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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버린 사람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의 기록(2021)
김효순, 서해문집, 2015-08-15, 440쪽, 개정판 2021(P.446+2)
- 김효순(1953-), 서울대 정치학과 71학번, 한겨례신문 전무이사. 이영희 재단 이사장
어느 나라든지 계몽되었던 나라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상의 집회, 결사의 자유는 각 나라가 자기 방식으로 억압하고 있다고들 한다.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는 인권선언 이래로 사상과 결사의 자유에 대해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을 비하하고 억압하는 언론과 행동들에 대해 비판하고 규제하는 쪽으로 세계사는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런 인간의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머릿속을 통제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방식은 여전하다.
철학사에서 상층에서 무오류를 설정하는 철학으로서, 부동의 원동자를 설정한 아리스토텔레스를 답습하고 인정하는 것이고, 과도하여 절대자 또는 통일자가 하나뿐이라고 주장하고 신앙에 빠진다. 상층철학이며 정지의 철학이다. 벩송이 그게 얼마나 착각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쓴다. 그런데 인성의 발현으로 말길과 모임의 자유를 찾는 쪽은 플라톤에서 일 것이다. 그가 아페이론이라 했던 심층의 발현 쪽에서 찾는다. 플라톤은 정지와 운동을 함께 두고 다루었다고 하지만, 심층 또는 인민에 대한 고민을 죽 안고 갔다.
입헌 또는 법률의 정의와 공정을 주장하는 쪽은 여전히 상층의 철학이고, 인민에게 저항과 결사의 자유를 주장하는 쪽은 심층의 철학에서이다. 서양 철학에서 정지(부동, 공간)의 철학과 운동(흐름, 시간)의 철학의 대비가 이어 온 것인데, 사람들은 우선 짧은 기간에 꽃 피웠던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흐름 철학의 기원을 삼고, 그러고 나서 형이상학의 이중성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지만을 잘못 이어받은 중세의 1500여 년 간 무오류성에 짓눌려 있었다. 다시 태어나다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고대 그리스의 인성의 사유에 대한 반성은 자의식의 발현으로 철학적 사유를 달리하게 된다.
과학의 발달과 새로운 전환적 사유가 발현되고 또한 개선되어 나가다가, 혁명을 맞이 한 것이 프랑스에서 인민의 대혁명이다. 정치 세력의 교대를 가져온 앵글로색슨계와 달리 왕권과 교권을 제거한 혁명은 인성의 자유를 분출하게 하였고 세 번이나 혁명을 거친다. 그 혁명의 반동은 거세었고, 유럽의 앵글로색슨계는 빅토리아조와 합스부르크 왕조가 1900에까지 유지된 것을 생각해보라. 거의 대부분의 유럽은 여전히 상층의 부동의 원동자를 믿는 의식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일제의 식민 통치는 마치 참주(폭군)제와 같이 힘으로 인민을 제압하고 억압하였다. 그런 방식을 해방 후에 미국의 지해하에 이승만 정권과 군부 정권에 의해 198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 권력은 인민 위에서 통치와 훈육을 실행했다. 광주의 항쟁을 거쳤음에도 군부가 10년 이상을 거쳐 왔으며, 인민의 의사에 의해 헌법을 바꾸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실정법이라는 이름으로 통치와 훈육을 실행하고 있다. 그 속에는 인민의 결사의 자유를 얽매는 보안법이 존속한다. 그럼에도 역사는 인민이 성장하고 주권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헌법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민의 권위의 성장이 중요하다. 인민이 스스로 자치와 자유를 쟁취하는데 대해 상층이 억누를 수 없는 방식으로 의식의 변화, 사건의 변역을 이루면서 가야 할 것이다. 상층은 인민의 덕목인 저항, 봉기, 항쟁, 혁명을 반항, 소요, 반체제, 전복이라고 하면서 마치 실정법으로 구속할 수도 해산할 수도 있는 것처럼 실행하고 있다. 인간의 자연권은 인성에 반하는 것이 아닐 경우에 그 활동이 법률의 제정이든 체제의 전복이든 이룰 수 있었던 것이 역사였다. 그 역사는 르네상스에서 대혁명에서 유엔 인권선언에서 점점 바뀌어 가고 있다.
