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병원생활 / 文耕 양귀순
이른 아침, 수변 데크길을 가지 말았어야했다. 아무생각 없이. 몇발자국 내딪는 순간. 쭉 미끌어졌다.
그야말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주변에 도움을 받을 사람도 없었다. 물론 119를 불러도 될텐데. 시체말로 쪽팔렸다. 살면서 수도없이 넘어졌다. 예전과 똑같겠지라는 생각으로. 한발 한발 내딪뎠다. 처음에 쓰러졌을때 통증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아무도. 없는. 데크길 난간을 부여잡고 일어서는데 주저앉고 싶을 만큼의 통증이었다. 새벽 식장산. 수변 데크길에서 울고 있다 한들 올 사람도. 없었다. 데크길. 난간을. 잡으며. 오른쪽발에 되도록. 많은 힘을 가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한발자욱씩 내디뎠다. 매일등산을 하던 남자분이 내모습 보고. 못 걸어 갈 것 같다고 한다. 도움을 청했으면 좀 더 수월하게 왔을까? 아니다 119를 불렀겠지. 걸을 수 있다며 수백미터를 걸어 주차해놓은 곳에 도착했다.
다른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 뼈가. 서로 왔다갔다 마끄러지는 느낌이 든다. 이거 뭐지? 도수치료를 받아 뼈를 맞추어야 하나 생각했다. 병원가는 것을 미룰 수 없다. 진료시간 9시에 맞추어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 접수증을 쓰니 의사. 진료도. 보기 전에. 동의서를 쓰란다. 치료에. 필요하면 의사의 오더대로. 일사천리로 진행을 한다는 서명이다. 엑스레이는 기본이고 ct 촬영, 도수치료 등등. 나는 의사 진료를 받고. 결정 하기로 했다. 오랜기다림 끝에 내차례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왼발, 오른발. 다 찍었다. 오른쪽발 복사뼈. 골절이란다. 당장 수술 해야 한단다. 지금이라도 올라가서 수술했으면 좋겠단다. 아는데 있느냐고 묻는다. 내 얼굴을 보니 호락호락 거기서 하란다고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는지 소견서를 써줄테니. 큰병원을 가보라고 한다. 반깁스를 해주었다. 차는 다른 사람이 와서 운전하라고 한다. 어차피 부러진 복사뼈이고 수술을 할건데 어쩌랴 싶어 지하 주차장에서 깁스를 풀고 운전을 해 아파트 주차장 안전한 곳에 주차를 해 놓았다. 한달 넘도록 운전을 못할테니 침착하게 주차를 해놓고 집에 들어와서 입원시 필요한 짐을 쌌다. 노트북을 싸야했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못한다 생각하니 캄캄했다. 내 딴에는 꼭 챙겨야 할 품목 중 하나였다. 10년이 넘은 오래된 노트북이라 성능은 좋지 않았지만 내게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시간 되면 짧은 글이라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전산업무도 조금 해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무거운 노트북을 챙겼다.
토요일은 밀린 빨래를 하는 날이다. 분류해서 세탁망에 넣어 세탁기를 돌렸다. 그러나. 청소는 할 수가 없었다. 가족들에게. 전화했더니. 오후에 집에 왔다. 상의한 결과 모병원에 가기로했다. 3년전. 오빠가 교통사고로 발목 수술을. 했는데. 지금 아무런 장애 없아. 잘걸어 다니기 때문이다. 주치의 선생님이 잘치료해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병원이 얼마나 스마트하게 달라지고 있는지. 스마트배드로 침대하나에 컴퓨터하나씩 다 천정에 달려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도 반듯하게 누워서 호킹박사처럼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 본인이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다 알수 있다. 본인 모르게 약처방을 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약인지 약에 대한 설명 부작용등 다 알 수 있다. 가지고 간 노트북이 낯 간지러워 장 속에 숨었다.
NFC에. 팔목에 차고 있는 명찰만 스캔하면. 진료비가 전일까지 얼마인지. 알수 있고. 무슨약이. 들어가는지. 다. 알수 있다. TV도. 시청할 수 있고. 인터넷을 할 수 있다. 수요일. 수술해서. 발을 자유롭게. 쓸 수 없지만 이렇게 슬기롭게. 병원생활을 할 수 있다. 공중에 띄워놓고. 카페에 글을 쓰려니 제대로 되지 않는다. 스페이스바가 역할을 제댜로 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스페이스바를 사용하면 온점이 찍히는등 이상하다. 손이 저려오지만 타이핑 하고 있다. 병원 생활은 지겹다. 코로나라는 핑계로. 아무런 면회도 받지 않고. 조용하다. 이런 세상이. 좋은건지는 말할 수 없다. 아직 2주이상. 병원 생활을 하여야한다. 침상에서 이러고. 있다는게. 얼마나 싫은지 모른다. 요양원의 어르신들 생각이 난다. 아무리. 슬기로운 병원생활을 하려고는 하지만. 결코. 즐겁지는 못하다.
