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살아간다는 것
- 김병곤 -
모두가 하나같이 해마다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무한경쟁시대의 삶은 경제실권이 주체이고 보면 눈에 들어난 분쟁과 경계가 없을 뿐 상쟁의 현상은 고통을 수반하는 엽기적 전쟁보다 강하고 참혹한 현실 모습인 것 같다. 사업을 실패한 배우가 음독하고 그에 관련설에 견디지 못하고 자결하며 아직은 많은 시간이 있음에도 추락되는 인기와 슬럼프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으로 버티는 노력보다 포기하는 못된 자결의 결심은 분명한 현대병이고 차근히 세습을 익혀보지 못한 가정과 사회환경의 적응력 부족이 빚은 겉치레들이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참는 것은 물리적 불편을 의미하는 것이 대다수이고 동양권 특히 한국인에게는 참는 것은 도리이고 윤리로 규정하는 참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하고 있다.
참고 견디어 가는 것을 얼마나 미화하려고 애쓰고 있는가 하는 것은 역사속에 얼마든지 있다. 노천탕에 내려온 선녀는 아이 셋을 낳고 날개옷을 찾을 때까지 인고의 세월을 영혼과 육신을 다 받쳤다. 연암 박지원이 경상도 안의현감으로 재직 중 기록한 견문록에 의하면 열녀 함양 박씨전에는 벼슬하든 두형제가 젊어서 과부가 된 노모에게 동료 어느 누구는 선대가 과부였는데 풍문이 좋지 않아 그 자식의 벼슬길을 당연히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노모는 놀라며 “부녀자의 안방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소상히 알며 바람이란 소리만 있고 형체는 없는것이며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것이 아니냐?” “너희도 과부의 아들이고, 무형의 남의일에 왈가왈부 하느냐”며 노모는 품속에서 딿고 딿은 엽전하나를 꺼내 놓으며 이동전은 앞뒷면과 테두리와 글자마저 완전히 소멸되고 없다.“ 이것이 죽음을 참아온 증표이고 왕성한 욕정이 일어나 삶의 애환이 일때마다 밤이 새도록 만지작거리고 방바닥에 굴리며 자신을 일깨우었고 희미한 호롱불을 탓하고 바람소리에 흔들이는 대문소리가 일때마다 조바심으로 동요했으며 처마에 떨어지는 낙수소리에 한길슬픔에 잠기며 창가에 쏟아지는 달빛에 외로워 몸부림쳤다.
스산한 바람에 오동잎 스치는 소리를 듣고 역으로 초멸할 수 있었던 증표이다. 행랑체 종년은 허드러지게 코를 고는데 잠못 이루는 애미의 밤은 웬수였단다.
과부초년에는 동전구리는 버릇으로 새벽을 맞고 10년이 지나면서 닷새에 한번 동전을 굴리거나 열흘에 한번쯤으로 그 빈도가 점차 줄어들었다고 했다.
몸부림의 과거에 젖어 모자는 결국 서로 얼싸안고 울고 말았다. 그때부터 동전을 忍苦錢(인고전) 또는 참는돈이라 하였다고 한다.
참을 수밖에 없는 忍자를 분석하면 칼날(刃) 아래 마음(心)을 눌러 놓은 셈이다.
즉 칼과 같은 도구로써 마음을 다스려 꼼짝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된다. 자칫하면 목이라도 달아날 듯한 기분이든다. 세상을 살면서 힘들고 괴롭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희노애락이 있는곳마다 삶의 진실이 있는것이며 삶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佛家(불가)에서는 현재를 보면 과거 세상살이를 알게되고 현재를 보면 내세의 삶을 짐작할 수 있는 삼차원 세계를 설하고 있다.
과거가 옳치 않았다면 현재의 세상을 반듯하게 맞이하고 덕은 겸양에서 온다고 했드시 하루하루 덕을 쌓으며 간다면 보다 밝은 세상을 지니게 될 듯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