서양의 변화의 과정은 400여 년 간에 걸쳐서 과학의 발달과 보조를 맞추면서 세대의 변화를 가져왔기에 기억의 저장과 활용을 시대에 따라 이끌어 가는데 비해, 우리는 과학과 제도의 수용에서 전통의 단절을 겪으며, 20세기 후반에 짧은 시기에 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권의 가장 기본이 사상과 결사의 자유는 묶여있다. 게다가 인성의 반대가 아니라 사상의 다름으로 인해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 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인민에게 일반교육으로 철학이 필수적이다. 그 철학에서 플라톤이 고심했던 아페이론이 왜 권능을 지니고 있는지를 깨달아가고 있다.
인민이 동인이며 인민이 최종심급이며, 헌법과 법률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에서 정의를 규정하는 방식도 여럿이다. 평등을 실현하려는 정의에는 숫적으로 평균화도 있을 수 있고, 질적으로 비례 평등화도 있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강도적인(intensif) 평준화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민 속에서 상부상조와 상호침투로서 여러 계열들의 교감과 공감에 의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 플라톤의 정의(正義)에서는 세 계층의 조화에 있다고 했었다. 다양체로서 인민의 계열들 사이에 조화를 통한 합의와 계약이 진정한 공동체 사회의 본성을 실현하는 쪽으로 나갈 것이다.
통제와 억압의 수단으로 쓰이는 이항 대립에서 한편이 다른 편을 악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정의도 조화도 아니다. 일제강제 시대로부터 국가보안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그 실정법의 방식이 아직도 성립한다는 것은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항 대립으로 빨갱이 또는 악의 축으로 모는 것이 공동체를 얼마나 피폐하게 하고 있고, 자연권의 발현과 인성의 자기완성의 길을 부수고 있는지를 인민들이 사유하고 숙고할 때이다. 21세기 인민들 손안에 학습의 도구가 쥐여졌다는 것이 새로운 공동체를 발현할 수 있는 과정이다. 인민들 각자가 작은 하나로서 인민의 덕목을 실행하는 과정은 총체적 경험으로서 다양체가 진행하는 길이며, 저항 봉기 항쟁 혁명을 이룰 수 있는 길이리라. 인민 속에서 인민에 의해 인민의 새로운 역사가 창발하리라. (55O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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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결국은 기억을 둘러싼 싸움이다. 이 책에서 언급된 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과 좌절과 흘러간 세월은 어떤 방식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지 않으려면 진상을 밝히고 기억하는 작업을 잠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429)고 강조한다. - 입말로부터 쓴글의 작업은 여전히 소중하다. (54V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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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1월 22일, 김기춘이 엮은 유학생 간첩사건. - 그 해 겨울인가보다 내가 군대생활 중에 외출로 부산대 철학과를 찾아갔었는데, 무얼 공부하는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 그해 학과사무실은 싸늘했고, 학생들은 어느 누구도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장전동(?)인가? 학교 앞 서점에서 책을 사고 주변 음식점에서 막걸리 한잔 한 추억이 있다. 그리고 나중에 누군가에 의해 들려진 소문으로 그 싸한 기운이 무엇인지를 들었었다. 제대하고 복학하고 난 뒤에야 부산대 윤노빈 교수의 신생철학(1974)의 복사본을 볼 수 있었다. - 이 책에 관해서는 잊고 있다가 이규성이 한국현대철학사론(2012)을 집필하면서, 그가 신생철학(2003, 학민사 재출간)이 벩송과 연관이 많다고 했을 때, 다시 읽은 나로서는 그 책이 벩송보다 니체와 가깝다고 했었다. 그리고 김지하는 윤노빈이 동학에 연관이 있다고 전했는데, 그 책 속에 한정시켜 본다면, 동학(東學)과 변역(變易)에 관심을 스피노자와 벩송에 접근시킨 것으로 읽히기 보기보다, 저자 윤노빈에 대한 이런 읽기 방식은 김지하의 해석일 것이라고 했었다. (55OMI)
