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 게이츠 아버지의 자녀 교육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 그는 세계인의 선망 대상이다. 포브스 경제잡지가 밝힌 그의 재산은 400억 달러로 세계 1위, 주식투자의 달인 워렌 버핏의 재산은 370억 달러로 세계 2위다.
그 많은 재산이라면 개인소유의 고층 빌딩에서 호화롭게 살 수 있고 보잉 747 점보 자가용을 굴릴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낭비와는 벽을 쌓았다.
한 13년 전인가 그에 대한 ‘비즈니스위크’인가 ‘포춘’ 경제잡지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기사가 지금도 나의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일등석을 타지 않는다. 비즈니스 클래스면 충분하다. 비즈니스 클래스로도 편히 갈 수 있는데 왜 일등석을 타 돈을 낭비하는가.”
83세의 Bill Gates Sr.
2009년도 현재 전 세게 퍼스널 컴퓨터는 약 88%가 빌 게이츠가 만든 윈도우즈를 사용한다. 애플컴퓨터 사용은 약 12%. 어떻게 보면 고가 애플, 저가 IBM PC기반의 윈도우즈 저가 컴퓨터 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다. IBM PC 기반의 윈도우즈는 약 90% 가까운 컴퓨터 시장장악으로 대량생산에 의한 저렴화가 이뤄져 값이 쌀 수밖에 없다. 애플은 반면 고 이익률을 고수하는데다 또 실 수요층의 퍼센테지(percentage)가 낮아 주머니 사정이 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비싸도 애플컴퓨터를 고집하는 ‘애플 매니아’층에서만 주로 쓴다.
시장 장악 면에 있어서 빌 게이츠 마인드는 천재적이었다. 애플의 창업자이자 지금의 CEO인 스티브 잡스가 좁은 생각을 버리고 컴퓨터의 대중화를 위해 박리다매를 구사하고 라이센스 판매로 로열티 수입 챙기기의 비즈니스 전략을 구사했다면 지금의 빌 게이츠 자리 스티브 잡스가 차지했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설 자리를 잃어 세계 최고의 갑부는커녕 세계 100대 갑부도 들어서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애플 OS 선점효과로 인한 시장지배력을 인정받아 과거 애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제기한 특허제소가 먹혀들어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망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빌 게이츠 라는 세기의 인물을 만들려고 했는지 애플컴퓨터사의 비즈니스 전략적 실수로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부자 타이틀과 동시에 세계 최대의 컴퓨터 소프트웨어회사 타이틀을 거머쥐게 했다.
우연일까? 우연 아니다. 기술발달로 세계가 일일생활권 된 20세기와 21세기의 영웅은 과학기술의 선도자에 의해 적지 않게 나온다. 특히 컴퓨터 기술은 과학기술 발전에 의해서 최고의 선구자 역할을 한다. 로켓, 우주광복선, 제트 항공기, 자동차, 선박, B2B 비즈니스, B2C 비즈니스, 파이넨스, 뱅킹, 등등 모든 게 컴퓨터 기술로 진보된다. 때문에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 개발, 특히 OS 개발로 이룬 업적은 상상을 초월하고 그의 업적은 길이 남는다.
그러나 ‘빌 게이츠’에 대하여 하버드 대학을 중퇴한 컴퓨터 '위즈 보이'로서 도스(DOS)을 남으로부터 구입 발전시키고, 또 애플 맥켄토시의 OS 기술을 흉내 내 재수 좋게 성공한 어드벤처 기업인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자라온 과정과 환경을 뒤돌아보면 그의 현재 위치는 운 좋게만 이뤄진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아버지 ‘빌 게이츠 2세’가 자녀들을 키운 교육과 인생사에 대한 내용을 책으로 밝힌다.
본문
4월 28일 판매에 들어간 “Showing Up for Life"라는 제목으로 발간 된 책은 빌 게이츠가 일군 마이크로소프트 왕국 건설은 그의 아버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책 첫머리에 다음의 말이 있다:
Dad, the next time somebody asks you if you're the real Bill Gates, I hope you say, "Yes." I hope you tell them that you're the all the things the other one strives to be. (Bill Gates)
아빠가 진정한 빌 게이츠고 또 아빠가 아들 뒤에 있었기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있을 수 있었으니] 사람들이 아빠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뜻.
이 책이 서점에 선보이기 전 책이 빨리 판매에 들어가길 고대했다. 빌 게이츠에 대한 책과 신문 잡지 기사를 수없이 읽었지만 정작 그가 자란 가정과 부모의 교육관 및 자녀들을 키우면서 있을 수 있었던 에피소드 같은 것은 쉽게 접할 수 없어서다. 책을 정작 손에 쥐어보니 실망스러웠다. 북 사이즈가 일반 하드커버 북보다 약 30% 정도 작았고, 내용 쪽수도 겨우 184 페이지뿐이 안돼서다. 페이지 면적도 크고 쪽수 역시 적어도 350 쪽 분량은 될 것이라 기대했다. 기대치의 반 밖에 되지 않으니 사고 싶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달아났다. 대충 무슨 내용인지 알고 싶어 빠른 눈 동작으로 책 내용을 한 번 스캔해 보았다. 어린이 동화책 읽는 기분으로 내용을 몇 페이지를 통해 살펴보니 그동안 접할 수 없는 내용이 보이는 게 아닌가. 책을 샀다. 값 22불.
