 재고 정리하고 그러네.
(히이 웃더니) 혹시 아냐. 나중에 진짜 귀신이 나타나면 써먹게 될지.
대욱 : 자현선배. 한숨 잔다며.
자현 : 그래. 자야지. (침대로 가서 드러누우며) 두시간 있다 깨워.
대욱 : 그 침대 허리쪽이 쳐졌어. 약간 위로 올라가는 게 좋을걸.
자현 : (자세 고치며) 어 땡큐. 복받아라.
진수 한심해서 둘이 노는 양을 보고..
S#17. 박교수 연구실
박교수 : 그럼 아까 지원양이 내 방에서두 그 여자애를 봤다는 거야?
남희 : 그 여자애가 아니구 지원이의 어릴 때 모습이래요.
박교수 : 헤에.. (새삼스레 방을 둘러보더니 서교수에게) 어떻게 생각해?
서교수 : 우리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도 있는 거니까.
박교수 : 물리학적으루 말고 수학적으로 설명해 봐봐.
서교수 : (웃더니) 며칠 전에 우리 학생하구 이런 얘길 한적이 있는데 말이지.
박교수 : 무슨 얘기?
서교수 : 남희양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얼마지?
남희 : 180도요?
박교수 : 그거야 유클리드 기하에서나 그렇지. 리만기하에서는 삼각형 내각의 합이 항상 180도보다 크게 되고.
로바체프스키 기하에선 항상 180도보다 작잖아. 그리고..
서교수 : 그래. 그런데 일반 사람들에겐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게 진리로 알려져있잖아. 증명을 할 수도 없으면서 말이야.
박교수 : 알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그러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진리라고 믿는 많은 것들이
다른 시각에서 보면 틀릴 수도 있다. 그 얘기잖아.
서교수 : 대충 그런 얘기지.
박교수 :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 지원양이 본 게 뭐라는거야?
서교수 : 그게 지금은 뭔진 몰라도 50년쯤 후에는 아주 당연하게 증명이 될지도 모른단 얘기지.
박교수 : 그러니까 모른단 얘기네에.
S#18. 표준 연구소 앞 / 저녁
민재와 정태, 지원이 오고 있다. 입구 앞으로 왔을 때.
정태 걷다가 지원을 돌아보고.
정태 : 너 정말 괜찮겠어? 좀 쉬어야 되는 거 아니야?
지원 : 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이 상태로는.
정태 : (단념하고 입구를 본다)
민재 : (문득 주위를 둘러보더니) 어두워지는데?
정태 : 왜. 으시시하냐?
민재 : 내일 낮에 올걸 그랬나? (웃다가 웃지 않는 지원을 의식하고) 어이 미안. 농담이야. 가자.
S#19. 복도
걸어오는 세사람. 복도는 비어있다. (전에 옥주와 지원이 걷던 그 복도)
세사람의 발소리만 빈 복도에 울린다.
잠시 그렇게 걸어오다가 정태가 멈추며 뒤를 돌아본다. 민재도 멈춰서 본다. 지원이 서있다.
민재 : 왜.
지원 : ... 니들 내 말을 믿는거니? 이 말도 안되는 말을 믿어주는 거야?
민재 : 글세.. 이건 믿고 안믿고의 얘기가 아니잖아. 니가 분명히 보고 들었다며.
지원 : (끄덕이는)
민재 : 그럼 그건 지원이 너한텐 실제로 존재하는거지.
정태 :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너에게 실재하는 그걸 해결봐야하는 거고.
민재 : 어느 방이야? (두리번거리면)
지원 : (조금 미소 짓는 듯. 앞서 걷는다)
S#20. 인간공학 연구실
상현이 골치 아픈 듯 서류들을 뒤지고 있다.
상현 앞에 앉아있는 세사람. 저만치 옆에서 병찬이 보고 있다.
상현 : 아까 전화를 받고 난 좀 황당했는데요. (지원을 보며) 학생도 알겠지만 그 실험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가 없어요.
단순히 시청각 신호를 제시하고 그 결과를 측정할 뿐이라고.
민재 : 그렇지만 여기 지원이 뿐이 아니고 오옥주라고, 또 한 학생도 비슷한 경험을 했거든요.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듣구요.
상현 : 하아참.. (다른 서류들을 보여주며) 여기 두 학생의 뇌파하고 심전도 데이터를 봐요. 정상이라고.
만약에 문제가 있었다면 실험 당시에 이상이 발견되었어야죠. 안 그래요?
지원 :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문제가 없었나요?
상현 : 당연히 없죠. 있었다면 벌써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했을 거니까.
정태 : 지금 문제가 생긴 거 아닙니까. 그럼 문제점을 알아봐야 되는 거 아닌가요.
상현 : 글세 두 학생이 우리 실험 뒤에 이상한 경험을 했다니까 나두 괜히 미안해지는데. 솔직히 그게 우리 실험의 영향일 수는
없을 거에요. 혹시 그날 둘이서 귀신 얘기를 했거나.. 뭐 그런 거 아닐 까. 그러다가 괜히 무서워졌대거나..
정태 : 괜히 무서워진 게 아니었다고 이제까지 설명을 드렸잖아요.
민재 : (얼른 정태의 말을 잘라서) 만에 하나. 예? 만에 하나의 경우를 생각해보는 겁니다.
