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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탈출자들의 하나님
본문: 출애굽기 3:6; 이사야 42:1-17; 히브리서 11:8-16(창조적 탈출자, 하나님이 지으시고 경영하시는 성을 향해 떠난 사람들, 장막의 사람들); 사사기 4-5장(범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는 청년, globally thinking, locally acting)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 나라, 그리고 특수한 시대사적인 과업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가치, 자비와 정의, 진리와 긍휼을 구현하는 나라지만 그 나라는 시간과 역사적인 한계 안에서 점진적으로 그리고 귀납적으로(인간의 순종과 믿음을 매개하여 성취) 성취되는 나라입니다. 성경과 교회사를 영롱하게 수놓는 믿음의 조상들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순례하는 나그네였지만(진동하지 않는 나라, 흔들리지 않는 터를 향해 진군), 당대의 역사적 상황아래서 그 땅에서 이뤄질 하나님 나라의 대의를 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영원히 진동하지 않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나그네가 되었고 땅에서는 순례자의 신분으로 일생을 살았지만 그는 불타는 소돔 성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하나님께서 세우실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들의 후손들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건설하는 일에 투신하도록 작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은 삼백 세겔 어치의 막벨라 동굴이었습니다. 그것은 땅에서 이뤄질 하나님 나라의 지상성을 강조하는 땅임과 동시에 죽음을 너머까지 이어질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시적인 기념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하나님의 뜻은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창조적 결별을 하는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적인 주류 문화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켜 새로운 공동체의 조상으로 삼는 일이 자신의 시대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이삭과 야곱도 동일한 하나님의 약속을 유산으로 받고 세계를 주유천하하였습니다만 그들의 궁극적인 열망은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서 이뤄질 하나님 백성들의 공동체 탄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왔고 그들의 영혼의 나침반은 항상 가나안 땅을 향하고 있었습니다(요셉의 경우 예외가 아님. 그는 유언 시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 땅에 묻어달라고 함).
모세도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땅에 뿌리내리는 데 요청된 독특한 시대사적 사명을 수행하였습니다. 모세의 경우는 400년간의 거류민과 노예생활로 단련된 의존성, 의타성,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고 가는 사명이었습니다. 이 사명은 그의 시대에 맡겨진 특수사명이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사명은 가나안 땅에 직접 이끌고 들어가 12지파에게 땅을 배분하고 가나안 땅 정복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사명이었습니다. 사사들의 사명은 가나안 땅의 토착 종교와 정치, 사회 문화에 동화 되거나 침식되어 가는 이스라엘 지파들을 여호와에 대한 일편단심의 신앙으로 지탱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사사 사무엘의 사명은 사사 시대의 누적된 불순종과 어둠의 역사를 끝장내고 통일 왕정 시대를 여는 일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영적으로 아주 비둔한 엘리 세대와 엘리 가문의 영적 기풍 속에서 입양되어 훈련받았지만 하나님의 집에 숙식하며 하나님의 영음을 듣는 영적 신동이었습니다. 어둔 사사 시대, 썩 영명하지 못한 선배와 멘토의 후견 속에서 하나님의 예언자로 자라간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사명이 중앙화된 12지파를 각 지파의 영토로 분산 배치하는 것이었다면, 사무엘의 사명은 흩어진 12지파를 다시금 모세적 영도력으로 재결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서의 지도자들은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 시대사적 과업들을 잘 수행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한 비전을 땅의 역사 속에서 온존(溫存)해 갔습니다.