내용 중 가장 흥미 있는 내용은 빌 게이츠의 ‘호기심’이다. 빌 게이츠는 집에서 트레이(Trey)로 불리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이름이 똑 같은 “빌 게이츠”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안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아들 윌리엄(빌) 게이츠 3세(William Gates III)를 ‘트레이’라 불렀다.
아버지 빌 게이츠의 아버지(트레이 할아버지)는 어렵게 살았다. 알라스카에서도 살았는데 할아버지는 난로에 땔 석탄이 길가에 떨어져 있으면 그 석탄을 퇴근길에 다 주워 집으로 가져왔다. 그 석탄으로 집안의 온기를 돋웠다. 아버지 빌 게이츠도 이런 근면 정신이 몸에 뱄다. 대학교는 군대를 갔다 온 후 국가에서 제공하는 GI 학자금으로 다닐 수 있었다. 1950년 로스쿨을 졸업했고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빌 게이츠 집 안은 2녀1남을 뒀다. 장녀, 장남, 차녀 순이다. 아들 트레이는 독서광이었고 식탁 에서도 항상 책, 신문, 집지를 읽으며 식사 했다. 책 읽는 것은 좋은데 식탁에서도 책 읽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아버지가 타일렀는데도 그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트레이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인 분야는 사이언스 픽션. 독서에 빠지면 삼매경을 헤매듯 깊은 생각에 빠진다. 아버지 빌 게이츠는 자녀들이 TV 보는 것을 엄격히 통제했다. 그러나 읽고 싶다는 책이 있으면 책은 얼마든지 사줬다.
중학교 때부터 전자와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이 계통에 특별한 관심을 뒀다. 당시엔 컴퓨터의 대중화가 이뤄지지 않아 컴퓨터 접근은 시애틀 소재의 워싱턴 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에 가서나 접할 수 있었다. 컴퓨터 사용을 위해 대학교에 갈 때는 지하실의 방에서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 훗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의 도움이 있어서다. 아버지 빌 게이츠는 아들 트레이가 그렇게 몰래 집을 빠져 나가 대학교 컴퓨터를 접했다는 사실 당시엔 몰랐다. 물론 해커로 고용 돼 컴퓨터에 누가 침입하는지를 실험한 일도 몰랐다. 그런 일 훗날 알게 되었다.
아버지 빌 게이츠는 아들의 행동이 좀 비정상적인 것을 알고 상담원에게 상담을 했다. 아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지 말고 지켜보라 했다. 아버지는 카운슬러의 어드바이스를 따랐다.
트레이가 하버드 대학에 진학해 공부 중 폴 앨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Popular Electronics에 컴퓨터가 제작되어진 기사를 보란다. 트레이는 즉시 이 회사에 연락해 컴퓨터를 작동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팔겠다고 제안했고, 회사는 흔쾌히 수락했다.
대학 2학년 때 아들 트레이는 학교를 휴학했고, 뉴멕시코 주의 알버쿠키로 가 마이크로소프트 회사를 설립했다. 아들이 하버드를 휴학한 게 너무 마음에 걸렸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탓하지 않았다. 공부를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아들이 뭔가 하고자하는 그 열정은 항상 아들에게 붙어있지 않아서다. 하지만 아들이 고향 시애틀에서 먼 반(半) 사막의 도시 앨버쿠키에서 일하는 게 안타까워 회사를 시애틀로 이사하도록 도와줬다.
아버지 빌 게이츠의 아들의 열정에 대한 너그러움과 이해의 폭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아들에 대한 내조(?)도 중요했다.
엄마는 매사의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사회활동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남편이 지역사회에서 명망 높은 변호사로 일하고 또 유나이트드 웨이(United Way), 라이언스 클럽, 로터리 클럽, 등등의 단체에서 활동을 하는데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내조를 했다. 이런 단체를 통해서 IBM 회장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엄마가 아들의 컴퓨터 비즈니스 일을 IBM에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남을 항상 돕기 좋아하고 또 자녀들에 대한 교육을 중시하는 엄마는 자녀들이 항상 뭔가 읽고 생각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식탁이 있는 부엌에서 멀지 않는 곳에 대형사전을 비치했다. 식사하다 뭔가 알 수 없는 낱말이 튀쳐 나오면 누군가 사전으로 다가가 낱말에 대한 내용을 큰 목소리로 읽도록 했다. 모든 식구는 그 낱말에 대한 정의를 들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녀들의 실력을 쌓게 했다.
교육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트레이가 어렸을 때 온 식구가 로스앤젤레스 디즈니랜드로 구경 간 일이 있다. 아버지만 빼놓고 다른 모든 식구가 차타고 갔는데 운전하는 며칠의 시간이 길지 않았다. 운전하면서 온 집안 식구가 돌아가면서 책을 읽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내용을 경청하도록 해 자녀들의 낱말과 독해력을 키웠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비행기로 디즈니랜드에 도착.)