어쨌거나 여기 실험 이후에 생긴 일이니까 그 실험에 문제는 없었나.. 그걸 알고 싶은거죠.
상현 한숨을 쉬고 병찬을 본다. 병찬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상현 : 알았어요. 그날 실험했던 과정을 다시 한번 검토해보죠.
상현 : (E) 결과는 연락을 드리구요.
민재 : (E) 고맙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둘의 대화가 진행되는데.. 지원,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다.
S#21. 산디과 건물 외경 / 밤
S#22. 산디과 실기실
옥주가 과제물인 오브제를 다듬고 있다.
그 옆 저만치에서 재명과 대욱이 마주앉아 그래프 종이에 오목을 두고 있다.
그래프 종이를 가까이서 보면 둘이 빨간 볼펜, 파란 볼펜으로 동그라미와 X표를 그어가며 오목을 두는 중.
벌써 여러판을 두었는지 그래프 종이는 군데군데 채워져 있다.
대욱이 표를 하나 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대욱 : 칠대 사. 아하하 이쯤에서 항복을 하시지.
재명 : 가만 있어봐. 이거 삼삼이잖아.
대욱 : 뭐가 삼삼이야. 사나이 대장부가 미련이 많으면 못 쓰는 법. 깨끗이 손을 들어 임마.
재명 : 이거봐. 여기 여기. 삼삼 맞지?
대욱 : 어째서.
둘이 다시 그래프를 들여다보고..
S#23. 인간공학 연구실
병찬이 비디오 테잎을 상현에게 건네준다. (현재 둘만 있음)
상현 : 피실험자들 다 똑같이 이 테이프를 본거잖아.
병찬 : 그렇지. 테잎에 문제가 있을 순 없어.
상현 : 그거참.. (테잎을 흔들어보는)
병찬 : 근데 문제 있다는 두 학생 말이야. 그애들이 맨 나중 순서였지?
상현 : (생각해본다) 맞어. 그 애들이 맨 마지막이었지. 그날은 그애들 둘 뿐이었어.
S#24. 산디과 실기실
대욱이 새 그래프를 넓게 펼쳐놓는다. 재명과 또 한판을 붙기 시작한다.
이쪽에서는 여전히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 옥주.
옥주, 도구를 바꿔들다가 문득 고개를 든다. 주위의 소리를 듣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옥주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시 작업을 한다. 그러는데 어디선가 가늘게 들려오는 소리.
옥주 : (아이의 훌쩍거리고 우는 소리)
옥주 후딱 고개를 든다. 아이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옥주 공포에 질리며 재명 쪽을 본다.
옥주 : 재명아. (겁에 질려 소리가 안나온다. 입모양만으로) 재명아.
그러나 재명과 대욱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오목을 두는데만 정신이 팔려있다.
그들은 뭔가 대화를 하는데 그들의 말소리는 아득하게 들리지 않는다.
문득 전등불들이 피빅 꺼진다.
방안에는 어슴푸레한 빛만 있는데 재명과 대욱은 전혀 상관없이 오목을 둔다. 그들에게는 불이 꺼지지 않은 것.
옥주 필사적으로 소리를 내려고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고 일어서려 하지만 움직여지지도 않는다.
옥주,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소리도 못 지르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필사적으로 재명을 보며 버둥거리다가 굳는다.
간신이 시선을 내려 자기 어깨를 내려다본다.
옥주의 시선에 비치는 커다란 남자의 손이 옥주의 어깨를 짚고 있다.
순간 옥주 비명을 지른다.
재명과 대욱이 놀라서 돌아보았을 때(이 때는 밝은 불빛) 옥주는 오브제와 함께 책상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있다.
S#25. 인간공학 실험실 / 밤
상현이 혼자 편집기(혹은 그냥 모니터) 앞에 앉아서 작업 중. 현재 테이프를 넣고 플레이해서 보는 중이다.
전에 옥주나 지원이 보았던 영상들이 보여지고 있다.
상현, 조작을 한다. 그림들이 슬로우로 돌아간다. 아무 이상이 없다.
상현, 다시 멈추다가 멈칫. 다시 조작하는 상현의 손.
모니터를 뚫어져라 들여다보는 상현의 얼굴. 그 얼굴에 모니터의 빛이 비추어서 밝고 어둡게 어른거린다.
S#26. 교문 앞 도로 / 낮
차들이 지나가는 도로 옆.
여행 가방을 옆에 놓은 옥주. 그 옆에 지민. 그리고 마이클과 재명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옥주는 너무나 초췌해진 모습이다. 더운 여름에 긴팔의 옷을 입고 있다.
재명 : 미안해. 내가 서울까지 같이 가줘야 되는데
옥주 : (기운 없지만) 괜찮아. 너 실험 빠지면 안되잖아.
지민 : 걱정마. 오빠. 내가 옥주 언니 집에까지 곱게 모셔다 드릴게.
마이클 : 나도 있잖아. 내가 같이 갔다 올거니까 재명이는 돈워리.
재명 : 너 중간에 락까페 간다고 새면 안돼. 내가 중간중간 호출해 볼거야.
마이클 : 오우 재명. 나 마이클은 기사야. 신사야. 나 천재.
지민 : 택시! (펄쩍펄쩍 뛰어 택시를 잡는다)
재명 : (옥주가 못내 볼안해서) 집에 가면 어머니께 맛있는 거 많이 해달라고 그래. 너 몸이 허해서 그런거야.
