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명교(明敎) 오산인(五散人)은 실존인물인가
김용의 [의천도룡기]에 보이는 명교(일명 마니교)라는 교파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존재는 교주이다. 그 다음이 광명좌사와 광명우사이고, 그 다음이 사대호
교법왕 그리고 그 다음이 오산인이다. 그 중 명교 교주 장무기 등의 이름은 허
구지만 오산인의 이름은 역사 기록 또는 전설에 보인다. 오산인은 팽화상 팽영
옥, 철관도인 장중, 포대화상 설부득, 냉면선생 냉겸과 주전의 다섯이다. 이
다섯 사람 중 어떤 인물은 역사상 진짜로 존재했던 인물이고, 어떤 이는 전설
속의 신선이다. 김용은 이런 인물을 빌어다 자신의 소설 속에 등장시켰으니 진
짜와 가짜가 섞여 있어 허와 실을 헤아리기 힘들다.
팽영옥은 역사상 실제로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팽익 또는 팽국옥이라고도 하
는데, 사람들은 그를 흔히 팽화상이라고 부른다. 원나라 말기의 홍건군을 이끈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서수휘의 부장이었다. 그는 원주 사람으로 원주 남
천산 자화사에서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그는 병을 잘 고쳐 일찌기 백련교 조
직의 군중을 동원하여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왔다'고 선전하게 하다가 그 교도
주자왕과 봉기한다. 주자왕이 관군에 잡혀 처형된 후 회서로 진출하여 선전과
조직활동을 계속했다. 원라나 마지막 황제 순제 지정 11년인 1351년 가을 추보
승 등과 함께 무리를 모아 유복통과 호응하여 봉기하면서 서수휘를 수령으로
받들었다. 점수에서 정권을 세우고 군대를 이끌고 호광, 강서 등 여러 지방을
점령했다. 훗날 서주 전투에서 전사했다.
팽화상은 사리에 밝아 큰 일이 닥치면 대국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행
동하는 것이 확실히 포부가 크며 식견이 남달랐다. 오산인과 양소, 위일소가
함께 광명정에서 원진 곧 성곤의 돌연한 기습을 받아 모두 중상을 입고 쓰러진
다. 팽화상은 이때 자신의 운명이 원진의 손에 달린 것을 생각하니 평생 품어
왔던 뜻이 모두 흐르는 물과 같다는 감회에 젖어 개탕을 금치 못한다.
"내 일찌기 말했었지. 그저 명교의 힘만 믿고 몽고사람을 내쫓지 말았어야 한
다고. 만천하의 영웅호걸에게 모두 연락하여 일제히 함께 손을 써야 일을 성사
시킬 수 있지…."
위기의 순간에서도 그는 몽고인을 내몰았던 지난 일을 잊지 않고 떠올린 것이
다. 김용은 이렇듯 팽화상의 모습을 역사적 진실에 가깝게 그려내고 있다. 양
우생은 「평종 협영록」에서 팽화상을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과 원 말기의 풍운
아 장사성의 스승이자 무학의 비급인 「현공요걸」을 남긴 인물로 그리고 있
다. 봉기군의 지도자이자 무림의 고수라는 점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역사적 근
거가 있다.
철관도인 장중과 냉면선생 냉겸, 그리고 주전 이 세사람은 모두 원나라 말기에
서 명나라 초기에 걸쳐 존재했는데 훗날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명나라 사람
왕세정이 편찬한 [열선전전]에는 이 세사람이 신선이 되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장중은 자가 경화고 임천 사람이다. 평소 철관을 즐겨 쓰고 다녔기 때문에 '철
관도인'이라 불렀다. 그는 어려서 이인을 만나 태을신수를 배워 기상을 예측하
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신통한 능력을 가졌다. 주원장이 서양에 주둔하고 있을
때, 그는 주원장의 관상이 용의 얼굴과 봉황의 눈을 가져서 황제가 될 것이라
고 미리 예언했다. 또한 명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명장 서달이 장군으
로 있을 때, 장중은 그의 붉은 두 볼과 불타는 듯한 눈을 보고는 아주 높은 관
직에 오를 것이나 명이 다소 짧을 것이라고 말했다. 훗날 서달은 과연 그 관직
이 위국공에 이르렀고, 죽은 후에는 중산왕에 봉해졌고 무녕이란 시호까지 받
았으니 그 부귀영화가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명은 54세를 넘기
지 못했으니 장중의 예언 그대로였다. 언젠가 양국공 남옥이 술을 들고 장중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때 장중은 간편한 복장으로 그를 맞이했다고 한다. 남
옥은 여간 불쾌하지 않아 그를 조롱하는 뜻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먼저 시 윗대가리를 지어볼 테니 당신이 그것을 받아 아래 꽁지를 마구
채워 보구려. '발에 짚신을 꿰어차고 손님을 맞으니 다리 아래 예의가 없구
려!'"
