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지상주의 세상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요즈음 국회를 보면 상당수 의원들이 사법고시 출신들이다. 학창시절에 최고로 공부를 잘 했던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이 요즈음 하는 일이라고는 진영논리에 갇혀 서로 상대방 헐뜯기에 여념이 없다.
성적은 최고였는지 몰라도 그들의 행동은 우리 같은 둔재들이 보기에도 안타깝고 역겹다. 그들의 언행에서 창의적 문제해결 방법이나 의지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다음번 의원 배지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켄 베인의 『최고의 공부』는 첫 머리부터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외친다. 한때 유행했던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실감난다. 세상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공부를 잘 했던 사람이 아니라 창의적인 사람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아무도 학창시절의 학업 성적을 묻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내내 그렇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어떤 과목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저 암기능력이 조금 앞섰을 뿐일 수도 있다.
“전통적인 학교 교육은 제일 먼저 손을 들어 답하는 학생에게 상을 내린다. 그러나 정작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창작은 느리고 꾸준한 전진을 통해 이루어진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뭔가를 붙들고 진득하게 노력해야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알 수가 있다.”
저자는 오랜 연구 끝에 세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학업 성적이 우수한 사람이 아니라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창의적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책은 그 내용들을 설득력 있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먼저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학습자들의 세 가지 학습 유형을 소개하는 것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이 세 유형은 피상적 학습자, 심층적 학습자, 전략적 학습자이다. 피상적 학습자는 학습한 내용을 활용하기보다는 나중에 시험을 통과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피상적 학습자는 시험 준비를 할 때 시험에 나올만한 부분만 암기를 하거나 공부한다. 그들에게 학습 흥미는 의미가 없다. 아마도 이런 학습자들이 우리나라 학생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들에게도 ‘자아 지향적’ 성향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들은 대개 학습 기피형이다.
전략적 학습자는 졸업이나 전문 대학원 진학을 위해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들은 ‘과제 지향적’ 학습자이기도 하다. 과제 지향적 학습자는 배움 자체를 좋아하며, 굳이 다른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훨씬 더 깊이 있는 접근법을 취한다.
글의 요지를 찾고 가장 중요한 정보를 선별한다. 새로이 접한 정보가 그들의 지식과 일치하는지 모순되는지 깊이 생각하고 내용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한다. 이들 학습자들은 정해진 과정 외의 공부가 성적을 까먹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모험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 아무도 밟아보지 않은 길을 걸으며 지적 여행을 떠나거나 호기심에 이끌려 공부를 찾기보다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학점을 우선시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자아 지향적’ 학습자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러한 유형이 우리나라 성적 상위권 학생들 대부분의 학습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후에 ‘판에 박힌’ 전문가가 되어 절차대로 움직일 뿐 창의적인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사법시험 출신 국회의원이 바로 그런 유형이 아닐까 싶다.
수학공식에 대입해서 답을 내고 만점을 받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은 전형적인 전략적 학습자이다. 문제를 이해하고 다른 문제와 연관시키기 위한 암기는 그저 시험 통과를 위해 지식을 억지로 암기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실 이런 학습자들이 양산되는 것은 학교가 한몫을 한다. 학생들이 피상적이거나 전략적인 유형으로 내모는 복잡한 요인들을 파악하면 거기서 탈피해 깊이 있는 학습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멀리는 선다형으로 치러지는 대학입학능력시험이 자리하고 있다.
단편적인 사실들만 파악하면 풀 수 있는 선다형 문제만 계속(우리의 수능고사) 접하면, 의미를 찾기보다는 단편적인 사실 암기에 급급할 것이다. 책에서 읽은 내용이나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뱉어 내면 되는 서술 문제 역시 피상적인 학습을 부추긴다.
수세대 동안 학생들은 피상적이고 전략적인 학습을 강조하는 교육 체계를 경험했다. 사회는 학생들이 잘 배우고 있는지, 교육이 가연 가치 있는 투자인지 알기 위해 이해보다는 단순 암기를 강조하는 표준화된 시험을 강요해 왔다.
피상적인 학습을 높이 평가하는 교육자들도 있다. 어떤 학생들에게는 그런 공부법만으로 충분할 거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모든 학생들이 암기력만 격려하는 교육 환경을 경험한다. 최고의 학교라는 교육 기관들에서도 학생들에게 지름길을 찾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심층적 학습자는 글을 읽고 글 전체 맥락을 이해하려 했으며, 그것이 자신이 이미 배운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하려고 했다. 이 책은 심층적 학습자의 학습 방법을 다양한 각도에서 기존의 연구 결과와 심층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창의성을 개발해야 하고 그러자면 심층적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인생을 바꾸는 일일 수도 있다. 더구나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원대한 꿈을 지닌 사람들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창조적인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이 책은 전략적 학습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심층적 학습자가 되기 위한 다양한 방식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할 때 학습자는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속에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이를 위해 저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리더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조사한 끝에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통제할 수 있었으며, 자신들의 능력에 한계가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도전 욕구가 상당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하며 토론을 즐기는가 하면 자존감도 매우 높았다고 한다. 스스로를 귀히 여긴다는 것은 스스로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기 위한 기반이 충분히 마련됨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폭넓은 분야를 끊임없이 탐색하여 자기 자신의 앎의 지평을 넓혀갔으며, 결국은 새로움을 발견하는 원동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끝으로 흥미로운 것은 최고의 학습법이 차근히 소개되어 있는데 각자의 입장에서 취사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저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능동적인 책읽기와 글쓰기 연습이다. 맹목적인 독서가 아니라 독서 전에 충분히 그 내용을 나름대로 상상해 보라고 한다. 이는 목차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 연습은 사고력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자신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깨닫고 다른 사람들의 창작물을 통해 배우는 능력을 기른다면, 심층적 학습자로 변화할 것이고, 창의적이고 호기심 많으며 비판적인 사고력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인 셈이다.
이 책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집필한 것이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각자가 처한 입장에서 분석적으로 살피면 나름대로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우는 독서를 할 때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참고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