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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청 아카데미
인간의 경계에서. 포스트-휴먼과 인간에 대한 물음 3: 나노 혁명
김재현(계명대)
1. 들어가며
포스트-휴먼 여행을 한 지도 벌써 3주가 되었습니다. 준비를 하는 저는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3번째 시간으로 나노 기술이 초래할 혁명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한 후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주의를 간략하게 소개한 후 몇 가지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간을 진행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자연과 인간과 기계가 함께 펼치는 진화의 드라마에서 결국 기계가 인간을 초월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고찰하였습니다. 커즈와일(R. Kurzweil)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 보았습니다. 그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게 될 시점을 특이점(the singularity)라고 불렀고, 그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그의 전망에 따르면 2030년에서 2040년대 사이에 그 날이 도래할 것입니다.
커즈와일은 인공지능이 인류의 지능을 따라잡고 능가하는 시점보다 더 먼저 도래하게 될 기술적 혁명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혁혁한 성과를 내고 있고 2020년경에 성숙하게 될 ‘나노 혁명’입니다.
2. 나노 혁명
대한민국은 나노 기술에 있어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서 4번째 순위를 차지하는 강국입니다. 2000년 1월에 클린턴 정부는 나노 기술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12월에 나노 기술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나노 기술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증가해서 지금은 미국의 75%정도 수준까지 따라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노는 그리스어로 ‘난장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1 나노미터는 사람 머리카락 두께의 5만분의 1입니다. 나노 기술에 대해서 최초로 암시한 사람은 노벨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이었습니다. 파인만은 1959년 12월 29일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는 연설을 했습니다. 파인만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핀 머리에 기록하는 방법을 상상했습니다. 파인만은 연설 중에 “외과의사를 꿀꺽 삼킬 수 있다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빈다. 기계 의사를 혈관 속에 넣으면 이것은 콩팥으로 가서 둘러봅니다. 물론 외부에서 정보를 받아야 합니다. 콩팥의 어느 판막이 고장인지 찾아내서 작은 칼로 잘라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파인만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원자를 다시 배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아주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궁극적으로 원자를 우리 마음대로 배열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름 아닌 원자 수준까지 내려가기! 원자 하나하나를 우리가 원하는 곳에 배열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물론 가능한 위치에 배열해야 합니다.”
파인만이 나노 기술의 아버지라면 나노 기술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인물은 바로 에릭 드렉슬러(1955~)입니다. 이 분이 쓴 책이 바로 나노 기술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창조의 엔진』입니다. 드렉슬러의 생각은 당시 과학기술자들에게 몽상으로 취급당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의 논문지도를 맡으려 하지 않았고, 인공지능학의 대가인 마빈 민스키가 지도교수가 되어 간신히 그의 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드렉슬러는 나노 공학의 많은 부분을 묘사했고 나노 기술의 기본적인 측면을 서술했습니다. 드렉슬러의 주장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어셈블러(조립기계)의 존재입니다. 어셈블러는 어떠한 원자 배열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자연법칙의 한계 내에서 어떠한 물질도 조립할 수 있습니다. 램프의 지니와 같은 기계입니다. 드렉슬러는 어셈블러가 탄생하는 순간 인류의 삶은 극적을 바뀌게 될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나노 기술은 주사터널링 현미경(STM, 1981년 제작)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면서 현실화되었습니다. 주사터널링 현미경은 분자나 원자를 살펴보는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변형시킬 수 있는 장비입니다. 1990년 미국 컴퓨터 회사인 IBM의 연구진이 STM을 사용하여 35개의 크세논 원자를 배열하여 IBM이라는 문자를 배열하였습니다. 그래서 1990년을 나노 기술의 원년으로 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화학물질 중에는 탄소를 가진 것이 많습니다. 탄소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배열이 다르면 매우 다른 물질이 됩니다. 흑연과 다이아몬드는 탄소의 결정체입니다. 다이아몬드가 3차원적으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반면, 흑연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단단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원자 배열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리처드 스몰리를 위시한 팀은 탄소 원자 60개를 자기조립하여 축구공처럼 둥근 탄소분자를 발견했습니다. 이를 ‘풀러렌’ 혹은 ‘버키볼’이라고 부릅니다.