이에 장중은 곧바로 남옥이 손에 들고 있는 야배(야자나무 껍질로 만든 술잔)
를 가리키며 맞받아쳤다.
"야자 껍질로 술잔을 삼으니 술그릇 앞에 불충하도다!"
훗날 남옥은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장중이 말한 '불충(不忠)'이란 예언이 사실
로 증명된 셈이었다. 장중은 경성에 여러 해를 살다가 어느날 아무 까닭 없이
물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다. 황제는 그의 시체를 찾도록 명령을 내렸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동관을 지키는 한 군사가 몇 월 몇 일
철관도인이 지팡이를 짚고 관문을 나서는 것을 보았다고 보고해 왔다. 그 날짜
를 따져 보니 장중이 물에 뛰어든 바로 그 날이었다. 장중은 이렇듯 이상한 일
을 많이 벌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원장과 진우량이 파양호에서 큰 전투
를 벌이고 있을 때, 장중은 구름의 기운을 보고 진우량이 이미 화살에 맞아 죽
은 것을 알고는 주원장에게 제문을 써서 사형수로 하여금 군 대열 앞에서 읽게
하여 상대방의 심리를 동요시키도록 권했다. 주원장은 이 말을 따랐고 진우량
의 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냉겸은 자가 계경이고 항주 사람이었다. 도호가 '용양자'고 자칭 '황관도인'이
라 했다. 음악에 정통했고 글과 글씨를 잘했다. 명나라 태조 홍무 초년(1370년
전후) 궁중의 예악을 담당하는 태상협률랑이 되어 많은 종묘음악을 정리하였
다. [수령지요]라는 책도 지었는데 장수하는 비결이 그 주된 내용이다. 전설에
의하면 영락 연간(1400년 전후)에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주전은 주전선이라고도 하는데 분명치는 않다. 자칭 건창 사람이라고 했다. 열
네살 때 정신병을 얻어 늘 쓸데없는 소리를 마구 늘어놓고 사람들이 돌았다고
했다. 그의 이름 전(顚:미치광이)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 얻어진 것이다. 서른
살 무렵에는 정신병이 더욱 심해졌다.새로 부임하는 모든 관리들을 찾아가서
는,
"나는 태평성세를 예고하러 왔다."
라고 말했다. 관리들은 한결같이 그를 미친 자로 여겨 사람을 시켜 내쫓아 버
렸다. 주원장과 진우량이 파양호에서 큰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주전은 때마침
남창에서,
"천하는 주씨 성을 가진 사람 것이 될 것이다."
라는 '태평가를 부르며 구걸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주원장은 이를 알고는 매
우 기뻐 주전을 초청해 같이 다녔다고 한다. 강을 건너 남경을 공격할 때 비바
람이 크게 몰아닥쳐 병마가 더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때 주전은 뱃머
리에 서서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지르자 얼마되지 않아 조용해졌다. 그 뒤 주전
은 모든 것을 마다하고 여산 죽림사로 돌아왔다.
미치광이 신선 주전은 주원장이 황제가 되어 태평성세를 이루리라는 예언을 한
외에도, 주원장이 장사성을 격파할 때 '하늘이 장사성의 지위를 몰수할 것'이
라는 예언도 했다. 이 예언에 힘을 얻어 주원장은 마음 놓고 장사성을 공격하
여 일거에 승리를 얻었던 것이다.
주전은 이런 대단한 예언 외에 미친 짓도 적지 않았다. 주원장이 순시에 나설
때면 늘 그 앞을 가로막고 절을 하여 '태평'을 고했다. 주원장은 이를 대단히
귀찮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
랴, 주전의 주량이 바닷물을 다 마셔도 취하지 않을 만큼 엄청나리라는 것을.
미친 듯이 마셔대고도 그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주원장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
은 마음까지 일었다. 그러나 주전은 주원장에게,
"자네, 나를 죽이고 싶은가? 수화금장(水火金杖)이라고 나에게는 아무 것도 아
냐!"
라고 말했다. 주원장은 크게 화가 나 그를 큰 항아리에 집어 넣고 불을 지펴
달구어 죽게 했다. 불이 다 꺼진 후 항아리를 열어 보니 주전은 털끝 하나 다
치지 않고 아주 태연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주원장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
밀어 화력을 더 올려 다시 태웠으나 주전은 여전히 멀쩡했다. 오히려 얼굴이
전보다 더 환해져 있었다.
