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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105년 4월 18일_일반법회_일원상서원문4_ 박세훈교무님 설교.hwp
◆ 원기 105년 4월 18일 일반법회 <일원상 서원문 4_ 평등성지>
◆ 설 교 : 박세훈 교무님
◆ 타이핑 : 일반7단 이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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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오늘은 <일원상 서원문> 네 번째 시간으로, <평등성지>라는 부제로 설교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공부하실 내용은 일원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 일원은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 이 두 단락을 가지고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일원상 서원문>을 의두연마 시간이나 틈 나는대로 연마를 하면서 이런 감상이 들었습니다. 과연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원불교 교도님이라면 가장 많이 암송하는 것이 <일원상 서원문>이고 가장 익숙한 것이 <일원상 서원문>인데. 많이 들었다고 해서 익숙하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인가?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더 나아가서는 깨닫고 있는 것인가.
최근 불교신문을 보니까 깨닫는 것에 대해서 불교 스님들 간에 토론이 있었는데, 과연 깨닫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대종사님께서는 부촉품에 <말로 배우고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라> 고 하셨습니다. <일원상 서원문>을 제가 말씀을 드리면서 고민하는 부분은, 사실은 저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아직 정확히 모르는 부분도 있고 아직 깨닫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가능한 대종사님 말씀과 선진님들의 말씀을 인용하려고 했습니다.
<일원상 서원문>을 공부하는데 앞서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 들어서 아는 것을 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되고 관념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마음으로 증득할 수 있기를 당부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
늘 보는 단어, “본원(本源)” 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익숙한 단어인데. 제가 이 본원이라는 단어를 교도님들에게 설명한다고 하고 보니까 막상 막연 하더라구요. 너무 익숙한 단어고, 너무나 당연한 단어인데, 설명을 하려면 더 어려워져요, 이 단어가. 묘하게.
정산종사님의 <불교정전의해>에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본원은 근원이요, 근원은 시초다.” 더 이해가 잘 되세요? 어떤 면에서는 동어반복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원불교 용어사전에는 “사물의 근원이자 근본이다.” 이해가 되십니까? 본원이?! 표준국어대사전이 오히려 이해가 더 쉬워요. “강, 개울 따위가 흘러 내려오는 근원이다.” 그러면 이 보편적인 해석에 있어서 공통된 단어가 <근원>이더라구요. 제가 보기에는 본원을 근원이라고 많이 해석하는데, 어찌보면 동어반복이 될 수 있겠죠. 단어로써 단어를 설명하는.
근원이라는 것은 <물줄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곳>. 사실 이것을 발원지라고 합니다. <사물이 비롯되는 근본이나 원인>. 제가 이해하기는 물줄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곳. 이게 가장 이해하기 쉽더라구요. 구체적으로 명확하더라구요, 제 수준에서는.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는데 한강의 발원지가 어디냐? 라고 했을때 태백에 있는 검룡소가 발원지라고 합니다. 한강이 시작되는 곳이 발원지고 근원이고. 그래서 원(源)자에 물수자(氵)가 있지요. 그것이 본원인데, 뭔가 시작되는 곳이 본원, 근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본원이라는 단어가 본원이라는 단어 하나만 있으면 이렇게 해석이 되지만,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이요> 처럼 결합이 되면, 맥락상으로 의미가 좀 바뀌어집니다. 제가 보기에는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라는 대종사님의 대각일성이 본원에 대한 설명을 제가 보기에는 가장 직접적으로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만유가 한 체성, 만법이 한 근원.> 한 체성이라는 것은 일원의 한 덩치다, 만유가. 만유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죠, 존재하는 모든 것. 만법이라고 한다면 우주의 모든 법칙들. 본원에 대해서 어떻게 또 설명이 되어있냐면, 천도법문에 이렇게 해석이 되어있어요. <우주와 만물의 근본은 본연 청정한 성품 자리>다. 천도법문에. 우주와 만물의 근본, 우주 만물의 본원은 본연 청정한 성품 자리이다. 