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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개띠 해를 만날 수 있을까
다음 개띠 해는 2030년이다. 그 때는 85살이 되니 적은 나이가 아니다. 먼 훗날로도 여겨지고 어쩌면 큰 변수가 없다면 그 정도 고지는 밟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쨌든 내일 일을 모르는 이 시점에서 먼 훗날을 예측한다는 건 부질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호기심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늘은 금년 52번째 마지막 주말이다. 일 년에 반 이상을 길 위에서 보내는 나지만 오늘은 이 글을 쓰느라 책상에 달라붙어있다. 마지막 주말을 글쓰기로 보내는 셈이다. 작년 이맘때 ‘개띠가 개띠에게’라는 새해 인사 글을 쓰고 꼭 1년만이다. 나는 개띠 한 해를 어떻게 보냈을까 궁금하여 지난 1년을 돌아본다. 물론 이 글은 전적으로 나의 관점에 의해서 쓰고 돌아보는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와 나의 바깥에서 일어난 일들을 여남은 개 골라 나에게 있어 뜻 깊었던 일, 영향을 끼쳤던 일, 감흥을 불러 일으켰던 일을 반추하며 기해년 새해를 시작해 보고 싶다.
우선 나의 바깥으로부터의 일을 살펴본다.
첫째는 9월 24일 유엔본부 신탁통치 회의장연단에서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 김남준의 유엔연설을 꼽을 수 있겠다. “당신만의 목소리를 찾으세요. 당신 자신을 사랑하세요.“ ”나는 서울 근교 일산에서 태어나 아름다운 환경에 둘러싸여 자랐지만 성장하면서 차츰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을 맞춰가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목소리’를 잃게 됐다“고 고백했다. “나는 더 이상 별을 바라보지 않았고 꿈을 꾸지 않게 됐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나‘에 맞춰가는 동안 누구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나 역시 마찬가지 였다”고 말했다. “음악을 하면서 진정한 나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비록 내가 어제 많은 실수를 저질렀을지 모르지만 그런 어제의 나도 나”라며 “오늘 많은 실수와 결점을 안고 살아가는 나도, 내일 조금은 더 현명해질지 모르는 나 역시 마찬가지로 나다. 결점과 실수가 바로 ’나‘를 만든다”고 했다. “우리는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설은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서 왔든 피부색과 성별이 어떻든 당신자신에 대해 얘기하세요. 당신의 이름을 찾고 당신에 대해 말해 줄 당신의 목소리를 찾으세요”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연설의 핵심은 “Love Yourself, 당신 자신을 사랑하세요”다. 물론 명연설로는 1863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처칠의 옥스퍼드대학 졸업식축사, 1961년 케네디 대통령 취임연설, 2005년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 등이 인구에 회자된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BTS의 리더 김남준의 이번 유엔 연설은 시공을 초월한 진한 감동을 안기는 근래 보기 드문 명연설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연설을 통해 자신을 한 번 돌아보게 되며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나, 또 다른 사람의 눈치 보며 만들어진 틀 속에 나를 집어넣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둘째는 11월30일 세상을 떠난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아들 부시가 읽어 내려간 조사다. 12월 5일에 있었던 장례식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장례식은 워싱턴 DC국립대성당에서 엄수됐다.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 장례식이후 11년 만에 국장으로 치러진 이날 장례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을 비롯해 부시와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지미 카터 등 생존해 있는 4명의 전직 대통령이 모두 참석했다. 추모사를 들고 연단에 들어선 아들 부시는 대통령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고인이 세상에 남긴 업적과 추억을 때론 웃음으로 때론 슬픔을 담아 고스란히 전달하려 했다. 부시는 “아버지는 승리했을 때 영광을 나누려고 했고, 패배했을 때는 혼자 비난을 짊어지려 했다”면서 “그는 패배가 삶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 들였지만 우리에게 결코 패배에 굴복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삶을 소중한 선물이라고 여겼다.