옥주 : (끄덕이는)
마이클 : 택시 왔어. 그런데 택시값은 옥주가 내?
재명, 옥주의 짐을 실어주고. 마이클 앞자리에 타며 재명에게 빠이빠이를 하고.
옥주 타려다가 얼른 재명에게 오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준다.
옥주 : 이거.
재명 : 이게 뭔데.
옥주 : 니 생일선물이야. 포장도 못했어. 이쁘게 포장해 줄려고 그랬는데.
재명 : (감격해서 말도 안나온다)
옥주 : 니 생일날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지민 : 언니 빨리 타.
옥주 : 나 갈게.
재명 : 어.
옥주 택시에 탄다. 재명 문을 닫아주며.
재명 : 내가 전화할게. 하루에 몇번씩 할게.
옥주가 기운없이 웃어보이고 택시는 출발해간다.
가는 택시를 보던 재명. 문득 손에 들린 선물상자를 열어본다.
상자 안에는 스포츠용 스톱워치가 들어있다. 재명 다시 택시가 간 쪽을 본다.
S#27. 캠퍼스 / 낮
S#28. 처장실
지원이 들어와 꾸벅 인사를 한다. 처장 앞에 앉아있는 상현.
처장 : 구지원 학생.
지원 : 예.
처장 : 일루 앉아요.
상현 : (앞에 앉는 지원에게 눈인사)
처장 : 자 다시 한번 정리해봅시다. (상현에게) 뇌파측정용 시청각 프로그램에서 문제를 발견하셨다 그랬죠?
지원 : (놀라서 본다)
상현 : (곤혹스러운) 예. 화면 중간에 불연속적인 블랙바가 들어있었습니다. 처음 이 테이프를 만들 때는 그런 게 없었거든요.
여기 학생이 시청하기 전날까지도 아무 문제가 없던 테잎이었구요. 도대체 어떻게 그런게 들어갔는지 지금 조사중입니다.
처장 : 그게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테잎으로 실험한 이후에 우리 학생이 환청과 환영을 경험하고 있구요.
상현 :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처장 : (지원에게) 그런가요?
지원 : 맞습니다.
처장 : 실은 이 연구팀의 실장님이 나에게 직접 연락을 해왔어요. 혹시 이 테잎이 원인이 되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원인을
밝혀야 되니까. 학생이 다시 실험실로 나와줄 수 없겠느냐구요.
지원 : ....
처장 : 그야 학생 본인의 의사에 달린거지요. 어떻게 생각해요?
지원 : (똑바로 상현을 보는) 다시 실험실에 가기 전에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가능한한... 자세한 설명이요.
S#29. 처장실 앞 복도
민재와 정태가 기다리고 있다가 본다. 문이 열리며 지원과 상현이 나선다.
S#30. 석학의 집
미순이 음료수가 담긴 쟁반을 들고 부지런히 테이블로 온다.
테이블에는 민재 정태 지원 상현이 앉아있다.
미순 음료수를 놓아주며.
미순 : 마시면서 얘기해. 응? 마셔가면서..(하면서 자기도 슬그머니 옆에 앉는다)
상현 : 고맙습니다.
민재 : 그러니까 테잎에 들어가있는 정체불명의 블랙바가 문제가 될지도 모른단 얘긴가요?
상현 : 현재로선 이상이 발견된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일단 문제로 보긴 하는데. 그래도 역시 그게 원인이 되서 뭐 환각증세가
생겼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런 뇌파측정에서 이상증세를 보인다는건 아직까지 세계 어디에서도
보고된 바가 없으니까.
정태 : 그래도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상현 : 억지로 추정을 해보자면 이런 식이에요. 무의식중에 인지한 그 시각신호들이 피험자들의 뇌에 어떤 자극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실험 당시에는 발견되지 않고 그 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면 말이지요.
미순 :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진영아 거 음악 좀 꺼라. 이건 아주 중요한 얘기고 어려운 얘기니까 조용히 들어봐야 돼.
(상현에게) 계속해요.
뒤에서 적당한 때에 진영이 음악을 끄고, 미순의 곁에 바싹 붙어 앉아 듣고.
상현 : 사실 현재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테잎의 블랙바 부분을 분석해보는 것. 그리고 피험자분에게 정밀한 뇌검사를
받게 하고. 또.. (망설이며) 더 증세가 나빠지면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게 해주는 정도지요.
정태 : (어이없어서) 신경정신과요?
민재 : 그렇게 공식적으로만 말씀하시지 마시구요. 선배님은 그쪽으로 연구를 많이 하신 분이니까 뭔가 짐작가는 게 없을까요?
상현 : (머뭇거리다가 지원에게) 과거의 모습을 봤다고 했나요?
지원 : 네. 과거 중에서도 어떤 기억 속에 내 모습이요. 그 모습만 보였어요. 그 때의 피아노 소리하고.
옥주도 계속 같은 소리를 들었대요.
상현 : (찡그리고 망설이다가)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요. 과학을 하는 입장에서 말하는 건 아니구요.
음.. 사람의 뇌라는 건 정말 불가사의한 존재거든요. 아직 뇌과학이란 건 걸음마 단계고. (머뭇거리는)
미순 : 아이구 답답해. 말해봐요. 여기가 뭐 세계 학술대회장도 아니구 생각나는대로 말해보라니깐.