우주 만유의 본원과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은 결국은 본연 청정한 성품 자리인데. 이것이 서로 등식이 형성되는 것인데. 이것을 대종사님께서는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라고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본원에 대한 것은 설명하기보다는 이런 성자의 말씀을 통해서 마음으로 증득해야 하는데, 이런 말씀들이 힌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의 대각일성과 천도법문을 한 번 마음에 새기면서 읽어보시면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 이라는 그 본원에 대해서 좀 더 가깝게 마음으로 증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는 본원이라고 하면 두 가지 정도로 접근을 해요. 첫 번째는 위에서와 같이 발원지, 시작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있고, 세상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한 체성이다 한 근원이다 이렇게 되는 거죠. 시작점으로서의 본원, 그리고 하나의 원리로서의 본원.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렇게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시작점으로서의 본원은 무엇이냐? 하면. 자!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무엇으로 구성되어있을까 보면, 70%가 물인데. 사람은 수소와 산소와 탄소로 93%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이라는 것은 수소원소와 산소원소와 탄수원소로 구성되어있고, 그 원소는 원자로 구성되어있죠. 원자는 원자핵과 전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되어있어요. 그렇다고 한다면 현재 과학기술이 밝혀놓은 만물의 근원은 양성자 중성자 전자에서 볼 수 있는 거죠. 우리 몸이라는 것이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구성되어있는데,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이죠. 왜냐하면 가시광선이 이 전자기력을 투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99.9%는 지난 법회 때, 허공․ 진공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진공인데 눈에는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까지 현대과학이 접근했는데.
최근에 조금 더 진보적인 양자물리학자들이 이 진공이라는 상태는 완전히 비어있는 무의 상태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는 상태다. 해서 “영점장” 이론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요. 영점장. zero point field.
이 진공이라는 상태는 물질은 없지만 에너지 밀도는 가질 수 있는, 없는데 있어요.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다. 그래서 <양자 에너지 덩어리> 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양자 에너지 덩어리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설명을 하면, 진보적인 양자 물리학자들은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물은 무한한 에너지 바다와 정보를 끊임없이 교환하는 <양자 에너지 덩어리>다.” 우리는 양자 에너지 덩어리고 우주 만물도 양자 에너지 덩어리다 라고 하는 것이 영점장 이론이고. 이 이론들을 모아서 필드라는 책을 썼고, 부제로써 <마음과 물질이 만나는 자리 THE FIELD> 라는 것을 영점장 이론이라고 하는데. 진보적인 양자물리학자들의 주장이에요. 지금 계속 증명을 해나가고 있는 상태죠. 대종사님께서 견성한 큰 학자가 내 말을 증명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런 것들이 종교와 과학이 만나고 있는 모습 같습니다. 그래서 이 영점장 이론에 의하면 “우리와 우주와 관계는 나와 나 아닌 것의 구분이 없다. 하나의 근원적인 에너지장만 존재한다”고 이 사람들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해요. 성품자리라고 이야기하진 않지만, 영점장과 무의식. 무의식이라고 표현하고 설명하는데 제가 보니까 우리 성품자리에 대한 설명과 유사해요. <영점장과 무의식은 모든 가능성에 확률적 상태로 존재한다.> 말이 어렵죠? <영점장과 성품 자리는 모든 가능성에 확률적 상태로 존재한다.> 이 말은 뭐냐면. 우주만물의 근본이 영점장, 근원적인 에너지 장, 이것이 가능성의 확률로 존재하는 거예요. 어떤 법칙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적 상태. 일원상 서원문의 생사문이죠. 생사문이라는 것은 조화문이거든요. 모든 것이 만들어질 수 있는 조화문이에요. 그 조화문이라는 것은 무(無)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유(有)상태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없어요. 유라는 것은 일단 벌써 하나의 가능성이 만들어진 상태잖아요. 하나가 있는 상태예요. 모든 가능성이 있을수 있는 상태라는 것은 무의 상태인데, 이 무의 상태와 모든 가능성의 상태가 공존하는 거죠. 제가 보기에는 이렇게 설명을 했어요. <영점장과 무의식은 모든 가능성에 확률적 상태로 존재한다.> 저는 이것을 유무초월의 생사문 자리다, 조화문이다. 시초의 마음상태라고도 하죠.