노인은 외롭겠다. 스마트한 기기를 다룰 줄 모르니 누워서. 얼마나 답답할까. 간병통합서비스지만. 아무도 옆 어르신께 침대 위에 매달려 있는 스마트 tv를 당겨서 틀어주는 사람이 없다. 키오스키 주문서 넣기도 교육을 시켜야 할 수가 있는데 이렇게 맞닦뜨리면 얼마나 혼란할까. 여든네살의 할머니는 허리 아파 누워있다. 집에 오는 자녀들을 맞이하다 뒤로 넘 어졌다고 하였다. 남의 집 귀한 어르신이시다. 서비스 하는 것을 보며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옆에서 참견할 수도 없다. 소변을 본다고 하면 ‘기저귀에다 싸’라고 하고. ‘어르신 호칭’은 실종된 곳이다. 간병통합서비스를 하는 곳인데. 앞으로 많은 노인이 올 텐데 경노사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 호칭은 할머니에 보통 반말이다. 어린아이에게 하듯 이야기 하고. 할머니가 본인의 장난감인지 놀리듯 이야기 하고. 어느날은 어르신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화가 잔뜩 나있었다. 여기는 서비스 전 환자의 이름을 꼭 확인한다. 어르신 입장에서 무척 불쾌 하셨는지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내가 옆에서 듣기에 약간 장난하듯 이야기 한 것으로 보였다.
그 다음에 서비스 하려 왔을 때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설명을 했다.
“어르신 이름 확인을 하는 것은 어르신 놀리는 게 아니예요. 확인을 해야 해서 그런거예요. 어르신 놀리는 것 같아서 화나신거죠?” 하고 여쭈니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그 뒤로 어르신이 같은 병실에 있는 우리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허리 맞춤벨트를 차고 물리치료실에 가서 서는 재활, 걷는 재활을 며칠 하니 조금씩 나아진 것 같았다. 보호자는 어느상태인지 알수가 없으니 병원을 옮긴다고 하였다. 그나마 정이 조금 들었던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늙으니까 이곳 저곳 옮기라는데로 옮겨야 한다”고 하였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상황도 잘 파악이 안되니 자식입장에서는 그렇 수 밖에 없겠지만 어르신 입장에서는 서러우신 것 같다. 어르신께 호칭사용하는 것이나 기저귀에서 싸라고 하는 것이나 식사 하시라는 것이 아니고 보통 먹어라이다. 생각 같아서는 스마트폰으로 녹음하여 만방에 고하고 싶은 심정이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깍뜻하게 하는데 유독히 어르신에게만 아이 다루듯 한다. 그 어르신은 아이 다루듯 해야할 치매어르신이 아닌데 말이다. 어르신들이 스마트하게 기계를 다룰 줄 몰라서 저들이 그런 것 같다.
슬기로운 병원생활은 내가 슬기롭게 지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서비스와 박자가 맞아야 한다. 스마트한 배드보다 상대편에 대한 존경이 필요하다.
첫댓글 // 몇주 동안. 작품을 쓰지. 못하겠네요,ㅠㅠㅠ
치료 열심히 정성껏 잘 받으세요.
많이 아파도 울지말고 아리찌요.ㅎ
@소아Soa 박정열 눈물이 말랐나봐요. 아픈데도 눈물이 안나더라구요. 수술 후에는 진통주사와 약, 무통주사 처방이 내려서 크게 아픈 줄 모르겠더라구요
저런 혼자서 큰일 날뻔 했군요.
뼈가 잘 붙어야 하니까 의사말 잘들어요.
빨리 완쾌되길 바래요.
네. 일도 밀리고 걱정이네요. 절뚝 거리며 다닐 생각을 하니요. 감사합니다.
@양귀순 미리 겁낼 거 없어요.
다 시간이 해결해 줍니다.
걱정은 떨쳐 버리고 치료잘 받으세요.
얼마나 답답하실까?
치료 잘 받으세요.
넵. 12월이 빠르게 지나가야 제가 걸을 수 있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