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와 시詩
김동원
해당화가 노을을 죽일 때, 알아챘어야 했네
그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네
목을 그은 붉은 고래여!
언어를 살해하라
그리고, 그리고 모래 벌이여!
노을이 해당화를 죽일 때, 알아챘어야 했네
흐렁 흐렁 흐렁
김동원
아이고, 자가 누고! 복순 아버지, 순돌이네 큰 애, 뒷집 허갑이 아제 아이가. 신묘년 오징어잡이 한배 탔다가 몽땅 수장水漿된, 가엾은 가엾은 목숨들. 흐렁 흐렁 흐렁 물 밟고 서성이네. 그래 그래 그래…, 뭍은 무탈하니 훨훨 다 벗고 올라 가거래이. 돌아볼 것 없다 카이! 아이고, 이 새벽 뭐 할라꼬 또 흰 수의壽衣 입고 저리들 몰리오노!
흉중
김동원
1.
내가 바다를 바라본 까닭은, 밀물 속 흐릿하게 밀려오는 마흔에 가신 아버지가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네 살 난 아들을 두고 가신, 그 흉중의 물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아침 해만 보면 청상의 어머니는 “아이쿠, 느그 아부지 바닷속에 장작불 때는 것 좀 보래이” 그러셨다. 동해를 숫제 우리 집의 가마솥으로, 붉은 해를 아궁이의 장작불로, 방어나 고등어를 무슨 고봉밥처럼 귀히 여기셨다. 나만 보면 까까머리통을 쓰다듬으며, “우예, 이리 제 아비를 닮았을꼬?” 신기해하셨다. 언제나 엇비슥 웃는 그 서른의 어머니는 봄날 수평선 위에 핀 모란꽃처럼 환하셨다.
2.
어릴 때 나는 먼 도시에도 고향 구계항처럼, 집 집마다 앞마당 앞에 바다가 하나씩 있는 줄로만 알았다. 고래가 잡히고 시원한 대구탕을 마음껏 먹는, 그런 바다가 도시 옆구리에 출렁거리는 줄로만 알았다. 열두 살 어린 나이로 혼자 대구로 전학 오고서야, 내 바다는 동해뿐임을 알았다. 그날 엄마의 손에 이끌려 포항 역사(驛舍)에서 처음 타보았던, 그 기차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마냥 신기하여 차가운 쇳덩어리를 만지고 또 만져보면서, 고래보다 더 큰 기차 칸을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3.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나는 텅 빈 하숙집 골방에 쪼그려 앉아, 늘상 바다를 그리워했다. 비릿한 엄마 냄새가 그리웠고, 얼굴도 모르는 그 아비가 보고 싶어 외로웠다. 아버지는 한겨울 장갑 낀 손이 꽁꽁 얼어붙어도, 자식을 위해 바다로 나가야만 했다. 잡은 고기들은 인근 강구항이나 구계 어판장에서, 대처로 팔려나갔다. 고된 하루 일을 마치면 노을이 질 무렵,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동구 밖 입구에 서서, 네 살의 나는 아비가 사 오는 알사탕을 침이 고인 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누이와 나를 남겨두고 눈깔사탕을 사기 위해, 저승의 바다로 서둘러 노 저어 떠나셨다.
4.
환갑이 된 지금도 생사(生死)의 진리를 모르지만, 그때 역시도 죽음이 알사탕 같다고만 생각했다. 선친이 돌아가신 날은 몇 날 며칠 장대비가 퍼부었다. 마당에 천막을 치고 문상객을 맞은 나는 마냥 신이 났다. 모처럼 집 마당에 동네 어른들로 넘쳐난 것을 본 나는, 무슨 잔치 날 같은 생각을 했다. 서른의 어머니는 죽은 남편 관(棺)을 붙잡고 호곡(號哭)을 하고, 그 설움의 깊이를 알 길 없는 난, 맞지도 않는 상복을 입고 천방지축 빗속을 뛰어다녔다. 그 어미마저 불귀의 객이 되고 만 지금, 그날 어린 철부지를 지켜봤을 청상의 어미 흉중을 생각하면, 아득하고 아득하다.
