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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엠립(siemleap) 앙코르 여행기
○ 여행준비
세계 7대 불가사이의 하나인 앙코르왓을 관광하기 위해 2. 7. 19:30 무안에서 전세기를 타고 출발을 하기로 하였으나 광주 기온이 영하 2도이면서 눈이 너무 많이 와 기다리다 21:30 비행기에 탑승하였는데 22:40 이륙을 할 수 없다고 하여 내려서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식빵으로 허기를 달래고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이 오는 길을 헤치고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었다.
○ 출국 및 캄보디아 도착(2. 8. 15:10 ; 캄보디아 시간)
여행사에서 12시에 비행기가 출발한다고 공항으로 오라고하여 다음에 가겠다고 하니 천재지변으로 출발하지 못한 것이니 환불이 안 된다고 하여 오전 회의를 마치고 공항으로 가 캄보디아 항공기인 skywings를 타고 12:05 시엠립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무안은 광주에 비해 눈이 많이 오므로 공항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지역으로 생각되고 출발 당시도 눈이 내리고 있었으나 하늘 높이 오르니 발아래 눈구름이 있고 창공은 푸르고 맑았다. 기내식으로 빵과 과일을 맛있게 먹고 적도가 가까워지는지 창문으로 따뜻한 햇살이 들어와 추운기가 가시자 나른해져 한잠을 잤다.
17:10. 5시간을 날아 시엠립에 도착하여 칼라사진을 첨부한 비자신청서를 제출하고 20불을 주니 십지지문을 모두 찍고 입국이 허가되었다. 현지기온은 영상 31도, 시간은 2시간이 늦은 15:10이었다. 우리로 보면 한 여름 날씨라 옷을 갈아입고 현지 가이드(이혜윤과 삐라)를 만나 버스를 타고 초기 유적지로 이동했다.
○ 캄보디아의 지리적 특수성
캄보디아는 동남쪽으로는 길게 베트남이 둘러싸고 있고 북동쪽으로는 라오스, 북서쪽으로는 태국이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산이 거의 없고 평야 또는 늪지대로 형성된 정글지대며 동쪽에서 발원되는 매콩강과 시멘립에서 발원되는 매콩강이 남쪽에서 만나 베트남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시멘립에서 340km, 6시간 반 정도 남쪽으로 가면 수도 프롬펜이 있고 특이한 수종으로는 나무잎에 술기운이 있는 유카리투스, 콜타르가 나오는 기름나무, 수액에서 설탕이 나온다는 설탕나무 등이 있다.
○ 캄보디아의 고대사회
캄보디아는 힌두교를 믿는 인도계 쿤족이 들어와 1200년 전 인도차이나 반도의 가장 중심지인 이곳에 앙코르 문명을 건설하며 현재의 태국, 베트남 등을 지배하며 살아 왔는데 브라만 계급이 왕을 추대하므로 이들의 눈치를 보며 때론 형제간에 왕권을 둘러싸고 전쟁을 하였고 인도의 카스트 제도의 불가촉천민이라는 노예 등이 있었으며 기온이 따뜻하고 먹을 것이 풍부해 낙천주의적인 성격으로 약간 게으른 편이라고 한다.
○ 캄보디아의 근대사회
캄보디아는 중국 원나라의 침공을 받으며 왕국을 유지하였으나 1863년 프랑스 식민지가 되어 수탈을 당하다 호치민등이 이끄는 독립운동으로 1953년 독립을 하여 프랑스가 추대한 시아누크공이 통치를 하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놀이 집권하고 있는 것을 폴포트가 중국과 베트남의 지원을 받으며 공산주의 정당인 크메르루즈 정당을 이용, 민족해방운동을 펄쳐 1975년 정권을 장악하자 론놀은 미국으로, 훈센은 베트남으로 망명하였다. 폴 포트는 1979년까지 3년 7개월 동안 그 유명한 킬링필드를 자행하여 전체인구 800만 명중 지식인, 자본가, 승녀, 양민 200만명(소문으로 300만명)을 악랄한 고문으로 학살하였다. 또한 폴포트는 1979년 캄보디아에서 시작하여 베트남으로 흐르는 매콩강을 막아 물길을 돌리려고 하자 베트남의 침공을 받고 정글로 도주하여 약 20년 동안 게릴라전을 벌이다 사망하였다. 따라서 이 나라는 식민지생활, 전쟁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나라 이름이 6번 바뀌었다고 한다.
