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역사] 개화파와 갑신정변 (한종수)

[SsamHwang]

개화파와 갑신정변(1884년)

조선 말기의 사회는 안으로는 낡은 틀을 깨뜨리고 근대사회로 나아가려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변화가 있었고, 밖으로는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워 통상을 요구하는 구미와 일본 등 열강의 침략 위협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일부 중인 출신의 지식인과 소장파 양반 관료들 사이에서 조선사회를 바꾸려는 사상이 형성되었다. 이 정치세력이 개화파였다.

김옥균·박영효朴泳孝·서광범·홍영식洪英植·서재필徐載弼 같은 양반 출신 청년 지식인들은 19세기 중엽 박규수朴珪壽·오경석吳慶錫·유홍기(劉鴻基. 호는 대치大致)의 사상과 서구문명에 대한 서적을 통해 세계정세의 흐름, 산업화와 자본주의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면서 개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876년 개항 이후 이들은 민씨 정권의 개방 정책에 참여하면서 김옥균을 중심으로 현실정치에서 개화사상을 실현하려는 세력(개화파)을 형성했다. 그런데 개혁의 궁극적 방향을 같이하면서도 접근법에서 차이를 드러냈는데 김홍집金弘集·어윤중·김윤식 등 온건개화파는 부국강병을 위해 민씨 정권과 타협하고 청나라에 대한 사대외교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수행하자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급진개화파는 청나라에 대한 사대관계 청산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고 민씨 정권을 타도대상으로 삼았다.

개화파는 충의계忠義契를 통해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서구의 근대 문물에 관심을 표하던 고종에게 접근했다. 특히 1880년 이래 해외시찰 정책, 즉 일본수신사와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의 파견, 청나라로 영선사를 파견할 때 박영효와 김옥균이 적극 참여해 세계의 정세의 흐름과 신문명을 직접 확인하러 나갔다.

양반의 자제뿐 아니라 다른 계층의 청년들도 모집해 일본의 군사사관학교와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등에 유학시켜 근대적 군사학, 학문, 사상 등을 배우게 했다. 그러나 임오군변은 수구적인 민씨 정권과 급진개화파의 관계를 급속히 냉각시켜 1884년에 갑신정변이 일어나게 되었다.

민씨 정권의 요청으로 청나라는 임오군변 진압 후 군대를 주둔했고 민씨 정권은 청나라에 의지해 개화파를 압박했다. 이런 상황하에서 민씨 정권에 참여해 점진적·평화적으로 개혁을 꾀하려던 온건개화파의 입지도 크게 축소되었다.

급진개화파는 청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해 ‘위로부터의 개혁’을 단행하기로 하고 1883년부터 무장 정변을 준비했다. 그들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국민개병제를 통한 강군을 원했으나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할 수 없이 이방원과 수양대군처럼 ‘사병’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윤치호尹致昊의 아버지 윤웅렬尹雄烈은 1883년 1월 함경남병사咸鏡南兵使로 있으면서 북청 지역의 장정 500명을, 박영효朴泳孝는 1883년 3월 광주유수로 좌천되자 그곳에서 약 500명의 장정을 모집해 신식 군대로 양성했다. 거기에서 서재필 등 14명의 하사관 생도들이 1884년 7월 일본에서 귀국해 핵심이 되었다. 김옥균도 43명으로 이뤄진 비밀 무장조직 충의계를 만들어 신복모申福模에게 지휘하게 했다. 개화파는 약 1,000명의 무력을 양성했다.

때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1884년 베트남 문제를 둘러싸고 청나라와 프랑스가 충돌하게 되자 청나라는 1884년 5월 한양에 주둔시킨 3,000명 중 1,500명을 베트남 전선으로 이동시켰다. 8월에 시작된 청불전쟁에서 프랑스 함대가 청의 복건함대를 격파하는 등 상황이 청나라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자 개화파는 9월에 거사를 결정했다.

본격적인 정변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1884년 10월 30일 서울로 돌아온 일본공사 다케조에[竹添進一郎]는 개화파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바꾸고 호의를 보이며 접근했다. 개화파는 군사력을 보충하고 청군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 측 제의에 응해 일본으로부터 공사관 경비 병력 150명을 지원받고 3백만 엔을 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1884년 12월 4일(음력 10월 17일) 홍영식洪英植이 총판을 맡은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을 계기로 정변에 성공했다. 그들은 국왕과 왕비를 창덕궁에서 방어하기 좋은 경우궁(景祐宮.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사당)으로 옮기고, 군사권을 가진 한규직韓圭稷·윤태준尹太駿·이조연李祖淵 등과 수구파의 수장 민태호閔台鎬·민영목閔泳穆 등을 불러들인 후 처단하고 자신들을 배신한 환관 유재현柳在賢도 죽였다.
개화파는 새 정부 수립에 착수했다. 중요 각료는 영의정 이재원(李載元. 국왕의 종형), 좌의정 홍영식, 전후영사 겸 좌포장 박영효, 좌우영사 겸 대리외무독판 서광범, 좌찬성 겸 우참찬 이재면(대원군의 장남), 예조판서 김윤식, 병조판서 이재완(李載完. 이재원의 아우), 형조판서 윤웅렬, 공조판서 홍순형(洪淳馨. 왕대비의 조카), 호조참판 김옥균, 병조참판 겸 정령관 서재필, 도승지 박영교朴泳敎 등이었다.

