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이제부턴 투쟁
어쨌든 집을 구했으니 이제부턴 삶의 현장으로 나가야만 했다. 베를린에서의 생존을 위해서.
어쩌면 인야에게는 전쟁터로 나가는 일이기도 했다.
한국에 편지도 부칠 겸 어머니께 전화하러 나갔다 돌아오고 나서야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흠뻑 젖을 뻔했는데 그걸 피했다.
어머니는 오랜만이라 하시면서도,
"비싼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까지 하셨다.
그래도 인야가 살 집을 구했다고 알려드리자 퍽 안도하시는 느낌이었다.
거리에서 헤맬 땐 방을 구하면 모든 일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방을 구하고 나니 더 큰 일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살기 위해 세상과 싸우는 일이었다. 일거리를 찾고 돈을 벌고 투쟁해야 했다.
비록 종이에 하는 작은 드로잉이었지만 그림도 시작했다.
옛날 스페인에서 지낼 때처럼 일기를 쓰듯 하루에 단 한 장의 스케치라도 남겨놓을 각오로.
정상적인 생활도 시작됐다. 무엇보다도 음식을 거리에서 사 먹지 않고 집에서 해 먹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그날 밤엔 스페인식 감자 또르띨랴를 해 먹었는데, 집주인 요한에게도 한 쪽을 주니 맛있다며 금방 먹어 치웠다.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6월의 마지막 밤이 가면 7월이다. 제발, 제발 7월부터는 좋은 일도 좀 생기길, 믿지 않는 하늘에 기도라도 하고 싶다.'
집을 구한 뒤 그동안 미뤄두었던 한국이거나 스페인에 연락할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게 되어, 우체국에도 들러야만 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발길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밝은 마음으로 편지를 쓸 수도 없었지만, 뭔가 확실한 게 하나도 없는 현실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우체국에 다녀오는 사이에도 베를린의 하늘은 변덕을 몇 번씩이나 부려, 비가 서너 차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등... 사람을 심란하게 했다. 요한이 독일식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정말 김치찌개 맛이 났다.
생김새도 그렇지만 깔끔한 성격에 요리도 제법 잘하는 것 같았다.
쉬이 어두워지지 않는 이곳 여름은 밤 10시가 되어도 환하기 때문에 여차하면 시간을 그냥 흘려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 저녁을 먹은 뒤 바로 앉아서 종이에 작업을 시작했다.
자정이 가깝도록 두 장의 드로잉을 했다. 그 와중에도 희열을 느꼈는데, 위기 상황에서의 아슬아슬한 희열이었다.
'만약 이런 위기 상황이 아니었다면 작업이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설사 작업이 된다 해도 지금의 그 느낌과는 다를 것이다. 비록 다음 달 집세도 없는 빈털터리일망정, 작업이 풀려주기만 한다면 난 어떻게든 견뎌내리라.'
그리고 이미 며칠 전부터 인야의 전쟁은 시작되어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망설여왔던 일의 실행에 들어갔던 것인데, 발등에 불은 떨어졌고 이젠 더 이상 미적거릴 시간도 여유도 없어서였다.
화가로 먹고 살기 위해, 그게 가능할지는 몰라도, 화랑가의 약도를 보아가며 몇 군데를 돌아보았다.
의외로 화랑이 아주 조그만 곳들이 많았는데, 겉에서 보기엔 별 표시가 없는 곳도 많았다.
대개 오후 2시부터 문을 열었다.
그중 한 화랑에 들어가 전시를 둘러보며 동정을 살피다 사무실 쪽에 한 사람이 있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았다.
작품 자료를 보여주면서, 혹시 전시하거나 팔 가능성이 있는지 타진해보려는 시도였는데,
"저, 한국에서 온 화가인데요……" 하고 어렵사리 영어로 말을 시작하려는데,
"나, 지금 바쁜데요." 하면서 다음에 오라고, 자기는 지금 나가야 한다고... 나가 달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는 것이었다.
보기 좋게 거절당한 것으로, 그야말로 문전박대였다.
작품은 보여줄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돌아 나와야만 했다.
밖엔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내친김에 또 다른 화랑을 갔더니 거긴 조각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쪽에서 먼저 무슨 용건으로 왔느냐고 묻기에, 작품을 보러 왔다고 주저주저 말을 했는데,
그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듯 여러 가지를 묻기에 결국 인야는 자신의 얘기를 하게 되었고... 테라코타 작품 자료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말 많은 사람들이 늘 그렇듯, 그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안 들어가느니만 못한 모습으로 그 화랑에서도 나오고 말았는데, 화랑가와의 접촉이 결코 녹록하지 않을 거라는 걸... 첫날부터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도 쓴맛을 보았다. 화랑에서 나오며 인야는 이 세상이 백지가 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살아있어야 하는지, 존재와 의미까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길로 자주 가는 동물원(Zoo)역 근처의 교회로 갔다.
실내 단상 쪽의 떠 있는 듯한 예수 상을 스케치했다.
믿지도 않는 예수를 원망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여보세요! 예수라는 분, 당신 같은 존재 때문에 내 마음이 더 아프기도 헷갈리기도 하거든요?' 하면서.
어느 날 밤 낚싯대에 미끼를 낀 다음 맑은 강물에 던져 넣었는데, 그러자마자 싱싱한 고기가 낚여오는 꿈을 꾸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연거푸 두 마리를 낚아 올렸었다.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이 도무지 나쁠 것 같지가 않아. 나 같은 사람이라고 꾸는 꿈마다 다 맞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평생의 한 번이라도, 아니면 어쩌다 얼떨결에 내 꿈이 맞아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런 꿈에라도 매달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좋은 일은커녕 까마득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일이 벌어졌다.
