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달력을 그레고리우스력이라고 한다. 1,600여 년 전 카이사르가 만든 율리우스력을 1582년 2월 24일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수정해 오차를 바로잡은 데서 나온 이름이다. 율리우스력의 1년은 실제보다 11분 14초 긴 데 이그나티우스 단티라 는 학자가 바티칸 전망대에 설치된 해시계를 이용해 그 차이를 증명 함에 따라 이를 수정하고 오차를 더 줄인 새로운 달력을 제정하게 된 것이다.
율리우스력은 카이사르가 직접 나서서 개정한 달력이다. 기원전 1세 기의 달력은 계절을 3달이나 앞서 있었다. 카이사르는 이집트에 머 무를 때 점성술에 눈을 떠 이집트 태양력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기원전 46년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점성가 소시게네스와 마르쿠 스 플라비우스에게 지시해 달력을 개정했다. 이는 현재 사용되고 있 는 그레고리우스력과 100년에 하루 정도의 오차가 날 정도로 상당히 정확한 것이었다.
개정 결과 개정 원년의 일수는 445일로 조정됐고, 다음해부터 2월은 29일, 나머지 달은 30, 31일이 교대하여 365일이 되었다. 이때부터 4 년마다 2월은 하루가 추가돼 30일이 되었고, 3월 대신 1월이 첫 달 로 정해졌다. 새천년으로 들어가는 1999년 말과 2000년 초에 Y2K 때문에 시끄러웠듯 달력을 개정한 해에는 계약·항해 계획·세금 징 수 등 날짜와 관련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카이사르가 개정하기 전의 달력은 태음력이었다. 1년이 10달 304일 이었는데 야누스월(ianuarius)과 정화월(februarius)을 추가해 12개월 에 354일로 만들었다. 2년마다 테르미날리아 축일(2월 23일) 다음에 20일짜리 윤달을 끼워 넣고 그래도 모자라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8 년마다 윤달을 넣는 방식으로 오차를 줄였다.
새 달의 시작은 사제가 정했다. 사제가 달의 변화를 육안으로 관찰 해 새로 달이 생기는 날을 새 달 첫 날로 선포한 것이다. 구름이 끼 어 확인할 수 없는 경우 다음날로 발표를 미루기도 했다.
이처럼 들쭉날쭉한 달력체계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주 민감하 게 받아들여졌다. 임기 만료 시기를 연장하거나 선거일을 당기고 늦 추며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가 달력을 바꾼 것은 이런 정치적 술수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율 리우스력이 카이사르의 위업이라는 평가는 결과적으로 나온 얘기지 만 당대의 정적들은 그가 별조차 다스리려 한다고 비난했다.
원로원은 기원전 44년 카이사르의 업적을 기념해 퀸틸리스 달을 율 리우스 달로 개칭했다. 달력에는 아우구스투스의 이름도 올랐다. 카 이사르가 비명에 간 후 사제들이 윤년을 임의로 정하자 아우구스투 스는 율리우스력을 회복시켜 청동판에 새겨넣었다. 원로원은 이를 기념해 섹스틸리스 달을 아우구스투스 달로 바꾼 것이다. 마르스· 마이아·유노 같은 신들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아우구스투스 를 효율적으로 신격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애초 율리우스력의 7월, 곧 율리우스 달은 31일까지 있는 큰 달, 8월 아우구스투스 달은 30일까지 있는 작은 달이었다. 그러나 카이사르 와 아우구스투스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8월도 큰 달로 바꿨 다. 그에 따라 9월부터 날 수가 뒤바뀌고 전체적으로 하루가 늘어났 다. 결국 2월의 날 수를 하루 줄여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오늘날 사 용하는 양력의 날 수는 카이사르가 아니라 아우구스투스 때 그의 비 위를 맞추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