5.
아버지를 산에 묻고 돌아온 다음 날에도 나는 당신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전처럼 자전거를 타고 알사탕을 사서 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은 채, 동구 밖에서 오도카니 앉아 기다렸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선친의 친구분을 만날 때마다, “우리 아버지는 언제 와요?”라고 묻곤하였다. 그럴 때마다 바다를 가리키며 “네 아버지는 이다음 돈 많이 벌어 저 바다를 건너온단다.” 일러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남몰래 언덕에 앉아 바다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혹여, 수평선 너머 붉게 떠오르는 해를 타고, 아버지가 물 위로 나를 만나러 나오실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혔다.
6.
이따금 아비가 보고 싶을 때면 어등(漁燈)을 켜고 바다를 깨워야만 했다. 여름 새벽, 우연히 동네 형을 따라, 소몰이하러 마을 뒷산 봉황산 꼭대기에 올랐던 어린 시절. 그 황홀한 일출의 바다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아침 핏빛의 바다 물속 잠기어 꿈틀거리던 붉은 햇덩이는, 사무친 아비의 글썽인 눈물이었다. 나는 두 팔을 벌려, 그 산정에서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목 놓아 불렀다.
찐빵과 미역
김동원
막걸리에 소다를 넣은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오를 때쯤, 보름달은 바닷물 위에 떠 출렁거렸네. 낮엔 생선을 팔고 밤이 오면 홀어머니는, 찐빵을 쪄 팔았네. 팥은 푹 삶아 으깨어 앙금을 만들고, 반죽은 정성과 사카린을 섞어 따뜻한 아랫목에 덮어두었네. 희한하게도 면 보자기 너머로 볼록볼록 반죽 터지는 소리가 나면, 온 동네 처녀들이 암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우리 집 부엌으로 숨어들었네.
꾸덕꾸덕 해풍에 잘 마른 긴 미역 오리를 손에 들고 와, 갓 쪄낸 노르스름한 김 오른 찐빵과 바꿔 먹었네.
참 이상도 하지. 어디에서 분 냄새를 맡고, 한밤중만 되면 오징어 피데기를 들고 총각 놈들이, 수고양이처럼 우글우글 모였네. 밤새워 낄낄 깔깔 눈을 맞추곤, 어느새 캄캄한 배 밑창이나 어둑한 갯바위 새로, 하나 둘씩 사라졌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어머닌 강구 장이나 영덕 장에 나가 그걸 팔아서, 내 등록금이랑 식구들 먹을 양식을 짱배기에 이고 왔네.
거짓말
김동원
1
비는 퍼붓고, 여름 장대비는 퍼붓고,
퀴퀴한 지린 냄새 음습한 골방.
부들부들부들
격렬하게
엄마는 내 손 찾고 있었다.
아아아악, 아아아악,
비명소리 났다.
젊은 엄마가 움켜쥔 내 작은 오른손
마구마구 버둥대며, 빼내려 해도
빠지지 않던 손.
놀라 달려온 동네 어른들
죽은 엄마 손가락 부러뜨려 빼내주었다.
흐늘흐늘 늘어진 엄마 손가락 보며,
밤새
죽은 엄마 관(棺) 옆에 붙어 있었다.
2
차마 발길 안 떨어졌으리.
열 한 살 어린 날 두고 차마, 숨 안 떨어졌으리.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송천(松川)은 흘러 흘러 밤바다 안기는데,
천지간 내 엄마 묻어 줄 사람도 땅도 없어
광목 한 필 죽은 엄마 둘둘 말아 리어카에 실었다.
방문 앞 기둥, 매달린 석유병 들고
한밤중 관어대 뒷산 공터에 엄마를 내렸다.
나무껍질 죽은 엄마 곁에 모아
기름 붓고 성냥불 그었다.
화악 불길 치솟아, 너울너울 불길 치솟아,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모습 차마 볼 수 없어
한달음에 언덕을 뛰어내려온 난
한 점 불빛 없는 외딴집 혼자 남아
죽은 엄마 베개 끌어안고 엉엉 무서웠다.