그리고 또 이렇게 설명합니다. 무의식(성품자리)은 모든 개념이 생겨나는 전 개념의 단계의 기반이고, 영점장은 물리 세계의 확률적 기반이다. 무의식의 세계는 모든 생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상태잖아요. 모든 생각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것을 일원상 서원문에서는 무량세계가 전개된다고 했죠.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모든 가능성이 있어요. 물질도 마찬가지에요. 영점장의 상태는 모든 물질의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의 상태에요. 그래서 제가보기에 이것이 일념미생전의 자리고 언어도단의 입정처자리는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리죠. 거기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죠. 모든 생각이 가능하잖아요. 무이니까. 한 생각이 일어나면 한 생각밖에 없어요. 그러나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 상태는 모든 생각이 가능한 상태. 이렇게 양자물리학자들이 판단을 한 거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영점장과 무의식의 세계, 우리가 생각하는 성품자리가 정신과 물질의 구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라고 지금 이 사람들이 예측하고 있어요. 점점 연구하다보니까 물질과 정신, 마음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 같은데? 영점장 이론에서? 여기까지 왔단 말이에요. 상당히 많이 접근한 거죠.
이것을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은 어떻게 했을까? 이미 알고 계셨거든요.
경산상사님의 일원상서원문 설명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결국 만물의 근원 또는 부리를 거슬러 가보면, 본원자리를 가보면 에너지다. 아까 에너지라고 했잖아요. 근원적인 에너지. 에너지인데, 그것을 우리는 기운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기운을 지배하는 것이 이치다. 그리고 그 이치가 일원상의 진리다.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이것을 정산종사님께서는 영기질(靈氣質)이라 하셨죠. 질(質)이라는 것이 만물이라고 하면 그 만물을 움직이는 것이 기(氣)라면, 이것이 제가보기에는 영점장이 되겠죠. 그것이 왜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이 그냥 확률이라고 우연으로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그것을 우리는 영, 성품, 일원상의 진리가 그 기운을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우리는 알고 있고. 정산종사님과 대종사님은 이미 이것을 깨달으신 거죠. 근데 과학에서는 이럴 것이다 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정산종사님께서는 만유를 영기질로 표현을 하셨죠. 그래서 대종사님께서 우주만유의 본원에 대해서 설명을 하실 때, 만법귀일의 소식을 가지고 예를 많이 드셨습니다. 보면 이 만법귀일의 실체에 대해서 정산종사님께서 영기질로 표현하셨는데, 영기질에 대한 설명 어떻게 나오게 되냐면, 제자가 만법귀일의 실체가 뭐냐고 물었을 때 정산종사님께서 “영기질이다”고 대답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본원자리에 대한 설명이죠. 그래서 이 우주만유에 대한 설명을 영기질로 한 것입니다. [우주 만유가 영과 기와 질로써 구성되어있나니, 영은 우주만유의 본체로서 영원불멸한 성품이며, 기는 만유의 생기로서 그 개체를 생동케 하는 힘이며- 제가 보기엔 영점장이라고 생각이 되구요. 질은 만유의 바탕으로서 그 형체를 이름이니라] 해서 - 질은 원자들의 모임들.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양자물리학에 대한 설명과 우리 원불교에서 하는 우주만유에 대한 설명이 만나고 있어요. 아직 궁극적으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견성한 학자가 나와서 조금 더 연구를 하다보면 만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정산종사님께서는 우주만유의 본원, 영기질로써 설명을 하니까. 제자들이 보기에는 설명이 안되는 게 있는 거예요. “동물은 영기질로 된 것을 알겠는데, 식물은 어떻게 영기질이냐? 기와 질 밖에 없지 않느냐?” 라고 질문을 해요. 식물에서는 영지를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라고 하니까 정산종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기운지 주가 되어 영지를 머금은 것이 식물이고, 영지가 주가 되어 기운을 머금은 것이 동물>입니다. 영기질이 식물이나 동물이나 다 있다. 다만 무엇이 주가 돼서 무엇을 머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다 영기질이 있는 것이다. 라고 해서 모든 것들을 설명을 하죠.