그는 하루하루를 결코 허투루 보내선 안 된다는 걸 우리에게 가르쳐 줬다”고 했다. 부시는 공직에 봉사하는 것이 고귀하다는 것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베푸는 이의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고 믿었다”고 했다. 이날 장례식은 그의 인생이 그랬듯 슬픔 이외에도 기쁨과 유머, 엄숙함, 욕망과 에피소드가 함께 어우러졌다. 부시는 “아버지는 우리에겐 완벽하지만 완벽한 존재는 아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골프의 쇼트 게임과 춤 실력은 형편없었다. 또 채소, 그중에서도 특히 브로콜리를 못 먹는데 이 유전적 결함은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대물림됐다”는 말도 했다. 이 대목에서 추모객들 사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들 부시는 아버지가 말년까지 ”젊게 살았다“고 했다. 아버지 부시는 85세에 ‘충실(fidelity)'이라는 쾌속정을 타고 대서양을 누볐고 90세에는 낙하산 점프를 했다. 아흔이 넘어서도 친구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병실에 몰래 숨겨 온 보드카를 홀짝거렸다고 한다. 부시는 추모사를 마치고 내려오다 마치 고인의 어깨를 다독이듯 아버지의 관을 두 번 두드리고 자리에 앉았다.(12/7 조선일보 기사 일부 인용)
이날 장례식장엔 전 현직 대통령 4명 모두 참석한 것은 참으로 부러운 장면이었다. 난 우리의 장례식문화도 너무 엄숙 일변도로 할 게 아니라 고급스런 유머는 얼마든지 통하는 그런 사회를 그려본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같은 것도 점차 확산되고 웰빙에만 너무 호들갑을 떨지 말고 웰다잉도 함께 고민하는 사회를 생각해본다. 결혼식과 장례식의 대폭 간소화를 실천해야한다. 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은 물론 장례식도 생략하고 가까운 친인척과 몇 명의 친구정도만 초대하려한다. 화장과 자연장을 실행할 것이며 유골 뿌릴 장소도 정하여 놓은 상태다. 노인 대국 일본은 65세 이상노인이 28.1%다. 그들은 슈카쓰(終活) 활동이 유행하고 있다는 보도도 얼마 전 있었다. 말하자면 임종준비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초 고령사회인 일본에서 고독사 증가 등이 문제가 되면서 노인들 사이에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정리‘를 하자는 인식이 퍼지면서 보편화된 개념이다. 자신의 장례절차, 연명 치료 여부, 재산 상속 문제 등의 정리와 가족. 친구들에게 사후 남길 메시지 제작 등이 대표적인 ’슈카쓰’인 셈이다. 아버지 부시의 장례식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하였다.
셋째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감상이다. 오랜만에 본 음악영화다. ‘보헤미안 랩소디’(영어: Bohemian Rhapsody)는 2018년 10월 개봉한 전기, 음악, 드라마 영화이다. 브라이언 싱어와 덱스터 플레처가 감독을, 앤서니 매카튼이 각본을 맡았다. 영화는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중심으로 밴드 ‘퀸’의 결성부터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까지, 15년 간 일어난 일화들을 다룬다.
“그 시절 영국엔 두 명의 여왕이 있었다” 1970~80년대 세계 대중음악계를 지배한 록 밴드 ‘퀸’에 쏟아진 찬사다. 록 밴드 ‘퀸’과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12월 17일 관객 800만 명을 돌파했다. 국내에서 개봉한 음악 영화로는 최초이자 최고 기록이다. 1970~80년대는 ‘록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이들 사이에서 오페라와 클래식을 가미하고, 디스코까지 시도한 ‘퀸’에는 ‘잡탕’이란 혹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폭넓은 장르 도전이 ‘대중성’을 확보한 강력한 무기가 됐다. 한 팝 칼럼니스트는 “‘퀸‘은 실험성과 대중 팝 성격을 동시에 추구했다. 한마디로 ‘루저’를 위해 노래한다는 ‘퀸’ 음악의 주제 의식이 현재한국 사회 가장 큰 화두인 ‘위로’의 문화코드와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대중과 이룬 소통도 뛰어났다. 발 구르고 손벽 치며 부르는 ‘위 윌 록 유’ 등은 처음부터 관객 참여를 염두에 두고 썼다. “수만 관객을 한 손에 움켜쥔다”는 프레디의 화려한 무대 매너와 수 톤의 조명, 거대 장비를 동원하느라 적자를 면치 못했던 밴드의 열정 또한 이를 뒷받침했다. 15만 관객이 동시에 질러대는‘에오!’의 함성은 전설로 남은 영국 웸블리 공연장의 ‘라이브 에이드(1985년)’였다.
