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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웃잖아] 노지설
씬1. 호프집 앞 거리 (해질녘)
쇠락한 변두리 번화가.
지는 해를 등지고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걸어온다.
무겁게 한 걸음, 힘겹게 또 한 걸음. 그러다 푹. 바닥에 고꾸라진다.
힘들게 몸을 뒤척여 하늘을 향해 눕는 남자,
입술이 터지고 눈가가 멍들어 형편없이 망가진 형진이다.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밝고 코믹한 소리다.
형진의 초점 없는 먹먹한 눈.
그 위로 타이틀 뜬다.
-그녀가 웃잖아-
씬2. 공터 (오후)
경찰복 차림의 형진, 태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누군가를 쫓는다.
화려한 옷차림의 스타일 좋은 최윤재와 친구, 다급하게 도망간다.
쫓고 꽃기는 추격전. 그러나 막다른 길이다.
최윤재와 친구, 돌아보면 형진, 태훈, 그들을 막아선다.
최윤재, 각목을 찾아 들고 휘두르면 태훈, 잽싸게 피한다.
이번엔 형진을 향해 휘두른다. 형진,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넘어간다.
감독 (e)컷! NG!
그곳은 카메라와 조명, 스텝들로 둘러싸인 촬영장이다.
주연급 배우인 최윤재와 친구, 맥이 빠져 가쁜 숨을 고른다.
태훈 (형진을 일으키며) 괜찮아? (얼굴 보고 놀란) 형!
형진 (눈가를 만진다. 피다)
최윤재 (짜증) 지금이 몇 번짼데 합을 딱딱 못 맞춰? 너 땜에 스케줄 펑크 나게 생겼잖아. 감독님~ (부르며 간다)
태훈, 최윤재를 꼬나본다. 형진,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나 옷을 툭툭 턴다.
씬3. 촬영장 일각 (오후)
스텝들, 조명을 다시 세팅하느라 분주하다.
최윤재, 커다란 흰색 밴을 타고 촬영장을 빠져나가면
태훈 (E) 재수 없는 새끼, 지가 잘못해놓고.
형진과 태훈, 촬영장 구석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다.
태훈 형은 왜 아무 말을 못해? 화도 안나?
형진 저런 애들을 뭐라고 하는 줄 알어? (엄지손가락 세우며) winner! 우리는? (엄지손 가락 내리며) loser! winner가 loser를 핍박하는 건 하늘의 섭리다. 당연한 걸로 열 받지 마라.
태훈 이 자라나는 새싹에게 희망적인 얘기 좀 해주면 안돼? 예를 들어 ‘보이스 비 엠비 셔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형진 소년이 아니라 아저씨지 우리는.
태훈 왜 이래에? 쇠도 씹어 먹을 20대구만. (반가운) 어, 혜민이다!
저만치 대형버스에서 내리는 여자 엑스트라들. 그 속에 혜민.
태훈 어때? 대따 착해 보이지. 지난번에 얘기하는 거 들었는데 남자 딴 거 안 본대. 사 람만 좋으면 된대.
형진 (시큰둥) 그 말을 믿냐? 시작할 땐 다들 그렇게 둘러대는데 끝날 땐 100% 돈 때문 이다. (일어선다)
(e) 휴대폰 벨소리 (밝고 경쾌한)
태훈 어후, 얼굴은 낙천적으로 생겨갖고 생각이 궁상이야, 암튼.
형진, 웃으며 휴대폰 꺼내본다. 표정 확 굳는다.
형진 (전화 받는, 싸늘하게) 왜.
씬 4. 가정법원 외경 (오후)
판사 (e) 강민호씨, 이혼하실 겁니까?
민호 (e) 네.
씬 5. 버스 정류장 (오후)
민호, 정류장 벤치에 앉으면
커다란 짐 가방을 든 은아, 걸어와 민호 옆에 앉는다.
민호, 양복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돈 봉투를 꺼내 은아에게 건넨다.
은아 (봉투를 물끄러미 보다 조심스럽게)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민호 (버럭) 집까지 뺏길 판에 붙어있는 게 대수야? 니 우거지상 보면서 손가락이나 빨 고 있을까 그럼!
은아 ...
민호 (누그러들며) 혼자 편하게 잘 살라고 그 도 너한테 몰아주는 거 아냐. 그거 뺏기면 진짜 끝이야. 그러니까 꼭꼭 숨어. 찾아오지도 말고 전화도 하지마. 내 말, 무슨 말 인지 알지?
은아 ...
민호 (버럭) 사람이 말을 하면 뭔 반응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아우 지겨워. (여전히 손에 들고 있는 봉투를 보고는) 빨리 안 집어넣어?
은아 (밝고 닳아빠진 비닐 핸드백에 돈 봉투 집어넣는다)
민호 (일어서며) 하여튼 돈 귀한 줄을 몰라요. 가! (휑하니 돌아선다)
은아, 그렇게 가는 민호를 표정 없이 본다.
버스 도착한다.
씬 6. 버스 안 (오후)
은아, 핸드백을 가슴께에 소중히 끌어안은 채 창밖을 본다.
민호, 가판대에서 복권을 사고 있다.
씬 7. 형진의 집 앞 거리 (오후)
고만고만한 다세대 주택이 늘어선 골목.
삼층 다세대 주택 앞에 형진모, 앉아있다.
옆에 보자기로 산 커다란 짐.
형진 (e) 뭐?
형진모, 고개를 들면 경찰복을 입은 형진, 떨떠름한 표정으로 섰다.
형진모 (눈가를 보고 놀라 일어나) 얼굴이 왜 그래! 다친 거야?
형진 (냉랭) 분장. 나 바쁘거든.
형진모 열쇠라도 있으면 귀찮게 안했어. 그래도 가까운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형진 나 바쁘다고!
형진모 밑반찬하고 나물 몇 가지 했어. 날 더워서 금세 쉬니까 지금 냉장고에 넣어둬.
형진 (기가 차다) 허. 급한 일 있다는 게 이거야?
형진모 너 얼굴 축났어. 입맛 없을 땐 나물에 고추장 넣고 쓱쓱 비벼서,
형진 (o.l 차갑게 보며) 자꾸 이러면... 확 이사가 버린다!
형진, 돌아서서 가면 형진모, 허물어지듯 쪼그려 앉는다.
이때 다세대 주택에서 은아와 복덕방 주인, 나온다.
씬 8. 슈퍼 앞 (오후)
눈가에 밴드 붙인 형진, 하드를 까먹으면서 슈퍼에서 나온다.
짜증 가득한 얼굴이다.
골목에서 은아와 복덕방 주인, 걸어 나온다.
복덕방 운 좋은 거유. 오늘 당장 그만한 집을 어디서 구해? 근데... 계약금은 준비를 했나 모르겠네.
은아 예, 여기. (핸드백을 들어 보인다)
한 사내, 은아의 뒤쪽으로 슬금슬금 오더니 순식간에 핸드백을 낚아 채 달아난다. 사내, 형진과 부딪히고 그 결에 형진이 듣고 있던 하드가 땅에 떨어진다.
형진 (짜증) 아씨, 저 자식.
복덕방 (o.l) 도둑이야! 도둑!
형진 (본다)
은아 (망연자실) 내 가방.
복덕방 (형진에게 다급히) 도둑 잡아요. 저 놈 잡어!
형진 예?
복덕방 경찰이 이렇게 보고만 있을 거야? 아, 빨리!
형진, 그제야 자신이 경찰복을 입고 있다는 걸 알아챈다.