1991년 일본의 이지마 스미오 박사는 ‘탄소나노튜브’라 불리는 물질을 발견했습니다. 원통형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크기가 사람 머리카락의 5만분의 1밖에 안되지만 인장력은 강철보다 100배 강한 물질입니다. 그리고 구리보다 전류를 잘 전도하고 다이아몬드보다 열을 잘 전달합니다. 이 탄소나노튜브는 분자수준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진정한 나노물질입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임지순 교수가 탄소나노튜브 연구에 있어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탄소나노튜브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합니다. 반도체, 전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탱크, 테니스 라켓, 골프채, 평면 디스플레이, 자동차 연료통등에 사용됩니다. 뿐만 아니라 탄소나노튜브 한 개가 라이오처럼 방송국 노래를 수신할 수 있다는 논문도 발표되었습니다. 탄소나노튜브는 그 인장력 때문에 우주 엘리베이터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3만 5800킬로미터의 탑을 세운다는 기획입니다. 1999년 나사의 회의에서는 2060년경에 우주 엘리베이터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제출되었습니다. 하지만 탄소나노튜브가 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문제제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3. 동영상 감상
4. 분자기계와 어셈블러
분자기계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1999년에는 미국 연구진이 원자 78개로 된 분자 모터를 만들었습니다. 이 분자모터는 톱니바퀴의 원리로 만들어진 회전 모터입니다. 이 분자 모터는 화학반응을 통해 얻은 에너지를 이용하여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분자 톱니바퀴라고도 부릅니다. 1999년에 미국의 카를로 몬테마노 교수는 생물의 체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사용하여 나노 모터를 만들었습니다. 2000년대에는 나노 프로펠러가 1초에 8회의 회전 속도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나노 분자 모터를 만들었습니다. 2004년 3월에는 ‘머슬봇’이 발표되었습니다. 머슬봇은 근육과 로봇이 결합한다는 뜻을 가진 용어입니다. 이 로봇은 생쥐의 심장 근육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머슬봇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서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2004년에는 분자 엘리베이터와 분자 컨베이어벨트를 만들었습니다. 2009년에는 사람의 정자처럼 생긴 나노 프로펠러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나노 프로펠러는 혈액 속에서 항해하여 약물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에릭 드렉슬러는 『창조의 엔진』에서 최초의 어셈블러(조립기계)가 모습을 드러낼 때 비로소 나노 기술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991년에 쓴 『무한한 미래』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노기술의 발상은 분자 어셈블러에서 시작되었다. 분자 어셈블러는 산업로봇의 팔과 비슷하지만 규모가 아주 작다는 점이 다르다. 어셈블러는 모터로 작동되고 컴퓨터로 제어되며 분자 크기의 도구를 쓸 수 있고, 분자 크기만한 부품으로 짜 맞춘 장치가 될 것이다. 한편 분자 어셈블러로 다른 어셈블러를 만들 수도 있다. 어셈블러는 원료만 제대로 공급되면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분자 어셈블러는 미시세계에서의 ‘손’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드렉슬러는 2001년의 글에서는 어셈블러가 분자를 조립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분자 제조 기술의 잠재력을 이해하려면 현재 산업에서 사용하고 있는 거시 규모의 기계 장치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자동화된 공장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먼저 컨베이어 벨트로 뻗어 나온 로봇 팔이 벨트 위에 실린 도구를 집어들고 제조 공정 중에 있는 제품에 사용한다. 금방 사용한 도구는 벨트 위에 내려놓고 벨트 위에 놓여 있는 다른 도구를 집어 든다. 그리고 그 도구로 제조 공정의 제품에 사용한다. 그런 식으로 작업을 계속하여 진행하면 제품이 완성된다. 이런 자동화된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포함한 모든 기계 장치를 분자 규모로 축소시켜 보자. 이러한 나노 규모의 기계 장치들은 무엇이든 조립할 수 있으므로 어셈블러라고 명명된다.”
