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설교
1. 로마서 강해 서설(序說)
로마서는 바울의 3차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 석 달을 머무는 동안(행 20:3)에 기록되었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1:10절의 말씀대로, 고린도에서 로마로 직행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구제헌금을 전달하기 위하여 반대 방향인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는 것이 자꾸만 지체되자 로마에 가서 전하고자 한 복음을 서신으로 기록하여 보냈던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뜻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사 55:9) 인간의 생각으로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바울의 로마행을 속히 허락하여주셨다면 우리는 영광스러운 로마서를 갖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① 먼저 신약 성경의 배열을 생각해 보는 것도 로마서가 놓여 있는 위치와 그 가치를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앞부분에는 주님의 4복음서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뒷부분에는 여러 교회에 보내진 서신서들이 배치되어 있고, 복음서와 서신서 사이를 사도행전이 다리를 놓아 주고 있습니다. 그 서신서들 중 로마서가 맨 앞자리에 놓여져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떤 분들은 로마서가 가장 분량이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 점이 고려되었을는지도 모릅니다.
②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로마서가 가장 중요함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반지에 비한다면 로마서는 반지의 보석 부분에 해당된다고들 말합니다. “성경 66권중 다른 것은 다 가졌다 해도, 로마서를 잃었다면 기독교는 성립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반대로 66권중 다른 것은 다 잃어 버렸다 해도 로마서만 가졌다면 기독교는 세워졌을 것이다”라고 말해질 정도로 로마서는 기독교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③ 교회 역사를 보면, 기독교가 위기(危機)에 봉착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극복하게 하기 위해서 중요한 인물들을 세우셨는데 그 때마다 이 로마서가 사용되었습니다.
㉠ 제일 먼저 펠라기우스 이단으로부터 기독교를 보수한 어거스틴을 꼽을 수가 있습니다. 그가 영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톨레레게”(들고 읽어라)라는 신적인 음성을 듣고, 성경을 들고 펴서 읽은 곳이 로마서 13:13-14절이었습니다. “읽는 순간 밝은 빛이 물밀듯이 내 마음에 밀려들어 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를 회심케 하실 때에도 로마서가 사용되었습니다. 죽은 후에 연옥에서 고통을 덜 받게 된다고 해서 그는 무릎으로 빌라도의 층계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로마서 1:17절을 조명하여 주셨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그에게 조명이 되자, 루터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을 수행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루터를 일으켜 세우셨고, 로마서는 의의 병기로 사용이 되었던 것입니다.
㉢ 요한 웨슬레를 회심시키실 때에도 로마서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사역하고 있었으며 촉망되는 목회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없었습니다. 그가 알더스케이트에 있는 한 집회 장소로 인도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을 웨슬레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위대한 진리를 들을 때에 내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졌다”, 이때가 1738년 5월 24일의 일이었습니다. 그 외에 칼빈, 죤 번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주의 종들을 불러 세우시는데 성령님께서는 로마서를 사용하셨습니다.
④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 자신도 하나님에 의하여 특별히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헬라 문화의 삼 대 중심지의 하나인 다소에서 태어나, 헬라 철학을 섭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수학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잔멸하는데 선봉을 섰던 자입니다. 그런 박해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해보다 더 밝은 빛을 비추시어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리라”(합 2:4, 롬 1:17) 하신 말씀을 통해서, 복음에 미친 사도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⑤ 하나님께서는 옛적에 이와 비슷하게 모세를 준비시켰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를 바로의 궁에 보내어 애굽의 문물을 숙달하게 하신 후에, 시내 광야로 보내시어 훈련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모든 일을 섭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때가 차매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시듯 바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부르셨습니다.
⑥ 바울을 택하여 부르신 목적(目的)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 첫째는 성경을 기록케 하기 위함이요,
㉡ 둘째는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셔서 유대인의 벽을 넘어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약성경 중 절반 가까이가 바울의 저작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사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바울이 아니었다면 복음이 유대인의 높은 벽을 뛰어 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⑦ 주님의 최후 분부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하셨으나, 성령강림 후에도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 또한 사람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道)를 유대인에게만 전하였다”(19) 하고 말씀합니다.
㉡ 그 심각성을 갈라디아서 2장에서 볼 수가 있는데,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어떤 이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 떠나 물러가매,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갈 2:11-13) 합니다. 이 때 바울이 베드로를 대면하여 책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⑧ 만일 바울을 불러 세우심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큰 위기에 봉착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 주님께서는 이를 미리 아시고 유대인이면서도, 나면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을 준비시키셨던 것입니다.
㉡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본 자요, 해보다 더 밝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에 비췸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위대한 로마서를 기록케 하기 위해서는 이런 바울이 적격자였음은 물론입니다.
⑨ 로마서의 수신자들은 1:7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 로마서뿐만 아니라 신약의 서신서들은 불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졌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제기됩니다. 복음은 불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질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렇습니다. 복음은 저 밖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교회 안에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 교회 내에도 아직 복음으로 태어나지 못한 심령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태어나기는 했으나 어린아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풍요로움을 모릅니다. 마귀의 궤계를 대적할만한 영적 무장이 되어 있지 아니 합니다. 그래서 늘 가엽고 가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⑩ 사도는 1:11절에서, “내가 너희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합니다.
㉠ “견고케 하려함이니”,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말씀하고 있는 그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로마서를 보내고 난 후 얼마 못되어 로마에는 네로의 박해가 몰아닥쳤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원형 운동장으로 끌려나와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나무에 달려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차히 면하거나 피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로마서를 통해서 확신을 얻게 되었고, 견고케 된 성도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5, 37) 합니다.
㉢ 저도 말세에 고통 하는 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견고케 하며, 승리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이 로마서를 강해해 나갈 것입니다. 형제여, 하나님께서 로마서를 통해 형제를 놀랍도록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형제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실 계획을 갖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유도순 목사님은 글은 복음/말씀의 홍수속에 혼란을 겪고 있는 성도들에게
참된 복음이 무엇인가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