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일 (7월 3일)
1독서 즈가 9:9-12, 시편 145:8-14, 2독서 로마 7:15-25상
<복음> 마태 11:16-19, 25-30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17 마치 장터에서 아이들이 편 갈라 앉아 서로 소리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 하며 노는 것과 같구나.
18 요한이 나타나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저 사람은 미쳤다.' 하더니
19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27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나이다. 비옵나니, 주께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생명을 바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섬기며 살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1:29)
전병세 신부 (프란시스, 대소교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비유입니다.
어느 시골 장날 무더운 날씨에 어떤 할머니가 머리에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모습을 본 지나가던 버스 운전기사는 그 할머니가 안쓰러워서 차를 세우고 그 할머니를 무료로 태워 드렸다.
한참을 가다 보니까 그 할머니가 여전히 머리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운전기사가 “할머니 머리에 이고 계신 짐을 버스 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왜 아직도 머리에 이고 계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할머니가 “아이고, 나 하나 태워 준 것도 고마운데 어떻게 짐까지 내려놓을 수 있느냐?"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하면서 초청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와서 “주님, 나의 무거운 짐을 받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다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를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는 멍에를 주님과 함께 멜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주님께 배우기를 원하고, 배운 것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만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은 “멍에는 주님만 메십시오. 나는 멍에는 싫고 평안하기만을 원합니다.”라고 떼를 씁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려고도 하지 않고,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을 배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소 두 마리를 한 조로 하여 경작을 합니다.
이것을 ‘겨리’, ‘겨릿소’ 라고 하지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과 한 멍에를 메는 겨리의 동반자가 되어 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몫은 하지 않으면서 주님께 자신의 멍에까지 메고 가시라면서 모든 짐만 주님께 드리려고 하기에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멍에는 주님께서 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멍에는 우리 각자가 져야 합니다.
주님과 보조를 맞춰서 인생을 경작하는 한 멍에를 멘 성도가 되어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은총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