2011년 유럽의 인지 과학자들이 ‘역사상 가장 뚜렷이 뇌리에 각인된 노래’를 조사한 결과 ‘위 아더 챔피언스’가 1위에 올랐다. 인류의 DNA에 각인된 호전적 외침 속에 흥분된 감정을 머큐리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끌어낸다는 것, ‘퀸’ 노래가 태아의 뇌 회로를 활성화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에이즈로 죽은 프레디의 삶이 “‘퀸’ 음악을 더 아름답게 만든 비극적 서사”란 평도 있다. 김윤하 음악 평론가는 “프레디는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곡을 쓰고 노래했다. 자신의 비극적 체험으로 명곡을 완결한 서사가 더 큰 감동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루저‘들의 퀸이다. 지친 우리의 영혼 800만을 위로하였다. 보헤미안이 그러하듯 그들의 영혼은 자유로웠다. 자유로운 영혼만이 진정 우리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입증 된 영화다.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다가 또 뻥 뚫리게 하는 마법에 걸린 120분이었다. 이런 것들이 나를 세 번이나 영화관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넷째는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국 크로아티아의 주장 모드리치에 대한 이야기다. 난 당시 결승전이 끝 난 다음날 ‘아, 루카 모드리치’란 글을 써 여러 곳에 이미 올린 바 있다. 그때의 글 일부를 다시 싣는다.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이자 인간의 열망이 빚어낸 가장 빛나는 곳, 우리도 한 때 꿈꿨던 그 곳에 오르길 그들은 원했다. 한 달(6/15~7/15)간 지구촌을 히트돔처럼 달궜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루즈니키 스타디움,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치 운동장의 뜨거운 열기는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 그 곳엔 식은 재만 남았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의 슬로건은 ‘한번뿐인 인생, 즐겁게 살자’였다. 지난 해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되었던 욜로(YOLO)族을 그대로 쏙 빼 옮겨 놓았다. 개. 폐막식은 그것을 어김없이 보여줬다. 모두 흥겹게 춤을 추고 미친듯 소리 지르며 흔들어댔다.
한 달 내내 23시, 24시, 03시에 치러졌던 16강전, 8강전, 4강전, 결승전을 한 게임도 놓치지 않고 하얗게 밤을 새며 퀭한 눈과 싸우며 보낸 한 달간이었다. 참으로 축구란 게임이 지구를 이토록 흔들어 댈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랍고 신비스럽다. 처음 예선에선 우리나라의 게임에 푹 빠져 육신을 괴롭혔다. 16강에 이르러선 붉은 색과 흰색이 교차된 체크무늬 유니폼을 입은 크로아티아 매력에 빠져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크로아티아, 인구 416만 명으로 서울인구의 절반도 안 된다. 면적은 남한의 반도 되지 않는다. 작디작은 소국이다. 내전으로 얼룩진 크로아티아다. 유니폼은 피로 얼룩진 내전의 흔적 같았다. 적십자사의 봉사마크가 어지럽게 얽힌 것 같기도 하였다. 그 크로아티아는 거대국가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마치 작은 목선으로 거대 군함을 침몰시키는 것 같았다.
작은 목선에 현대식 무기가 장착될 리 만무다. 버티기와 끈질김으로 상대를 코너로 몰아갔다. 때로는 울돌목으로 유인했고 어떤 때는 지족해협으로 끌어당겼다. 일방적으로 주먹을 날리던 복싱선수가 맷집 좋은 선수에게 스스로 지쳐 백기를 들게 만드는 형국이었다. 두들겨 맞을수록 힘이 솟는 마법을 지닌 선수다. 밟으면 밟을수록 더 튀어 오르는 용수철을 닮았다. 그들은 인간이 아님을 보여줬다. 몸은 산산이 부서져 뼈와 살이 분리되었지만 그 뼈 속엔 사리로 찬연히 빛나는 정신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산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죽은자는 더욱 아니었다. 신의 얼굴이었다. 마치 마하트마 간디 같았다. 40kg이 채 안 되는 간디의 몸무게는 지구의 무게와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드리치가 그랬다. 16강, 8강, 4강, 결승까지 총 7경기에 모두 출전해 694분간을 뛰었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순간들이 일그러진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러나 육체는 하늘을 나는 칼새처럼 허공을 가르며 번쩍였다.