새 정부는 개화파 요인과 왕실 종친의 연립내각이었다. 새 정부의 기반을 굳히기 위해서 종친을 중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화파 내의 공식 대표는 좌의정 홍영식이 맡고, 재정은 김옥균, 군사는 박영효와 서재필, 외교는 서광범, 국왕의 비서실장은 박영교가 맡았다.

정변 다음 날인 12월 5일 새 정부가 수립되었음을 내외에 공포했다. 동시에 국왕의 이름으로 미국공사, 영국총영사, 독일영사 등 각국 외교관들을 불러 새 정부의 수립과 개혁정치를 실시한다고 알렸다.

정변에 놀란 청군 측은 12월 5일 개화당의 지지자로 위장한 심상훈沈相薰을 경우궁으로 들여보내 왕비와 연락하게 하고 그들의 계획을 전했다. 청군의 반격 계획을 알게 된 왕비는 경우궁이 좁아 불편하다며 창덕궁으로 환궁하자고 주장했고 고종도 지지했다. 김옥균은 창덕궁은 너무 넓어 소수 병력으로 수비하기가 불리하다며 반대했지만 왕명을 거역할 수 없어 경우궁 옆 이재원의 계동궁桂洞宮으로 국왕과 왕비의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왕비가 계속 창덕궁 환궁을 요구하고 고종도 적극 동조하므로 12월 5일 오후 5시 창덕궁으로 옮겼다.

국왕에 대한 호위는 경우궁에서와 마찬가지로 했다. 국왕을 중심으로 ①내위內衛는 개화파의 전사들인 충의계원들과 사관생도 약 50명, ②중위中衛는 150명의 일본군, ➂외위外衛는 개화파 1천 병력으로 방어하게 했다. 그러나 이 병력으로 수비하기에는 창덕궁이 너무 넓었다.

새 정부를 수립한 개화파는 개혁정치의 지침인 혁신 정강을 고종이 계동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긴 12월 5일 저녁부터 12월 6일 새벽까지 밤을 새워 협의해 6일 오전 9시경에 국왕의 전교 형식으로 공포하고 시내의 주요 장소에 게시했다. 이날 오후 3시 고종이 조서를 내려 공포한 정강의 실시를 선언했다.

정강은 일본 쪽의 기록에는 80여 조항에 달했다고 하나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은 김옥균의 《갑신일록甲申日錄》에 수록된 14개 조항이다.
①대원군의 조속한 귀국, 조공 폐지.
②문벌 폐지와 인민 평등의 권리 제정.
➂전국의 지조법地租法 개혁
④내시부內侍府 폐지.
⑤탐관오리 처벌.
⑥환곡제도의 폐지.
⑦규장각 폐지.
⑧순사제도巡査制度의 조속한 실시.
⑨혜상공국惠商公局 폐지.
⑩그동안 유배, 금고禁錮된 사람들을 다시 조사해 석방할 것.
⑪기존의 4영營을 합치고, 그중에서 장정을 선발해 근위대近衛隊를 조속히 설치함.
⑫모든 국가재정은 호조戶曹로 하여금 관할하게 하며 다른 모든 재무 관청의 폐지.
⑬대신과 참찬은 의정소議政所에서 매일 회의를 해 정사를 결정한 뒤에 왕에게 품한 다음 정 령政令을 공포해 정사를 집행할 것.
⑭정부는 육조 외에 불필요한 관청을 모두 폐지하고 대신과 참찬으로 해금 토의해 처리.

하지만 고종이 조서를 내린 바로 그 시간인 오후 3시 1,500명의 청군이 돈화문과 선인문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외위를 담당한 조선군이 분전했으나 수십 명의 전사자를 내고 패퇴하고 중위를 담당한 일본군은 싸우지 않고 철수했다. 넓은 창덕궁에서 이제 남은 개화당의 50명의 장사와 사관생도만으로는 1,500명의 청군을 감당할 수 없었다. 청군의 무력에 밀려 개화파의 집권은 ‘3일 천하’로 끝나게 되었다.

김옥균·박영효·서광범·서재필 등 9명은 일본으로 망명하고 홍영식·박영교와 사관생도 7명은 고종을 호위해 청군에 넘겨준 후 죽임을 당했다. 국내에 남은 개화파는 색출되어 수십 명이 피살되면서 완전히 몰락했다. 이후 10년 간 우리나라, 특히 수도 한양은 청나라 군대의 사령관 원세개袁世凱의 천하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