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희 집이 4층인데 수술하고 퇴원하면 기어서라도 올라 갈 수 는 있을까요?”
‘아니 왜 걸어서가야지 기어서가’ 하며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컴 속에 오 자 다리의 낮선 사진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바라보고 있다.
‘선생님 누구 다리예요’ 물으니
한쪽 귀퉁이 내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어설프고 엉거주춤한 내 다리가 이렇게 망가져 있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걸어온
지난날 10년을 훌쩍 넘게 정형외과 약을 처방해 고통이 심할 때 만 먹으며 견디어왔다.
수술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동기는 방통 중 졸업 후 고등학교 삼 년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고, 선생님은 수술도 적절한 시기에 해야 회복도 빠르다고 했다.
나이도 제일 많은 왕 언니인 나로선 계단을 사뿐히 걸어서 오르내리며 뛰기도 하는
젊은 친구들이 한없이 부러웠지만 아픔과 고통을 꾹 참으며 태연한 척 했었다.
수술이 잘되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이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수술 후 에도
다리의 통증으로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웃과 친구들이있다.
백세시대를 살고있고 날로 발전되어가는 이 좋은 세상에서
죽지도 않고 해마다 더해가는 다리의 고통에 걷지도 못한다면,
누구나 가야할 정해진 인생의 마지막 코스인 고려장인 요양원이 두렵고 무서웠다.
입원 다음날 수술대 위에 누워 사형을 집행하는 사형수처럼 긴장하고 초조하여
주기도문을 쉼 없이 뇌이며 수술이 잘되기를 간곡히 기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수술, 이 인묵 선생님이 하는 거 맞죠?
하며 물었다. 의심 많은 도마처럼
'그럼.선생님 오시면 마취 할까요? 한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휘장 뒤 구세주인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였다.
하반신은 감각도 느낌도 없이 망치소리와 자르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며
수술은 시작 되었고 아픔과 고통은 그림자처럼 나와 동행 하였다.
얼음찜질과 진통제로 아픔을 달래며 일주일 뒤 또 한 다리를 수술하고 나왔다.
우리 방은 8층 6인실이었고 모두 다리 수술 환자들이었다.
영 자 돌림 환자만 모아놨는지
영자 영옥이 영림이 영숙이 영분이 60대 영숙이가 또 있었다.
나는 한바탕 웃고 말았다.
아ㅡ니 이럴 수가 모래알 같이 그 많은 사람 중에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모두가 쑤시고 아픈 고통과 사투를 벌이느라 신음 소리만 온 방안을 가득 메웠고
우리는 그 누구도 옆 사람의 고통을 위로 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코로나로 가족들은 면회도 사절되었고 식사 때나 벗어야했던 답답한 마스크,
달달한 7080 믹스커피 한잔도 옆 환자와 나누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보호자들이 넣어준 간식을 몰래 먹는 재미로 아픔을 달래곤 하였다.
시간되면 들어오는 영양을 고루 갖춘 식사도 모래알 씹는 것 같았지만 약은
먹어야 하니 억지로 수저를 들곤 하였다.
쉴 새 없이 맞아대는 진통제와 얼음찜질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렇게 염원했던 흰 칼라의 후리아치마인 교복은 입어 보지도 못하고 졸업식도 불참하고
크리스마스도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병원에서 보냈다.
해가 바뀌어 2022년 1월1일 새해 아침이 되었다.
6시10분 이른 아침 롱다리 이인묵 선생님이 ‘왜 안 자구’하시며
환한 모습으로 들어오셨다.
공휴일이라 회진이 없는 날로 알고 있는데 선생님은 환자들의 상태를 둘러보신다.
평일에도 시간만 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아보며 위로의 말을 주시고
농담 비슷한 위트 있는 말은 잠시지만 아픔을 잊고 환자들을 한바탕씩 웃게 하셨다.
지금도 생각이 난다. 선생님의 정겨운 목소리가
‘칙칙폭폭 하고 놀아. 방 좀 잘 지켜.
거즈를 떼어내고 연고를 바르니 ’성질머리하구는‘
‘밥 맛없게 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나’
밥투정하는 바로 앞 침대 80대 영자 할머니에게
저녁에는 맛나게 하라고 식당에 가서 혼내준다며 위안을 주기도 했다.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선생님 드레싱 할 시간 떼어내고 소독을 하면, 거친 선생님의 손이
예수님의 손길처럼 금방이라도 나을 것 같이 시원했고 그 순간만은 고통도 없었다.
창문쪽 60대 영숙이가 회진하고 돌아선 선생님을 바라보며 숨죽이며 조용히 한마디 한다
.
“언니. 난 선생님 머리 한 번만 빗겨 드리고 싶어”
바람에 날리는 숫이 적은 엉성한 선생님의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 왔나보다.
예수님처럼 이 태석 신부님처럼 우린 그렇게 선생님이 존경스러웠다.
믿을 곳은 오직 선생님뿐이었으니까.
물리치료실과 병실 화장실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며 삼주가 지났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체중이 5킬로가 쭈ㅡ욱 빠져버렸다.
내일이면 모두 재활하는 곳으로 아니면 집으로 퇴원해서 돌아가야 한다.
바로선병원 다리 환자 동기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며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재활병원 가서 한 달만 있자고 하는 아들의 말을 뒤로하고 고집을 부리고 집으로 왔다.
집이 가까워지자 사층 계단을 올라갈 생각을 하니 은근히 겁도 나고 걱정이 됐다.
양다리 수술 3주 만에 사층 계단을 쉬지도 않고 선생님 말씀대로 올라왔다.
이제부터는 나와의 싸움이다.
선생님도 없고 주사도 없는 우리 집이다.
나는 근 한 달을 집에서 꺾기 운동과 영양을 섭취하며 재활하여 수술 삼 개월이
조금 지났음에도 잘 걷고 일상생활의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다.
이 인묵 선생님이
폐차 직전의 내 다리를 수술을 잘해주셔서 그랜저는 못되더라도
마티즈 정도는 되니 아끼며 걸으면 한 십 년은 잘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다리 통증을 안고 사는 이웃들에게 선생님의 다리 모델이 되고
어디서 했느냐는 답은 녹음을 해서 가지고 다녀야겠다.
오늘도 또 내일도 씩씩하게 학교도 잘 다니고 남은 나의 인생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살아갈 것이다,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오래도록 건강하셔서
다리의 고통을 안고사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적절한시기에 수술해서 바로선다리로
고통없이 편히 걸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2022 4/15
첫댓글 좋은 선생님과 인연들 만나셨네요
이제, 건강하고 씩씩하게.....오래오래 좋은글 많이 쓰시길 기도 합니다^^
유운미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네 맞아요 선생님을 잘 만나 잘 걷고 있어요
늘 건강하시고 멋진 글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