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정부기관에서 발표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달갑지 않은 뉴스이다.
시장에 다녀온 아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그야말로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한숨이 끊어질 날이 없다.
먹거리의 생산자나 소비자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들도 단골손님의 발걸음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쟁 같은 세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같은 무력전쟁은 물론이고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과도 전쟁이고 먹거리가 부족한 나라에서는 배고픔을 막기 위한 전쟁도 하고 있다.
특히 식량의 자급자족이 어려운 국가를 상대로 통제나 압력을 가하는 식량의 무기화가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식량농업기구(FAO)는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현재의 식량위기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라고 했다.
또한 이러한 국제적 움직임에 힘입어 자국의 농산물 수출을 통제하는 식량보호주의도 확대되고 있다.
세계은행은 식량 수출 통제를 선언한 나라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35개국에 달한다고 밝혔고 각종 곡물과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이 2024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약 30년 주기로 발생하였던 국제곡물시장의 위기가 2000년대 중반 이후 3회나 발생하였다.
전쟁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하고 효과적인 무기는 무엇일까 ?
그것은 칼도 아니고 총도 아니고 폭탄도 아니다.
그 무기는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수많은 분쟁을 일으켰다.
그 무기는 바로 식량, 더 사실적으로 말하면 식량의 공급이다.
4C 로마의 군사 저술가 베게티우스는 ‘굶주림은 전투보다 더 자주 군대를 물리치며 배고픔은 칼보다 더 잔인무도하고 식량과 필수품을 조달하지 않는 사람은 싸우지도 못하고 정복된다.’고 하여 무기로서 식량이 지닌 힘을 고대에서부터 강조하고 있었다.
군대는 발로 행군하는 것이 아니라 배(腹)로 행군한다는 말도 있다.
OECD 연구 자료에 따르면 최근 농업생산성 증가율은 연평균 2.6%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전 세계 인구는 매년 8,000만 명 증가해 연평균 증가율 3% 정도로 농업생산성 증가율을 앞지르고 있다.
특히 동물성 단백질 섭취 증가로 식용곡물 보다 사료용 곡물재배는 증가하고 있다. 1980년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69.6%, 곡물자급률은 56%였으나 2021년에는 각각 44.4%와 20.9%로 하락하였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필요한 곡물은 약 2,000만톤 정도인데 쌀을 포함해서 500만 톤은 국내에서 생산하고 1,500만 톤 정도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필요곡물의 80% 정도를 수입에 의존하는 세계 5대 식량수입국이다.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자급률은 하락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부족하면 누군가 나눠주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헛된 꿈은 일찌감치 접어 두어야 한다. 현재 농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데리고 일을 한다. 그마저도 치솟는 인건비 걱정에 농민들의 얼굴이 어둡다.
앞으로 10년 후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2022년 우리나라 농업생산액은 58조원 정도이고 농업부가가치는 28조원 정도 되지만 농식품 수입액은 무려 54조원이나 된다.
현재 상태를 방치하면 수입농산물이 더 늘어나고 식량안보에 걷잡을 수 없는 치명상을 받을 수도 있다. 식량자원을 지속적으로 어떻게 지켜낼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식량안보에 대한 법률적 명문화도 중요하고 일정 규모의 국가예산 지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지면적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국민의 주곡인 쌀뿐만 아니라 채소, 과일, 축산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먹거리를 생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늘날과 같은 위기에 대한 대응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꼭 필요한 농산물의 비축제도나 해외농업개발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쌀, 밀, 콩, 감자와 같은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업인이 ‘먹고 살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문제해결이 가능하리라 본다.
기원전 7C 중국 제나라 정치가 관중은 ‘입고 먹는 것이 충분해야 명예와 부끄러움을 안다.’고 했다.
배고파 본 사람은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지만 우리나라에서 실제 배고픔을 경험해 본 사람은 요즈음에는 거의 없다. 먹거리는 언제 어디서나 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FAO에서는 식량안보의 정의를 ‘모든 국민이 언제든지 건강하고 활동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안전하고 영양소가 있는 충분한 양의 식품에 물리적ㆍ경제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상태’라고 하였다. 우리는 지금 이 상태에 와 있는가 ?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말을 명심하자. 우리에게는 후세를 위한 ‘밥그릇’을 착실히 준비해 줄 의무가 있고 우리 아들, 딸들이 ‘미래’라는 희망을 갖게 해 주어야 한다.
이래저래 생각할 것도 많고 할 일도 많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