그들이 빚은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 그것은 준우승 그 이상이었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며 존귀의 모습이었다. 그 한가운데 루카 모드리치가 있다. 모드리치는 백넘버 10번을 달고 있다. 10번이란 숫자가 그렇게 위대한 숫자로 나의 뇌리에 박힌 건 생애 처음이다. 모드리치, 그가 곧 크로아티아며 크로아티아가 곧 그다. 그는 개인의 위상을 뛰어넘는다. 모드리치, 그는 축구선수치고는 가냘프고 왜소한 체격이다. 172cm키에 몸무게 66kg이다. 그 작은 몸 어디에 그 위대한 정신의 저장고가 있는 것인가. 그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그의 얼굴은 모나리자 얼굴이었다. 웃는 얼굴도 아니요 화난 얼굴도 아니다. 그렇다고 엄숙한 얼굴도 아니다. 잘 웃지 않지만 눈은 웃고 있다. 눈은 울지만 입술꼬리가 웃는다. 묘한 배치다. 웃지만 울고 있고 울지만 웃고 있다. 담대함과 의지가 얼굴에 온통 고기비늘처럼 박혀있다. 이 모두는 그의 유년시절의 고통, 가난, 내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러나 오직 축구하나로 그의 뇌는 굳어져있다. 그의 얼굴에서 다른 것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웃지 않지만 친근해지는 얼굴이다‘
이 글은 A4 용지 총 3쪽 중에서 전반부 일부다. 당시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모드리치에게 직접 전달하는 게 더 좋겠다고 하는 반응도 보였다. 나도 괜찮은 생각이라 여겨 동의하고 주한 크로아티아 대사관을 찾았으나 우리나라엔 없고 현재 주일 크로아티아 대사관에서 대행한다는 외교부의 이야기다. 우리나라 대사관은 10월 24일 오픈한다고 한다. 마침 9월 11일 동유럽으로 여행 떠나는 동아리 그룹이 있어 자그레브 한국대산관을 통하여 전달을 시도했으나 패키지여행이라 개인적인 행동이 어려워 전달하지 못했었다. 10월24일이 되어 중구 퇴계로 한국의 집 부근에 대사관 업무를 시작한다는 정보를 얻어 나의 글 ’아, 루카 모드리치‘란 글을 전달하였다. 모드리치의 일정이 워낙 바쁘긴 하지만 은근히 답장이 기다려지는 건 모드리치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축구 선수의 모드리치와 축구장 밖의 모드리치가 다른가, 같은가가 궁금할 뿐이다.
이제부터는 나의 이야기다.
다섯째, 지난 10월 28일 조선일보주최 춘천마라톤 10km 부문에 참가하여 완주하였다. 기록은 1시간2분17초다. 당일 날씨는 마치 삼일 굶은 시에미처럼 성깔을 부렸다. 비바람이 몰아쳐 체감온도를 0도 가까이 뚝 떨어뜨렸다. 참가자들 모두 어깨를 말아 발을 동동 구르며 워밍업을 하고 있다. 하얀 비닐 비옷을 두르고 종종 걸음을 쳤다. 그러나 얼굴엔 하얀 웃음을 한가득 흘리고 있다. 마라톤 최적의 온도는 10도 내외다. 만산홍엽의 의암댐을 휘돌아 감돌아 뛰는 발걸음은 천상을 걷는 기분이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도 도전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고 춘천행 전철을 타고 오가는 도중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총 25,222여명이 달렸다. 풀코스 참가자(16,184명)는 50대,40대,60대,30대 순으로 많았고 10km(총9,038명) 참가자는 30대,40대,50대 순으로 많았으며 나 같은 70대는 94명이 참가하였다. 10km 전체 순위는 1,624위며 연령대별 순위는 9위였다. 풀코스 최고령 참가자는 남자 90세 여자 88세며, 10km 최고령참가자는 남자 89세, 여자 79세다. 금년의 기록은 지난해보다는 20초 느린 기록이지만 10년 전에 비하여는 10분가량 늦은 기록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체력은 서서히 준다. 나름대로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치밀하게 또 꾸준하게 해 오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체력이 저하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매년 2회씩(봄엔 동아마라톤, 가을엔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참가하여 체력관리도 할 겸 계절을 즐긴다. 그러면서 매년 내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젊은이들과 한데 어울려 시험도 해 본다. 또 이렇게 달리는 것이 몇 살까지 가능한지 내 몸을 대상으로 실험도 해 보고 싶다. 가능하면 최고령 기록도 세워 보고 싶다는 욕심 아닌 욕망도 갖고 있다.
