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각본 마크 스티븐 존슨
제작 스탠 리
촬영 에릭슨 코어
편집 데니스 비르클러
음악 The Calling 외
미술 배리 슈시드
무술감독 원청양
출연 벤 애플렉, 제니퍼 가너, 마이클 클라크 던컨, 콜린 패럴 수입 드림맥스
배급 아우라엔터테인먼트
장르 판타지 액션 블록버스터
등급 15세 관람가
시간 102분
약점이 강점이 된 캐릭터 블록버스터
2003.03.14 김지훈(영화평론가)
자기 회의와 불확실성에 고통받는 초인 영웅 캐릭터의 배턴을 무리 없이 이어받은 이 영화는 시각적 마법에 주력한 특수 효과와 무난한 쿵푸 액션으로 블록버스터의 준수한 모양새도 갖춘다.
뉴욕의 빈민가 헬스 키친에서 어린 시절 방사능 폐기물에 노출된 후 실명한 매트 머독(벤 애플렉)은 시력을 제외한 다른 모든 감각들이 초인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믿음직스러웠던 복싱 선수인 아버지가 뉴욕 암흑가의 큰손 ‘킹핀’에 의해 살해당하자 홀로 자란 머독은 성인이 된 후 낮에는 범죄 전문 변호사로 생활하고 밤에는 데어데블로 변신해 불의를 응징한다. 그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엘렉트라(제니퍼 가너)와 사랑을 키우지만 킹핀이 사주한 살인 청부업자 ‘불스아이(콜린 패럴)’가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하면서 데어데블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1964년에 모습을 드러낸 지 40년 만에 책 속에서 튀어나온 슈퍼 히어로 데어데블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장르에 캐릭터 무비(character movie)라는 새로운 유행을 불러일으킨 ‘마블 코믹스’ 사단의 일원이다. 그런 만큼 스크린에 앞서 진출한 선배 초인 영웅(마블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DC 코믹스’ 소속 주인공인 슈퍼맨과 배트맨)과 비교 대상이 될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데어데블의 겉모습과 주특기만으로는 선배들에 비해 높은 가산점을 줄 게 별로 없다. 데어데블의 겉모습은 마치 착 달라붙는 빨간 가죽옷으로 갈아입은 배트맨이 망토를 벗어 던진 듯한 몰골이다. 마천루의 구석구석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내공은 기특하지만 마블의 선배인 스파이더맨에게는 한수 뒤진다. <엑스맨>의 캐릭터들처럼 공포와 매혹을 자아내는 초능력으로 관객을 넋 나가게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전투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데어데블>의 미국 내 흥행 성적은 짭짤했다.
<데어데블>은 초인 영웅의 핸디캡과 이중성을 솔직하게 밀고 나감으로써 관객과 원작 만화 팬에게 두루 환심을 산다. 이전의 선배 영웅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를테면 배트맨의 내력은 저 옛날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만 언급될 뿐이지만 데어데블의 어린 시절은 소상하게 밝혀진다. 영화는 성당 꼭대기에 매달려 있던 초인 영웅 데어데블이 바닥에 떨어져 비틀거리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위풍당당한 주인공이 이름값은 못하고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그 사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데어데블>은 30여 분가량 이 주인공의 물리적 결함과 정신적 취약점을 모두 관객에게 공개한다.
데어데블은 어린 시절 사고로 실명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어떤 초인 캐릭터에게서도 찾기 힘든 치명적 결함이다. 관객은 그가 ‘도대체 어떻게 약점을 극복하고 단련한 걸까’라는 궁금증을 품게 된다. 관객의 궁금증을 따라 카메라는 초점 없는 데어데블의 눈을 클로즈업해 다가간다. 관객의 눈이 주인공의 시력을 잃은 안구(眼球)와 동일시되는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된다. 매트는 어린 시절 시각을 잃었지만 대신 다른 것을 얻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 매트는 청각과 촉각, 운동 신경이 비약적으로 발달해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이런 초능력에 대한 ‘눈뜸’은 시각을 상실한 대가로 충분했던 것이다. 커다란 굉음과 외부의 강한 충격에 감각 기관이 무력해진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의 시각적 불구는 초인적 정체성의 골간을 이루는 힘을 만들어냈다. 그의 시각 상실은 그에게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안겨준 셈이다.
실명·눈뜸의 공존 상태는 '변호사 매트 / 데어데블'이라는 자아의 이중성과 인접 관계를 이룬다. 이 점은 이미 영화 초반에 나타난 캐릭터의 탄생 기원 신화에서 싹트고 있다. 매트의 아버지는 복싱을 그만둔 후 술에 절어 지내며 폭력으로 행인들의 주머니를 턴다. 그것이 매트가 이 세상에서 육안으로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후 깊이 반성한 아버지는 건실하게 재기를 도모하고 아들에게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인물이 되라”고 가르치지만 암흑가의 무자비한 큰손은 아버지의 바람을 무참히 짓밟는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데어데블의 공명정대한 정의에 대한 사명감과 복수심은 공존하며 그의 내면에서 갈등을 벌인다.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이 그랬듯이 데어데블도 공격성과 분노가 냉정한 도덕적 판단을 앞선다. 수호신보다는 가학적인 킬러처럼 보이는 그의 인격은 선악의 엄밀한 분별이 흐려진 불투명한 형상을 띠게 된다. 변호사 직업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지키라는 아버지와의 약속은 온전히 지켜지지 않는다. 그 점을 부정하기 위해 매트 / 데어데블은 스스로 “나는 나쁜 놈이 아니다”라는 자기 최면을 걸 수밖에 없다. 상투적인 설정이지만 고해성사의 테마가 종교적으로 경직되지 않아 보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암울한 영혼의 딜레마는 엘렉트라라는 여성의 힘을 얻어 구원받는다. 그녀는 명암이 소멸된 매트 / 데어데블의 세계를 촉촉하게 적셔주며 마침내 복수의 허무함과 악의 근원을 밝히는 길잡이가 된다.
자기 회의와 불확실성에 고통받는 초인 영웅 캐릭터의 배턴을 무리 없이 이어받은 이 영화는 시각적 마법에 주력한 특수 효과와 무난한 쿵푸 액션으로 블록버스터의 준수한 모양새도 갖춘다. 속편을 이어나가기 위해 결말을 작위적으로 짜맞춘 듯한 아쉬움도 속편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분히 눈감아줄 수 있다.
첫댓글 흠~ 그랬군.. 왠지 꼭 봐야한단 느낌이 들지는 않았는데 이정도면 한번 봐야 될지도 모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