상현 : 사람의 뇌에는 말이죠.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게 아주 오묘해요. 이게 지가 알아서 자동편집을 해요.
어떤 기억은 남기고 어떤 기억은 삭제하고..
민재 : 기억을 삭제해요?
상현 : 아주 없애버리진 못하죠. 그저 밑바닥에 숨겨두는 거에요. 윈도우 프로그램으로 말하자면 휴지통 기능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버려두었던 기억들이 이번 기회에 어떤 자극으로 해서 떠오르는 게 아닐까..
지원 : 기억이 나는 정도가 아니었어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구요.
상현 : 글세 어떻게 해서 그런 현상이 되는진 모르죠.
정태 : 어떤 자극으로 그렇게 된다는 겁니까
상현 : 역시 알 수가 없죠. 일단 그 테잎에 블랙바가 어떤 경로로 들어갔는지 그거부터 밝혀봐야 되는데...
모두 답답하다. 미순, 옆사람의 음료수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신다.
그 때 옆에서 듣고만 있던 진영이 불쑥..
진영 : 그러니까 지원이 언니에게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었는데 그게 다시 생각났다는 거에요?
미순 : 어려운 얘기는 그냥 듣기만 하자구. 괜히 알려구 들면 더 어려워진대니까.
진영 : 나한테두 그런 거 있거든요. 나 여렸을 적에요. 우리 아버지 돈을 훔친 적 있어요.
모두 잉? 해서 보는.
진영 : 그 때 너무너무 갖고 싶은 인형이 있었는데 안 사주잖아요. 그래서 돈을 훔쳐가지구 인형을 샀어요.
미순 : 너 지금 무슨 고백의 시간인 줄 아냐. 지금 우린 귀신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야.
진영 : 글세 그때요. 아무도 그걸 몰랐는데 자꾸만 꿈에 나타나잖아요. 니가 훔쳤지. 니가 훔친거야..이러면서요.
막 가위 눌리고 그랬어요.
지원 : 그래서요.
진영 : 그래서 몽땅 다 말했어요. 아버지한테요. 그래서 뭐.. 무지하게 야단을 맞았는데요. 그 담부터는 편해졌어요.
꿈을 안 꿨다구요. (말해놓고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정태 : (지원을 돌아본다)
지원 : (말없이 진영을 보고 있다)
S#31. 동아리방 / 밤
진수, 대욱 재명 자현이 둘러앉아 보고 있다.
민재는 컴퓨터 앞에서 검색을 하는 중이고.
지원이 막 얘기를 끝낸 상황.
지원 : 내 얘기는 여기까지야. 아주 우습게 들린다는 거 알고 있어. 나도.. 얘기하고 나니까 우습네. (좀 웃는)
대욱 : 우스운 얘기가 아닌데요. 그 뭐냐. 내 어릴 적의 내가 내 눈 앞에 나타난다는 거잖아요.
우와. 이건 뭐야. 타임슬립도 아니고.
자현 : 난 말이지. 한번쯤 귀신을 보고 싶은 사람이거든. 귀신이나 요정 이나 뭐 그런 거 있잖아.
대욱 : 이건 귀신이 아니래니까.
자현 : 글세 이름이 뭐든 간에 그런 게 있다면 보호단체를 만들어줘야 될거야. 천연기념물같은 거잖아. 워낙 보기 힘드니까.
재명 : 옥주도 비슷한 걸까. 옥주는 아이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했거든.
대욱 : 사람 손도 봤대매.
재명 : 전화해서 물어볼까. 난 그냥 옥주가 신경과민이라고 생각했거든. 지원이 누나가 그렇게 당할 정도면 어휴..
옥주가 미쳐버리지 않은 게 신기하다구.
그 때 불쑥 진수가 일어서더니.
진수 : 얘기들 해요. 난 가볼데가 있어서..
하더니 그냥 나가버린다.
대욱 : 야. 어디 가. 이 밤중에.
진수 나가버리고.. 남은 지원. 좀 불편하다.
자현 : 냅둬. 저 녀석은 도대체가 상상력이 없대니까.
민재 : 여기 재밌는 말이 있는데.. (한글로 되어있는 페이지 하나 검색해보며) 제목은 귀신과 주파수가 같으면 보인다.
재명 : 지금 귀신 얘기가 아니래면서요.
민재 : 들어봐. 이거 정신과학 연구회에 올라온 글인데....물질의 궁극은 파동이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파동의 한계가 있는데
때로 그 한계이상의 것을 감지할 경우가 있다. 이 때 사람들은 그 것을 귀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이 열리더니 정태가 책을 대여섯권 들고 들어온다.
정태 : 재밌는 책이 엄청 많어. 여기 몇권 들고 왔는데. (테이블에 책들을 우루루 쏟아놓으며)
초자연적 존재를 에너지나 차원, 파동의 문제로 해석한 것들이야.
민재 : 옳지 너두 파동 쪽으로 생각해보는거냐?
정태 : 그건 일단 우리가 공부한 분야잖아.
민재 : 자아 정리해보자구. 지원이나 옥주는 이상한 블랙바가 들어간 테잎을 봤어.
정태 : 그 블랙바가 어떤 식으로든 지원이와 옥주의 뇌에 영향을 미친거야. 그래서 과거의 어떤 기억이 현실화되서 나타나고 있지.