○ 캄보디아의 경제. 문화
이 나라의 경제는 1950년 한국전쟁을 지원해줄 정도로 괜찮았으나 현재는 1970년대 초 한국과 같은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와 학교를 건설해주는 지원을 받고 있으며 한국 관광객도 세계 3번째로 많아 한글 안내문도 꽤 많은 편이며 교포도 프롬펜에 2,000여명, 씨엠립에 1,00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넓이는 우라나라의 1.8배, 인구는 1,400만명 정도로 호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며 노동자들의 임금은 일당 2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4~5월이 35~40도 정도로 가장 더우며 계절은 4월부터 9월까지인 우기와 10월부터 3월까지인 건기가 있는데 4월의 우기는 새벽에, 5월은 아침에, 6월은 오전에, 7월은 점심때, 8월은 오후에, 9월은 저녁에 1시간 정도 비가 온다고 하며 건기가 되면 높은 지역에서부터 낮은 지역으로 물이 빠지는 대로 농사를 짓는데 쌀이 1년에 20만 톤이 남아돌고 열대과일과 호수의 고기 등이 풍부하여 먹을 것은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이 사회는 모계사회로 어머니에서 딸로 성과 재산상속이 이루어지고 남자가 장가를 가려면 5,000달라를 처가 집에 주어야 하며 남자가 능력이 없으면 슬며시 집을 나가 버리는데 요즘은 여자를 폭행하는 사람이 생겨 사회문제가 된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 나라에는 세금과 냉장고 발전소가 없으며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영수증을 발행하여 준다고 하며 뱀을 죽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설날이 1년에 3일씩 3회가 있고 1주일에 3~4일 근무하며 각종 명절이 너무 많아 1년 중 절반은 놀고 근무일도 점심시간이 11:00~13:00 2시간이며 15:00만 되면 업무가 종료된다. 또한 이곳은 기온이 높고 저지대로 습기가 높아 전염병이 많을 것 같지만 강한 자외선과 황토 흙의 정화 작용으로 전염병은 없으나 가끔 이질은 발생한다고 한다. 또한 이 나라는 교육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지 못해 문맹률이 아주 높아 간판에는 글과 함께 그림을 그려 놓았으며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역사교육은 전혀 하지 않으므로 행복지수는 아주 높은 편이다.
○ 초기 유적군 관광
16:00경 버스를 타고 씨엠립의 남동쪽에 위치한 고대 크메르문명의 중심지로 가면서 캄보디아 말을 가르쳐 주었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말을 한두 마디는 알아야 하겠기에 “안녕 하세요? 는 섭섭하이” “고맙습니다. 는 업쿤나.”를 익히며 관광 매표소에 도착하니 3일(일주일) 동안 관광할 수 있는 티켓을 구입하는데 티켓에 사진을 찍어 발행하였다. 이는 부조리가 너무 많아 입장 수입이 줄어들어 취한조치라는 설명을 들으며 롤로오스 지역의 크메르 초기 유적군이라 불리는 ‘쁘레아 꼬’, ‘바꽁’, ‘로레이’ 사원을 방문하였다. 힌두교 사원인 ‘쁘레아 꼬’는 신성한 소라는 뜻으로 조상신을 기리기 위한 사원이고 ‘바꽁’은 사람이 사는 성으로 모두 우리의 납골당 성격을 갖고 있는데 작고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탑으로 훼손이 심하여 복원을 하여야 할 것 같았다. 탑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벽면에는 정교한 여인상 등의 조각상이 있었으며 한쪽에는 사원을 관리하는 스님이 기거하는 곳이 있었다. 출발 전에 우리나라가 너무 추워 더운 곳에 가면 따뜻하니 좋을 것 같았는데 너무 더워 땀이 많이 나서 한 겨울에서 한 여름으로 바뀐 것 같아 생각만큼 좋지는 않았다.