어셈블러의 실현 가능성을 놓고 드렉슬러와 스몰리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셈블러의 위험성을 놓고 여러 가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먹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어셈블러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5. 레이 커즈와일 : 특이점주의
커즈와일 신디사이저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랜드피아노를 완벽하게 모방한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 나라의 영창 악기가 1990년에 커즈와일 뮤직 시스템즈를 인수했기 때문에 영창 커즈와일 신디사이저라는 이름으로 판매됩니다. 이 커즈와일은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탁월한 발명가입니다. 이 전당에는 2006년까지 300여명만이 올라와 있습니다.
커즈와일의 주된 관점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가 GNR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는 G(유전학), N(나노기술), R(로봇공학 및 인공지능)의 혁명이 단계적으로 펼쳐지면 인류의 문명은 생물학을 넘어서는 순간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류의 문명이 생물학을 넘어서는 순간을 커즈와일은 특이점이라고 부릅니다.
커즈와일은 그 시점을 2030년대로 잡습니다. 이점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반대하는데, 그들은 기술의 발전이 그렇게 빠를 것 같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커즈와일이 주장하는 사태는 2100년이나 2200년이 되어서야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커즈와일은 이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기술 가속의 법칙’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 자료를 원용하여 기술이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주장합니다. 100년 걸릴 일이 10년에, 아니 1년에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커즈와일은 GNR 융합이 가속도를 증가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특이점은 2100년이나 2200년이 아닌 2030년에 도달한다고 주장합니다.
커즈와일은 자신을 특이점주의자(Singularitarian)라고 고백합니다. 특이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의미를 자신의 삶에 반추하는 사람을 그는 특이점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커즈와일은 특이점주의가 종교와 중첩되는 부분이 있음을 시인합니다. 그는 우리가 거의 영원에 가깝게 살수 있는 방법에 접근했다고 봅니다. 이런 생각에 커즈와일은 적극적으로 몸의 생화학을 재편하고 있으며 몸의 상태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약물치료를 통하여 2형 당뇨 개선했고, 지금도 건강을 보존하는 것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는 특이점에 즈음하여 죽음을 정상적인 상태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이점에서 종교와의 갈등을 겪습니다. 커즈와일은 기존 종교의 입장은 죽음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커즈와일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의미있다는 주장에 반대합니다.
커즈와일은 철학자 막스 모어의 논의를 인용합니다. 모어에 따르면, 인류의 목표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들에 맞는 방향으로 과학기술을 조정하여 초월을 이루는 것입니다. 모어는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요, 심연 위로 걸쳐진 밧줄이다”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는 ‘수동적 특이점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그저 특이점만 기다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커즈와일은 오히려 특이점을 대할 때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커즈와일은 포스트휴먼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비판적입니다. 그는 사이보그적 융합 이후의 인간을 새로운 ‘종’으로 보는 견해에 반대합니다. 그에 따르면 종은 생물학적 개념입니다. 특이점은 생물학 자체를 초월하기 때문에 새로운 진화의 단계이기 때문에 생물학적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그는 사이보그든 인공지능이든 ‘인간’으로 간주합니다.
6. 나가면서: 중요한 두 가지 질문
지금까지 3주에 걸쳐 유전자 혁명, 사이보그 혁명, 나노 혁명을 여행하였습니다. 우리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곳에 깊이 머물러 평생을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미래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두 가지 질문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유전자로 생물체가 마구 변형되고, 몸의 절반 이상이 기계와 결합되며 몸 속에 작은 나노 로봇이 돌아다닐 때 그것은 인간인가? 동물과 기계와 결합한 존재를 우리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정신 업로드를 통해서 디지털화된 정보와 의식만 살아있을 때 그것은 인간인가? 인간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이 있어 지금까지 인류가 축척한 모든 정보를 알고있다면 그 존재는 인간인가?(커즈와일은 그렇다고 주장한다) 아니,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둘째, 이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란 무엇인가? 기술이 이제는 생물학을 초월하며 인간의 운명마저도 능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술은 우리 생활의 편리함을 넘어서 어쩌면 기술이 역사발전의 주체가 아닐까라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술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서 더 깊게 숙고해야 할 시기에 도달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두 가지 물음을 가지고 하이데거의 「휴머니즘 서간」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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