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가장 춥다는 영하 13.6도,
일기예보가 무서워(?) 오후 1시 마천동 남한산성 입구에 모인 사람은 간신히 다섯 명,
얼마전 설악산 봉정암 산행하면서 목 비틀어 부러뜨린 소주패트병 1.5리터 사진 보며 경악했는데,
그 주인공 성재선생님 시치미 뚝 떼며 말 끝마다 합장만 하시니,
그래 나도 도로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손 모을 수밖에...
산에 들어서니 산은 나무 빼고 온통 하얀 눈 무릎 가까이 닿을락 말락,
하산하는 사람들 몇 시간 나무와 눈 동무 한 탓인지 모두들 시인[詩人] 같아 보입니다.
오덕만선생님, 여전히 객승[客僧]처럼 혼자 떨어져 저만큼 앞서 가니 뒤가 보일락말락,
윤기옥선생님 어제도 이곳 왔다면서 코트 입고 아이젠 없이 들길 소풍 가듯 머플러 날리며 산길 잘도 오르고,
윤영선선생님 통풍 잘 되는 등산복에 4발짜리 아이젠에다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스패치, 그리고 쌍 스틱,
에레베스트가 어디메뇨, 만반의 장비 갖추고 사기 드높습니다.
햇살 환하고 바람 잔잔하니 영하 13도가 영상 13도로 바뀐 것 같았는데,
눈 들어 동서남북 바라보는 곳마다 크리스마스 카드 속의 풍경들.
야 ! 탄성 저절로 나오는데,
이 풍경 함께 볼 회원님들 지금 저 아래 속세에서 무엇들을 하시는지 불쌍해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
성낭갑처럼 다닥다닥 쌓인 고층건물들과 아파트,
정말 성낭갑처럼 보이니,
마음만 먹으면 천원짜리 두어장 꺼내 성냥표 아파트 몇 채 사서 주머니에 넣으면 내 것이 될 것 같다고,
여기까지 생각하고 그 다음 현실은 생략해야 겨울산이 주는 넉넉한 부자마음 내 속에 챙겨둘 것 같습니다.
드디어 정상을 밟고,
소나무 숲 아래 둥근 탁자에 쌓인 눈 스틱으로 치우고 성재선생님 막걸리 두 병, 나는 목만 축이려고 한 병,
미안해서 아내가 싸준 총각김치 꺼내 놓으니 , 윤선생님 호도땅콩강정 안주가 되려나, 웃으며 내놓으십니다.
한 잔씩 따르고 '위하여' 건배하고 찬 막걸리 마시니,
싸르르 목구멍 타고 위 속으로 내려가며 아싸한 사이다로 바뀌는 조화,
두 잔도 세 잔도 거퍼 마시며 손가락으로 총각김치 집어 와작와작 소리나게 씹어 먹고,
꿀을 발라 놓았나 호도강정 고소한 맛 산짐승 냄새 맡을까 조심스러운데,
갑자기 높은 소나무에 쌓여 있던 눈, 바람에 날리니 삽시간에 눈보라에 싸인 다섯 사람,
영화배우처럼 탄성을 지르며 입가에 감도는 미소,
열 일곱살 소년 소녀로 돌아간 듯 낭만[浪漫]이 우리 주위를 감쌌습니다.
에베레스트가 아니라서 그런가, 윤영선선생님 눈 속에 세 번이나 넘어지니 눈이 그렇게도 좋으신가,
걱정이 되면서도 웃었습니다.
숭렬전 옆 약수터, 윤기옥선생님 한 모금 마시면 10년 더 산다고 하시며 권하는 약수[藥水],
세 번 나눠 마시니 삼십 년 더 사는가 ? 은근히 기대가 큽니다.^^^
모두 문 닫아 산성 로타리 옆 밥집을 찾아가 토끼전골 시키니,
기다리는 동안 내놓는 두부김치, 참나물, 호박전 한 상 가득,
음식 나르는 총각에게 토끼전골 취소하라, 이것만 먹고 가겠다, 농담을 건네니까 그 총각 하는 말,
그럼 토끼전골은 서비스로 내놓겠습니다. ^^^
술 자리의 주제는 "주님을 향한 교회"의 성재목사님이 내놓으신 수작[酬酌], 그리고 독작[獨酌]과 대작[對酌].
혼자 마시는 '독작'은 알겠는데, 같이 마시는 '대작'은 술잔이 비면 채워주는 것이란다,
그리고 수작은 술잔이 오가는 것이니 시범을 보여 주시는데,
소주잔과 막걸리잔이 함께 오가기도 하니, 어려운 게 역시 수작입니다.
일배일배부일배, 화제는 이제 어린 시절로 돌아가 '국민학교' 이야기로 발전,
내가 남산국민학교 출신이라 하자,
성재선생님 내 손 붙들고 당신 친구분들 '남산[南山]' 나온 사람 많다고 친구 만난 듯 반가와하시니
술자리는 무르익고,
얼핏 정신을 차리니 보신탕이 아닌가 의심하면서 국물만 드시던 성재선생님 거침없이 고기를 집어 드시니
금새 전골냄비 바닥이 말끔하게 보였습니다. ^^^
밖으로 나오니 벌써 밤,
주위는 고요하고 사람 자취 끊어졌는데, 걱정스러운 오덕만선생님 나에게 와서 하는 말씀,
버스가 끊어졌으면 어떡하지요 ?
버스 타고 속세로 내려와 지하철 타고 가다 차 안에서 굿바이,
혹한 속에서 진행했지만,
우리들의 따뜻한 인정[人情]으로 영상 13도로 바뀐 1월 6일 신년산행, 성황리에 잘 끝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