<< <釜山大學校在日交胞間諜團事件>, 이 사건으로 부산대학교 학생 박준건, 김오자, 김정미, 김준홍, 노승일, 박명근, 이원이 등과 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하일민과 대학원생 김명수 등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11월 22일 ‘재일 교포 간첩단 사건’으로 명명되어 언론에 발표되었다. 여기에는 총 24명이 연루되었는데 이들은 김오자와 단순한 지인 관계에 있거나, 이원이와 같이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 관련자임에도 같이 묶여 들어가기도 하였다. 이로써 단순한 반정부 유인물 살포 사건을 의도적으로 확대하여 간첩 사건으로 조작했던 것이다. / 일명 김오자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김오자는 무기 징역, 이원이[경제학과 4학년] 징역 5년, 김정미[철학과 3학년] 징역 3년 6월, 김준홍[정외과 3학년]과 노승일[정치외교학과 3학년] 및 박준건[철학과 3학년]은 각각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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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정판 서문 4-7 - [초판: 추천의 글 | 이석태]
들어가는 글 10-23
1 학자, 작가, 변호사의 삶으로 본 1970년대 재일동포
2 두 재일동포 여성의 용감한 폭로
3 학문의 자유와 김원중
4 ‘조선기자’ 무라오카와 민족일보 사건 79-
5 유학생 사건 재심 무죄 1호 이종수
6 야쿠자 두목 양원석과 한·일 우익의 동맹 맺기
7 김정사 사건과 한민통 불법화
8 중앙정보부의 민단 장악과 민단 내 ‘자주파’ 거세
9 서 형제 사건과 전향공작
10 사형수의 삶: 강종헌, 이철, 김달남
11 울릉도 사건과 이좌영
12 일본의 구원운동과 한일 시민사회의 만남
13 일본인 구원활동가들은 누구인가
나오는 글 / 추천 글
참고문헌 / 찾아보기
# 내용 중에서 *** ***
§001 개정판 서문 4-7 - [초판: 추천의 글 | 이석태]
2015년 8월 초판, .. 2018년 11월 일본어판.
(일본어) 번역판 편집자인 세키 마사노리(關 正則 관 정칙)의 울음 ... 왜 계속 써왔는가, 왜 침묵을 지켜왔는가: 제주도 4.3사건의 기억과 문학, 조국이 버린 사람들(일본판 2018) (5-6)
§002 들어가는 글 10-23
올해(2015년)는 ‘11.22’사건이 일어난 지 40년이 된다. ../ 사건의 기름은 중앙정보부가 대대적으로 발표한 날짜에서 유래한다. ..중앙정보부는 “모국 유학생을 가장해 국내 대학에 침투한 재일동포 간첩 일당 21명을 검거했다”고 얼론에 공표했다. ..‘11.22재일 한국인 유학생, 청년 부당체포 사건’이란 긴 이름을 쓰기도 한다. (12-13)
§01. 학자, 작가, 변호사의 삶으로 본 1970년대 재일동포 25-40
학자 박경식(1922-), 소설가 이회성(李恢成, 1935-), 변호사 김경득(金敬得, 1949-2005)
§02. 두 재일동포 여성의 용감한 폭로 41-55
고순자(?-?), 권말자(1949-)
§03. 학문의 자유와 김원중 57-78
김원중(1951-)
§04. ‘조선기자’ 무라오카와 민족일보 사건 79-115
무라오카 히로토(村岡博人, 촌강박인 1931-2017): <§4 ‘조선기자’ 무라오카와 민족일보 사건>, 재일동포 취재 경력으로 ‘조선기자’라는 별칭을 얻음. 축구국가 대표 문지기. 기자로 전환후 1959년 말 재일동포 북한 귀환 취재
이영근(李榮根, 1919-1990: 무라오카), 조용수(趙鏞壽, 1930-1961)
서울대 의대생 허경조(1954?) 서울대 대학원 장영식(1954?)
