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지 탐방을 몇차례로 나누어 올립니다.
사진을 체계적으로 찍어 오지 못한 것이 좀 아쉽네요.
단체 사진 찍은 것을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순교지 탐방을 다녀와서
올해 우리 교회 여름 수련회는 예년과 달리 순교지 탐방으로 대신하였다. 우리나라의 순교지가 서쪽과 남쪽에 많아 충남 해미 성지부터 소록도까지 3박 4일이란 짧지 않은 일정으로 탐방이 이루어졌다.
해미 성지로
7월 26일 7시까지 교회로 모여 기도 후 7시 반에 60여명의 성도가 두 대의 버스로 나누어 타고 첫 번째 방문지인 충남 서산의 해미 순교지를 향해 출발했다. 가는 길이 조금 막혀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다. 게다가 해미 읍성과 해미 순교지가 떨어져 있는 것을, 같은 곳에 있는 줄로 잘못 안 데다, 읍성 주차장에 바로 차를 댔으나 순교지가 아닌 줄 알고 다시 천주교 성당이 있는 여숫골로 가는 바람에 읍성에 부탁한 해설사는 만나지도 못하고, 천주교 안에 있는 순교지를 먼저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마침 미사중이어서 일정상 성당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먼저 먹게 되었다. 점심 먹은 후 신부님의 안내로 영상물을 시청한 후 다시 정원으로 나와 해설과 함께 다시 경내를 돌아보았다.
해미 성지의 순교자들은 주로 1790년대부터 1880년대에 이르는 100년간, 천주교 신자들이 국사범으로 대량 처형당한 자들이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한 해에 1천여 명이나 처형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곳은 예수로 인해 핍박 받아 죽은 자들이 많아 여숫골로 불리었다는데 순교성지로 새로 단장되면서 인근의 유물과 유적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순교자들에 대한 처형 방법도 다양했는데 순교자들의 명단을 기록한 곳을 보니 곤장에 맞아 죽은 장사, 목매달아 죽인 교수형, 목이 잘려 죽은 참형, 옥중에서 죽은 옥사도 있고, 또 어린 아이들은 자리갯돌이라는 널찍한 바위에 태질하여 죽였다는 자리갯돌이 증거물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또 진둔벙이란 곳도 있는데 죄인을 빠뜨리고 묻어 죽인 곳이란 뜻인데 지명과 유적의 명칭 등을 통해 역사적 현장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순교란 자신의 믿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을 발로 밟고, 침 뱉으면 살려 준다는 말도 거절하고 굳이 죽음의 길을 택한 믿음의 선조들로부터 신앙은 목숨과도 바꿀 만한 가치 있는 일인데, 지금 우리는 이런 순교의 정신을 잊고 너무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부끄러움과 나도 하늘 나라에 저렇게 순교자의 이름이 새겨지듯 생명책에 내 이름이 새겨져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해미 성지는 몇 년 전에도 다녀온 터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은 그만큼 무뎌져 있음을 본다. 물론 전에는 해설 없이 내가 나름대로 상상하며 기록물을 보았다면 이번엔 해설을 통해 들어 알게 된 것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런 역사적 증거물들 앞에서 어떤 감동을 받고 돌아갈까를 생각해 본다. 불과 150년도 안 된 멀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들임에도 우리는 아주 먼 성경 속의 인물들의 이야기처럼, 시간적 거리감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연민과 동정 또는 감동의 마음을 잠시 가져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간에 쫓겨 해미 읍성 안의 순교자의 고난이 깃든 호야나무를 다시 보지 못하고 돌아선 것이 못내 아쉬웠으나 다음을 기약하고 김제의 금산교회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