○ 앙코르의 미소(smile of angkor) 공연관람
18:00에 뷔폐로 저녁식사를 하는데 음식은 아주 좋았으며 19:00 앙코르의 미소 공연장에 입장을 하였다. 공연장에는 공연내용을 한글로 소개하고 있었으며 앙코르왕조의 탄생 비밀인 왕조의 권력다툼, 전쟁 상황, 왕의 권위 등을 그리고 있었는데 미소란 의미는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과 권력다툼을 하지 말고 사람을 노예처럼 취급하지 않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자는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21:00 공연 관람을 마치고 숙소인 퍼시픽 호텔에 들어오니 에어컨이 있어 아주 시원했으며 전기시설도 우리와 같아 전자기기의 충전이 가능 하는 등 시설은 아주 좋은 편이었다.
○ 앙코르 톰(Angkor thom : 2. 9. 07:30)
아침 식사를 하고 30달러를 주고 일명 톡톡히(오토바이가 끄는 수레)를 타고 출발하여 08:00 앙코르 톰 정문에 도착하니 입구 다리 양옆 난간에 선신 54개, 악신 54개 도합 108개의 신상이 새겨져 있고 다리 양 옆에는 길이 약 200m, 폭 100m에 달하는 악어가 산다는 해자 장애물과 높이 8m에 달하는 성벽으로 구성되어 외침을 방어하는 군사요새 같았다. 앙코르톰이란 말은 큰 도시라는 뜻이며 총면적이 144㎢로써 그 안에 바이욘 사원, 바프욘 사원, 코끼리 테라스 등이 있으며 자야바르만 7세가 기존의 사원과 왕궁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벽과 해자를 설치하였으며 그 안에 100여명의 주민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동서남북 4방향으로 난 문과 이에 연결되는 다리를 건너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앙코르 입구의 탑에는 각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4개의 거인 얼굴상이 있고 그 밑으로 인드라 신의 좌상이 머리가 3개인 3m 높이의 코끼리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 바이욘 사원
앙코르 톰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여 개의 얼굴로 구성된 54개의 탑들로 형성되어 있다. 이 얼굴들은 사임(Sand Stone)을 조각한 것인데 초기에는 이 얼굴이 힌두교의 창조의 신인 브라마의 얼굴이라고 믿어 졌으나 건립자인 자야바르만 7세가 불교를 국교로 하여 자비로운 보살의 얼굴로 간주되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원의 벽화에는 톤레삽 호수의 생활 및 중국계 베트남인 암족과의 전투을 묘사한 것으로 군인의 훈련, 기마병, 음악가, 코끼리 등을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잔치를 벌이고 상생한다는 농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웃나라 왕국의 왕자이며 형의 아들이 이곳에 놀러왔다가 죽임을 당하자 그 복수를 위하여 처들어오자 왕자를 숨겨두기 위하여 시바신에게 받치는 목적으로 지어진 사원으로 승녀들이 기도하며 수행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 사원의 앞에는 왕자들의 목욕탕이 있었는데 우기에는 물에 잠겼다고 한다.
○ 코끼리 테라스(10:00)
각종행사의 공공장소로 이용되었던 이곳은 높이 3m, 길이 300m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테라스의 벽면에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코끼리 상이 부조되어 있고, 테라스의 뒷면에는 다섯 개의 머리를 가진 말이 부조물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왕이 등장하여 위치하는 곳은 가루다와 사자상들이 받치고 있으며, 승리의 문, 왕의 출입문 과 일직선상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코끼리 테라스의 옆과 뒷면에는 돌로 만들어진 행정기관, 법원, 사신 접대하는 곳 등이 있었다.
