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아침 7시25분 출발하는 블루스타 페리를 타야 하기때문 아테네의 외항 피레우스에 있는 호텔에서 다섯시에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아직 어둠이 걷히지않은 거리를 달려 부두 E1을 향해 차를 몰았다. 카페리를 아침에 타는 관계로 부두가있는 항구도시 피레우스에 호텔을 잡았었다.
배 출발 시간보다 한시간반 일찍 와서 한산한 상황에서 배에 올랐다. 토요일 주말 이라 사람이 많다. 배가 크다. 목포 제주 다니는 시스타 카페리보다 훨씬 커 3개층을 객실로쓰는데 우리가 쓰는 7층도 구역 별로 A B C D로 나눠놓고 의자도 차등을 두고 요금도 다르게 책정해 놓았다.
우리는 마닐라에서 인터넷으로 이 배를 예약해놓고 배표는 어제 회사를 찾아가서 받아왔었다. 11시 반에 중간기착지 파로스섬에 들렸다가 12시 되기전에 다시 출발 오후 3시반 산토리니섬에 도착했다.
파로스섬, 아데네에서 산토리니가는 페리의 중간 기착지, 보이는 배는 우리가탄 배와 같은 회사의 다른 배
파로스섬 주도(主都)는 파리키아이다. 면적 186㎢. 인구 약 8천(1990). 에게해(海)에 있는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낙소스 다음으로 큰 섬이다
그리스 본토와 동방세계를 잇는 교역로의 결절점(結節點)으로서 예로부터 번창하였다.
파로스 섬에서 BC 700년경 에게해 북쪽 연안 부근의 타소스섬에 이주민을 보내어 흑해(黑海)무역의 거점을 확보하는 동시에 타소스 섬의 금광에서 나오는 부(富)에도 관여하였다.
또한 BC 6세기 이후 파로스에서 산출되는 질 좋은 대리석은 건축 ·조각 등의 재료로서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파로스 섬은페르시아전쟁 때에는 페르시아 쪽에 가담하였으나 나중에는 델로스 동맹에 가담하였다.
BC 1세기 중엽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고
파로스 섬은 9세기에는 크레타섬을 거점으로 하는 아랍인 해적의 습격으로 쇠퇴하기도 하였으나 13∼15세기까지 프랑크인(人) ·베네치아인의 지배하 에서 번영을 회복하였다.
그 후 1537년에는 터키에 병합되기도 하였으나 1830년 그리스령으로 복귀하였다.
파로스섬의 해안 해수욕장
드디어 8시간 항해끝에 산토리니 상륙
산토리니는 지중해의 큰 섬이었는데 기원전 1600년경 화산활동으로 폭발이 일어나면서 섬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둥근 형태의 칼데라(Caldera) 호로 남게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