은아도 복덕방주인도 길 가던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보고 있다.
형진 (황당하다) 허, 젠장 (뛰기 시작한다)
씬9. 거리 (오후)
주택가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드는 형진.
둘러보면 저만치 도망가고 있는 사내.
형진, 사내를 쫓기 시작한다. 사내, 냅다 횡단보도를 가로지른다.
급정거하는 자동차들 사이로 곡예를 하듯 달아나는 사내.
형진, 파란신호를 받아 속력을 낸다.
뒤를 돌아보면 달아나던 사내, 골목에서 나온 자전거와 부딪혀 나뒹군다.
형진, 씩 웃으며 다가간다.
사내 (체념) 옛다, 짭새야. (핸드백을 휙 던지고 달아난다)
형진, 가방을 주워들고 숨을 고른다.
형편없이 낡고 닳아빠진 핸드백. 형진, 황당하다.
씬 10. 슈퍼 앞 (오후)
걱정스런 표정의 복덕방 주인과 달리 무표정한 은아.
형진, 뒷짐 진 채 걸어온다.
복덕방 어떻게 됐어. 잡았수?
은아 (무표정하다) 가방은요?
형진 뭐 비싸 보이지도 않던데요.
복덕방 못 찾은 거야 그럼?
형진 버리고 갑디다. (뒤에 숨겼던 가방 내민다) 가다보니 왜 훔쳤나 싶었겠지. 명품도 아니고.
복덕방 찾았네. 찾았어. 경찰 양반 역시 대단하네.
은아 (무표정)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복덕방 후하게 대접 받어. 경찰 양반이 집을 찾아 준거야. 집을
은아 (명함 꺼내주며) 전화주시면 식사라도 한번 대접할게요.
형진 (명함 보면 심은아 / 보험설계사 / **생명) 심은아? 나이트클럽에서 일해요?
은아 네? (역시 무표정) 아...
형진 웃기라고 한 얘긴데 무안하네. 밥 살 돈 있으면 가방이나 새로 사요! 바빠서 이만 갑니다. (가다가 아까 떨어뜨린 하드를 밟는다, 뒤돌아) 혹시 다시 만나면 아이스크 림이나 하나 사든가!
은아, 그렇게 가는 형진을 본다.
씬 11. 형진의 주방 겸 거실 (밤)
(E) 영화 ‘카사블랑카’
가스렌지 위에 보글보글 끓는 라면.
냉장고 문이 열린다. 텅 빈 냉장고. 달걀도 없고 파는 말라비틀어졌다.
형진, 시큰둥해져서는 톡 냉장고 문을 닫는다.
윗옷 말아서 냄비 손잡이를 들고와 탁자에 놓는 형진.
TV에서는 카사블랑카의 회상 장면이 흘러나온다. (35분쯤)
형진 (젓가락으로 면을 건져 화면을 향해 건배 포즈) 당신 눈동자에 건배. (후루룩 먹는)
씬 12. 옥상 (밤)
(E) 툭툭툭 샌드백 치는 소리.
옥탑방이 있는 옥상. 바닥엔 역기와 아형. 말라비틀어진 화분 여러 개.
온몸이 땀에 젖은 형진, 샌드백을 치다가 멈춘다.
평상에 드러누워 맥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형진.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에 몸을 일으킨다.
은아 (E 비명) 악!!
형진, 비명에 깜짝 놀란다. 보면 바닥에 주저앉은 은아.
형진 (안심하고 버럭) 아, 깜짝 놀랬잖아.
은아 (겁먹은) ... 누구세요?
형진 그러는 댁은 누구신데!
은아 여기... 이사 온 사람이요.
형진 아, 나 아랫집 살아요.
은아 (형진을 알아본다) 형사님?
형진 ?
은아 (일어서며) 낮에... 핸드백이요.
형진 아, 심은아!
은아 (무표정) 잘됐네요.
형진 뭐가요?
은아 경찰이랑 한집에 살게 돼서요.
형진 (뜨끔) ...
은아 정말 다행이에요.
형진 (괜히 찔려서) 거짓말을 할라믄 좀 제대로 합시다. ‘이런 젠장. 사례금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냐?’ 그런 얼굴이에요.
은아 ...
형진 농담이에요. 사람이 뭐 그렇게 사사건건 심각해요?
은아 저... 못 웃어요.
형진 에?
은아 안면신경에 이상이 생긴 거래요. 교통사고 후유증이요.
형진 (은아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다 말간 눈)
은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형진 아니 뭐 기분 나쁠 건 없고... (다시 본다. 이상한 여자다) ...
씬 13. 오디션장 (다른 날 오전)
‘열혈시대 오디션’이라는 플래카드 붙어있다.
가슴에 번호표를 붙인 연기자 지망생들, 낱장 대본을 들고 나름의 연기 연습을 하고 있고 형진과 태훈, 나란히 앉아있다.
태혼, 낱장 대본을 보며 ‘형님 진짜 가셔야겠습니까?’ 따위 대사 연습하고
형진, 생각에 골똘하다.
형진 야, 경찰이 낫냐? 배우가 낫냐?
태훈 그 배우 일류야 삼류야?
형진 ... 삼류.
태훈 경찰이 낫지.
형진 왜?
태훈 힘든 건 똑같은데 월급이 나오잖아. 아마 퇴직금도 나올걸? 왜 궁금한 건데!
형진 누가 날 경찰로 오해를 해서.
태훈 사장도 있고 교수도 있는데 뻥을 쳐도 꼭. 근데. 여자 절대 믿지 말라고 나한테는 그러더니.
형진 여자라곤 안했다.
태훈 여자라곤 안 했지만 여자 맞잖아.
형진 그게 아니라! ... 신경이 쓰여서 그래. 윗집에 이사 온 사람인데...
태훈 연애하믄 다 웃게 돼있다. 연애해!
형진 아, 자식 그거 아니라니까.
태훈 연기는 경험에서 나온대매. 형 이대로 가다간 영원히 멜로 안된다.
여직원 (E) 138번 김태훈씨!
태훈 네. (하고 벌떡 일어난다. 호흡 가다듬고) 이번에 붙으면 최윤재 그 자식 밟아버린 다. 아자.
형진 잘해라.
태훈 형이나 잘해. 또 도망이나 가지 말구.
태훈, 오디션장으로 들어가고 나면
형진, 주위를 둘러보며 다리를 떨기 시작한다.
형진의 눈에 하나같이 키 크고 화려하고 잘나 보이는 지망생들.
형진, 점점 초조해지는데 옆에 선 남자, 진지하게 대사 연습한다.
‘넌 절대로 성공 못해. 왠지 알어? 넌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더욱 불안해지는 형진의 얼굴위로.
(E) 심장 박동소리. (점점 빨라진다)
남자 (E) 넌 절대로 성공 못해. 왠지 알아? 넌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넌 그렇게 태어났으 니까.
형진, 벌떡 일어나 걸어 나온다.
씬 14. 옥상 (그 날 오후)
형진, 전화 받으며 한 손으로 샌드백을 툭툭 치고 있다.
형진 도망가긴 누가? 역할이 맘에 안 들었다니까. 말했잖아. 나 영화 데뷔는!
이때 옥탑방 문을 열고 나오는 은아.
형진 (은아 힐끗 보고는 목소리 잦아든다) 제대로 할 거라구. 그래. 험프리 보가트.
은아 (형진 옆에 선다)
형진 야, 통화하기 좀 곤란하다. 끊어. (끊고는) ... 왜요?