아버지 빌 게이츠와 아들 트레이에게 최고의 힘이 돼주었던 엄마다. 엄마는 아들에게 항상 남을 위해 자선사업에 돈을 출연하라고 말했다.
엄마는 1990년대 초 암으로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엄마는 그 누구에게도 실망감을 보여주지 않았다. 항상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고 그런 사고방식으로 치료에 임했다. 그러나 엄마는 투병 중 1994년 사망했다.
빌 게이츠 주니어, 어머니 메리, 1994.
아버지의 큰 딸 크리스티에 대한 자랑도 대단하다. 장녀로서의 책임감이 투철하고 매사가 꼼꼼해 크면 회계사가 될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딸이 16살 되던 해에 운전면허증을 땄는데 딸은 그 운전면허증을 갖고 첫 운전에 나섰다. 운전할 차가 차고에 있어서 차고에 들어가 시동을 걸고 후진했다. 그 사이 할머니 차가 뒤에 주차되어진 줄 모르고 그 차를 받았다. 순간 큰 딸은 방으로 들어가 그 운전면허증을 가위로 다 잘랐다. 딸은 그런 실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자신은 아직 운전할 자격이 안 된다고 면허증을 자른 것이다.
아버지는 또 디즈니랜드에 갈 때 아버지가 돈을 쓸 것이니 딸은 용돈은 집에 두라고 했다는 내용도 밝힌다. 그런데도 딸은 아버지 말을 듣지 않고 용돈을 다 가져갔다.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사고 그 내용을 다 꼼꼼히 기록했는데 그 내용이 너무 꼼꼼하고 계산도 정확해 딸이 크면 분명 어카운팅을 공부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 아버지의 그때 예감은 맞아 큰 딸은 현재 미국 4대 회계사무실에서 고위직으로 일하고 또 워싱턴 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 운영을 관장하는 리젠시 구성멤버로 일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둘째 딸 ‘리디’는 아들 트레이의 7살 아래다. 아버지는 이 딸에 대한 자랑도 많다. 잘 나가는 좋은 집안 막내딸답지 않게 로스앤젤래스 포모나 칼리지에 진학해 공부했는데 운동감각이 뛰어나 테니스 소프트볼 등등의 운동을 많이 했고 또 학교 운동선수 코치로도 일했다. 훗날 아들 트레이의 회사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즈로 성공해 억만장자 집안이 되었는데도 돈 많은 티를 전혀 안냈다.
한 번은 딸이 스키를 좋아해 새 스키를 구입하려 운동구점에서 갔다. 지불을 카드로 하는데 운동구점 직원이 카드의 이름을 알아보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시스터가 아니냐고 물었다. 딸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캐쉬어(cashier)는 이런 말을 한다. “하긴.. 빌 게이츠의 시스터였다면 이보다 훨씬 고급 스키를 사려 했겠지요.”라고... 둘째 딸도 필요 이상의 사치를 않는다는 뜻이다.
아버지 빌 게이츠는 책을 통해 두 딸이 아들 트레이가 성공했는데도 그 성공에 대한 영향을 받지 않고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나가려는 데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위의 내용으로 표현했다.
빌 게이트는 또 아들 트레이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자신의 뜻을 받아주는 데에 대한 고마움도 표시한다.
한 예로 록펠러을 거론한다. 록펠러는 당대에 엄청난 부를 축적했는데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거부(巨富)에 대한 좋은 선례를 남긴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록펠러나 다른 모든 거부의 재산 사회 환원은 모두 후세에 이뤄졌는데 빌 게이츠 집안은 아들이 일군 재산을 아버지가 사회 환원을 할 수 있게 해 이런 식의 부(富) 재분배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버지 빌 게이츠는 1999년도 재혼했다. 예일대 출신의 재혼녀는 동양미술을 사랑하고 워싱턴 주에서 알아주는 인물이다.
빌 게이츠는 평생을 질병 퇴치와 사회봉사활동을 하다 생을 마감하고자 한다.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등 퇴치에 앞장섰고 앞으로는 사회 그린운동에 더 전념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책은 빌 게이츠 2세 부부가 자녀에 대한 교육을 분수를 알고, 검소하고, 또 남을 위해 살라고 한 대로 살아 하늘의 축복을 받았다는 뜻으로 곳곳에 인생경험을 통해 표현한다. 그것을 교회와 사회단체 및 친구들 간의 우정 활동을 통해 엿볼 수 있게 했다.
Written by comfort.
P.S.
빌 게이츠가 지금도 일등석을 타지 않고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는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자가용 제트기는 내가 알기로는 아직도 소유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내용 혹시 잘못됐으면 알려주시기 바람) 그것은 회사가 소프트웨어의 독점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타 대기업과 달리 시간에 쫒기지 않는 여유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의 검소함과 없는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소박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첫댓글 그동안 [J 블로그]에 올렸던
사역 소식들을 여기 [다음 카페]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2009년 5월 29일 올렸던 글과 사진들입니다.
어느 블로거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