주원장도 어쩔 수 없이 그를 장산사에 기거하게 했는데, 얼마 있지 않아 그 절
의 화상이 달려왔다. 주전의 성격이 하도 괴팍해서 어느 날 어린 사미승과 밥
을 가지고 다투다가 화를 내고는 보름 이상이나 밥을 먹지 않고 있다고 보고했
다. 주원장이 달려가 보니 주전은 전혀 배고픈 기색도 없이 멀쩡하게 지내고
있었다. 주전의 이러한 괴상한 행동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대단히 많
다.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주전은 말투가 거칠고 서슴지 않고 욕을 해대며 말싸움
을 아주 좋아하는 괴팍한 성질의 인물로 나오는데 전설상의 주전의 성격과 아
주 잘 맞는다.
포대화상 설부득 대사는 오산인 중에거 작가가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만들어낸
인물이 아니다. 포대화상은 중국 오대시대 후량(907~923년)의 승려 계비가 그
원형이다. 호를 장정자라 했고 절강성 봉화 사람으로 악림사에서 출가했다. 그
는 몸집이 작고 뚱뚱하며 얼굴은 길지만 좁다. 늘 지팡이를 짚고 자루를 등에
지고 다닌다. 사방을 쏘다니며 아무데서나 주저앉고 누워 잔다. 비가 오려고
하면 비올 때 신는 나막신을 꺼내 신고, 날이 갤 때쯤 되면 곧 벗어 던진다.
사람들은 그의 복장을 보고 날씨의 변화를 알아채곤 했다. 그는 약간 돈 사람
같지만 사람과 어울려 길흉화복에 대해 곧잘 얘기를 했는데 아주 신통했다. 그
는 죽기 전에 점괘같은 알쏭달쏭한 게송을 남겼다.
미륵은 참된 미륵이요,
천백억으로 분신하네.
언제나 세상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데
세상 사람은 스스로를 몰라보는구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포대화상을 미륵불의 화신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 절문 입구에 있는 미륵불은 양반 다리를 하고 크게 웃고 있는 포대화상의
형상을 하고 있다. 미륵상 곁에는 흔히 "배는 천하의 품기 어려운 일도 다 포
용할 수 있도, 늘 웃는 그 입은 세상의 가소로운 인간을 비웃는구나"란 글이
있다. 이 말에서 우리는 은연중에 작고 뚱뚱한 몸집에 호탕하게 웃고 있는 포
대화상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설부득 대사의 포대는 건곤일기대라고 하는데, 그 재료가 천 같기도 하며 가죽
같기도 한 아주 묘한 물건이며, 칼이나 검으로도 찢을 수 없다. [서유기]에 나
오는 미륵불은 사람을 담는 인종대를 가지고 다니는데 그 법력이 엄청나고 신
묘하기가 이를 데 없다. 황미동자가 그것을 훔쳐간 후 신통방통한 손오공과 여
러 천신들도 속수무책이었다. 건곤일기대는 인종대처럼 그렇게 법력이 무궁무
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 신기함이란 불가사의하다.
김용이 빚어낸 이 포대화상 설부둑의 형상은 원나라 말기의 역사적 진실에 비
교적 부합한다. 원나라 말기에 일어난 농민들의 봉기는 대체로 백련교란 종교
단체를 통해 군중에게 선전되고 조직되었다. 당시 백련교는 불교, 명교, 미륵
교 등이 한데 섞인 비밀 종교결사단체였다. 그 교리는 광명을 숭상하였는데 광
명이 암흑을 눌러 승리를 가져다 준다는 것이었다. 봉기군의 수령들은 늘 '미
륵이 세상에 내려오고', '명왕이 세상에 나온다'는 구호를 내세우고 봉기를 선
동했다. 따라서 미륵불의 화신으로 인정받는 포대화상이 김용에 의해 오산인의
한 사람으로 선택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의천도룡기]에서 포대화
상 설부득이 광명정으로 가지 않으려는 주전을 꾸짖는 한편 일장을 날려 그의
이빨 몇 개를 부러뜨리고도 한 마디 말도 않고 그저 담담히 웃기만 한다. 정말
"배는 천하의 품기 어려운 일도 다 포용할 수 있다"는 말에 어울린다 하겠다.
무협소설에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낯익은 역사적 인물(그리고 그 자손들)들을
많이 데려다 등장시키는데, 사람은 진짜인데 그 사건은 허구인 경우도 있다.
견강부회하여 없는 사실 속에서 그럴 듯한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하여 정말 어느
것이 사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김용과 양우
생의 작품들은 이 방면에서 아주 두드러지다. 역사상의 이름난 제왕, 신하, 장
군, 승려, 도사, 유학자, 의사 등을 자신들의 손 가는 대로 종횡으로 소설 속
에 등장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