손성조(1932) - 김자동(1928-) 최덕신(崔德新, 1914-1989)
§05. 유학생 사건 재심 무죄 1호 이종수. 117-142
이종수(1958-)
§06. 야쿠자 두목 양원석과 한·일 우익의 동맹 맺기. 143-169
양원석(梁元錫. 1923-1991, 柳川次郎(야나가와 지로)
대사관 내 중정 조직 책임자인 김기완 공사(당시는 김재권이란 이름 사용, 성김 전 주한 미국 대사의 부친)는 김동운 1등 서기관에게 공작계획서를 작성토록 해 김동운이 ‘KT공작계획서’를 만들어 귀국해서 이철희 차장보 등에게 브리핑했다. KT는 중앙정보부 내부에서 김대중을 지칭하는 약어다. (159-160)
§07. 김정사 사건과 한민통 불법화 171-200
김정사(1955-)
< 김대중이 사형 판결을 받은 것은 한민통의 의장, 즉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에 대한 조작간첩 사건에서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힌 단체의 수괴였기 때문이다. 한민통에 대한 반국가단체 판결을 내린 판사의 한 사람이 바로 얼마 전까지 국무총리를 지낸 김황식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김대중 등의 용공성을 입증하기 위해 김정사의 간첩조작 사건에도 증인으로 활약했던 윤효동이란 전향 간첩을 다시 증언대로 불러냈다. 윤효동이 법정에서 정제되지 않은 이북 말투로 김대중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열변을 토할 때 순발력 좋은 김상현 의원이 이 법정이 어느 나라 법정이냐고 크게 외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북한 간첩이 북한식 말투로 민주인사들을 모함하는 발언을 증언이랍시고 듣는 법정이 대한민국 법정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정인가를 따져 물은 것이다. 쇼맨십 풍부한 문익환 목사는 벌떡 일어나 “내란이다!”라고 소리쳤고, 다른 피고인들도 따라 일어나 윤효동을 향해 “내란이다!” 하고 소리쳤다. 겁먹은 윤효동은 검사와 헌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쪽문으로 쫓겨나갔다고 한다. 내란의 왕국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슬픈 코미디였다.> -특집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한국 현대사 속 내란(한겨레 :2014-02-16 12:15),
§08. 중앙정보부의 민단 장악과 민단 내 ‘자주파’ 거세 201-254
권일(權逸, 1911-2001: 권혁주權赫周), 김재화(1904-),
정건영(1923-) 대 정재준(1917-), 곽동의(郭東儀, 1930)
§09. 서 형제 사건과 전향공작. 255-289
서승(徐勝, 1945-), 서준식(徐俊植, 1948-) 1971년 소위 유학생 형제 간첩단 사건.
§10. 사형수의 삶: 강종헌, 이철, 김달남. 291-329
강종헌(康宗憲 1951k-), 제일동포 이철(1948-), 김달남 :
남산 더 비하인드 스토리: 대한민국 대공수사 총본산(이기동, 시사문화사, 2011)
§11. 울릉도 사건과 이좌영. 231-357
이좌영(李佐永, 1928-2008), 최종길(崔鐘吉, 1931-197) 법
§12. 일본의 구원운동과 한일 시민사회의 만남. 359-390
마쓰이 야요리(松井やより, 1934-2002), 도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 1921-2021), 요시마츠(쓰) 시게루(吉松繁, 1932-?)
김한림, 박순천, 공덕귀(동래 일신여학교 출신들)
정치범 구원운동에 대한 열정은 지금도 식지 않았다. 그는 “구원운동이 자칫하면 독재정권의 탄압에만 중점을 두기 쉬우나, 오히려 일본 정부의 독재지원이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잘라 말했다. 재일동포에 대한 공안의 차별의식은 뼛속 깊숙이 박혀 있다고 했다. (390)
§13. 일본인 구원활동가들은 누구인가. 391-423
단카이(단괴, 團塊) 세대란 1947년부터 49년 사이에 태어난 1차 베이붐 세대를 가리키며 약800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유럽에서 ‘68혁명’이 벌어진 1968년부터 일본의 대학가에서 학생운동을 주도한 ‘전학공투회의(全學共鬪會議, 약칭 전공투)’ 세대이기도 하다. (394)
이동석, 윤정헌 – 둘 다 일본 후세고등학교 동기생 (403)
§14 나오는 글 424-429
“결국은 기억을 둘러싼 싸움이다. 이 책에서 언급된 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과 좌절과 흘러간 세월은 어떤 방식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지 않으려면 진상을 밝히고 기억하는 작업을 잠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429, 마지막 문단)
§003. 추천의 글: 430-433.