영지가 주가 되어서 기운을 머금었기 때문에 동물은 개령이 있고, 식물은 대령만 있죠. 다 영기질이 있지만 무엇이 주가 되느냐 따라서.
우리 마음이 정한 즉 대령에 합하고 동한 즉 개령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동물, 우리 인간은 분별성이 있기 때문에, 그 분별성이 작동하는 한 순간 개령이 되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성품자리에 합일하는 순간은 대령에 합일하는 거죠. 그래서 정즉합덕-분별성과 주착심이 없이 되면 대령에 합하고, 동즉분업- 한 생각이 동하면 그것이 심신작용에 따라서 진강급이 생기고, 그 진강급에 따라서 업이 생기는 거죠. 식물이라는 것은 개별업을 짓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동물이라는 것은 개별업을 짓게 되죠. 거기에 따라서 진급강이 있고 육도의 변화가 있게 되죠.
그래서 우주의 모든 하나의 원리를 정산종사님께선 영기질로써 - 동식물까지 포함을 해서 - 설명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만유의 본원에 대한 과학의 입장과 우리 원불교의 해석이 되겠구요.
그 다음에.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보면.
경산상사님께서 본원과 성품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주만유를 운영하는 하나의 진리를 만물에 있어서는 본원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생령들에 있어서는 성품이라고 표현했지만 같은 자리다.] 만물에 있어서는 본원이라고 표현하고 생령들에 있어서는 성품이라고 표현했다. 표현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자리가 아니다.
진리를 설명할 때 진공묘유 공적영지로 설명하죠. 다른 자리인가요? 결국 진공묘유나 공적영지는 같은 자리인데,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진공묘유라고 하고,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공적영지라고 하죠. 진공묘유와 공적영지가 표현이 다를 뿐이지, 다른 자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이나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은 서로 같은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이제 성품자리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면.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이라는 것이 상당히 단계적인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일원상의 진리장에서는 나눠서 설명을 했어요. 하지만 서원문에서는 몰아서 설명을 했습니다.
제불이라는 것은 모든 부처님을 말하고, 조사라는 것은 불교에서 한 종파를 열었거나 그 종파의 법맥을 이은 뛰어난 승려를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달마대사도 조사고 육조혜능도 조사고, 보조국사, 원효, 이런 분들이 조사라고 하죠. 한 문파를 만들었거나 큰 깨달음을 얻으신 선승들을 조사라고 하죠. 그 다음에 범부. 범부라는 것은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한 말입니다. 번역어로 하면 이생(異生)이라고 됩니다. 이생이 다를 이(異)자 날 생(生)자에요. 부처님은 육도윤회를 벗어나서 여래잖아요. 가고 오는 것이 같아요. 그런데 범부는 육도윤회를 하기 때문에 항상 다르게 태어난다는 겁니다. 이생.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기 때문에 육도윤회를 한다는 거예요. 이생-다르게 태어난다. 이것이 한자로 넘어오면서 범부라고 했죠. 범부라는 것은 일단 사람이에요, 사람. 깨닫지 못한 사람. 번뇌에 시달리는 사람. 그러면 중생은 무엇이냐? 중생은 사람을 포함해서 생명을 가진 모든 생명체에요. 범부나 중생이나 둘 다 산스크리트어가 번역된 것인데. 중생은 사트바(sattva)- 유정(有情)입니다, 유정. 생명을 가진 모든 것. 그러니까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 두 번째는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 일원이라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성품이고, 모든 뛰어난 스님들과 선지자들의 성품이고, 우리같이 깨닫지 못한 범부들의 성품이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성품이다~라는 겁니다. 이렇게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이 다르지 않은 성품인데, 그 성품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정산종사법어 원리편 12장에 잘 설명이 되어있죠.