은아 혹시 시장이 어딘지 아세요?
형진 시장이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희망슈퍼 보이죠. 거기를 끼고 돌아서 50 미터쯤 내려가면 약국이 나와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자마자 삼거리에서 왼쪽, 아 니지 오른쪽으로 꺾어서 쭉 내려가요.
은아 (보며) 얼굴 이제 괜찮네요?
형진 ? 아, 이거. (왠지 쑥쓰러워) 자 다시. 저기 희망슈퍼를 끼고 돌아서 내려가면 약 국... (다시 설명하려니 답답하다)
씬 15. 채소가게 (오후)
채소가게 아줌마, 감자와 호박 등을 비닐봉지에 담는다.
봉지를 건네받는 은아, 옆에 형진이 서있다.
은아 좀 깎아주시면 안돼요?
아줌마 요 며칠 비 와서 야채가 금값이야.
은아 ... (동전 꺼내는데)
형진 (답답하다, 오천 원만 빼앗아 건네며) 에이, 끝자리는 떼야지. 아가씨 되게 야박하 네. 이쁘게 생겨가지구.
아줌마 아가씨는 무슨. 왜 사람을 놀려? (기분 좋아) 아휴, 알았어. 오천원.
형진 (감자 덤으로 집어넣으며) 두 개만 더 넣어요. 단골 하께.
아줌마 아휴. 이 집은 신랑이 살림해야겠네.
형진 에? 아... (웃으며 은아 어깨에 팔을 두른다) 이 사람이 좀 귀하게 자라서요.
은아 (당황)
형진, 은아의 어깨에 팔을 올린 채 인사한다.
돌아서자 슬쩍 팔을 내리는 형진, 미안한 듯 씩 웃어 보인다.
은아, 그런 형진이 밉지 않다.
씬 16. 시장 (몽타주)
16-1 생선가게. 야채가게 등 시장 이곳 저곳 둘러보는 은아와 형진.
16-2 그릇 가게.
은아, 냄비, 숟가락, 젓가락, 컵 등을 산다.
형진, 주인에게 돈 건네는 은아 보면서 답답하고
주인에게서 천 원 빼앗아 다시 은아에게 준다.
황당해하는 주인에게 넉살좋은 웃음으로 무마하는 형진.
씬 17. 옥상 (밤)
평상에 앉은 은아와 형진.
은아, 파, 감자, 사과 등을 비닐봉지에 나눠담는다.
형진 어디서 도망이라도 쳤어요? 숟가락도 안 챙겨오게.
은아 ...
형진 아, 무슨 여자가 그렇게 흥정을 못해. 죽상을 해갖구 ‘깎아주세요’ 하면 깎아줍니까 ? (실수했다) 내 말은 그게...
은아 괜찮아요. 나도 내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데요. 이렇게 물건 값 하나도 못 깎잖아요.
형진 (미안하다)
은아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웃지 못하니까 복도 안 오나 봐요.
형진 (애잔하게 본다) ...
은아 (봉지 건네며) 파는 하나만 담았어요. 화분에 심어 놓을 테니까 필요할 때 갖구 가 세요.
형진 (받아든다)
은아 저... 언제 경찰서 한번 찾아가도 돼요?
형진 에?
은아 동료 분들 중에 보험 드실만한 분 안 계실까 해서요.
형진 (O.L) 안돼요.
은아 (무안해지고) ...
형진 아니. 그게 아니라... 야외가 많아요. 그러니까 일종의 잠복근무! 같은 거요.
씬 18. 형진의 거실 (밤)
TV에선 ‘카사블랑카’의 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험프리 보가트가 잉그리드 버그만과 헤어지는 장면 / 96분쯤)
형진, 사과를 베어먹으며 전신거울 앞에서 험프리 보가트르르 연기한다.
형진 (진지) 저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안 탄다면 당신은 후회할 거야. 오늘, 내일이 아 니라 남은 평생을... (톤 달리) 남은 평생을. 남은 평생을.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니 보다 갑자기 씩 웃으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무펴정으로) 감사 합니다. (웃으며) 에이 오백원만 깎아주세요. (무표정) 에이 오백원만 깎아 주세요. (웃으며) 보험 드시겠어요? (무표정) 보험 드시겠어요? (무표정한 건 어딘지 이상하 다)
인서트 (씬 17)
은아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없는 건 많이 힘들어요.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웃지 못하 니까 복도 안 오나봐요.
형진, 무표정한 자신의 얼굴을 빤히 본다.
씬 19. 민호의 고시원 앞 (밤)
민호, 소주 한 병을 사들고 터덜터덜 온다.
들어가려는 민호. 앞을 가로막는 건달 1,2
건달1 잠수 탄 줄 알고 놀랬잖아. 이혼했다며?
민호 무슨 상관이야?
건달1 니네 위장이지? 집 값 몰아주기 했나본데 그런 식으로 돈을 빼돌리면 쓰나. 마누라 어딨어?
민호 돈만 받아쳐먹으면 됐지. 이혼한 마누라 어디 사는지 까지 알아야겠냐?
건달2 (흥분) 이 새끼 진짜 말 막하네. 누가 보면 니가 돈 꿔준 줄 알겠다.
건달1 (말리며 조용히) 빨리 가서 집 값 찾아와. 이혼한 척 하고 돈 몰아주는 커플 수도 없이 봤는데... 돈 가진 쪽이 항상 배신을 때려요. (민호의 뺨을 툭툭 치며) 아저씨 정신 차려.
민호 내 마누라 못 봤어? 재수 옴 붙은 얼굴 죽도록 싫어서 겨우 떼 낸 거야. 누구랑 붙 어먹든지 상관없어.
씬 20. 은아의 방 (밤)
짐 가방과 박스 몇 개 뿐인 썰렁한 방안.
은아, 무릎을 세우고 앉아 바닥에 놓인 휴대폰을 본다.
민호 (E) 꼭꼭 숨어. 찾아오지도 말고 전화도 하지마.
(E) 문 두드리는 소리.
은아, 흠칫. 돌아본다.
씬 21. 옥상 (밤)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은아, 문 앞에 선 형진을 보는데.
형진 (말할까 말까 고민) 후...
은아 ?
형진 (툭 내뱉듯) 어떡하믄 되는 거예요?
씬 22. 촬영장 조선시대 옥사 (다른 날 오후)
옥사 앞에서 홍길동 정도의 주인공들이 액션 연기 중이고
뒤편 옥사 안에는 형진을 포함한 죄인들, 갇혀있다.
형진 (조용히 입 거의 안 움직이며) 혹시 보험 든 거 있어요?
죄인1 왜, 아르바이트로 보험해?
형진 암 보험 좋은 게 나왔는데... 안 걸려도 원금은 받을 수가 있다네?
죄인2 에이 그런 게 어딨어.
형진 아, 진짜라니까.
PD (E) 컷! 저 뒤에 죄인들 잡담하지 마세요. 카메라에 다 걸립니다!
형진 (미안한 듯 웃음)
씬 23. 촬영장 (몽타주)
분장담당, 수염과 가발을 eP 주는 동안 형진, 열심히 설명한다.
시큰둥한 분장담당.
형진, 스텝들에게 열심히 설명하지만 다들 듣는 둥 마는 둥.
씬 24. 형진의 집 계단 (밤)
계단을 올라오던 형진, 멈춰 선다.
형진모, 쇼핑백을 들고 서있다. 형진, 외면하고 열쇠를 꺼낸다.