여섯 번째, 문대통령과 박능후 복지부장관에게 나의 책(‘노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보내다. 매 5년마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건강보험에 관한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의결 한다. 금년 복지부 개정안은 청와대에서 거절당했다. 따라서 9월에 개정안이 의결되어야 하지만 당연히 10월로 연기되었다. 10월 19일 빠른 등기우편으로 청와대와 세종청사로 1권씩 보내면서 짧은 메모도 첨부하였다. 사실 내 책 2부(나라가 산다)에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건강보험의 기금고갈 우려 해법이 실려 있다. 지금과 같이 모래위에 물 붓기식의 소비적 지출에서 벗어나 콩나물시루에 물주기식의 생산적 지출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책이다. 내 책에는 기초연금을 그냥 현찰로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이름자체를 ‘국민건강수당‘으로 바꿔 노인들의 신체 검사를 통하여 건강 등급을 정하고 등급에 따라 건강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차등 지급을 한다는 게 골자다. 상위등급은 수당을 많이 받고 건강하니 삶의 질이 좋아질 것이며 하위 등급자는 상위등급으로 가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니 국민의 건강은 날로 좋아질 것이며 일자리도 상위 등급자 순으로 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국민 전체의 체력은 향상될 것이며 건강보험료 지급은 자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각종 통계자료가 많음). 따라서 기금 고갈은커녕 오히려 쌓여 갈 것이다. 이 지면에 다 소개 할 수 없지만 내 책에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적어놓았다. 10월 19일 책을 보냈는데 청와대에서 11월 28일 답장이 왔다. 답장은 ’돌솔 이응석 작가님께, 고령화 시대의 대한민국 미래를 깊이 염려하시면서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해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 보내 주신 책 ‘노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대통령님께 잘 올려드렸습니다‘라는 내용으로 비서실 명의로 왔다. 나의 솔직한 심정은 이런 답장을 받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내가 제시한 안을 국정에 반영하여 국민연금, 기초연금, 건강보험기금의 고갈 우려에 대한 해소는 물론 탄탄한 재정과 세계의 노인 복지국가의 모범국가로 모든 국가의 부러움을 사는 벤치마킹하고 싶은 복지국가를 이루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누군가 눈 밝은 사람이 반드시 나오리라 마음을 확장하여 본다.
일곱 번째, 방송대 중문과에 입학하다. 배움에 대한 갈증은 끊임없이 솟구친다. 지적 갈증에 애를 태운다. 갈증 해소는 대학공부가 최고다. 3학년에 편입하였다. 외국어라 3학년 교재는 벅차다. 1학년 과목도 몇 개 추가하여 6과목을 맞췄다. 중국은 나라가 크고 역사가 깊다. 나라가 큰 만큼 다양하고 역사가 깊은 만큼 다이내믹하다. 흥미롭고 눈이 반짝거린다. 1학기를 잘 마치고 2학기에 그만 휴학하고 말았다. 이유는 방송대 출판문화원에서 ‘인간, 미래’라는 주제로 원고 공모가 있었다. 난 응모할 요량으로 지난 6개월 동안 ‘이영사오, 백년탐험’이라는 제목으로 원고지 1500매 분량의 글을 쓰고 있었다. 원고 마감일이 10월 12일이었는데 마감과 퇴고를 거듭하면서 일이 늘어지기 시작하더니 2학기 등록을 마친 시점에서 공부와 원고 마감일을 동시에 맞추기엔 벅찼다. ‘그래, 한 개만 매듭을 짓자. 공부는 1년 뒤로 미루자‘며 휴학계를 냈다. ’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 감만 못하리라’는 시조가 부정의 신호를 보내며 맴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12월 28일 최종 당선작 발표가 있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셔 다소 허탈한 상태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즐거움의 허상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아나는 토끼를 잡을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여덟 번째, 도잠의 ‘귀거래사’를 나는 ‘신귀거래’로 명명한다. 추사는 ‘사내가 할 일중에 중요한 두 가지는 밭을 갈며 글을 읽는 것(世間兩件事耕讀)’이라 했다. 난 금의환향이 아니라 草衣還鄕한다. 금의환향이 부럽지 않은 것은 무법천지 친구인 나의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도잠의 귀거래와는 입장이 다르지만 어쨌든 적은 나이가 아니다. 이제는 인생후반부를 정리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향하여 멋진 피리어드를 찍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계신 곳을 향한 영원의 안식처를 위한 준비도 하여야 한다. 또 30권의 책 출간이 평생의 목표이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도시에서는 파편화된 시간을 한 곳에 엮기란 쉽지 않다. 행복을 갉아먹는 곳에도 기웃거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하늘 담은 작은 옹기그릇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으로 위리안치 된 예쁜 고향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내 유년시절의 소먹이고 꼴 베던 곳으로 가서 방목의 삶을 살아야한다. 가서 보헤미안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랩소디를 노래해야 한다. 하모니카로 ‘내고향 남(동)쪽 바다~’를 불어야한다. 이슬을 먹고 사는 풀벌레와 함께 살고 싶다. 햇빛과 바람을 먹고 사는 과일과 꽃과 벌 나비와 함께 살고 싶다.