민재 : 그 블랙바가 어떤 코드를 담고 있는지. 또 그 블랙바가 어떻게 삽입이 된건지는 연구소 쪽에서 분석해보고 있고.
정태 : 우리가 해 볼수 있는 건 이런 환청이나 환각이 무슨 현상인지 그걸 분석해보자는 거잖아.
민재 : 오케이. 일루 와봐. 여기 그럴듯한 얘기가 있거든.
정태 민재의 옆으로 가서 같이 화면을 본다.
대욱이네 등.. 멍해서 둘을 보다가..
자현 : (대욱을 툭툭 치며) 어이 저 친구들 공학하는 애들 맞냐?
대욱 : 쓰는 단어들은 공학할 때 쓰는 거 같은데?
지원 : (미소 짓더니) 나를 치료해보려는 거야.
자현 : 치료?
지원 : 되든 안되든 자꾸 분석을 하다보면 적어도 그 대상이 무서워 보이지는 않을거잖아. 나를 그렇게 만들고 싶은거야.
자현 : 그건 그러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아냐. 우리 큰 오빠야.
대욱 : 그건 왜.
자현 : 이 인간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분석이 안되거든.
재명은 앞의 책들을 열심히 뒤져 보고 있다.
S#32. 기숙사 앞 / 밤
정태와 민재 지원이 걸어온다. 여사 앞에서 멈추고..
정태 : 정말 꼭 방에 들어가서 자야겠어? 그냥 우리 동아리방에서 같이 있는게 낫지 않을까?
민재 : 그래. 우리 오늘 밤 새서 대학원 면접 대비 스터디 어때.
정태 : 좋지. 너 작년도 족보 갖고 있대매. 그거 한번 풀어볼까.
지원 : 됐어. 이제 괜찮아.
정태 :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 오늘 밤에 혼자 자야 되잖아.
지원 : 사람 많아도 소용없었어. 들어갈게. 오늘 고마워. 둘 다.
웃어보이고 입구로 들어간다. 보고 있다가..
민재 : 저건 씩씩하다 그래야 되냐. 쇠고집이라구 해야 되냐.
정태 : 구지원답다구 그래야겠지.
민재 웃고, 정태의 등을 쳐주고 남사 쪽으로 먼저 간다.
정태 아무래도 불안해서 여사 입구쪽을 다시 돌아본다.
S#33. 지원의 방
방에 불이 켜져있다. 잠옷 차림의 지원, 침대 위에 베게를 끌어안고 오두마니 앉아있다. 혼자다.
주위를 둘러본다. 사방은 조용하다. 탁상시계는 초침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고. 컴퓨터는 꺼져있다.
지원, 조용히 앉아있다가 문득 일어나더니 책상 위의 스탠드 불을 켜고.. 방의 불을 끈다.
책상 주위로만 동그랗게 밝혀지는 불.
지원 다시 침대에 올라앉는다.
기다리는 모습이다. 그러다가 문득. 허공을 향해.
지원 : 너 거기 어디 있니?
조용하다..
지원 : 날 보구 있니? ...너 나한테 할 말이 있는거야?
역시 조용하다. 지원 대답이라도 기다리는 듯 앉아있다가 혼자 웃는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베게를 잘 놓고 이불을 젖히는데.
소리 : (문 노크소리)
지원 : (화들짝 놀라서) 누구세요?
문이 벌컥 열리더니 베게와 이불을 든 자현이 들어온다.
자현 : 어이 구지원. 아직 안 잤냐? 나 오늘 여기서 좀 잘게.
빈 침대에 베게와 이불을 던져놓고 펴며.
자현 : 자다가 혹시 내가 코를 골면 머리통을 한 대 갈겨. 그럼 조용해 질거야 알았지?
하품을 하며 잘 준비를 한다. 어이없어 보던 지원, 웃는다.
S#34. 기숙사 앞 / 아침
지원, 책을 안고 나오다가 보면, 계단 아래에 진수가 앉아서 책을 보고 있다가 지원을 본다.
지원 : 웬일이야. 여기.
진수 : (책을 접으며) 누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원 : 나를?
진수 : 오늘 아침은 내가 당번이거든요.
지원 : 당번이라니.
진수 : 누나를 혼자 있게 하지 마라. 그래서 당번 정해서 누나 옆을 지키는 거에요. 어제 밤에 비상망이 가동된 거 알아요?
지원 : (같이 걷기 시작하며) 이럴 필요 없다구 해도 소용없겠지?
진수 : 형들은 지금 3차원과 4차원의 통로에 대해서 연구 중이구요. 재명이는 밤새 옥주하고 통화했대요.
지원 : (웃으며) 넌 이런 거 한심해하고 있고. 맞지?
진수 : (웃지 않고 옆을 걷다가..) 어디 좀 앉을래요?
S#35. 캠퍼스 어디.
그늘에 앉은 진수와 지원.
진수, 더운 듯 옷깃을 펄럭이다가.
진수 : (불쑥) 도플갱어라는 말 알아요?
지원 : (진수를 본다)
진수 : 늑대인간이니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게 그런 원리라고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사람 안에 있는 어두운 부분을 가르키는
말인가봐요.
지원 : 그런데?
진수 : 누나. 그때 강당 안의 사람들을 죽이고 싶었다구 했죠.
