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섬 가는 길
섬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늘 길과 바닷길입니다. 인간은 문명의 발달로 수많은 길을 만들어 왔지만,
여전히 하늘과 물에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길들은 날씨의 변화에 민감합니다.
폭풍이 오거나 파도가 높으면 어김없이 길이 막힙니다.
그럴 때 섬은 온전한 섬이 됩니다.
바깥과 완전히 분리된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립이 없었다면,
섬은 제 나름의 모양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자기만 가지고 있는
꽃을 피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립이 자생력을 키운 것입니다.
제주에 처음으로 왔던 날이 떠오릅니다.
제주로 오기 전, 내 머릿속의 제주는 관광지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삶의 터전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자, 낯설고 두려운
곳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먹으로 그려 놓은 듯한 검은 섬,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제주의 이미지였습니다.
하지만 4년 가까이 살게 되면서 제주는 어느새 꽃섬이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제주로 건너 왔던 그날의 일기를 들춰봅니다.
『처음 바다의 색은 회색에 가깝더니, 점점 맑아진다.
머릿속엔 지난 10년 동안의 생활이 짜글짜글하다. 힘들었다.
사람들은 가시를 세우고 내게 다가왔다. 아니다. 내가 가시를 세우고
사람들을 만났다.점점 파도가 거세진다. 태초인 듯, 파도는 산을 이루고,
강을 이루고, 가장 높은 봉우리에선, 설산처럼 흰 포말이 부서진다.
지구의 탄생을 보는 것 같다. 저렇게 지구라는 별이 생성되었으리라.
파도는 이내 부서진다. 저렇게 지구라는 별은 다른 형태로 변하리라.
저 순간이 몇 십억 년이라니!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본다. 저렇게 파도가
일어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그 잠깐 속에 내 생이 있다. 잠깐의 틈새
속에 살다가는 인생이 왜 이리 복잡한가.10년 동안 모든 것을 잃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의 바다를 건넌다.
붙잡을 것 하나 없는 바다를 건너, 아무런 연고가 없는 섬으로 간다.
그리고 나는 이제 태어난다. 다행히 내 가는 쪽에 햇살이 눈부시다.
물낯의 반짝이는 비늘. 신생이라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다.
잃을 것이 없으므로, 조급하지도 않다.』여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섬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바다는 단순한 물이 아닙니다.
바다를 건넌 자는 바다만큼의 눈물을 흘려야 다시 돌아갈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선택한 제주행이었기에 나는 위리안치* 형에 처해진 옛
사람처럼 그저 담담히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가혹했습니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속에서 보냈던 몇 년 동안, 나는 속울음을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바닷가에 나가 파도를 바라보았습니다.
파도는 내 안의 더러움을 씻어 내며,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든 생애(生涯)라는 난간을 걸으면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 첫 번째 가르침이었습니다.
파도는 하나의 물결마다 난간을 가지고 있었고, 파도 하나하나가
낭떠러지였던 것입니다.하지만 그토록 많은 벼랑이 겹을 이룬 게
바다이지만, 수평선은 미동이 없었습니다.
결국 파도는 무수한 물 주름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많은 난간을 다 보듬고도 평온한 수평선. 그것이 바다가 주는 두
번째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런 바다를 인간의 모습에 비유한다면, 군자이거나 도를 깨친 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군자나 도인에게도 삶의 고비가 없을 리 없지만,
다만 그들은 수평선처럼 무수한 절벽을 물결무늬로 품어 버릴 뿐입니다.
지붕에 올라 바다를 바라봅니다.
마당에 걸린 빨랫줄에서는 평화롭게 빨래가 펄럭입니다.
빨랫줄보다 높은 곳에는 앞집의 지붕이 있습니다.
빨갛거나 파랗거나 녹색인 지붕들이 자연의 원색과 함께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지붕보다 더 높은 곳에 수평선이 있고, 사람의 집들은 수평선 아래에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다 물 아래의 집들입니다.
집들이 활짝 핀 꽃과도 같습니다. 마을이 어느새 꽃밭으로 보입니다.
그 집들엔 꽃나무의 뿌리처럼 억세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있고,
활짝 핀 꽃과도 같은 사람들의 마음씨가 있습니다.
파도처럼 거친 사투리와 물방울처럼 동그란 마음들이 있습니다.
어멍이 있고, 아방이 있고, 하루방이 있고, 할망이 있고, 오라방도 있습니다.
하나같이 동그라미를 품은 이름입니다. 그렇게 둥근 꽃섬이 있습니다.
위리안치: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
이대흠1967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9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