형진모 텔레비전 보니까 남자들도 화려한 색 많이 입더라. 배우라는 사람이 맨 우중중한 것만 입어서 되겠어?
형진 ... (현관문 연다)
형진모 (잡으며) 형진아.
형진 (뿌리친다. 차갑게 보며) 귀는 멋으로 달았어? 오지 말랬지!
형진모 ...
형진, 집 안으로 들어간다. 쾅 하고 닫히는 문.
형진모, 닫힌 문을 먹먹하게 본다.
씬 25. 형진의 집안 (밤)
형진 (E) 저기!
힘없이 계단을 내려가던 형진모, 돌아본다. 기대에 찬 눈빛이다.
형진 ... 보험 들래?
씬 27. 보쌈집 (다른 날 밤)
형진과 은아 앞에 돼지고기 보쌈 놓여진다.
형진 밥 살 돈 있으믄 가방이나 사라니까.
은아 밥 아니고 고기잖아요.
형진 어라, 농담도 할 줄 아네?
은아 ... 고마워요.
형진 (보쌈 한가득 입에 넣고) 힘들겠어요.
은아 ...
형진 (우걱우걱 씹으며) 그거 그 보험 하는 거. 것도 웃어야 되는 일 아닌가?
은아 (물끄러미 보다가) ... 고마워요.
형진 두 건 해줘서 고맙단 말 두 번 하는 거예요? 빨리 먹어요.
은아 (신경 써주는 형진이 고맙다. 따뜻한 느낌)
씬 28. 꽃집 앞 거리 (밤)
꽃집 앞, 작은 크기의 화분들이 즐비하게 나와 있다.
형진, 화분 앞으로 다가간다.
형진 (뒤돌아 은아에게) 하나 골라 봐요!
은아 (멀찌감치 선채) 괜찮아요.
형진 밥 얻어먹구 입 딱 씻으라구요? 빨리요!
은아 (다가가 옆에 앉는다)
형진 (화분을 살펴본다. 그러다 하나를 집어 들고) 이거 어때요? 이쁘네.
은아 ... (형진의 가슴께에 손을 올린다)
형진 ! (당황한다)
은아 (형진의 셔츠 단추에 풀린 실밥을 떼어준다)
형진 ?
은아 (실밥을 들고는) 이런 거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왠지 애처로워서요. 둘 중에 하나 같거든요. 가난하거나 외롭거나.
형진 ... 무슨 말이에요?
은아 비싼 옷엔 실밥 같은 거 안 붙어 있드라구요.
형진 왜 이래요? 이거 비싼 거예요.
은아 그럼 외로운 쪽이겠네. 엄마가 있거나 아내가 있으면 이런 거 안 붙이고 다닐 텐 데.
형진 ...
씬 29. 옥상 (같은 날 밤)
은아, 기다란 화분에 심은 상추 모종에 물을 주고 있고 형진, 평상에 앉아 있다.
형진 촌스럽게 그게 뭐예요? 꽃피는 걸로 사지.
은아 고추도 상추도 다 꽃이 펴요. 이쁘지 않으니까... 아무도 눈 여겨 안 봐서 그렇지.
형진 (은아의 뒷모습 물끄러미 보다가) 나 얘기 할 거 있어요.
은아 (돌아본다)
형진 (멋쩍게) 경찰 아니에요. 나 배우예요. 것도 삼류. 있잖아요. 왜. 죄인 1, 2, 3 그런 거.
은아 ...
형진 속일려고 했던 거 아니예요. 그쪽이 먼저... 오해한 거지.
은아 저도 속일려고 했던 거 아니예요. 저... 결혼했어요.
형진 !
은아 그리고 지금은... 이혼했어요. 그럼... 공평한 거죠?
형진 ...
씬 30. 지하철 역 (다른 날 아침)
형진, 실밥남의 뒤를 졸졸 따라 계단을 오른다.
형진의 시선으로 실밥남 엉덩이에 길게 터져 나온 실밥이 흔들흔들.
형진의 손이 엉덩이에 닿는 순간, 실밥남 휙 돌아본다.
실밥남 뭐야?
형진 (배시시 웃으며 실밥 들어 보인다) 외로운 쪽이죠?
실밥남 미친 새끼! (간다)
형진, 욕먹었어도 허허실실 웃음난다.
계단을 올라와 서자 코앞에 가방 가게가 떡하니 있다.
눈 여겨 보는 형진.
씬 31. 촬영장 (오후)
태훈, 최윤재에게 자판기 커피 건네고는 돌아서서 씩 웃는다.
형진 옆에 와 앉는 태훈. 커피 마시는 최윤재의 모습 보고는.
(태훈과 형진, 경찰복 입고 있을 것)
태훈 쨔식. 맛이 좀 구리구리 할거다.
형진 (자판기 커피를 건네며) 이번엔 뭔데?
태훈 침 뱉었어. (커피 마신다)
형진 허. 그런 식으로 쪼잔하게 복수한다고 알겠냐? 제일 큰 복수는 쟤보다 잘 되는 거 야.
태훈 어우. 영원한 loser께서 웬일이야?
형진 ‘빛나는 녀석’ 오디션 언제라 그랬냐?
태훈 조만간. (의아한 눈으로 보더니) 형 좋은 일 있구나!
형진 (웃음) 근사한 식당 아는 데 있으면 좀 가르쳐주라.
태훈 윗집 여자?
형진 (그냥 웃는다)
씬 32. 공사장 건물 (오후)
민호, 벽돌 짐을 지고 일어서다 휘청, 주저앉는데
인부1 사람이 어째 그리 맥아리가 없어.
민호 (다시 불끈 일어선다)
인부1 잠깐 쉬었다 허든지.
민호 (걸음을 옮기는데 푹 고꾸라진다)
인부1 (놀라서) 장씨!
씬 33. 강남 거리 (다른 날 오후)
고급 레스토랑 앞. 나름대로 멋을 낸 형진과 은아다.
형진, 쭈뼛거리는 은아를 끌어당긴다.
씬 34. 레스토랑 안 (오후)
우아한 실내장식이 돋보이는 고급 레스토랑.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형진과 은아를 막아서는 매니저.
매니저 예약 하셨습니까?
형진 안했는데요.
매니저 (형진과 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금요일 저녁은 예약 없이 식사하시기 어렵습 니다.
형진 기다리면 자리 나겠죠.
매니저 오래 기다리셔야 할 텐데요.
은아 그냥 가요.
매니저 그렇게 하시죠.
형진 아뇨. 기다리께요. (은아에게) 맛있다는데 기다려보죠.
의자에 앉는 은아와 형진. 매니저, 둘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본다.
문이 열리고 최윤재와 여자친구, 들어온다. 화려한 차림이다.
매니저 (반기며) 어서오세요. 늦으셨네요?
최윤재 촬영이 늦어져서.
형진 (본다)
매니저 이쪽으로 오시죠.
매니저, 최윤재와 여자친구를 데리고 들어간다.
그 모습 보는 형진과 은아.
씬 35. 종합 병원 앞 (밤)
민호, 터덜터덜 걸어 나와 벤치에 앉는다.
멍하니 한참을 그렇게 있던 민호, 전화를 건다.
씬 36. 레스토랑 안 (밤)
은아의 전화벨이 울린다. 핸드백에서 휴대폰 꺼내려는데
매니저, 다가와 ‘들어오시죠’ 한다. 전화 못 받고 들어가는 은아.
씬 37. 종합 병원 앞 (밤)
민호, 일어나서 걷기 시작한다. 넋 나간 표정이다.