지원 : ...그랬어.
진수 : 나한테두 그런 기억이 있어요. 내 경우에는... 죽이고 싶었던 사람은 형이었어요.
지원 : 형..이 있어?
진수 : 있었어요. 죽었거든요.
지원 : .... 미워했니?
진수 : 좋아했어요. 그런데 가끔.. 그랬어요. 형이 없음 좋겠다구. 그럼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조금은 받을 수 있을거라구.
(웃는) 언젠가 형하구 스쿼시를 같이 한 적이 있어요. 사실은 내가 먼저 시작을 했구. 그건 내가 형보다 잘하는
유일한 거였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배우기 시작한 형하구 시합을 하게 됐어요. 아버지 보는 앞에서요.
지원 : 졌어?
진수 : 무참하게 깨졌어요. 형은 배운지 석달도 안됐는데. 이년씩 해온 나를 더블스토어로 이겼어요.
아버진 아주 자랑스러워했죠. 그 때 난 정말로 바랬어요. 형이 없어지면 좋겠다구.
지원 : 왜 그런 얘기를 나한테 해주니?
진수 : 누나 때문에 생각났으니까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거든요. (떨치듯 일어서더니) 시원한 거 마실래요? 콜라 좋아요?
지원 마지못해 끄덕이고. 진수 간다.
혼자 남은 지원. 후우 한숨을 쉬고.. 자세를 바꿔 앉다가 문득 보는 곳. 옆의 벤치에 어린 지원이 앉아서 지원을 바라보고 있다.
지원. 숨이 막혀 보고 있다가.
지원 : (속삭이듯) 나한테 할말 있니?
어린 지원 : (보기만)
지원 : 난 너한테 할 말 있어.
지원 조심스레 일어선다. 일어서는 지원을 보는 어린 지원. 지원 두어걸음 가까이 가다가 멈춘다.
벤치는 비어있고. 어린 지원은 없다.
지원 급히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 곳에도 없다.
S#36. 대강당
무대 옆에는 피아노가 덩그러니 놓여져있다.
무대 일각에서 대욱이 반사판을 설치하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민재가 접시 안테나의 각도를 조절한다.
민재의 수신호에 따라 다른 안테나를 조절하는 자현.
S#37. 동아리방
테이블 중앙에 오실로스코프와 다른 검측장비들이 놓여있다. 진수와 정태가 기기를 조작하고 있다가..
진수 : 설마 이걸로 정말 그 환영의 실체를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정태 : 설마가 사람도 잡는데 귀신은 못잡겠냐?
진수 : (어이없어서) 형.
정태 : 해보는거야. 지원이는 그걸 실제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다면 우리들 방식대로 맞서보는거지.
지원이가 화가라면 그림을 그려 풀수 있을거야. 우린 공학도니까 이런 식으로 풀어보는거고.
진수 :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심리치료군요.
정태 : 이름같은 건 아무렇게나 붙이라니까. 그럼 난 강당에 가본다. 아무 신호든 잡히는대로 저장을 해놓으라구.
진수 : 알았어요. (웃는)
S#38. 대강당
자현이 통로에 서서 주욱 둘러보며 옆의 민재에게.
자현 : 아무래도 실내라서 벽에 부딪히는 다른 반사파가 심할 거 같은데.
민재 : 진수가 미리 반사파형을 측정해놨으니까 이상이 생기면 금방 차이를 알 수 있을거야.
하는데 뒤의 통로로 들어오는 정태.
정태 : 준비는 다 된거야?
민재 : 대충. 핸드폰 빌려왔지?
정태 : 어. (핸드폰을 꺼내 보이며) 근데 지원이는?
민재 : (턱짓으로 가르킨다)
저만치 관객석 한쪽에 지원이 혼자 앉아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정태 : 지원이 반응은 어때.
민재 : 모르겠어. 아까부터 피아노만 쳐다보고 있어.
정태 : 효과가 있을까?
민재 : 모르지. 우리야 정신과 의사가 아니니까.
자현 : 근데 이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는거냐.
민재 : 지원이가 마음 정리가 될 때까지.
자현 : 그게 언젠데.
민재 : 오늘 밤 안으로 되면 좋지. 내일 아침까지는 강당을 치워줘야 되니까.
정태 : 이것두 효과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민재 : 내가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짰는데 들어볼래? 지원이한테 얘기해줄까 하는데..
정태 : 일단 내가 먼저 들어보고. (팔짱을 끼고 옆에 걸터앉는)
민재 : 에.. 우리가 사는 세계 말고 다른 차원이 있어. 그 차원과 우리 차원 사이에 어느 순간 틈이 벌어진거야.
자현 : 그래서.
민재 : 그 틈으로 어떤 신호가 들어오면서 지원이가 본 테이프에 수록이 됐어.
정태 : (찡그리며) 어째 좀 싸구려 SF같아지는데?
민재 : 마. 이래뵈두 책에 나온 이론대로 말하는거야.
자현 : 계속해봐.
민재 : 지원이나 옥주가 그 테이프를 보는 순간 그 신호가 뇌에 전달이 된거야.
그 신호는 뇌 속에 저장되어 있던 기억의 어느 부분을 자극하게 된거지.
정태 : 그게 그 기억 중에서도 가장 싫었던 부분이란 거야?