이석태(李錫兌, 1953-), 전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오늘날 이와 같은 사건들이 다시 반복될 가능성은 과거와 비교하여 현저히 낮아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분단 체제가 유지되는 현실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되풀이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다. (432)
# 첨***
2009년 6월 2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들과 자택 부근에서 오찬을 하며 한 말이다.<<“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반드시 이기는 길도 있고, 또한 지는 길도 있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반드시 지는 길이 있다. 탄압을 해도 ‘무섭다’ ‘귀찮다’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해 행동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고 망한다. 모든 사람이 나쁜 정치를 거부하면 나쁜 정치는 망한다. 보고만 있고 눈치만 살피면 악이 승리한다.>>
(6:05, 55OMJ)
#가나다순
강상중(1950-, 나가노 데쓰오(永野鐵男): 와세다 대학, 독일 에르랑엔 대학, 도쿄대학 사회정보연구소 조교수. 세이가쿠인 대학 학장. 재일(在日) ..
강종헌(康宗憲 1951k-): <§10 사형수의 삶: 강종헌, 이철, 김달남.> 중학교 2학년 때 지문날인 충격으로 모국 유학 결심.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차장. 자서전 《사형대(死刑臺)에서 교단(敎壇)으로―내가 체험한 한국 현대사》(角川學藝出版 刊, 2010)
강신자(1961-): 재일동포. 요꼬하마시 출생. ‘일조(日朝) 문제연구회’ 아주 보통의 재일한국인(1987)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덴츠 EYE에서 카피라이터,
고순자(?-?) 히로시마 현 출생, 1980년 모국 유학, 1982년 고대 국문학 대학원.
곽동의(郭東儀, 1930) 경남 남해군,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 한인 사회운동가. 『조국통일론(祖国統一論, 1992)』
권말자(1949-) 일본 우라와시 출생, : 1974년 서울 교육대 유학중 중앙정보부의 간첩 조작과 성고문을 폭로한 권말자와 고순자
권일(權逸, 1911-2001: 권혁주權赫周) 경북 예천, 메이지대학 법학부. 만주국 법관 출신 부일파 5.16지지
김경득(金敬得 1949-2005, 가나자와 케이토): 와카야마 출생 일본 사법연수소 국적 조항의 장벽을 뚫고 첫 재일동포 변호사.
김규남(1929k-1972): 집권당(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간첩으로 구속된 1969년 김규남 사건, 1972 사형집행
김석범(金石範, きん せきはん, 1925-) 일본의 소설가. 부모는 제주도출신, 재일 한국인, 조선국적, 본명 신양근(愼陽根).: 만덕유령기담(万徳幽霊奇譚, 1970) 화산도(火山島)(1976연재)
[김오자는 부산대 73학번 재일교포 유학생. 1975년 부산대학교에 재학 중, 박정희 정권 시절 김기춘이 조작을 주도한 ‘재일동포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고문을 받고 수감생활. 2019년 8월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
김원중(1951-) 도쿄 출생, 부모는 제주도 출신 1976 서울대 사회대학 대학원생 <§3 학문의 자유와 김원중.> 맑스주의 경제학.
김자동(1928-) 상하히 태생 감가진의 손자. 최덕신과 가까운 사이.
김재화(1904-) 밀양출생, 대구 카톨릭 신학교 중퇴 일본으로 건너감. 5.16반대 성명
김정사(1955-) 사이타마현 제일동포 2세, 1977년 서울대 사회계열 입학.
김한림(1914-1993) 동래 일신여학교 출신, "양심수들의 대모" / 남편 김소운(수필가.82년 작고) / 74년 딸 김윤(당시 서강대 영문4)씨가 민청학련사건의 홍일점으로 구속
박경식(1922-) 조선태생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9년 동양대학 문학부 사학과. : ‘강제연행’이라는 말을 처음 쓴 역사학자 박경식 조선인 강제연행기록: 1910-1945, 나라를 떠나야 했던 조선인에 대한 최초 보고서(2008, 박경옥역, 고즈윈)
서승(徐勝, 1945-) 일본 교토 출생. 한국의 교수, 작가, 전직 정치범. 1971년 소위 유학생 형제 간첩단 사건.