3
그때 내 나이 열 한 살.
온밤 꼬박 뜬눈 세우고,
그 새벽 어머니 마지막 수습하려고
관어대 언덕으로 살금살금 되올라갔다.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뼈만 남아야 할 어머닌
빈 공터 오도카니 홀로 앉아 계셨다.
나무는 다 타고 아랫도리만 잃은 채,
젊은 어머닌 반쯤 불 탄 모습으로
날 보고 계셨다.
번개 꽂힌 듯, 번개 꽂힌 듯,
덜, 덜, 덜, 덜, 턱 굳었다.
나무 다시 긁어모아, 반쪽 어머니 또 눕혔다.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그렁그렁
내 두 눈 그득 불 고였다.
♠ 손경찬 수필가의 「거짓말」을 읽고 쓴 작품
눈물
김동원
어머니는 이따금, 내 문門을 열고 들어온다 달 아래 천천히 연못 둘레를 걷거나, 때때로 생生이 막막해 어찌할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일 때, 심장 근처서 어머닌 두근거리며 서 있다가, 내 야윈 얼굴을 어루만진다 이 세상 가장 슬픈 눈물 앞에서, 그녀는 무덤이 된다
그렇게 그녀는 내 문門을 열고 들어와 안쓰레 흐느끼다 돌아간다 그 아픈 통증, 내 늑골의 병病을 꺼내 어머닌 치맛자락으로 감싸, 첫 수탉이 울기 전 흙으로 돌아간다
대진항 해녀
김동원
대진항 바닷속에는 내 여자가 산다
지느러미를 가진 그 여자는 물속에 핀 장미였다
두 귀가 들리지 않아
밀물과 썰물 사이 집을 짓고 살던 그 여자
나만 보면 소라 소리로 웃다가
자홍색 우뭇가사리처럼 물속 깊은 바위 속에 달라붙다가
수줍은 노래미가 되어 물 밖 하늘하늘 고개를 내밀고
그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며
호오이, 호오이, 휴잇!
꽃 피는 숨비소리를 내었다
물안개 자욱한 물속 산호 이야기를
그 여자의 무릎을 베고 나는 들었다
가슴에 망사리를 끼고 길쭉한 빗창으로 전복을 따
한 잎 한 잎 장밋빛 손으로
혀 속에 밀어 넣어 주던 그 여자
어느 날 붉게 웅크리고 우는 노을의 이야기를
여자는 수화로 들려주었다
대진항 바닷속에는 내 여자가 산다
그 겨울 수평선 아래로
떨어져 녹아버린 흰 눈의 그 아픈 여자가 산다
처녀와 바다
―시간의 저편 너머에 묻힌 H에게
김동원
내 마음속엔 언제나 해당화 꽃처럼 붉게 멈춰 버린
처녀의 무덤이 산답니다
저 바닷가 물 밑에 가라앉아
진주가 돼 버린 처녀랍니다
처녀는 곱고 수줍고 아름다운 머릿결이 물풀 같았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운명처럼 만나
아침마다 해가 뜨기 전 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바닷물 위 걸어서
해를 만지러 가곤 했습니다
해는 출렁이는 우리의 운명 같아
잡힐 듯 잡힐 듯 손길에서 멀어졌습니다
나는 언제나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처녀는 그 겨울 바다 속 생生이 잠기고
영원히 바닥에 잠겨서 물풀에 가려졌습니다
그 후 난, 문득문득 깊은 밤 혼자 잠에서 깨어나 웁니다
그토록 그리운 처녀는, 내 바다 위 어디에도 없고
백사장 흰 모래알 속에나 등대 불빛 밑으로
찾고 또 찾아 헤맸지만,
잃어버린 바닷길은 그대로 천 길 물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따금 처녀는 그 처녀는, 저 먼 시간의 저편 너머 수평선에서
붉은 해를 타고 올라와,
그 새벽 깨어나 우는 내 서러운 등을 두 손길로 따뜻이 어루만져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