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하박국3장16절-19절 2007년 7월 2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제 목:감사할 수 없는 자의 감사
심리 치료 가운데 감사 요법이란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삶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들이 모두 치유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면 행복을 되찾고 건강도 회복됩니다.
아무리 편안한 환경 속에서도 불평하기 시작하면,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이 됩니다.
마음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4장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조건에서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한 목사님이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뒤이어 아주 뚱뚱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우르르 몰고 올라타는 것입니다.
가족계획을 안했는지, 아니면 농구팀을 만들려고 했는지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얼마나 유별난지 떼를 쓰는 아이에서 시작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이, 버스 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아이들로 인해 버스 안이 온통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이 뚱뚱한 아주머니까지 기우뚱거리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고, 때리고, 큰 소리로 욕하면서 같이 소란을 피우는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그렇지 않아도 만원 버스에서 땀이 나고, 피곤하고, 신경질이 나는데 그 아이들의 엄마까지 설쳐대니 도저히 참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든 목사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감동이 오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목사님을 그래 감사해야지. 마음먹고 그 순간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닌 것 천만 감사합니다.
더욱이 저 별난 아이들하고 같이 살지 않게 해 주셔서 더욱더 감사합니다. 라고 했답니다.
물론 그 목사님은 그런 사모님이나 자녀들과 같이 살지 않은 것이 감사의 제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사모님이나 자녀들과 같이 산다면 그때도 감사했을까요?
우리가 감사할 수 없는 조건에서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나고, 좋은 남편이나 아내를 만나고, 좋은 자녀들이 있고, 그래서 온 가족이 화평하고, 건강하고, 모든 일들이 형통할 때 감사하는 것은 불신자들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의 감사는 감사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박국3장16절-19절에서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있는 하박국 선지자를 만나게 됩니다.
어떤 감사를 드리고 있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1.환난 날의 감사였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므로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당시 유대 나라는 신흥 제국인 바벨론의 침략의 위기 속에서 하바국 선지자는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고, 온 몸이 떨리는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전쟁이 시작되고, 바벨론 군대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환난 날에 감사의 찬송을 부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이 환난의 때에 눈물겨운 감사의 찬송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건강할 때, 형통할 때는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건강을 잃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지난날 감사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곤 합니다.
더욱 그런 환난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음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그 고통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은혜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 고난 속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바로 여기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여수 반란 사건으로 좌익 학생들에 의해 두 아들 동인이와 동식이를 잃었습니다.
집에까지 찾아온 그들이 예수 대장이고, 친미주의자라고 하면서 몽둥이질을 하여 두 아들의 머리가 터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순천 경찰서로 끌려가서 지금이라도 예수 믿지 않겠다면 살려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예수 믿고 회개하라고 전도하다가 총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나흘 뒤 두 아들의 순교 소식을 전해들은 손 목사님 내외분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사모님은 아들들의 관 위에 엎드려 싸늘해진 두 시신을 끌어안고 볼을 번갈아 비벼대며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손 목사님은 두 아들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며 장례식의 답사에서 다음의 아홉 가지 감동적인 감사문을 읽어 내려갑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움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가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십 년 간의 눈물로 된 기도의 결정체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자매들이 23년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어느 순간엔가 그렇게 침착하게 평정을 되찾았던 손 목사님의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산에다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식 하나만 잃어도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아픔인데,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 고난 속에서도 아홉 가지의 눈물겨운 감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환난 속에서도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손 목사님의 중심을 붙잡아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 그 주님의 사랑이 이 고난 속에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을 때 그 환난 속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8장35절에서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담대하게 외친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를 변함없이 강권하시고, 우리의 모든 삶을 붙들어 주신다는 믿음의 확신만 있다면 환난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의 환경을 보면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닙니다.
나의 상황과 처지를 보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주의 의로운 손으로 나를 붙드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아무것도 없는 데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사실 따지고 보면 여기 없다고 지적한 것들은 그가 생활해 나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무화과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양식의 일종입니다.
포도는 음료수를 만드는 데 너무도 소중한 것입니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합니다.
밭의 소출은 하루 세 끼 꼭 있어야 할 식량입니다.
양은 고기도 먹지만 그 털로 옷을 만들기도 합니다.
소는 밭을 갈고, 일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또한 양과 소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데 꼭 필요한 제물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이 모든 것이 없을지라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에게서 얼마나 좋은 것, 많을 것을 받아 생활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많은 것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것으로 감사하기 보다는 없는 것으로 인해 불평하며, 불행하게 살아갈 때가 더 많습니다.