아홉 번째, 팟 캐스트 진행 맡다. 물론 젊을 때보다는 못하지만 나이가 먹어도 목소리 덕을 톡톡히 본다. 물론 부모님께서 주신 큰 재산 중의 하나다. 성수동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마을 방송의 팟캐스터로 지난달부터 활동한다. 마을 뉴스는 물론 단체 모임 소개도 하고 지역의 문화 예술 역사가 서린 곳을 소개하기도 한다. 걷기 코스도 박물관도 화실도 제화거리도 서울숲도 청계천 중랑천에 얽힌 사연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좁은 방송실에는 믹서기와 컴퓨터와 이어폰, 스피커 각종 복잡하게 얽힌 케이블 등이 어지러이 널려있다. 방송실이라야 5명이 앉으면 딱 맞다. 방송이 끝날 때까지는 꼼짝달싹 못한다. 그래도 인트로나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발과 손을 까딱대며 논다. 새로운 분야이기에 흥미진진하다. 내 목소리가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까지 전달된다는 게 신기하고 신통방통하다. 아마 방송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열 번째,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손자 ‘캐나다 화이트 캡스’ 입단 테스트 받다. 큰 손자는 현재 중학교 3학년이다. 이미 중앙고등학교로 배정 받은 상태다. 그러나 고향이 캐나다인 손자 녀석은 은근히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화이트캡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아 보라는 메시지를 받고 지난 11월7일날 출국하여 4회에 걸쳐 테스를 받고 17일 귀국했다. 보름쯤 지나 테스트 결과가 통보되었다. 내용은 한 번 더 테스트를 해 보자는 것이다. 장점, 단점 보완할 점이 비교적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테스트 마지막 기간이 4월이어서 그간 보완 할 점과 약점을 집중 노력하여 4월에 다시 한 번 테스를 하는 걸로 계획을 잡고 훈련에 올인 하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피지컬 쪽이 약하여 보완이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우선 동료선수들에 비해 167cm의 키는 상대적으로 많이 작은 편이다. 키가 작으니 제공권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또 몸싸움에 약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선수에 비해 빠르기는 하나 최고가 되기엔 아직은 미흡하다. 속도가 느리면 지구력이 좋고 속도가 빠르면 지구력이 약하다는 것은 동물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나 똑 같다. 얼굴 예쁘고 머리 좋고, 힘 좋고 머리 좋고 이런 조합은 창조주가 만들지 않는다. 가끔 실수로 돌연변이가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힘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핵도 미사일도 아니고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우리들에게 바위처럼 탁 가로막기도 하고 우리를 밧줄처럼 돌돌 옭아매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과 친하게 지내면 무한 자유를 허 한다. 친구가 되어 언제나 내편에 선다. 12년이면 4,380일이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105,120시간이다. 하루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뺀다 해도 7만여 시간이 남는다. 일만 시간의 법칙을 적용하면 무언가 해치울 수 있는 시간이다.
사실 장수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잘 따져보면 장수가 정말 축복일까. 열흘 전 친구가 입원한 H대 병원엘 간 적이 있다. 6인실 환자들과 병 수발하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아픈 사람이야 없겠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로 아픈 날수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다. 감기 한번 걸리면 적어도 보름동안 고생한다. 1년에 두 번 걸린다고 치면 80세까지 80개월, 약 7년이 된다. 건강수명과 평균수명의 15년 격차는 우습게 볼일이 아니다. 이 격차를 좁히는데 노력에 노력을 기우려야한다. 그래야 행복한 노후가 되기 때문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노인의 건강을 늘 강조하면서 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허벅지와 장딴지를 키우는 것이다. 허벅지와 장딴지의 합이 허리와 같거나 더 커야한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한다.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감소로 근육을 키우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근육소실을 방지 또는 유지하는 것은 노력으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책상머리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3개월에 한 번씩 재서 기록하는 것도 나의 경험으로 보면 큰 도움이 된다. 이 명제는 반드시다. 절체절명의 과업이라고 생각하기 바란다. 이것만 제대로 되면 어떤 성인병도 비켜 갈 수 있다.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아니라면 허벅지와 장딴지만한 보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모든 님들, 다음번 개띠를 건강하게 웃으며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글로 황금돼지해 인사에 가름한다.
2018년 12월 29일
돌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