씬 38. 레스토랑 안 (밤)
은아와 형진, 스테이크를 먹고 있다.
은아,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둘러본다.
최윤재 여자친구를 포함한 세련된 젊은 남녀,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이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아 불편하다.
형진 (e) 왜. 맛이 없어요?
은아 아뇨. 이런 데 처음이라서요.
형진 (종이백에서 노란 핸드백 꺼내 준다) 이거.
은아 (놀라서 형진을 보면)
형진 비싼 거 아니니까 너무 감동 먹진 마요.
은아 ...
형진 (은아를 바라보진 못하고) 웃고 있죠?
은아 ...
형진 (본다) 눈 보니까 알겠네. 지금 웃고 있잖아요.
은아 네. 맞아요. 지금 웃고 있어요.
형진 (기분 좋다)
<시간 경과>
계산대 앞에 서있는 형진과 은아.
형진 (당황) 네?
매니저 봉사료 포함 16만 8천원이요.
은아 (주눅 든다) 그렇게 비싸요?
형진 에이 뭐 이 정도 갖구. (당황스럽지만 호기롭게 지갑 꺼내면)
최윤재 (e) 어이 경찰 투!
형진, 은아 (본다)
최윤재와 여자친구, 계산대로 걸어온다.
최윤재 경찰 쓰리는 어따 두고 여자랑 왔어?
형진 (기분 상한다. 지갑 열면)
은아 (돈 꺼내며) 저랑 나눠서 내요.
형진 괜찮아요.
은아 아니에요. 너무 많이 나왔어요. (하며 형진에게 돈 내밀면)
최윤재 (은아의 손을 가로막으며) 됐어요.
형진,은아 (최윤재를 본다)
최윤재 (카드 내밀며 매니저에게) 같이 계산해줘.
형진 왜 이래요?
최윤재 전부터 한번 사고 싶었어. 얼마 되지도 않는 일당 받으면서 엄청 고생하잖아.
형진 ... (짜증난다)
씬 39. 형진의 집 앞 (거리 -> 계단/ 밤)
형진, 굳은 얼굴로 걸어오고, 은아 걱정스런 얼굴로 뒤를 따른다.
계단을 오르던 형진, 누군가를 보고 멈춰 선다.
형진 (짜증) 지금 뭐하는 거야?
열쇠업자와 문을 따고 있던 형진모, 돌아본다.
형진 남의 집 문고리는 왜 따고 있어?
열쇠 (당황) 이 아줌마가 자기 집이라고 하던데... (형진모에게) 엄마라면서요?
형진모 ...
열쇠 아줌마 뭔데요? 네 참 황당하구만. (형진에게) 에구구. 난 모르겠수. 난 아무 잘못 없어요, 예? (도망치듯 급히 간다)
형진 (은아에게) 올라가요!
은아, 심상치 않은 분위기 느끼고 계단을 올라간다.
형진 보험 몇 개 들어줬다고 친한 척 하려나본데... 이건 아니지.
형진모 너 없을 때 잠깐 들러서 빨래랑 청소만 좀 해 놓으려구.
형진 (o.l) 혹시 암 같은 거 걸렸어?
형진모 ...
형진 며칠 안 남았대? 지옥 갈까봐 무서워? 그래서 속죄하고 싶어?
형진모 ...
형진 그렇게 찔리는 일이면 하지 말았어야지. 버리고 갈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이러는 거 야?
형진모 형진아, 엄마는...
형진 (폭발한다) 나한테 엄마라는 사람은 없어! 열 살 때부터 나한텐 엄마라는 사람은 없었다구!
형진모 ...
형진 20년 동안 안보고 잘 살았잖아! 아퍼 죽을 것 같을 때도, 아부지 돌아가셨을 때도 없었잖아. 그러니까 앞으로 쭉 없어도 돼. (문 열고는) 남겨 줄 유산이라도 생기믄 그 때 와. (문 쾅 닫고 들어간다)
형진모 (눈물 그렁해 주저앉는다)
계단 위에 선 은아, 이 모습 본다.
씬 40. 형진의 집 (밤)
형진, 현관문 앞에 주저앉는다. 바닥에 널브러진 슬리퍼.
형진, ‘악’하는 비명과 함께 슬리퍼를 집어 던진다.
이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
씬 41. 포장마차 (밤)
빈 소주병 여러 개. 형진, 무거운 얼굴로 술을 들이킨다.
은아 (분위기 바꿔볼 생각으로) 송강호랑 최민식은 뭐 잘생겨서 떴나요? 그 뭐더라... 넘 버쓰리, 그런 거 하나 맡으면 형진씨도 금세 잘 될 거예요.
형진 못생겼단 말 하고 싶은 거예요. 지금?
은아 그게 아니라... 형진씨 좋은 사람이니까 좋은 배우가 될 거라구...
형진 나 좋은 사람 아니에요.
은아 ... 왜 그랬어요? 엄마한테...
형진 울 아버지 목수였는데 허리 다쳐서 한 1년 자리보전 했어요. 먹고 살 일 암담하다 고, 가난 지긋지긋하다고 우릴 버렸어. 붙잡았는데... 내가 막 울면서 붙잡았는데...
뒤도 안돌아 보고 그냥 가버렸어.
은아 ...
형진 6개월쯤 전인가 어떻게 알고 찾아와서 내내 저래요. 이제 와서 엄마 노릇을 하겠 대.
은아 ...
형진 나, 용서 못해요. 절대로!
은아 ...
씬 42. 선술집 (같은 날 밤)
민호, 인부들과 술 마신다.
인부1 (민호를 말리며) 술하고 웬수 졌어? 작작 좀 마셔.
인부2 냅둬. 마누라 그리워 그러나본데.
민호 허. 마누라요? 그 얼굴 안보니까 속이 다 후련한데요.
인부1 강씨 철들라믄 아직 멀었네. 고생 더 해봐야지.
인부2 참. 병원에선 뭐래?
민호 ... 피곤해서 그렇대요. (술 마신다)
인부1 더 늦기 전에 다시 합쳐. 코피 쏟았다고 어리광도 좀 부리고. 닭이라도 한 마리 내 려달라고 해. 마누라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야 기운이 나는 거여.
민호 (생각이 많다) ...
씬43. 거리 (밤)
형진, 천천히 걷고 있다. 은아, 다가와 불쑥 아이스크림을 내민다.
은아 (형진 말투로) ‘다시 만나면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든가!’
형진 기억력 좋네. 나한테 첫눈에 반했구나!
은아 !
형진 (은아에게 얼굴 들이밀고) 이번엔 비웃었죠.
은아 아니에요. 그런 거.
형진 어어? 진짜 비웃었나 보네?
씬 44. 슈퍼 (밤)
민호, 들어선다.
민호 아이스크림 한 통 주세요. 딸기맛 나는 걸루. 저 고려빌라가 어디쯤이에요?
씬 45. 형진의 집 앞 (밤)
나란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걸어오는 형진과 은아.
형진, ‘텔레비전이 없어요? 잘 됐네. 나 나오는 거 절대 보지마요. 봐도 못 찾아요.’ 등등 얘기하는데 은아, 갑자기 얼어붙듯 멈춰선다.
형진, 의아해서 보면 빌라 앞에 서있는 민호.
민호 잘하는 짓이다!
은아 ...
형진 (궁금해서 민호와 은아를 보면)
민호 처녀행세 하고 다니냐? 남편은 빚 갚느라 허리가 휠 지경인데! 혼자 팔자 고치겠다 그거야?
