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벨론 시대(주전 586-538)
- 바벨론이 70년간 유다 지배
- 바벨론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벨사살)는 페르시아(바사) 고레스에게 패배
- 다니엘,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심
2. 바사(페르시아) 시대(주전 538-332)
- 고레스, 다리오 1세,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 1세, 다리오 2세, 아닥사스다2세
- 유대지도자들 : 다니엘, 스룹바벨, 예수아, 학개, 스가랴,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말 라기 등
(포로시대 거의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바사의 영향력 밑에서 활동)
- 유대교 : 예루살렘으로의 포로귀환, 성전재건, 성곽재건, 개혁운동 등을 통해 새로운 포로귀환 공통체가 생김.
히브리어 대신 공용어인 아람어를 사용
3. 그리스(헬라) 시대(주전 332-320)
- 마케도냐의 알렉산더는 BC.323년에 페르시아군을 패주시킨후 베니게, 두로, 이집트 등을 지배하며 팔레스타인(유다)도 지배받게 됨
4. 프톨레미 왕조(주전 320-198)
- 알렉산더 요절 후 그 부하 장군 프톨레미(Ptolemy)와 셀류커스(Seleucus)가 이집트와 바벨론 땅을 각각 분할 지배
- 프톨레미 왕조와 셀류커스 왕조는 셀류커스 3세가 팔레스타인을 정복할 때까지 5번에 걸쳐 지루한 전쟁을 치루었다.
- 팔레스타인은 헬라인이 다스리는 이집트 즉 프톨레미 왕조의 속국이 됨
- 프톨레미 1세는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삼음 (디아스포라 들은 헬라어 구약성경을 만듬)
- 칠십인경, 혹은 칠십인역 : BC3세기 경 프톨레미 2세의 명령으로 구약성경을 헬라어 로 번역
- 알렉산더가 세계를 헬라화시켰기 때문에 신약시대에 와서 온 열방에 복음이 전파되 도록 하는 예비작업이 됨.
5. 셀류코스 왕조(주전 198-164)
1) 선왕들의 호의정책
-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에 있어서 팔레스타인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획득 목표가 됨
- 안티오쿠스(Antiochus)가 이집트 군대를 격파(BC.198)후 영토로 통합
- 셀레우코스 1세는 포로석방령, 세금 면제, 율법에 따라 여호화를 섬기도록 해주며 국가 보조비도 약속
2) 안티오쿠스 4세의 잔인한 유대교 탄압
- 선왕 안티오쿠스 3세가 로마와 대항하여 패전
- 안티오쿠스 4세는 로마에 조공을 위하여 유대인들을 핍박, BC 167년 유대인 양민학 살, 유대교의 모든 관습 금지 칙령
6. 마카비 혁명과 하스몬 왕조(주전 164-63)
안티오커스 4세는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에 제우스 신을 위한 제단을 세우고 제물을 바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모디인(Modiin)의 제사장이었던 마타티아스(Mattathias)는 이 명령을 거절하고 그의 다섯 아들들과 함께 무력투쟁을 시작했다. 이 혁명에는 당시 하시딤(유대경건주의자들)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티티아스는 혁명을 일으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되고, 그의 다섯 아들 중에 유다 마카비(Judah Machabee)가 그 뒤를 이어서 놀라운 게릴라 전술을 통해 혁명을 성공시켰다. 그의 이러한 게릴라 전술에서 따온 별명이 있는데, 바로 '마카비'(Machabee, 망치)라는 말이다.
유다 마카비는 BC 164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였고,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여 회복시켰다. 그래서 생긴 절기가 바로 수전절(하누카)이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요 10:22)
유다 마카비가 BC 160년 엘리아사 전투에서 사망하자, 그의 형제인 요나단(Jonathan)이 뒤를 이어서 혁명을 이끌었다. 그는 계속해서 승리했으며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BC 153년에 그는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였으며, 새로운 왕조(하스몬 왕조) 를 세울 기초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도 체포되어 죽고 만다. 그의 형제 시몬(Simon)이 뒤를 이어 오랜 전쟁 끝에, BC 141년 셀루커스 왕조로부터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하스몬(Hashmon) 시대[BC 164~63]
셀루커스 왕조는 결국 유다의 독립을 인정하게 되었다. BC 63년에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할 때까지 마카비의 후손들이 독립적으로 나라를 다스려왔다. 이 왕조를 하스몬[(히l)Hashmon, (영)하스모니안] 왕조라고 부르는데, 이는 마카비 왕조의 시조인 '아스모네우스'(Asmoaeus)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하스몬 왕조의 전성기는 시몬의 아들인 요한 히루카누스 1세(John Hylucanus1: BC 135~104, 31년간) 때였다. 그는 남쪽 에돔과 네게브 북부, 욥바와 아스돗 사이의 평야, 사마리아 인근지역, 벧산 계곡 및 남부 샤를 지역 등까지 국경을 넓혔다. 이 지역 안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강제로 유대교로 개종하게 했다.
그런데 이때 신약 4복음서에도 나오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로 대표되는 종판간의 갈등이 심각했다. 서로가 주도권을 잡으려고 끝없는 투쟁을 했던 것이다. 특히 이들은 율법관에서 분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바리새파는 후대에 탈무드로 대변되는 구전 율법(Oral Torah)과 글로된 모세 오경, 즉 성문 율법(Written Torah)을 모두 성경으로 인정함과 동 시에, 예언자의 가르침도 성경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사두개파는 오직 모세오경 만을 성경으로 인정했다.
알렉산더 아네우스(Alexander Jannaeus, BC 103~76, 27년간)는 영토를 더 확장시켰으며, 특히 예수님이 탄생할 때 있었던 헤롯대왕의 아버지인 안티파터(Antipator)를 유다 남쪽 이두메 지방의 지방장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BC 63년에 폼페이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로마의 통치시대가 시작됐다.
7. 로마 시대(주전 63-
1) 로마 통일 (BC.270)
2) 3두정치 - 검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원로원은 폼페이, 크랏수스, 케사르(율리 어스시저; 가이사)를임명
3) 폼페이의 유다 정복 (BC.63) - 에돔 총독 안티파터(안티파스의 아들, 대헤롯의 아버 지)는 폼페이를 도움
마카비 하스모니안 왕조 힐카누스 2세는 항복 선언 후 조공을 바치기로 함. 그 대가로 폼페이는 안티파터를 유대지역 집정관으로 다스리게 함
4) 가이사 통치 시대 - 폼페이와 가이사의 싸움에서 가이사의 승리 가이사는 마카비 가 문의 힐카누스 2세를 한 지역의 총독 정도로 임명하고 안티파터를 사실상 유대의 행 정관으로 임명, 안티파터는 작은 아들 헤롯(대헤롯)을 갈릴리 총독으로 임명
5)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통치 시대 - 가이사는 브루투스에 의해 살해 유대의 안티 파터도 살해를 당하였고 파르티안들(Parthians, 바대)이 헤롯을 공격 유다 마카비 하 스모니안 가문 중 한사람 안티고누스가 파르티안과 합세하여 헤롯은 로마로 도망. 헤 롯은 로비활동을 하여 로마 원로원으로 부터 유대의 왕으로 임명 받음(BC.37)
6) 아우구스투스 - 예수님 탄생 시기의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지고 가이사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에서 해전을 벌여 로마의 대권을 차지, 최초의 황제 아우쿠스투스가 됨(성경에서 '가이사' 하면, 황제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