서준식(徐俊植, 1948-) 일본 출생, 대한민국 진보 인권운동가, 사회주의자
서승/서준식 1971년 4월 대통령선거 직전 발표된 서승·서준식 형제 사건이다. 형제가 함께 구속된 데다 가혹한 고문 의혹이 제기돼 일본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몰고 왔다. 서승의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 서준식의 목숨을 건 옥중 전향공작 고문 폭로와 장기간의 보안감호처분. <§9 서 형제 사건과 전향공작.>
손성조(1932-) 밀양, 대륜중, 일본 메이지대학. 망명기: 한국 통일운동가의 기록(1965)
양원석(梁元錫. 1923-1991, 柳川次郎(야나가와 지로): <§6. 야쿠자 두목 양원석과 한·일 우익의 동맹 맺기> 보국훈장을 받은 야쿠자 두목 양원석, 그가 어떻게 보안사령부의 정보꾼 노릇을 하면서 한일 우익 동맹의 연결고리가 되었는지를 파헤친다.
이석태(李錫兌, 1953-) 대한민국의 변호사 출신 헌법재판관. 이석태 변호사를 비롯한 민변 변호사들로 ‘재일동포재심변호단’이 꾸려져 재심을 통해 피해자의 무죄판결과 명예회복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 이석태(변호사,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이영근(李榮根, 1919-1990: 무라오카) 건국준비위원회와 진보당에서 활동했던 재일교포 언론인, 조봉암비서, 조봉암 사형당하자 일본으로 망명. 회고담에서 진보당 사건과 민족일보.
이종수(1958-): 2010년 7월 무죄를 선고받아 유학생 사건 재심 무죄 1호가 된 이종수 <§5 유학생 사건 재심 무죄 1호 이종수.>
이좌영(李佐永, 1928-2008) 2014년 봄 상처꽃이란 연극 상연으로 다시 조명을 받은 1974년 울릉도 사건 <§11. 울릉도 사건과 이좌영 > 일본에 살고 있는 소위 총책 이좌영 선생을 포함한 47명을 체포한 울릉도간첩단 조작사건. / 《이좌영추도식자료집》,李佐永を偲ぶ會, 2008이좌영추도식자료집》,
이철(1948-): 제일동포 2세, 사형수, 동경 중앙대 졸업,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과에서 공부하던 중 사건이 터져, 75년 11월 22일 사건이 발표되었는데 서승, 서준식씨 등이 모두 11.22사건의 간첩으로 발표됐다. 88년 출소하고 바로 약혼자인 민향숙씨와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0 사형수의 삶: 강종헌, 이철, 김달남.>, 약혼자와 함께 구속되어 12년이 지나 결혼식을 올린 이철.
이회성(李恢成, 1935-)은 일본의 소설가로 당시 일본이 지배하던 남사할린 섬에서 태어났다. 1945년 전쟁후에 가족들과 함께 사할린 섬에서 탈출26년 만에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 아쿠다가와상 수상 작가 이회성,
정건영(1923-) 박정희 옹호
정재준(1917-) 김대중 구출 운동소사(2006) 자주파 박정권타도. / 배동호(1919?)
조용수(趙鏞壽, 1930-1961) 언론인. 민족일보 창간 발행인.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 세력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고, 2008년 1월 16일에 법원 재심 결과 무죄와 국가 배상 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최덕신(崔德新, 1914-1989)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 종교지도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김자동과 최덕신은 중국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다.
최종길(崔鐘吉, 1931-197) 법학자. 중앙정보부에서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조사받던 중 고문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함승희(咸承熙, 1951-)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기업인. 전직 검사, 김대중 추천으로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한나라당으로 옮겨 제8대 강원랜드 대표이사. 성역은 없다(1995)
김대중(金大中, 1924-2009)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 : 재일본 “한국미주회복통일통칙국민회의(한민통)”과 연루를 1980년 서울의 봄에 엮였다. 일본에서 유신 반대 “한민통” 건설
도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 1921-2021) 일본 화가.
마쓰이 야요리(松井やより, 1934-2002)는 일본의 저널리스트, 여성주의자이다. 松井やより는 필명으로 본명은 마쓰이 야요리(松井耶依).
무라오카 히로토(村岡博人, 촌강박인 1931-2017): <§4 ‘조선기자’ 무라오카와 민족일보 사건>, 재일동포 취재 경력으로 ‘조선기자’라는 별칭을 얻음. 축구국가 대표 문지기. 기자로 전환후 1959년 말 재일동포 북한 귀환 취재
요시마츠 시게루(吉松繁, 1932-?) 일본 목사. 46年以来, 徐勝(ソ-スン)・徐俊植(ソ-ジユンシク) <재일한국인 정치범을 지원하는 모임 전국회의>의 사무국장. 재일한국인 ‘정치범’과 나(1987)
#연령순 ***
1904 김재화(1904-) 밀양출생, 대구 카톨릭 신학교 중퇴 일본으로 건너감. 5.16반대 성명
1911권일(權逸, 1911-2001: 권혁주 權赫周) 경북 예천, 메이지대학 법학부. 만주국 법관 출신 부일파 5.16지지
1914 최덕신(崔德新, 1914-1989)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 종교지도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김자동과 최덕신은 중국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다.