은아 ...
민호 너, 작정하고 벌인 짓이지?
은아 이혼하자고 한 건 당신이 먼저예요.
민호 이혼하자는 거 순순히 동의한 이유 이제 알겠네. 남은 돈, 그거 갖고 튈려고 머리 쓴 거지? 빚은 나한테 다 떠넘기고 집 값 들고 나를려구. 아냐?
형진 (표정 굳어진다)
은아 ...
민호 빚 땜에 내 인생은 개박살 났는데...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 그거냐?
은아 그래요. 나 잘살고 싶어.
형진 !
민호 (분노) 너 다시 한번 말해봐.
은아 나 잘살고 싶어요. 당신이랑 사는 거 지긋지긋 했거든. 이혼하자고 했을 때... 내가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당신 모르죠?
민호 (따귀 때린다)
은아 (쓰러진다)
형진 ...
민호 (은아에게 아이스크림통 내던지며) 이제 빚은 니가 알아서 해.
민호, 총총히 간다.
먹먹히 앉은 은아.
형진 (차갑게) 이유가... 그거였어요? 당신도 내 엄마라는 여자하고... 똑같은 사람이었네? (피식 웃는다)
은아 ...
형진, 싸늘하게 돌아선다.
은아, 그렇게 가는 형진을 본다. 눈물이 차오른다.
씬46. 공터 촬영장 (다음날 오전)
경찰복장의 형진, 바닥에 쓰러져 비를 맞고 있다.
앞쪽에서 최윤재와 친구, ‘도망 다니는 거 더 이상 못하겠다. 자수하자’
‘싫다’ 등등으로 싸우고 있다.
감독의 ‘컷’ 소리와 함께 살수차에서 쏟아지던 비가 멈춘다.
감독, 최윤재에게 다가가 뭔가를 상의 한다.
곧이어 다시 살수차에서 비가 쏟아진다.
바닥에 누운 형진의 얼굴 위로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빗물.
씬 47. 촬영장 일각 (오전)
형진,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힘없이 버스에서 내려온다.
저만치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형진 (스텝에게 묻는다) 왜 저래요?
스텝 최윤재 열 빡 받았어요. 엑스트라 중에 한 명이 자기 욕하는 걸 들었다나봐.
형진, 급히 달려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간다.
최윤재 너 진짜 이 바닥에서 매장 당하고 싶어?
태훈 (경찰복장이다) ... 미안해요.
최윤재 미안해요? 허. (따귀를 올려붙인다)
태훈 !
최윤재 (놀리듯) 나도 미안해.
형진, 최윤재에게 돌진해 멱살을 잡는다.
최윤재 이 새낀 또 뭐야?
형진 벌써 까먹었어? (피식 웃으며) 나야, 경찰 투! (주먹 날린다)
스텝들, 달려들어 형진을 뜯어말린다.
씬48. 옥상 (밤)
은아, 쪼그리고 앉아 고추와 상추 화분을 보고 있다.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형진을 기대하며 계단 쪽을 보던 은아, 놀란다.
건달2 (빈정대며) 어떻게 알구 왔나 궁금하지! 니 남편이 가르쳐주드라. 이제 너한테 돈 받으라던데?
은아 우리 이혼했어.
건달2 그래서! 빌렸을 때는 좋-다고 같이 써놓고 이제 와서 나 몰라라 각자의 길을 가시 겠다? 갚기 전가지 니들은 남남이 아니야.
은아 돈 없어. 못 갚어.
건달1 집을 뺄래. 콩팥을 뺄래?
은아 (쏘아 본다)
건달1 이 아줌마 안 되겠네. (건달2에게 눈짓하면) 야.
건달2, 상추, 고추 심어놓은 화분 들어 엎는다.
건달1 (은아의 턱을 잡고) 3일 줄 테니까 둘 중에 하나 결정해둬. 아마 1번이 나을 거야. 만약에 도망가면! 그땐 선택할 기회가 없다. 무슨 말인지 알지? (은아를 패대기친 다)
건달1,2 내려가면 은아, 몸을 일으켜 엎어진 화분을 다시 주워 담는다.
형진 (e) 돈 많이 버는 놈을 물어요.
은아 (입술 악 물고 상추, 고추 다시 심는다)
형진 빚 갚아줄 사람 만나면 한 방에 해결되잖아.
은아 충고 고마워요. 난 당신한테 돈 좀 있는 줄 알았지.
형진 (화난다. 은아가 들고 있던 화분을 거칠게 빼앗아 마구 집어 던진다)
은아 ...
형진 그렇게 살면 벌 받는 거야. 돈 땜에 사람 버리면 벌 받는 거야. 알어?
은아 (o.l) 무서웠어!
형진 ...
은아 내 얼굴 이렇게 만든 거 그 사람이야. 사고 낸 거 미안했는 지 평생 잘 하겠다고 매달리고 또 매달려서 결혼했는데... 내 얼굴만 보면 되는 일이 없대. 니 우거지상 때문에 참을 수가 없다고 늘 말했어. 그 말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그 사람 말 대로 불행해 질까봐... 평생 불행해질까봐 너무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어.
형진 ...
은아 (눈물 그렁해 본다)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은 당신 엄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를 거야. 왜 그랬냐고... 왜 버렸냐고... 물어본 적도 없지? 그냥 가난 때문이었다고 믿 고 싶은 거겠지. 다른 이유는 알고 싶지도 않은 거잖아.
형진 !
씬 49. 포장마차 (다른 날 밤)
형진, 태훈, 술 마신다.
태훈 미안해.
형진 (말없이 술만 마신다) ...
태훈 (분위기 바꾸려 오버) 오디션 날짜 잡혔어. 주연급 중에 세 명은 새 얼굴로 할 거 래.
형진 (연거푸 들이키고) ...
태훈 (풀 죽어) 나 땜에 짤렸는데 그거까지 안 되면 나 진짜 맘 불편할 것 같아. 우리, 그거 잘해보자. 어? 형!
형진 ... (태훈의 어깨 봉제선에 붙은 실밥을 떼어준다)
태훈 형!
형진 (일어난다)
씬 50. 은아의 방 (밤)
은아, 벽에 기대 앉아 멍한 눈으로 뭔가를 보고 있다.
시선 끝에 형진이 선물한 노란 핸드백.
씬 51. 거리 (밤)
형진, 추적추적 어디론가 걷는다.
씬52. 호프집 앞 (밤)
안에서 손님들 나오면 뒤따라 나오는 형진모.
형진모 2차 갈 생각 말고 곧장 집으로 가. 애들이 기다려, 어?
손님들, ‘분부대로 합죠’하며 가고 나면
형진모, 돌아서서 들어가려다 벽에 기대 앉은 형진을 발견하고 멈칫
형진모 형진아!
형진 ...
형진모 (앞에 가 앉는다) 무슨 일 있는 거야?
형진 (본다)
형진모 ...
형진 하나만 물을게...
형진모 ...
형진 너무... 힘들었던 거지.
형진모 ...
형진 너무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가 없었던 거지.
형진모 (눈물 그렁해지고)
형진 금방 돌아올려고... 했었던 거지. 가난 땜에 그런 거... 아니지.
형진모 (운다)
형진, 일어나 추적추적 간다.
형진모, 망연히 앉아 흐느낀다.
씬 53. 형진의 집 계단 (다음 날 오후)
은아, 힘없이 계단을 오른다. (퇴근길. 씬5의 비닐 핸드백 들고 있을 것)
형진의 문 앞에 멈춰 선채 한참을 본다.