민재 : 사람의 가장 어두운 부분. 평소에는 억누르고 있던 본능.
자현 : 왜 하필 그 부분인데?
민재 : (음산한 목소리) 그야 어두운 세계에서 온 신호니까.
정태 : 으이그.
민재를 패고, 민재 피하며 웃고..
이만치에 혼자 앉아 있는 지원은 여전히 조용히 피아노를 보고 있다.
S#39. 동아리방
진수가 혼자 앉아서 오실로스코프의 모니터를 보고 있다.
모니터에는 약간의 잡음이 섞인 단조로운 파형이 잡히고 있다.
순간 벌컥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재명.
재명 : 어 형 혼자 있어?
진수 : 다 강당에 있어. 왜.
재명 : 옥주의 문제를 알아냈어. 민재형네가 말한 이론이 맞는 거 같어.
진수 : 무슨 이론?
재명 : 가장 공포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는 거 말야. 옥주도 그런거였어. 옥주도 기억 못하고 있었던 건데 말야.
옥주가 네 살때 길을 잃 어버린 적이 있었대. 옥주 어머니가 이번에 말해주신거래.
진수 : 길을 잃은 게 뭐.
재명 : 글세 길을 잃어가지고 네 살짜리가 혼자 울면서 떠돌아다녔나봐.
그러다가 밤이 되서 어느 골목에서 혼자 울다가 잠이 들었대요.
진수 : 혼자 잠이 든 건 어떻게 알어.
재명 : 어떤 아저씨가 옥주를 발견했대. 그래서 옥주를 깨웠나봐. 여기서부터는 옥주가 드디어 기억을 해낸건데 말이지.
옥주는 그 때 자기를 깨운 그 손이 너무너무 무서웠대. 이제 알겠지? 아이의 울음소리하구. 그 손.
그러니까 옥주는 이제 해결된거야. 맞지.
진수 : (찡그려서) 뭐가 어떻게 해결이 돼.
재명 : 어이구참. 옥주가 잠재의식 속에서 무서워하던 그 손이 사실은 무서운 게 아니고 자기를 도와줬던거다.
이걸 알게 된거잖아. 그러니까 이제 해결난거지. 다들 어디 있어.
진수 : 강당에.
재명 : 가서 얘기해줘야지. 나아참. 이렇게 간단한 걸 가지구.
재명 뛰어나간다.
남은 진수. 어이없어 웃고 다시 모니터를 본다.
S#40. 대강당 외경 / 밤
멀리서 낮은 앵글로 잡은 대강당. 숲을 끼고 음산한 분위기로.
S#41. 강당 내부
대욱과 자현이 마주앉아 묵찌빠를 하고 있다.
민재는 이만치에 앉아서 책을 몇권 무릎 위와 옆의 의자에 늘어놓고 공부를 하고 있고.
정태는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다가 지원 쪽을 본다.
지원이는 여전히 아까의 자세로 앉아있다.
재명이 민재네로 오더니 사다리를 그린 종이를 내주며.
재명 : 골라요 골라. 야식을 위한 사다리.
정태 : (보다가) 3번.
재명 : (표시하며) 오케이 정태형은 제발 오천원짜리에 걸려야 되는데. 민재형 몇번?
민재 : (책에서 시선을 떨구지 않고) 1번.
재명 : 1번은 자현이 누나꺼야. 다른 거.
민재 : 아무거나 빈거.
재명 : 좋아 그럼 4번이다. (표시하는데)
S#42. 동아리방
진수, 오실로스코프 앞에 앉아서 다른 책을 보고 있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멈칫. 모니터의 파형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진수 놀라서 보다가 얼른 저장을 하는 조작을 하고. 전화기를 든다.
S#43. 대강당 안
정태가 들고 있던 핸드폰이 울린다.
정태 전화기를 받는다.
정태 : 여보세요.
진수 : (E) 형. 여기 이상한 파장이 잡혔어요. 이거 엄청난데. 거기 누가 송신기 건드렸어요?
정태 : (민재를 돌아본다) 방금 이상한 파장이 잡혔대.
민재 :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정태와 민재, 무대 위를 본다. 무대 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 때 지원이 벌떡 일어서는 것이 보인다.
정태도 벌떡 일어선다. 지원은 무대 위 쪽을 바라보고 있다.
정태 : (핸드폰에 대고) 그거 저장해놓구 있지? 전화 끊지 마. 끊지 말고..
(다급해서 핸드폰을 민재에게 넘기고 지원이 쪽으로 움직이려는데)
민재 : (정태를 잡는다) 가만 있어봐.
지원에게 가까운 앵글로. 지원 천천이 무대쪽으로 가까이 가기 시작한다.
재명 : (낮게) 지원이 누나가 움직이잖아. 그러니까 신호가 가는 거 아닌가.
민재 : (핸드폰에 대고) 파형이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지금 지원이가 움직였거든.
진수 : (E) 사람이 움직이는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이거 미친 거 같아요.
S#44. 동아리방
오실로스코프의 파형은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다.
진수 수화기를 귀에 낀 채 모니터를 유심히 보다가...
진수 : 형. 이거 주파수가 음성대역같아요. 소리가 잡힌다구요.
S#45. 대강당
지원 무대 위에 올라와 있다. 지원의 시선으로 보이는 피아노. 그리고 피아노 연주가 들리기 시작한다.
