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코스 : <약 2시간내>
<독립문역 - 일주문 - 인왕사 - 253봉 - 범바위 - 인왕산 - 기차바위 - 홍제4동 - 홍제역
오늘은 효창구장에서 재경오현고등학교 총동문회가 있는 날이다.
매주 산행을 하다가 빠지면 섭섭하다고 일찍 몇몇 친구들과 가까운 인왕산을 탐방하고 구장으로 가기로 했다.
재경오현고등학교 20회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정말 대단하다.
사람이 살면서 하나쯤은 자신과 약속에서 이행한다는 생각에서 모든 일요일에는 뭉친다.
인왕산입구에서( 뒤에 보이는 절이 인왕사이다)
태조이성계를 모시는 국사당도 있다.
선바위 뒷모습이다.
인왕산 정상에서 사직단으로 흘러 내인 능선 중턱의 도성 밖 서쪽에 선바위가 있다. 마치 장삼에 고깔을 쓴 모양의 바위로, 언뜻 보아 불심 깊은 거인이 바위로 굳어진 모습이다. 그래서 선암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위가 우뚝 서 있다는 의미의 선바위가 선암이란 불교식 이름으로 미화된 것 같다.
도성을 쌓을때 무학대사는 이 바위을 성 안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정도전은 이 바위를 성밖으로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 이 바위를 성 안네 넣을 경우 불교가 융성하고, 성 밖으로 할 경우 유교가 왕성하게 된다 "는 정도전의 충고를 들은 태조 이성계가 용단은 내려 오늘처럼 선바위가 성밖에 자리하게 됐다. 무학대사는 태조이 이 같은 결정을 두고 "앞으로 중은 선비의 책 보따리나 짊어지고 싲우할 신세로구나"라고 크게 한탄했다고 한다.
인왕산 국사당은 무속신당(巫俗神堂)으로, 태조 이성계(李成桂)와 무학대사(無學大師), 그리고 여러 호신신장(護身神將)을 모시고 있으며, 특히 무학대사를 모시는 데에서 국사당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원래 이 당은 남산 꼭대기 곧 팔각정 자리에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5년(1396)에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태종 4년에는 호국의 신으로 삼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목멱신사(木覓神祠)라고도 불렀다.
이 당은 1925년에 남산에서 이곳으로 이전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저들의 신사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국사당이 높은 곳에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이전 장소를 인왕산 기슭으로 택한 것은 태조와 무학대사가 그곳에서 기도하던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전할 때 그 재료를 그대로 옮겨 원형대로 복원하였다고 하며, 당의 전면 3칸에 왼쪽에 한 칸이 붙어 있었으나 뒤에 오른쪽 한 칸을 붙였다. 따라서 전면은 약 20여m이고 측면은 9m정도의 크기이다. 기둥 칸살은 전면 어간(御間) 약 2.6m에 협간(夾間)과 측간(側間)은 모두 2.4m로, 내부 넓이는 모두 11평이고 바닥은 마루이다. 또 마루 좌우에는 온돌방이 있는데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다. 마루 전면과 좌우 일부에는 무신도(巫神圖)가 걸려 있고 무신도 앞에는 제상이 있으며 마루는 굿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일반건물보다 단순한 구조이긴 하나 구조는 큰 편이며 집 전체적인 구성은 견실하고 간소하면서도 방주(方柱)의 실귀〔糸刻〕이나 문살문의 새김 등과 같은 세밀한 부분에서는 최소한의 세련미가 가해져서 우아한 면도 엿보인다. 또 대들보의 후림이나 서까래의 배흘림, 규격 설정 등에서 경공(京工)의 솜씨를 엿볼 수 있어서, 영조(英祖)·정조(正祖) 이래의 견실과 간결을 위주로 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국사당은 굿만 하는 곳이 아니라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참배하고 기도도 드린다. 참배객은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방에서도 찾아오는데, 정월에 가장 많이 찾아온다. 이 당에서 주로 행하는 굿은 사업 번창을 비는 경사굿과 병(病)굿 또는 우환굿 그리고 부모의 사령(死靈)이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진오귀굿이다. 그러나 이 당은 무당이 상주하는 곳이 아니고 당주(堂主)가 관리하면서 무당의 요청이 오면 당을 빌려주기 때문에 1년 내내 굿을 하나 하루에 보통 3건, 많을 때는 4∼5건을 하는데 특히 3월과 10월이 가장 많고 음력 섣달은 굿이 거의 없는 편이다. 당주는 신령님을 위해 2년마다 동짓달에 날을 잡아서 '마지'라는 제사를 올리는데 무녀를 초치해서 굿을 한다.
이 당 주위에는 기자암(祈子岩)으로 이름난 선(禪)바위가 있고 암자가 여러채 있으며 또 일반주택과 격리되어 있어 굿장소로 적합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이 국사당은 쇠잔해 가는 서울 무속의 집결처로서 무속신앙 연구에 도움이 되고 있다.
기암괴석위에 앉아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기차바위를 내려오면서 청와대쪽을 쳐다보고 있다.
인왕산정상에서 (집사람과 친구 집사람들과 함꼐)
날씨가 무척이나 무더워 수건들을 모자속에 넣어 쓰고 있다.
안산을 배경으로 하여 한장찍었다.
좌측은 인왕산치마바위이고, 우측이 안산이다.
신록이 푸르름을 더해 가는 계절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산은 그 넓은 품을 한없이 열여준다.
언제인가
우리는 모두 또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아닌가?
그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다가 또 자연으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