그날도 화랑가를 돌아다니다 괜찮아 보이는 화랑의 문을 열었는데, 화랑 안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화랑 관계자인 듯한 사람은 인야를 보고 있었고, 상대방은 등을 보이고 있었는데, 뭔가 인기척을 느꼈던지 등을 보이던 사람이 고개를 돌리더니 인야를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면서 뭐라고 말을 했다.
"누가 왔는데……"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주인인 듯한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인야를 보았음에도 시선을 그에게 돌리며 아는 체조차 하지 않을 자세였다.
인야가 실체가 아닌 투명인간이거나 그림자인 것처럼. 그러면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야……"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인야는 그들간의 대화를 들은 게 아니었다. 설사 들었다 해도 독일말을 이해할 수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야는 그들이 나눈 그 짧은 대화를 100%, 아니 200% 다 알아들은 기분이었다.
슬펐다.
앞이 캄캄했고,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모든 일이 그리 쉽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쉽게 남들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할 줄도 몰랐던 것이다.
집에 돌아온 인야는 미친 듯이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제목을 길게 붙였다.
'누가 왔는데……'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야!'
그렇게 두 사람이 나눈 대화로 제목을 붙인 건 처음인 것 같았다.
'남들이 인정을 해주든 말든, 화랑가의 비웃음을 받더라도 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살 가치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훗날 인야는 그 대목을 들여다보며 '화가의 삶이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참…… 슬픈 일도 많아. 이 세상에 이름 없는 화가로 살아간다는 건, 슬픔과 따로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아……' 하고 쓸쓸히 중얼거리곤 했다.
며칠 뒤 인야는 멍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진종일 비가 내렸다. 아침에 요한과 같이 나가 먹거리를 사온 뒤 내내 방에 꾸부리고 앉아 뭔가 일을 했다.
어느새 벽에 붙인 종이 그림들이 늘어갔다.
그림이 늘어가는 것은 기뻤지만, 그것에 만족할 순 없었다.
그림의 질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 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끄집어내야만 했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던 요한이 엽서 두 장을 건네주었다.
이상해서 보니, 며칠 전 인야가 보냈던 엽서가 되돌아온 것이었다.
새 집에 들어온 첫날, 새로 생긴 주소를 알린다는 기쁨에 주소를 먼저 써놓고 엽서를 쓴 다음에 보니... 수취인란에 자신의 주소를 써넣은 오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었다.
그래서 형광펜으로 'To:'라고 강조해서 쓴 다음 부쳤던 엽서였는데, 그중 일부는 간 모양이고 일부가 되돌아온 것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인야는,
'벌써 답장이 왔다고?' 하는 반가운 심정으로 그 엽서를 받아들었던 것이었다.
그러고도 내내 방에 있었는데 지루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도 지루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따금 인야는 자신이 있는 곳이 베를린이란 것을 확인하곤 했다.
'내가 베를린에 있는 것'이 아닌,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확인하고 나서야 여기가 베를린임을 알았다.
전에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도 그랬었다.
하도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다 보니, 이따금 자신의 소재지에 대한 혼돈도 오는 것일 수 있었다.
날씨가 궂었다. 여름인데도 사람들은 긴팔이거나 자켓을 입고 다녔다.
쨍한 빛은 없었고 비가 자주 내렸다.
그러나 인야에게는 덥지 않고 후텁지근한 무더위가 아니어서 좋았다.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었지만 잠은 여지없이 쏟아졌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인생도 갔다.
비가 왔다 개고 나니 가을 같은 날이었다.
저녁을 일찍 먹고 이불 위에 누웠더니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두 시간여를 비몽사몽간에 잠 속에 빠져 있었다.
세상사는 게 힘들어서겠지만, 인야는 잠자리에 들 때가 하루 중에서 제일 행복했다.
어떤 때는 아예 깨어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었다.
그날 인야는 요한과 시 외곽 동베를린에 있는 부취(Buch)란 곳에 갔다.
시골 같은 그곳엔 갤러리가 있었는데, 정부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3년을 공짜로 쓸 수 있는 작업장에 전시까지 열어주는 예술 공간이기도 했다. 그 환경과 예술을 위한 투자에 인야는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이런 곳에서 작업할 수만 있다면……' 하는 꿈을 아니 꾸지 않았지만, 떠돌이 신세로는 그런 자격도 없음에... 그저 한숨만 쉬며 돌아오고 말았다.
그 무렵 인야는 일도 없이,
'아, 돈이 많다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에 젖기도 했다.
돈만 있다면 삶이 확 달라질 거고, 이런 상황에서도 느긋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놈의 돈. 돈 때문에 겪은 고통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돈의 중요성을 자꾸 망각하고 등한시하는 것이 인야의 성격이거나 타고난 특징 같기도 했다.
인야 주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옛날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학교 실기실에 '바람처럼 살고 싶다'는 문구를 써놓곤 했는데, 그리고 멕시코 시절에도 그와 비슷한 말을 써놓았었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정말 인생 내내 바람처럼 떠돌고 있는 것 같아, 인야는 이제부터는 그냥 '황제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억지를 쓴다고 그리 되는 건 아니겠지만, 만약 황제가 되어도 세상을 잘 통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황제처럼 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이야 자유니까……'
훗날 인야는 그 대목에서 실소를 짓기도 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황제처럼 살고 싶다고?' 그러면서도, '오죽 힘이 들었으면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까지 했을까……' 하고 잠시 씁쓸하게 앉아 있다가, '그리고 나는 그런 황제의 삶은 살아보라 해도 못 살 사람이다. 내 역마살이 나를 내버려두겠는가.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황제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고도 남을 사람인데……'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