1914 김한림(1914-1993) 동래 일신여학교 출신, "양심수들의 대모" / 남편 김소운(수필가.82년 작고) / 74년 딸 김윤(당시 서강대 영문4)씨가 민청학련사건의 홍일점으로 구속
1919 이영근(李榮根, 1919-1990: 무라오카) 건국준비위원회와 진보당에서 활동했던 재일교포 언론인, 조봉암비서, 조봉암 사형당하자 일본으로 망명. 회고담에서 진보당 사건과 민족일보.
1922 박경식(1922-) 조선태생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9년 동양대학 문학부 사학과. : ‘강제연행’이라는 말을 처음 쓴 역사학자 박경식 조선인 강제연행기록: 1910-1945, 나라를 떠나야 했던 조선인에 대한 최초 보고서(2008, 박경옥역, 고즈윈)
1923 양원석(梁元錫. 1923-1991, 柳川次郎(야나가와 지로): <§6. 야쿠자 두목 양원석과 한·일 우익의 동맹 맺기> 보국훈장을 받은 야쿠자 두목 양원석, 그가 어떻게 보안사령부의 정보꾼 노릇을 하면서 한일 우익 동맹의 연결고리가 되었는지를 파헤친다.
1924 김대중(金大中, 1924-2009)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 : 재일본 “한국미주회복통일통칙국민회의(한민통)”과 연루를 1980년 서울의 봄에 엮였다.
1925 김석범(金石範, きん せきはん, 1925-) 일본의 소설가. 재일 한국인, 조선국적, 본명 신양근(愼陽根).: 만덕유령기담(万徳幽霊奇譚, 1970) 화산도(火山島)(1976연재)
1928 이좌영(李佐永, 1928-2008) 2014년 봄 상처꽃이란 연극 상연으로 다시 조명을 받은 1974년 울릉도 사건 <§11. 울릉도 사건과 이좌영 > 일본에 살고 있는 소위 총책 이좌영 선생을 포함한 47명을 체포한 울릉도간첩단 조작사건. / 《이좌영추도식자료집》,李佐永を偲ぶ會, 2008이좌영추도식자료집》,
1929 김규남(1929k-1972): 집권당(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간첩으로 구속된 1969년 김규남 사건, 1972 사형집행
1930 곽동의(郭東儀, 1930) 경남 남해군,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 한인 사회운동가. 『조국통일론(祖国統一論, 1992)』
1930 조용수(趙鏞壽, 1930-1961) 언론인. 민족일보 창간 발행인.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 세력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고, 2008년 1월 16일에 법원 재심 결과 무죄와 국가 배상 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1931 최종길(崔鐘吉, 1931-1973) 법학자. 중앙정보부에서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조사받던 중 고문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1932 손성조(1932-) 밀양, 대륜중, 일본 메이지대학. 일본에서 망명기: 한국 통일운동가의 기록(1965) 출간.
1935 이회성(李恢成, 1935-)은 일본의 소설가로 당시 일본이 지배하던 남사할린 섬에서 태어났다. 1945년 전쟁후에 가족들과 함께 사할린 섬에서 탈출26년 만에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 아쿠다가와상 수상 작가 이회성,
1945 서승(徐勝, 1945-) 일본 교토 출생. 한국의 교수, 작가, 전직 정치범. 1971년 소위 유학생 형제 간첩단 사건.
1948 서준식(徐俊植, 1948-) 일본 출생, 대한민국 진보 인권운동가, 사회주의자 <§9 서 형제 사건과 전향공작.>
1948 이철(1948-): 제일동포 2세, 사형수, 동경 중앙대 졸업,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과에서 공부하던 중 사건이 터져, 75년 11월 22일 사건이 발표되었는데 서승, 서준식씨 등이 모두 11.22사건의 간첩으로 발표됐다. 88년 출소하고 바로 약혼자인 민향숙씨와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0 사형수의 삶: 강종헌, 이철, 김달남.>, 약혼자와 함께 구속되어 12년이 지나 결혼식을 올린 이철.