씬 54. 옥상 (오후)
은아, 옥상 문을 열고 들어서면
건달1 (e) 결정했어?
은아, 보면 건달1,2, 평상에 앉아있다.
건달1 결정했냐구?
은아 ...
건달2 이게 말귀를 못 알아듣나? (때릴 것처럼 은아에게 다가간다)
은아 그 사람한테 가서 받어.
건달2 (은아의 멱살 잡아 흔들며) 그 새끼 잠수 탔거든? 이제 니가 갚아야 된다구, 어!
건달1 기어이 신체포기각서를 쓰시겠다?
형진 (e) 내가 갚아주께.
은아, 건달1, 2 형진을 본다.
형진 내가 갚아주께. 그 돈.
건달2 오우~ 이 아줌마 재주 있네. 그새 하나 물었어?
건달1 어떻게 갚을 건데?
형진 집 팔 거야. 시간을 좀 줘.
은아 !
건달2 그걸 어떻게 믿냐?
형진 남자 대 남자로 말하는 거야. 갚을 거니까 이 여자 괴롭히지마.
건달2 오후~ 멋있는데.
건달1 7천이다. 장난치면 그땐 아마, 장례식장 잡아야 될 거야. 알지?
건달1, 앞장서면 건달2, 두 사람을 놀리듯 휘파람을 불며 따라간다.
은아 왜 이래요?
형진 당신 집하고 내 집 팔면 얼추 맞아요.
은아 왜 이러는 거냐구요.
형진 빚 갚구... 같이 떠나요.
은아 싫다면서요. 나 같은 여자! (울먹) ... 싫다면서.
형진 (울컥, 토해내듯) 젠장! 당신 얼굴이 우리 엄마랑 똑같애. 못 웃어. 웃을 일이 한번 도 없었으니까.
은아 ...
형진 웃게 해주고 싶어! 처음 봤을 때부터... 웃게 해주고 싶었어.
은아 (눈가 그렁해진다)
씬 55. 몽타주
55-1 복덕방 앞 거리 (*은아, 노란 핸드백 들 것!)
복덕방에서 나오는 형진과 은아.
55-2 형진의 집
복덕방의 안내로 집 구경하는 사람들.
55-3 옥상
샌드백 치는 형진. 평상에 앉아 그 모습 보는 은아.
55-4 남성복 매장 (*역시 노란 핸드백 들 것!)
옷 구경하는 두 사람.
형진, 양복을 입고 탈의실에서 나오면
은아, 형진의 넥타이를 바로 잡아준다.
거울을 보는 형진, 꽤 폼 난다. 뒤쪽에서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있는 은아에게 활 짝 웃어 보이는 형진.
씬 56. 형진의 집 (다른 날 밤)
형진, 문을 열면 형진모, 서있다.
문을 열어둔 채 멋쩍게 돌아서는 형진.
형진모, 망설임 끝에 따라 들어간다.
<시간 경과>
형진모, 탁자 위에 김치전 놔주고 주방 쪽으로 돌아선다.
형진 대단한 거 해줄 것처럼 그러더니. 김치전이 뭐야. 김치전이. (먹는다)
형진모 너 그거 좋아했어. 어렸을 때. (김치전 다시 부친다)
형진 그랬나? (쑥스럽지만) 뭐해? 같이 먹지.
형진모 ...
형진 이리 와요. 그만 하고.
형진모 (어색하게 돌아선다) 그럴까?
형진모, 다가와 앉아 형진이 먹기 좋게 찢어주는 김치전을 먹는다. 울컥, 눈물이 고인다.
형진 며칠 뒤에... 나 여기 떠요.
형진모 ...
형진 어디로 갈진 나도 몰라.
형진모 (미소로) 어서 먹어. 식으면 맛 없잖아.
씬 57. 옥상 (밤)
은아, 문을 열면 민호, 서있다.
민호 (비닐봉지 들어서 보여주며) 옷 하나 샀다.
은아 ...
민호 감격 했나?
은아 이러지 마요.
민호 들어가서 빨리 입어봐.
은아 (문을 닫고 들어가려는데)
민호 (문을 잡는다) 보고 싶었어.
은아 (생각지 못한 말에 당황)
민호 내가 잘못했어.
은아 너무 늦었어요.
민호 (간절한) 같이 있고 싶어.
은아 그러기 싫어요.
민호 (순간 확 돈다) 그 자식 때문이냐?
은아 ...
민호 그 자식 때문이냐구!
은아 (본다. ‘그렇다’는 것처럼)
민호, 은아를 후려 칠 것처럼 손을 번쩍 쳐드는 순간.
형진, 민호의 팔을 붙잡는다.
민호, 돌아보면 단호한 형진의 눈빛.
씬 58. 형진의 집 앞 거리 (밤)
형진, 민호를 끌고 나와 붙들고 있던 손목을 툭 놓는다.
형진 은아, 당신이 먼저 버린 겁니다.
민호 빚쟁이한테 시달리는 일. 저 여자까지 계속 당하게 하고 싶진 않았어.
형진 술 먹고, 도박하고, 되지도 않을 사업에 돈 끌어다 쓴 일도! 모두 저 여자를 위해서 였습니까?
민호 잘 살아보려구 그랬어. 잘 살아보려구!
형진 잘 살지 못했잖아요.
민호 그래서! 넌 저 여자랑 잘 살 것 같냐?
형진 이제 빚 안 갚아도 돼요. 내가 갚을 거니까. 대신... 다시 은아 찾지 마세요. (돌아 선다)
민호 (e) 죽는대.
형진 (멈칫)
민호 위암이란다.
형진 (돌아본다)
민호 (눈가 붉어져 이죽이며) 수술하면 살지도 모른다는데 난 지금 돈이 없거든. 그럼 죽는 거거든.
형진 너 왜이래? (멱살 잡으며) 이 새끼 너 왜 이래?
민호 억울해서. 나 이렇게 됐는데 너네만 행복하면 너무 억울하잖아.
형진 거짓말이지. 거짓말이지? 말해 빨리! 말하라구.
민호 (웃는다) 나도... 거짓말이면 좋겠다.
형진 (멱살을 잡았던 손에 힘이 풀리며) ...
씬 59. 옥상 (밤)
은아, 평상에 앉아 거리를 보고 있다.
형진, 다가가 먹먹한 눈으로 은아의 뒷보습을 본다. 한참을 그렇게.
은아 (일어나 형진을 본다) 빨리 자야죠. 내일 오디션 있다면서요.
형진 ...
은아 (형진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형진 (손목을 잡는다)
은아 (보면)
형진 (확 끌어안는다)
은아 ?
형진 (눈가가 붉어진다)
씬 60. 형진의 집 (아침)
형진, 벽에 소중히 걸어둔 양복(은아가 사준)을 본다.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쟈켓을 입는 형진.
전신거울 앞에서 단호한 표정으로 다짐하듯 자신의 눈을 본다.
씬61. 옥상 (아침)
형진,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고 나오는 은아.
형진 나... 멋있죠?
은아 (끄덕인다)
형진 가요!
은아 ?
형진 암이래.
은아 ?
형진 그 사람, 당신 남편... 심각하대.
은아 (보며 멍한) 무슨...?
형진 ...
은아 (시선 피한다) 상관 없어요. 그 사람 어떻게 되든 이제 나랑 상관없어요.