돈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집이 좁다고 불평합니다.
차가 나쁘다고 불평합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합니다.
부모나 형제 때문에 못살겠다고 불평합니다.
자녀들이 속을 썩인다고 불평합니다.
모든 주어진 여건이 못마땅하다고 불평합니다.
이런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얻었다고 감사하겠습니까?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채워지면 또 다른 불평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못 가져서 불행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대해 감사치 못하는 데, 불행의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보다 지나간 세월 동안 얼마나 어렵게 살았습니까?
지금보다 잘 벌지도 못했습니다.
잘 살지도 못했습니다.
잘 먹지도 못했습니다.
잘 입지도 못했습니다.
더구나 차 같은 것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학교 다닐 때 보통 30분-1시간은 걸어 다녔습니다.
그 때는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려울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생하던 시절에 우리는 오히려 행복했습니다.
그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를 더 갈급하며, 사모했습니다.
없는 가운데 더 감사했고,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화양 감리교회를 섬기는 대의그룹 회장 채의숭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2001년, 내게 닥친 시련의 용광로는 너무 뜨거웠습니다.
대우그룹의 부도는 우리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당시 200개 협력업체 중 53개사가 부도를 냈습니다.
대우가 우리에게 결제해줄 돈은 119억 원, 우리가 발행한 어음은 89억 원이었습니다.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어음을 막는데 급급했습니다.
은행과 보증기금에서 특별융자를 받아 하루하루를 연명했습니다.
집에 있던 반지 목걸이 보석 등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내다팔았습니다.
사업가의 아내는 항상 불안한 법이지요.
아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모든 패물을 내놓았습니다.
그 위기의 시간에 추수감사절이 다가온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는데 무엇을 드려야 하나.
지금은 빈손인데…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두고 아내가 장롱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왔습니다.
주택청약통장, 그것은 정말 비장의 카드였습니다.
아내가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것입니다.
“여보, 이 통장을 해약해서 추수감사 헌금으로 바칩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내의 말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묘안도 없었습니다.
아내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아내가 밝은 표정으로 “여보, 어차피 모든 것의 소유자는 하나님이시잖아요. 나중에 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이니 미련 없이 바칩시다.”
과연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하나님의 딸이었습니다.
우리는 은행에 가서 통장을 해약했습니다.
은행원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아니, 왜 이것을 해약하십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큰돈이 될 텐데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럴 일이 있어요. 아주 중요한 곳에 사용할 것입니다.
우리는 청약통장을 해약한 돈으로 추수감사절 헌금을 정성껏 드렸습니다.
그해 추수감사절은 내게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나는 신앙을 현재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나중은 약속어음일 뿐이다. 과거는 부도수표와 같다.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중에 사업이 좀 잘 풀리면?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이다.”
2001년의 추수감사절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바로 지금 감사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통장을 해약해 추수감사 헌금을 드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훤히 알고 계셨으리라.
나는 성경을 믿습니다.
사업의 원리, 대인관계의 원칙, 교육의 방식도 모두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우리의 통장 헌금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됐음을 믿습니다.
통장 헌금을 드린 후 엄청난 사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감사는 내가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내가 건강치 못할지라도, 내 가정에 어려움이 많을지라도, 내 사업에 어려움이 많을지라도 자족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주님의 영적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의 감사는 나에게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으로 인한 감사였습니다.
18절-19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이처럼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구원이 되시고, 그의 힘이 되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객관적인 사실로 인용하지 않습니다.
짧은 두 구절의 말씀 속에 “나”라는 단어를 무려 여섯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이것은 자신의 주관적인 신앙고백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의 고백적인 신앙의 체험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답답하고, 살아가기 힘들어도 하나님을 분명히 체험하고, 그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감사의 삶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 계시고, 우리의 삶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예비하고 계시며, 궁극적으로 우리 삶 가운데 풍성한 은혜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답답하고 살아가기 힘들어도 주님을 바라보면서 거기에서 소망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에 소망을 두게 되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결코 만족하거나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죽고, 구원의 하나님, 나의 힘이 되신 주님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만나보면 모두들 마음속에 깊은 아픔들이 있습니다.
건강이 안 좋은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가정마다 모두들 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둘러보면 모두들 결코 감사할 수 없는 조건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주님만 바라보며 다시 일어섭시다.
아무리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고달파도, 이제 감사할 수 없는 조건에서도 감사함으로 일어설 때 거기에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한 주간도 주님만 바라보고 감사하며 일어서는 드림의 교회 모든 지체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