[성품은 본연의 체요, 성품에서 정신이 나타나나니, 정신은 성품과 대동하나 영령한 감이 있는 것이며, 정신에서 분별이 나타날 때가 마음이요, 마음에서 뜻이 나타나나니, 뜻은 곧 마음이 동하여 가는 곳이니라.]
성품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그러했던 바탕이라는 것이에요. 바탕에서 모든 것이 나오잖아요. 체가 없으면 나올 데가 없어요. 자 그러면 우리가 잘못생각하면, 원이 있다면 그 성품이 있고 그 성품 옆에 정신이 있고 그 다음에 마음이 있고 그 다음에 뜻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성품과 정신과 마음과 뜻이라는 것은 서로 떨어질 수가 없죠. 성품이 완전한 무가 아니라, 이렇게 역력하게 아는 것이 정신이 되겠고. 이것을 마음의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라고 했죠. 마음이라는 것은 분별성이 나타나는 거죠. 가지가 좋다 싫다하는 마음이 나오는 것이고. 뜻이라는 것은 그 마음이 동해서 뭔가 행동으로 옮겨지는 거죠.
그래서 정산종사법어 원리편 10장을 보면 [우리의 성품은 원래 청정하나, 경계를 따라 그 성품에서 순하게 발하면 선이 되고 거슬려 발하면 악이 되나니 이것이 선악의 분기점이요] 동하는 것인데 순하게 발하면 선이 되고 거슬러 발하면 악이 된다. 선과 악은 뜻이에요. 발해서 마음이 이미 가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성품이라는 것은 무선무악입니다, 동하지 않으면. 하지만 한번 마음이 동하면 능선능악이죠. 성품이라는 것은 한번 동하면 끝까지 무량세계가 전개가 되는 거죠. 이것이 성품인데 이 성품이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이 다 다르지 않다. 여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것을 또 <불교정전의해>에서는 정산종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에 대해서. [모든 부처님과 뛰어난 수행자와 평범한 사람과 모든 생명체의 성품은 다르지 않다.]
성품이라는 것은 또 다르게 해석한다면 수심결에는 이렇게 해석이 되어있어요. 성품이 어디에 있냐고 했을 때 성재작용(性在作用)이라고 했거든요. 성품은 작용하는데 있다. 이 설명이 더 쉬운것 같아요.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이 다르지 않는데 왜 다르지 않으지 보면, 작용은 다 똑같이 하잖아요. 부처님과 뛰어난 수행자와 평범한 사람과 모든 생명체의 작용이 다르지 않거든요. 여기 컵이 있어요. 만약에 이 컵이 빨간 컵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제가 이 컵을 볼 때와 대종사님이 볼 때와 여러분들이 볼 때와 일반사람들이 볼 때, 이 색이 다른가요? 같잖아요. 이 성품이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누가 밥을 태워서 탄 냄새가 나요. 근데 그 탄 냄새와 제가 맡는 냄새와 우리 설교를 들으시는 교도님들이 맡는 냄새가 다른가요? 코가 작용할 때? 내 기억이나 전생의 습관에 따라서 딴 냄새가 고소하고 생각될 수도 있고 거북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작용 이후의 것이지, 냄새 맡는다는 그 자체는 다르지 않죠. 소금물을 마십니다. 제가 마시는 짜고 우리 교도님들이 마시면 달까요? 작용은 같잖아요. 목탁을 칩니다. 목탁소리가 저한테는 들리고 우리 교도님들에게는 안 들리나요? 안이비설신의의 작용이라는 것은 부처나 조사나 범부나 다 같다는 것입니다. 그 작용은 다 같다는 거예요. 다만 작용이후가 다른거죠. 이 작용에 대해서 범부 중생은 집착을 하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붙이는데, 작용하는 그 자체는 다르지 않다. 이것이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이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될 것 같아요.