사무엘에게 위임된 시대사적 사명(12지파를 통일시키는 것)은 다윗에게 계승되었습니다. 다윗은 영원한 하나님을 믿고 섬겼지만 그 시대를 향하여 예비하신 하나님의 뜻을 섬겼습니다(David served God's purpose in his time, 행전 13:36).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땅의 역사를 통해 세대를 넘어 계승됩니다. 따라서 2006년 오늘 우리 시대의 기독청년 세대에게도 하나님의 뜻과 사명이 부과되어 있습니다. 일찍이 이스라엘의 청년세대는 시내 산 계약을 맺을 때 모세와 아론, 나답, 아비후, 그리고 70장로들과 시내 산 계약체결식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였고 청옥을 편 듯한 맑은 하늘 아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체결의 현장에 당당한 주체로 참여하였습니다(출 24:5-11). 출애굽 2세대였던 이 청년세대들은 한 세대 후에 모압 평지에서 이렇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신5:3).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 시대의 교회사적 과제는 이 땅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의 구원사라는 거대하고 연속적인 흐름을 통해 설정되고 계승되는 과업입니다. 하나님의 연속적인 구원사 전통에 정통한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과업이 특수한 시대사적 과업으로 부여되었습니다.
시내 산에서 출애굽 구원역사라는 위대한 사명에로 부름을 받는 모세의 경우를 살펴보십시오. 모세가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동안에 그가 애굽 땅에서 고난 받고 있던 동족을 잊고 지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는 망명지에서 낳은 자신의 첫 아들을 “게르솜”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즉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는 술회입니다. 미디안 땅은 객지에 불과하였고 그의 영적 중심이 가리키는 땅은 고난의 땅, 학대받는 동족들의 거친 숨이 터져 나오는 애굽 땅이었습니다. 그는 40세 이후 장성하여 애굽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함을 거절하고 하나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고난 받는 히브리인이 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히 11:24-26).
그는 이후로 미디안의 40년 망명생활 동안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겪고 있는 고난과 박해의 삶을 외면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약속에 정통하고 있었습니다. 선배 시대가 고투한 사명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처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생애와 함께 엮어진 채 진행된 하나님 나라의 과업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세 족장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핵심은 엄청나게 번성한 후손과 그들을 위한 가나안 땅 하사(下賜)였습니다. 이처럼 이전 세대에게 두신 하나님의 구원사적인 중심과제에 정통한 후진인 모세에게 계속 전진하여야 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중심과업이 수여됩니다.
출애굽기 3장 6절은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는 장면을 주목합니다. 모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자신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 그리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약속, 그리고 그들의 여정에 동행하시며 그들을 통하여 만민이 복을 받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에 묶여 있는 하나님”임을 천명합니다. 400년 만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너무나 혹독한 노예살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는-만시지탄이지만-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신 것입니다(출2:21-25). 하나님의 시간 의식이 너무나 광활하여 우리는 실족할 지경이지만 하나님은 400년 만에 나타나셔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려고 하십니다. 과연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미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지 못합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400년간의 망각 세월은 어찌 보면 하나님의 태만이나 사보타지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에 동하고 공명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언약의 상속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끼어든 에피소드적인 기간일 수도 있습니다. 모세적인 인물이 나타나 하나님의 가슴에 끓고 있는 파토스와 공명하고 동역할 때까지는 하나님의 구원사는 전진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한 이유는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거의 강제적으로, 절대주권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할 의무가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결심과 작정을 대리할 인간을 찾아오셨다는 것을 함의합니다. 그러니까, 모세에게 족장약속의 상속자가 되어 그 약속을 실현하는 중보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이요 부르심이었습니다. 모세는 아브라함 약속의 아들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동족 공동체의 고난 속에서 작동하는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를 깨닫고 그 거대한 섭리를 성취할 사명에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시내 산 떨기불꽃 속에서 모세가 들은 소명의 음성은 모세에게 400년 동안 지탱되어온 아브라함 언약, 이삭 언약, 야곱 언약의 성취를 위탁하는 사명의 음성이었습니다. 이처럼 한국기독청년들은 자신의 시대에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딛고 서 있는 구원사적인 궤적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흐름과 전통에 정통한 이해를 한 사람들이(역사의식,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역사에 대한 민감한 의식) 모세적 소명에 눈을 뜰 수가 있습니다.
* 위 글은 2008년 11월 20일 목포제일교회에서 목포크리스찬아카데미 주최로 열렸던 “김회권 교수 초청 세미나” 내용 중 일부입니다(주제: 한국 기독청년의 사명과 과제, 부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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