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읍에서 영천시로 행로를 잡으면 위천의 상쾌한 흐름이 이어지고,30분 정도 달리면 고로면 화북리에 발길이 닿는다. 이곳에는 고려의 명승일연스님이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천년 고찰 인각사가 자리잡고 있다.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1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특히 이 곳에서 구산문도회를 두 번이나 개최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전국
불교의 본산임을 알 수 있다. 사적 374호로 지정된 인각사는 경내에 보물428호인 보각국사탑과 비가 있다. 사찰의 앞에는 수많은 백학들이 서식하였다는운치있는 학소대가 있다. 인각사에서 조금 올라가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병암과 마주치게 된다. 밑으로는 수정같은 맑은 물이 흐르고 있고 여름이면매일 수 천명씩 이곳에서 피서를 즐기기도 한다.
인각사 극락전
정면에서 바라봤을때 왼쪽이 대세지 보살님, 가운데가 아미타부처님 오른쪽이 관세음보살님이신데
불상을 만든지 오래되지 않은것 같았고 특이한것은 세분 얼굴이 모두 똑같아 아미타부처님 머리모양도 곱슬머리가 아니고 대세지보살님과 관세음보살님의 얼굴이 똑같아 그리고 아미타부처님의 가슴부분만 약간 넓고 옷모양이나 수인모양이 너무 똑같아서
같은 기계에서 찍어낸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해 라는 생각이~
인각사 석불 좌상
이 불상은 10~11세기에 제작한 불상으로, 실존하는 고승을 모델링하여 조성한 불상양식과 계층을 같이 하고 있다. 광배와 한 돌로 구성된 석불좌상인데 광배는 거의 깨어졌거나 불상은 완전하게 남아있고, 머리는 육계가 불분명하지만 윤곽선이표현되어 육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머리칼도 나발이 꽤 큼직하게 묘사되고있다.가부좌한 두발은 가사로 덮여 있으나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얹는 항마촉지인의 두 손은 비교적 작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군위인각사삼층석탑
석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조형물로 실제 사리가 없는 경우에는 상징적으로 부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모신곳이다.
인각사 극락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의 2층 기단과 머리 장식부 일부가 남아 있는 석탑이다. 1층 기단부가 땅속에 묻혀 있었으나 현재의 모습의로 고쳐 세웠다.
땅바닥 위에 받침돌을 1단 놓고 그 위에 기단 몸돌과 기단 덮개돌을 올렸다. 1층 기단 덮개돌은 두 장의 널판같이 뜬 돌로 만들었다. 2층 기단 몸돌은 4개의 뜬 돌을 세워 만들었다. 탑의 몸체에 사용된 돈은 몸돌과 지붕돌로 구분되고 각각 다른 부재로 만들었다. 탑 몸돌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이 있다 북면 2층의 기단 몸돌은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의 모양이 달라 다른 용도의 석재를 재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붕돌은 몸돌이 층마다 차례로 얹혀 있다. 보륜 위에는 볼꽃 모양의 장식물이 있는데 돌의 재질이 달라 원래의 것이 아닌 것으로 추정한다.
석탑의 규모와 층수, 지붕돌 밑면에 4단으로 만든 계단식 받침, 꼭대기 장식물 등은 통일 신라 말기부터 고려 전기의 석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보각국사 일연의 탑과 비는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입적한 일연스님의 부도탑과 비문이다. 보각국사 일연스님이 노년에 인각사에서 노모를 지극히 봉양하고 삼국유사를 저술하는 등 많은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보각국사비와 정조지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 인각사 보각국사탑
탑의 상층은 불상, 중층은 연화, 하층은 토끼·사자·원숭이 등 여러 동물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승려 일연스님 노모의 묘를 비추었다고 한다. 팔각의 탑의 중심부에 보각국사 정조지탑이라는 탑명과 사천왕입상과 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원래 이 탑이 인각사 동쪽 2km 떨어진 부도 골에 있었으나 외지 사람들이 자기 조상의 묘를 안장하기 위해 1928년 서편으로 50m쯤 옮겨 놓은 것을 1978년에 인각사 경내(境內)로 다시 옮겼다고 한다.
- 조성시대 : 고려 충렬왕 21년
- 소유자 : 인각사
- 규모 : 탑고 2.4m
- 재료 : 화강암
* 인각사 보각국사비
비는 충렬왕 21년(1295) 국사(國師)의 불제자(佛弟子)인 법진(法珍)에 의하여 세워졌다. 높이 6자, 폭 3자반, 두께 5인치인 탑신(塔身)의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閔漬)가 왕명을 받들어 지은 명문이며, 글씨는 왕명에 의하여 진나라까지 가서 왕희지의 유필(遺筆)을 집자(集字)하여 만들었으며, 지금은 형체가 많이 훼손되었으나, 비문은 오대산 월정사에 사본이 있어 알 수 있다.
명부전
명부전 내부
국사전
국사전은 삼국유사를 집필하신 일연스님이 모셔져 있는곳이다.
참고로
인각사에서는 일연학연구원을 운영한다고 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처음 삼사순례를 예정했을때는 지보사, 인각사, 도리사를 가기로 했는데 지보사에 눈이 많이 와서 차가 올라갈 수 없다고 하여
영주 여래동 석조여래입상을 보러갔고 점심 공양까지 오전 시간이 많이 남은터라 인각사에서 2시간정도(?)를 있었던것 같다.
내가 작년(2023년) 8월 15일에 장명사를 처음 가본이후 장명사가 아닌 장명사 주지스님께서 인각사에서 법회를 하시는것을 처음 본 아이러니
새벽에 약을 먹고 10시정도에 비상약을 먹고 점심에 또 약을 먹은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오늘은 지난주 하루 서울 갔다와서
다음날 하루종일 초죽음이 되어 있었던것에 비해 상태가 그래도 조금 나은 편이다.
혼자였었으면 감히 세군데의 절을 가본다는것이 싶지 않은 일인데 삼사순례라는 목적을 가지고 진행한 행사였음에도
방목하여 내멋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신 스님께 감사드린다.
다음 목적지는 구미 파계사와 동화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