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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중한 당신! 원문보기 글쓴이: 풀밭
전주 전동 성당
사적 제288호. 건축면적 약 624 m2. 천주교 신자의 순교지이기도 한 이 곳에 1889년 프랑스의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 보드네(한자명 尹沙物) 신부가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V.L.프와넬(한자명 朴道行) 신부의 설계로 건물이 완공되었다. 호남지방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의 하나로, 평지의 성당으로는 대구 계산동(桂山洞) 성당과 쌍벽을 이룬다.
화강석을 기단(基壇)으로 사용한 붉은벽돌 건물로서, 본당과 측랑(側廊)의 평면 구성에다 내부는 둥근 천장으로 되어 있다.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작은 종탑들은 조화로운 입체감을 창출, 건물의 상승감을 더해 준다. 종머리는 로마네스크의 주조(主調)에 비잔틴풍(風)이 가미되어 있어 건물 본체와 잘 어울린다. 1988년 화재로 건물 일부가 소실되었다. [출처] 전주 전동성당 [全州殿洞聖堂 ]
보두네 신부가 고국을 떠나 머나먼 이국, 조선에 첫발을 디딘 것은 1885년 8월이었다. 불과 1년 전인 1884년 9월 사제품을 받고
불 같은 신앙으로 고행의 길을 떠나온 그는 입국 후 충청도를 거쳐 경상도로 갔다가 마침내 전라도 지방까지 발길을 옮겼다.입국한 지 무려 10년이 지나서야 조선에서 박해가 멎어 비로소 그는 전라도의 중심인 전주를 선교의 요지로 선정할 수있었다.
그 때가 바로 1891년으로서 보두네 신부는 그 이전 2년 동안 대승리에서 사목을 했던 것이다. 1894년 동학란을 피해 서울로 올라갔다가 다시 임지로 내려온 그는 폐허가 된 교회를 재건키로 하고 가지고 있던 말까지
모두 팔아 성당 건립에 충당했다. 전동 성당이 지금까지 사람들로부터 감탄의 눈길을 받는 것은 그 건축물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보두네 신부와 선조들이 쏟았던 정성에 기인하는 듯하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서울의 인사동과 비슷한 전통 거리이다 한옥마을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한옥마을과 체험관들이 있고 카페와 음식점 등이 즐비하다 .경기전이 있는 태조로 끝에 전동 성당이 위치해 있다
카페와 음식점 많은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거리를 지나면 위풍당당하고 아름다운 전동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제과점과 카페도 전통 한옥의 구조로 인테리어하였다
경기전과 전통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전동 성당'이 왼쪽 나무 사이로 모습을 살짝 보인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전동 성당의 자태, 고색창연하다 예수님 상이 팔을 벌리고 맞고 있다
서울의 인사동과 흡사한 거리인 이곳도 관광객과 많은 인파로 북적거리는 거리 끝에 자리한 전동 성당을 본 순간 아~!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정문을 들어서자 예수님 상이 어서 오너라 하듯 큰 팔을 벌리고 모두를 안을듯이 다가 오십니다. 왼쪽으로는 빨간 벽돌의 역시 아름다운 사제관이 보이지요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에 위치한 성당으로 1914년 준공된 서양식 근대건축물로 서울 명동성당과 같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1981년 사적 제288호로 지정됐구요
비가 잠깐동안 왔으므로 무두들 우산을 들고... 그래도 사진들을 찍느라 법석이었습니다.
우리들의 보통 상식으로는 성당은 의례 대부분이 언덕을 올라서 자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전동 성당은 대로변에 아주 평지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친밀감을 느끼며 가깝게 다가온듯 합니다.
전동 성당은 전라감영이 있던 곳으로 천주교 순교지이기도 하다 순교터에는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역시 고색창연한 사제관 사제관은 본당을 세운 뒤 2대 주임신부였던 라크루(한국명 具馬瑟) 신부가 1926년에 건축하였다. 이 건물은 1937년 전주교구청사와 교구장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1960년 이후부터는 주임신부와 보좌신부의 생활공간으로 쓰여지고 있다고 한다 3층 건물로 전동성당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본당과 같이 북쪽을 향하고 있다
전동성당의 사제관은 르네상스 양식을 바탕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가미한 절충식 건물로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운 외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당시의 건축기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1926년에 세워진 서양식 건축으로 전동성당의 본당과 더불어 역사적 가치가 큰 근대 건축물이다 빨간 벽돌과 창문은 흰 화강암으로 지어진 본당 옆에 화사하게 자리한 여성스러운 건축물이었다
성당 마당 안쪽에는 1977년에 봉헌된 루르드 성모 동굴 성모상이 있으며, 성당 뒷편에는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에서 제작한 '피에타상'이 안치돼 있다.
대성전의 아름다움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평안을 찾고 고요함과 거룩함을 간직하고픈 곳이다
대 성전이라 해도 관광지이므로 기도하는 신자 사진 찍는 이들... 모두들 각자의 볼 일이 따로 인듯
제대와 마주하고 있는 정문의 위에 보이는 둥근 창
오른쪽 회랑과 2층
왼쪽 회랑과 2층
제대 위의 천장의 아름다움
왼쪽 회랑에서 보이는 미사 드리는 모습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 유중철·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 글라스
전동성당을 건축한 초대 주임사제인 프랑스 출신 보드네 신부님 상 빠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님으로서 멀고 먼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 되시어 혼신의 힘을 기우려 성당을 건축, 오늘날 우리에게 아름다운 유물을 전해주신 고마우신 사제이시다
성당 정문에서 왼쪽에는 예수님 상이 있고 오른쪽에는 성 모자 상이 있다.
성당 외관의 오른쪽
성당 외관의 왼쪽
한 신자가 애기의 유모차를 끌고 가는 평화로운 모습을 클로즈엎 했습니다.
성당의 주차장
경기전 담에서 바라다 보이는 전동 성당의 자태, 멀리서 보이는 성당의 자태가 참으로 거룩하며 아름다웠다.
아쉬움이 있다면 관광지에 연결되어 있어 그 고요함과 거룩함을 유지할 수 없음이~~
참으로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참고]
전동 성당과 한국 최초의 순교자
2012년 8월,
촬영, 편집: 최춘희 글라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