또 수심결 10장에는 이렇게 되어있어요. 부처님이나 나나 성품이 다르지 않는데, 왜 우리는 행하는 것은 서로 다르냐? 성품은 다르지 않은데.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죠. [얼음 못이 온전히 물인 줄은 알았으되 양기를 빌려서 녹히고, 범부가 곧 부처인 줄은 알았으나 법력을 의지하여 닦을지니, 얼음이 녹은즉 물 흐름이 윤활하여 곧 물 대고 씻는 공효를 나타낼 것이요.] 라고 해서.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이, 우리가, 범부가, 부처님과 성품이 다르지 않다 아는 것을 견성이라고 해요. 견성. 내가 부처님이다. 얼음이 있는데 물인 줄은 안 거예요. 그전에는 얼음하고 물이 다른 줄 알았어요. ‘아! 얼음하고 물하고 같은 것이구나!’ 이것이 견성이에요. 그런데 얼음이 물인 줄은 알았는데 얼음을 가지고 밥을 짓을 수 있어요? 얼음 가지고 차를 타먹을 수 없잖아요. 녹여야 되잖아요. 그 녹이는 것이 성불인거에요. 그리고 그 물을 녹여서 차를 타고 밥을 짓고 하는 것이 제중이에요. 물을 쓰는 거죠. 얼음과 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부처와 중생이 성품자리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견성인데, 알았다고 해서 다 부처와 같아질 수는 없다. 얼음을 녹이는 공력을 들이는 것처럼, 우리가 마음공부를 해서 성불을 해야지 같아지는 거죠, 부처와. 이렇게 수심결에서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산상사님은 이것을 이제 내장삼신불 법문으로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계세요. 얼음이 물인 줄은 알았다. 나도 물이고 부처님도 물이고, 성품은 다르지 않다.
정산종사님께서 이렇게 표현해 놓으셨어요. <불교정전의해>에.
법신은 차이가 없으나 보신과 화신은 다르다. 법신을 청정법신불, 원만보신불, 백억화신불로 하는데,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청정법신불을 말하는 거예요. 본성자리에서는 다르지 않다. 부처에 있어서 더하지도 않고 중생에 있어서 덜하지도 않다. 이것이 견성인거고. 하지만, 원만보신불과 백억화신불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는 거예요. 청정법신불-본체 자리에서, 성품자리에서는 같은데 원만보신불은 다르다.
원만보신불을 대산상사님께서는 이렇게 표현했어요. 법위등급에 3급3위가 꽉 찬 자리다. 그것은 뭐냐면 원만보신불이라는 것은 성불이어요. 부처가 되었을 때에요. 부처가 되었을때가 원만보신불이에요. 교전에서는 원만보신불이 여래위가 된 상태죠. 3급3위를 다 거쳐서 여래위까지 올라온 것이 원만보신불이에요. 그런데 출가위 정도만 되도 원만보신불이라고 써놓으셨어요. 출가위가 되면 청정법신불과 원만보신불이 같아져요. 내 성품이 부처인줄도 알고 내가 이미 부처가 된 거예요. 얼음을 다 녹여버린 거예요. 그래서 청정법신불과 원만보신불이 같아지는 그 위가 출가위에요. 그 전까지는 뭐다? 편화신불이에요. 제가 법마상전급이면 저는 법마상전급 편화신불이에요. 저는 아직 원만보신불이 아니에요. 청정법신불은 법신불이지만 저는 아직 법마상전급 편화신불이다. 그래서 원만보신불이 되기까지는 출가위 이상이 되기까지는 편화신불이라는 것이고.
백억화신불이라는 것은 원만보신불이 돼서 법을 그대로 나투는것이 백억화신불이에요. 대종사님의 법을 그대로 나투는것이. 이것이 제중이에요.
그래서 청정법신불은 견성이고 원만보신불은 성불이고 백억화신불은 제중인 겁니다. 우리가 일원이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이다. 그래서 부처와 뛰어난 수행자와 나와 우주만물이 성품이 같은데 법신은 차이가 없으나 보신과 화신은 다르다~라는 것이 이제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의 설명인거죠.