1949 권말자(1949-) 일본 우라와시 출생, : 1974년 서울 교육대 유학중 중앙정보부의 간첩 조작과 성고문을 폭로한 권말자와 고순자
1949 김경득(金敬得 1949-2005, 가나자와 케이토): 와카야마 출생 일본 사법연수소 국적 조항의 장벽을 뚫고 첫 재일동포 변호사.
1950 강상중(1950-, 나가노 데쓰오(永野鐵男): 와세다 대학, 독일 에르랑엔 대학, 도쿄대학 사회정보연구소 조교수. 세이가쿠인 대학 학장. 재일(在日) ..
1951 강종헌(康宗憲 1951k-): <§10 사형수의 삶: 강종헌, 이철, 김달남.> 중학교 2학년 때 지문날인 충격으로 모국 유학 결심.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차장. 자서전 《사형대(死刑臺)에서 교단(敎壇)으로―내가 체험한 한국 현대사》(角川學藝出版 刊, 2010)
1951 김원중(1951-) 도쿄 출생, 부모는 제주도 출신 1976 서울대 사회대학 대학원생 <§3 학문의 자유와 김원중.> 맑스주의 경제학.
1951 함승희(咸承熙, 1951-)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기업인. 전직 검사, 김대중 추천으로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한나라당으로 옮겨 제8대 강원랜드 대표이사. 성역은 없다(1995)
1953 김효순(1953-), 1974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동양통신> <경향신문>을 거쳐 <한겨레> 창간에 간여해 도쿄 특파원, 편집국장, 편집인을 지냈다. ‘포럼 진실과 정의’ 공동대표. 저서에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2020), 《조국이 버린 사람들》(2015), 《간도 특설대》(2014), 《역사가에게 묻다》(2011),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2009), 《가까운 나라 모르는 나라》(1996) 가 있다.
1953 이석태(李錫兌, 1953-) 대한민국의 변호사 출신 헌법재판관. 이석태 변호사를 비롯한 민변 변호사들로 ‘재일동포재심변호단’이 꾸려져 재심을 통해 피해자의 무죄판결과 명예회복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 이석태(변호사,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1955 김정사(1955-) 사이타마현 제일동포 2세, 1977년 서울대 사회계열 입학. 한민통
1958 이종수(1958-): 2010년 7월 무죄를 선고받아 유학생 사건 재심 무죄 1호가 된 이종수 <§5 유학생 사건 재심 무죄 1호 이종수.>
1961 강신자(1961-): 재일동포. 요꼬하마시 출생. ‘일조(日朝) 문제연구회’ 아주 보통의 재일한국인(1987)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덴츠 EYE에서 카피라이터,
?-? 고순자(?-?) 히로시마 현 출생, 1980년 모국 유학, 1982년 고대 국문학 대학원. 권
1928 이좌영(李佐永,1928) 2014년 봄 상처꽃이란 연극 상연으로 다시 조명을 받은 1974년 울릉도 사건 <§11. 울릉도 사건과 이좌영 > 일본에 살고 있는 소위 총책 이좌영 선생을 포함한 47명을 체포한 울릉도간첩단 조작사건. / 《이좌영추도식자료집》,李佐永を偲ぶ會, 2008이좌영추도식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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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도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 1921-2021) 일본 여성화가.
1931 무라오카 히로토(村岡博人, 촌강박인 1931-2017): <§4 ‘조선기자’ 무라오카와 민족일보 사건>, 재일동포 취재 경력으로 ‘조선기자’라는 별칭을 얻음. 축구국가 대표 문지기. 기자로 전환후 1959년 말 재일동포 북한 귀환 취재
1932 요시마츠 시게루(吉松繁, 1932-?) 46年以来, 徐勝(ソ-スン)・徐俊植(ソ-ジユンシク) <재일한국인 정치범을 지원하는 모임 전국회의>의 사무국장. 재일한국인 ‘정치범’과 나(1987)
1934 마쓰이 야요리(松井やより, 1934-2002)는 일본의 저널리스트, 여성주의자이다. 松井やより는 필명으로 본명은 마쓰이 야요리(松井耶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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