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 안희제
-1885-1943
해방으로 중국에서 돌아온
백범은 경주 최부자를
경교장으로 초대하였다
점심을 든 두 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부를 꺼내었다
백범이 꺼낸 장부는 국내에서
헌금 받은 장부였고
최린 옹이 꺼낸 장부는
백산을 통해 임시정부에
헌금한 장부였다
두 장부는 일치하였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던 두 분은
경교장 이층 창문을 활짝 열고
백산의 고향인 의령을 향해
대성통곡하였다
눈물 콧물로 범벅된
일흔이 넘은 두 노인의
통곡에는 결이 조금 달랐다
대부분의 임시정부 예산을
감당한 백산의 충정에
백범은 목이 메였고
배달사고가 있었을 거라고 의심한
최 옹은 자신의 옹졸함이
부끄러워서 울었다
해방되기 2년 전
향리에서 만주로 압송당한 백산은
8개월 동안 몽둥이찜질, 물고문,
전기고문이란 통과의례에
만신창이가 되어
병보석으로 출감한 다음날
생을 마감하였다
1943년 8월
그의 나이 58세였다
*시작노트
강원도로 패키지(Fackage) 여행을 떠나, 남이섬에 가게 되었다.
음산한 가을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선착장은 시장 바닥 같았다. 사람에 치여 둘러보니, 비싼 입장료에 비해
볼거리는 그야말로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이곳은 (겨울연가) 라는 연속극의
촬영장이라고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섬은 대표적인 친일파 중의 한 명인,
민영휘의 후손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이다. 민영휘라는 자는, 구한말 민비의 척족으로서,
매관매직으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한 자였다. 지방관으로 나가 고을 백성들을 수탈하고,
일제에 나라를 팔아 자작이란 칭호와 은사금을 받아 영화를 누리다, 83세까지 살다 죽었다.
하늘에 뜻을 둔 선각자들은 고난을 당하고, 땅에 코를 박고 사는 짐승들은 영화를 누린다.
진정 해방이 옳은 것이라면, 일제 강점기 때 영화를 누린 자들이나 그 후손들이,
독립한 후까지 잘 산다면 그것은 억울한 일이고 통분할 일이다.
지금도 그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땅의 일부 무지렁이 유권자들은, 그들의 후손들과 그 정신을 잇는 정당을
반성도 없이 지지하고 있다.
*위 시는 팩션(Faction)에 입각해서 만든 글이다. 인터넷에 백산 안희제를 치거나,
민영휘(본명 민영준)를 찾아보면 행적이 자세하게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