일원상서원문에서는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이라고 했지만, 일원상의 진리에서는 이렇게 설명을 하죠. <제불제성의 심인>이고 <일체 중생의 본성>이다.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러면 교도님들 입장에서 헷갈릴 수가 있죠. 왜 제불제성의 성품이라고 하지 않고 심인이라고 했느냐?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인은 청정법신불과 원만보신불이 같아요. 우리는 다르잖아요. 우리는 편화신불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이 따라 다르게 나와요. 심인(心印)이라는 것은 마음도장인데, 도장이라는 것은 오늘 찍을 때 다르고 내일 찍을 때 다르지 안 잖아요. 항상 같잖아요. 우리 부처님은 항상 여여하기 때문에 마음 도장을 찍으면 항상 같은게 나와요. 그러니까 제불제성의 심인인 거고. 일체중생의 본성이라고 한 것은, 일체 중생은 마음이 변해요, 편화신불이에요. 원만보실이 되지 못했어요, 아직. 청정법신불은 같지만 원만보신불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본성(本性)이라고 해야해요. 일체중생의 심인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각산종사님께서는 교전공부에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은 천성인데, 그 천성이 3가지가 있다. 제1천성과 제2천성과 제3천성인데. 제1천성은 청정법신불, 우리 본성, 성품을 말하는 것이고. 제2천성은 전생습관,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온 전생습관, 편화신불을 말하는 것이고. 제3천성은 전생습관+현생습관이에요. 전생습관이 종자가 되어서 부모와 환경과 여러 가지가 조합되서 만들어진 현생습관. 이것이 제3천성인데, 제3천성은 다음생에 다시 제2천성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체중생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은 체1천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일원상 서원문 설교제목을 <평등성지>라고 했습니다. 대산상사님께서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자리>와,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자리>를 <평등성지>라는 말로 표현해주셨습니다. 부처님의 네가 지 경지 중에서 이 자리가 평등성지다. 우리가 언어도단의 입정처와 유무초월의 생사문은 대원경지라고 말씀하셨구요. 그 다음에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과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은 평등성지고. 그 다음에 묘관찰지와 성소작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배우신 것은 평등성지가 되는데, 이 <평등성지>가 대원경지가 증득이 되어야지 평등성지로 넘어갈 수가 있다고 대산상사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언어도단의 입정처와 유무초월의 생사문 자리를 증득해야지,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자리>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자리>로 넘어갈 수가 있는 거예요, 이게. 앞에 것이 증득이 안 되면 뒤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앞에 대원경지가 밝아져야지 평등성지로 넘어갈 수가 있다고 합니다.
오늘 교도님들과 본원자리와 성품자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앞에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을 너무 많이 들어서 우리가 알고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하지만 익숙한 것과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 마음으로 증득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종사님께서서 걱정을 하셨어요. 내가 너무 법을 해석적으로 해줘서 구미호가 되어서 참 도를 얻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대략 수행길을 잡은 공부인들은 염불과 좌선으로 일심 통일하는데 노력을 해야 된다. 그러니까 일원상 서원문을 지금 설교시간에는 어쩔수 없이 해석적으로 들어가지만. 제 설교를 듣고 나서는 마음으로 증득하는 공부를 하셔야 됩니다.
오늘 숙제를 하나 드립니다.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자리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자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대종사님께서 많이 들었던 화두가 있습니다.
만법귀일 일귀하처. 만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하나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갔다 하니 하나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이것을 알아야지 이제 평등성지를 이해한 거거든요. 이것을 좌선 끝나고 의두연마 시간에 연마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이제 경산상사님께서는 도덕경에 있는 것과 비교하셨습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도를 본받고 도는 무엇을 본받는가? 그것은 자연을 본받는다.] 이것이 서로 같은 말이거든요.
이 두 가지 의두를 연마하시면 <평등성지>-<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자리>와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자리>가 마음으로 증득이 될 것입니다. 내가 마음으로 증득이 되었나 안 되었나 확인해보시려면 이 의두, 이 공안을 연마해서 증득하신다면 해석이 아니라 이해가 아니라 실제로 마음으로 증득한 것이 되리라는 당부말씀을 드리면서, 이 숙제를 끝으로 설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