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 11. 26. 01:34
서독 파견 광부 & 간호사와 박정희
(박영근 논설고문 / 2020. 05 / 경상매일신문)
독일은 우리나라에서 광부가 가기 전에 유고슬라비아, 터키, 아프리카 등지에서 많은 광부들을 데리고 왔었다. 이들은 아주 나태하여 결국 광산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온 광부들이 투입되면서 생산량이 엄청나게 높아지자 독일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였고, 이렇게 근면한 민족을 처음 봤다면서 한 달 급여 120달러에 보너스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 왜 간호사가 필요하였나?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3D 업종이나 힘든 일을 기피하는 현상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특히 야간에는 일할 간호사가 없었다. 특근수당을 많이 준다 하여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한국 간호사들에 대하여서는 "아주 후진국에서 왔기에 일을 맡길 수 없다" 하여 일부는 죽은 사람 시체를 알코올로 닦고, 수의를 입히는 일도 하였으며, 일부는 임종이 가까운 환자들을 돌보도록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근무하였는데, 한국 간호사들은 환자가 사망하면 그 시신을 붙들고 울면서 염을 하는 것을 보고 독일 사람들이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담당 간호사가 자리를 비우든지 아니면 갑자기 간호사가 없을 경우에는 주사도 놓고 환자를 다루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한국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의료 분야를 맡기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위급한 사고환자가 피를 흘리면서 병원에 오면 한국 간호사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그 피를 온몸에 흠뻑 적시면서도 응급환자를 치료하는가 하면, 만약 피가 모자라 환자가 위급한 지경에 빠지면 한국 간호사들은 직접 수혈을 하여 환자를 살리는 등 이런 헌신적 봉사를 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은 간호사가 아니라 천사다” 하면서 그 때부터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하였고, 이런 사실이 서독의 신문과 텔레비전에 연일 보도되면서 서독은 물론 유럽 전체가 "동양에서 천사들이 왔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우리 간호사들의 헌신적 노력이 뉴스로 오르자 서독 국민들은 이런 나라가 아직 지구상에 있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라며, 이런 국민들이 사는 나라의 대통령을 한번 초청하여 감사를 표하자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특히 도시에 진출한 간호사들의 실력이 독일 간호사들 못지 않다는 인정이 일고 있던 시기에 한독협회 '바그너 의장'은 병원에 오면 꼭 한국 간호사만 찾는데 "왜 그러느냐"고 기자가 물으니 "주사를 아프지 않게 놓는 특별한 기술자"라 하여 주변을 놀라게 하였다는 것이다.
- 서독 정부도 '그냥 있을 수 없다' 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하였다.
이것이 단군 이래 처음으로 우리나라 국가 원수가 국빈으로 외국에 초청되는 첫 번째 사례였다. 우리로서는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할 다급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모든 준비를 하였으나 제일 큰 난제는 일행이 타고 갈 항공기였다. 한국이 가진 항공기는 일본만을 왕복하는 소형 여객기로 이것을 갖고 독일까지 갈 수 없어,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전세 내기로 하였는데, 미국 정부가 군사 쿠데타를 한 나라의 대통령을 태워갈 수 없다 하여 압력을 가해 무산되어 곤경에 처한 것이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어차피 창피는 당하게 되었는데 한 번 부딪쳐 보자, 이래서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었던 최두선 선생이 특사로 서독을 방문하여, <뤼브케>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각하! 우리나라에는 서독까지 올 비행기가 없습니다. 독일에서 비행기를 한 대 보내주실 수 없습니까?”라고 요청하였다.
당시를 회고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들이 깜짝 놀라 말을 못하더란 것이다. 결국 합의된 것이 홍콩까지 오는 여객기가 서울에 먼저 와서 우리 대통령 일행을 1 ‧ 2등석에 태우고 홍콩으로 가서 이코노미석에 일반 승객들을 탑승케 한 후 홍콩, 방콕, 뉴델리, 카라치, 로마를 거쳐 프랑크푸르트로 간 것이다.
1964년 12월 6일, 루프트한자 649호기를 타고 간 대통령 일행은 쾰른 공항에서 <뤼브케>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총리의 영접을 받고 회담을 한 후, 다음 날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우리 광부들이 일하는 탄광지대 '루르' 지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서독 각지에서 모인 간호사들과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까지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탄가루에 범벅이 된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강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새까만 얼굴을 본 박정희 대통령은 목이 메기 시작하더니 애국가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였고 연설 중 울어버렸다.
광부들과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부둥켜 안고 통곡의 바다를 이루었으니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여러분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서독 정부의 초청으로 여러나라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일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한국 사람이 제일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정희 대통령은 원고를 보지 않고 즉흥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광원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가족과 고향 땅 생각으로 괴로움이 많을 줄로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먼 이국에 찾아왔는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가 생전에 번영을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우리의 자손들은 이렇게 남의 나라에 와서 일하지 않는 나라로 만듭시다”
박대통령의 연설은 계속되지 못했다.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육영수 여사도, 수행원도... 심지어 옆에 있던 <뤼브케> 대통령까지도 울었다. 결국 연설은 어느 대목에선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광부들이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우릴 두고 어딜 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떠나려는 대통령을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았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대한민국 만세", "대통령 각하 만세"로 이별을 고하였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탄 박대통령이 계속 눈물을 흘리자 옆에 있던 독일 <뤼브케> 대통령이 손수건을 건네주며 말했다.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주겠습니다”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계속 우는 우리 대통령에게 <뤼브케> 대통령이 자신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주기도 하였는데 대통령을 붙들고 우는 나라가 있다는 이 사실에 유럽의 여론이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선 것이다.
박 대통령 방문 후 서독은 제3국의 보증이 없이도 한국에 차관을 공여하겠다는 내부결정을 하였지만 국제관례를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이 받는 월급을 일개월 간 은행에 예치하는 조건으로 당초 한국이 요구하였던 차관 액수보다 더 많은 3억 마르크를 공여하였다.
서독에 취업한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이 본국에 송금한 총액은 연간 5000만 달러, 이 금액은 당시 한국 국민소득의 2%를 차지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으며, 이 달러가 고속도로와 중화학공업에 투자되었다.
이후 한국과 서독 간에는 금융 문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진정한 우방이 되었다.
서독에서 피땀 흘린 광부와 간호사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조국근대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위대한 '국가유공자'들임에도 우리들은 그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국가는 당연히 그들에게 '국가유공자'로 대우하여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