피아노 밑으로 분홍색의 구두를 신은 아이의 발이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지원 좀 더 가까이 가서 옆으로 기웃하여 본다.
어린 지원이 피아노를 열심히 치고 있다.
지원 좀 더 가까이 간다. 어린 지원은 피아노만 치고 있다.
지원, 떨리는 손으로 피아노의 덮개를 짚는다.
아이는 건반을 내려다보는 자세라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지원 : 이제 그만해. 그만해도 돼.
아이 : (여전히 피아노를 치고 있다)
지원 : 일등 안해도 돼. 일등 안해도 사람들이 웃지 않어. 웃으면 어때. 괜찮어. 웃으라구 해. ...괜찮어.
여전히 들리는 피아노.
// 아이들 쪽. 정태는 잔뜩 긴장해서 뛰어나가려는 자세로 멈춰있고.
(여기서는 물론 피아노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이도 보이지 않는다)
재명 : 지원이 누나가 말하고 있어.
민재 : 사람의 말소리는 신호에 잡히지 않는다구. 근데 무슨 음성대역의 주파수라는거야. 말이 안되잖아.
(핸드폰에 대고) 지금 어때.
아이들의 시각에서 보이는 무대 위.
지원이 피아노 앞에 서서 한 손을 피아노에 짚고 의자 쪽을 바라보고 있다.
진수 : (E) 계속 그래요. 뭐가 잘못된 거 같아요.
// 지원이 쪽. 아주 크게 들리는 피아노 연주소리. 아이는 격하게 피아노를 치고 있다.
지원이 울 것 같은 마음으로 보고 있다가 다시 한번 애원하듯...
지원 : (아이에게) 내 말 들리니? 난 이제 괜찮아. 그러니까 너두 그러지 마. 그러지 않아두 된다구.
순간 아이, 피아노를 멈춘다. 사방이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천천이 고개를 들어 지원을 본다. 아이는 울고 있다.
지원이 아이를 보며 눈물이 그렁거려지며.. 고개를 끄덕여 준다.
지원의 시각에서 다시 보여지는 의자. 의자에는 이제 아무 것도 없다. 사방은 조용하다.
// 민재네의 시각. 모두 일어서서 긴장하여 무대 위의 지원을 보고 있다.
무대 위의 지원은 조용히 몸을 돌리더니 아이들 쪽을 본다. 지친듯한 얼굴로 아이들 쪽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정태, 지원에게로 뛰어나간다.
민재 : (핸드폰에 대고) 진수야. 지금은.
S#46. 동아리방
진수, 수화기를 든 채 모니터를 보고 있다. 모니터는 이제 단조로운 선을 그리고 있다.
(지원이가 있으므로 일직선은 아니고 아주 미세한 파형 정도의 직선)
진수 : 이제 정상이에요. 그쪽에 무슨 일 있었어요?
S#47. 대강당
지원 무대 앞으로 나오며 쭈그려 앉는다. 그 앞으로 달려와 선 정태.
정태 : 괜찮아?
지원 : 응 괜찮아. (아이들 쪽을 본다)
저만치에 대욱 자현이 가까이 오고 있다.
지원 : 고마워. 모두. (미소짓는) 이제 끝났어.
이만치의 민재, 얼굴을 찌푸리고 무대쪽을 보고 있다. 옆의 재명이 민재를 돌아보며.
재명 :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민재 : 모르겠어. 뭔가 잘못 됐겠지.
재명 : 뭐가.
민재 : (재명을 돌아본다) ....몰라.
S#48. 인간공학 실험실.
상현이 혼자 컵라면을 먹으면서 서류를 보고 있다.
그 옆에는 모니터가 켜져있는데 모니터에는 지원이네가 봤던 그 영상이 스톱모션이 되어서 멈춰져있다.
그러다가 상현, 문득 고개를 든다.
소리 : (발자국 소리)
상현, 문 쪽을 본다. 계속 가까이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상현 : 누구세요?
발자국 소리 계속 들려온다. 상현 컵라면을 놓고 문쪽으로 가서 열어본다. 문 밖에는 아무도 없다.
발자국 소리는 계속 들린다.
상현 뒤를 돌아본다.
S#49. 동아리방
진수가 컴퓨터를 조작한다. 오실로스코프의 모니터에 처음의 평온한 파형이 보여진다.
진수, 기기를 조작하고..스피커의 볼륨을 켜고. 기기를 조작한다.
아까 저장했던 것을 다시 돌려보는 중.
오실로스코프의 모니터에 정상적인 파형이 보여지며 스피커에서는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들린다.
진수 찡그리며 보고 있다.
모니터의 파형이 아까의 불규칙적이고 급한 파형으로 바뀐다.
스피커에서 나오던 노이즈가 불규칙적으로 지직거린다.
잠시 듣다가 진수, 스피커를 끈다. 조용해진다.
모니터의 파형을 유심히 보고 있는 진수. 모니터의 파형은 다시 규칙적으로 바뀐다.
그 때 들리기 시작하는 소리.
소리 : (스쿼시 룸에서 공을 때리는..)
진수, 후딱 고개를 든다. 스쿼시룸의 공간에서 공을 치고 달리는 운동화의 삐걱거림. 울리는 공소리.
진수, 점점 공포에 젖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공을 퍼엉 치고. 벽에 맞고..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