형진 (은아의 어깨를 붙잡는다. 단호한 눈빛으로 본다)
은아 (무슨 뜻인지 알겠다. 고개 내저으며) 싫어요.
형진 ...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오늘, 내일... 말고 평생...
은아 (눈물 그렁해진다)
씬 62. 은아의 방 (아침)
은아, 문을 닫고 스르르 주저앉는다.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노란 핸드백을 끌어안는다.
눈물이 주르르 슬픔으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씬63. 옥상 (아침)
가방 챙겨들고 나오는 은아를 막아서는 형진.
은아 (보면)
형진 (은아 손에 통장 쥐어준다)
은아 (뿌리치며 쏘아본다)
형진 갖구 가요.
은아 필요 없어요.
형진 수술 할려면 돈 들잖아!
은아 ...
형진 살려야지! 수술 성공해서 멀쩡해져야지! 이렇겐... 안 되잖아!
은아 당신 바보예요?
형진 ... 마지막까지 멋있고 싶어서. (눈물 참으며 씩 웃는다) 나... 배우잖아요.
씬 64. 거리 (아침)
은아, 망연히 걸어간다.
그 모습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형진.
씬 65. 옥상 (아침)
형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서있다.
온몸에 체액이 다 빠져나간 듯 휑한 눈길.
형진의 뒤로 건달1, 2, 다가와 선다.
건달1 좋은 아침!
형진 ...
건달1 사람이 왔으면 인사 정도는 해야지.
형진 (돌아선다) ...
건달2 준비했어?
형진 ...
건달2 돈 갚는다며 준비했냐구?
형진 (봉투 꺼낸다)
건달1 (꺼내본다. 만 원짜리 몇 장. 황당하다) 뭐야, 이거!
형진 한꺼번에 갚는다고는 안했잖아. (씩 웃으며) 천천히 갚으께.
건달1 이 자식이!
건달1, 2, 형진을 사정없이 팬다.
아무 저항 없이 그대로 맞아주던 형진, 푹 고꾸라진다.
씬 66. 오디션장 (오후)
오디션 지원자 서넛쯤 남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고
태훈, 초조한 얼굴로 전화를 걸고 있다.
(e)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태훈, 전화를 끊고 다시 통화버튼을 누르는데
여자 (문을 열고 나와) 2012번 조형진씨!
태훈 ! (보면)
여자 조형진씨 안 계세요?
태훈 (허탈해지는데)
씬 67. 호프집 앞 거리 (해질녘)
씬1과 동일함.
형진, 추적추적 걸어온다. 비틀대더니 쓰러진다.
힘들게 몸을 뒤척여 하늘을 향해 눕는 형진.
입술이 터지고 눈가가 멍들어 형편없이 망가진 얼굴. 초점 없는 먹먹한 눈.
(e) 휴대폰 벨소리.
형진 (주머니에서 꺼내 전화 받는다)
은아 (f) ...
형진 ...
은아 (f) 웃게 해주고 싶다고 했죠? 몰랐을 거예요. 나... 당신을 보는 내내 웃고 있었어 요. 당신이 안 보이는 내내... 당신 생각하면서 웃고 있었어요. 당신은 늘... 날 웃게 해준 사람이에요.
형진 ...
형진, 전화기를 툭 놓치고는 눈을 감는다.
씬 68. 형진의 환상
씬55-4 남성복 매장
거울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형진을 향해 환하게 웃는 은아.
씬54 ‘웃게 해주고 싶어! 처음 봤을 때부터 웃게 해주고 싶었어’ 라고 말하는 형진을 향 해 눈물 그렁한 채 환하게 미소 짓는 은아.
씬38 ‘비싼 거 아니니까 너무 감동 먹진 마요. 웃고 있죠?’ 하는 형진을 향해 미소 짓는 은아.
씬27 ‘두 건 해줬다고 고맙단 말 두 번 하는 거예요? 빨리 먹어요’ 하는 형진. 그런 형진 을 보고 미소 짓는 은아.
씬15 시장에서 물건 값 깎는 형진을 보고 미소 짓는 은아.
씬10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하며 환하게 미소 짓는 은아. 그런 은아의 미소 미소 미소.
씬 69. 호프집 앞 거리 (해질녘)
형진의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형진모, 쓰레기봉투를 들고 호프집에서 나오다가 쓰러진 형진을 발견한다.
형진모 (다가와, 놀라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형진아!
형진 (눈을 뜬다. 간신히 입을 뗀다) ....... 엄마!
씬 70. 거리 (1년 뒤 오후)
비가 온다.
여우1 (e) 오빠 진짜 여자 없어?
씬 71. 룸살롱 (오후)
형진, 양 옆에 여자를 끼고 앉아 술 마신다.
형진 없어.
여우2 에이, 몇 달 전까지 좋아하던 여자 있었다던데?
형진 몇 달 전 여자까지 어떻게 기억을 하고 사냐? 어제 같이 잔 여자도 기억을 못하는 데.
여우1 그럼 우리... 오늘 밤 같이 있을까? 내일 기억 못하는지 보게.
형진 (피식 웃으며) 흠, 그럴까?
감독(e) 컷!
형진, 웃음을 거두고 일어선다. 촬영장이다.
형진 수고 하셨습니다.
씬 72. 술집 밖 거리 (오후)
형진, 건물 안쪽에 서서 내리는 비를 보고 있다.
이때 검은색 밴 와서 서고
내려오는 차창으로 여우1, 얼굴 빠끔 내민다.
여우1 타요. 바래다줄게.
형진 후배가 기다려서요.
여우1 (뾰로퉁해진다) 내일 봐요.
검은색 밴, 출발하면
태훈 (e) 왜 내 핑곌 대고 그러냐?
형진 (보면 우산을 들고 선 태훈)
태훈 (우산 건넨다) 사서 궁상은 암튼... 쟤 한테 잘 보이면 혹시 알아? 큰 배역 하나 툭 떨어질지.
형진 ...
태훈 아무 소식 없지? (혼잣말) 남편이랑 다시 잘 된 건가...
형진 ... (비 오는 하늘 올려다본다)
씬 73. 호프집 앞 거리 (오후)
비가 그쳤다. 호프집 문 앞에 내어놓은 고추, 상추가 비에 흠뻑 젖어있다.
형진, 화분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이때 문 열리고 형진모, 장바구니 들고 나오다
형진모 촬영 잘 끝났어?
형진 어. 근데 얘들 왜 밖에 내놨어?
형진모 비 좀 맞힐려구. 맨날 수돗물만 먹으면 배탈날까봐.
형진 (웃는다) ... 엄마, 얘들두... 꽃이 피는 거 알아?
형진모 뚱딴지 같은 소리. 꽃이 피니까 열매가 맺히는 거지.
형진 ...
형진모 금방 갔다 올 테니까 가게 잘 보구 있어. (가면)
형진 (일어선다) 엄마!
형진모 (돌아본다)
형진 올 때 붕어빵 사와.
형진모 (미소로) 알았어. (간다)
형진, 가는 형진모를 미소로 보다가 돌아선다.
가게로 들어가려고 문을 열다 이상한 기운에 멈칫.
유리문에 어린 자신의 모습 뒤로 비친 한 여자의 모습.
형진, 돌아보면 저만치 노란 핸드백을 들고 서있는 은아다.
시간이 멈춘 듯 한참을 그렇게 선 두 사람.
굳었던 형진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인다.
은아도 따라 미소 짓는다.
웃고 있는 형진의 눈이 그렁해진다.
형진의 시선으로 은아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