○ 타 프롬(Ta prom) 사원(10:25)
이곳은 자야 바르만 7세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건립하여 수도원의 기능이 강화되어 있는 사원으로 총 면적은 17만평이며 자야 바르만 7세가 가슴을 치며 기도를 했다는 통곡의 방과 어머니에게 받치는 방이 있었는데 어머니방의 벽면에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 이유는 거기에 보석이 박혀 있었고 벽면은 금으로 싸여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보수를 하지 않아 용의 발톱, 악마의 나무라고 불리는 스펑나무의 뿌리가 사원의 벽과 기둥을 휘감고 뒤엉키면서 사원을 들어올리고 있어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하는 현상은 정글에 묻힌 신비로운 문명의 흔적을 탐험하는 느낌을 갖게 하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복원하지 않고 현재상태를 유지 보존만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가 왕과 함께 거주 하지 않고 따로 산 것은 어머니가 홍길동의 어머니같이 천민이 여서 통곡을 했거나 수도를 하면서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든다고 하는 설명을 듣고 밖으로 나오니 캄보디아 경찰관이 있어 나도 한국의 경찰관인데 당신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쾌히 응해 주었다.
1113년부터 1150년까지 37년 동안 수리야 바르만 2세가 기가 센 이곳 늪지대를 메워 동서로 1.5km, 남북으로 1.3km, 둘레 5.6km, 중앙탑이 65m인 3층 석탑의 건물을 40km 떨어진 프놈꿀렌 산에서 사암을 채취하여 코끼리로 운반하고 사람이 쌓고 조각하여 건설된 이곳은 대부분의 사원이 동쪽을 향해 있는 반면 이 사원은 서쪽을 향해 있어 발견 초기 '죽음의 사원'으로 불려지기도 했으나 춘분 때 해가 앙코르왓에서 떠서 중앙 보도를 지나 서쪽으로 지는 것을 발견하고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반영하여 천문대 역할을 했음이 밝혀졌고 만다라와 같은 우주의 변화를 표현한 사원임을 알게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인간과 신을 연결시켜주는 355m의 무지개 다리, 참배의 다리라고 명명된 긴 보도의 다리가 있는데 그 양옆에는 길이 1.3km~1.5km의 해자로 둘러쳐져 있고 중앙 탑까지 세겹으로 둘러싸인 회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앙코르왓이 사원이라기보다는 동양의 왕성을 연상케 한다.
사원 입구에 들어서면 가운데 왕이 출입하는 문이 있고 그 양옆에 신하들이 출입하는 문이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코끼리가 출입하는 문이 있었으며 사원 안에는 원석으로 가공된 돌 창살, 지금까지 비 한방울 세지 않는 지붕, 60도 각도의 12개의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을 오를 때는 왕에 대한 예의로 모자를 벗도록 하였으며 벽면에는 힌두 전설인 라마야나, 우유의 바다 젖기, 마나수라, 신들과 악마의 전쟁, 그리고 건립자이던 수리야 바르만 2세의 출정에 관한 이야기들, 이 사원의 주신인 비쉬뉴 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신화와 역사가 그려져 있는데 그 내용은 28개의 지옥, 33개의 천국과 사람이 죽으면 7번 심판하여 천국과 지옥으로 분류한다는 것과 혀를 뽑고 모리에 못을 박아 죽이는 모습, 남편을 버리고 고민하는 여인의 모습, 황금칼을 갖고 14개의 양산을 쓴 왕의 즉위식과 전쟁하는 모습, 라마야나왕자의 고행, 원숭이가 지배하였다는 손오공 같은 설화들을 정교하고 현란하게, 조화된 균형이 당시의 화려했던 앙코르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1860년 프랑스의 동물학자 앙리무오에 의해 소개되어 세계7대 불가사의로 알려져 세계적 유산으로 유네스코에서 지정된 세계적인 석조 건물인 앙코르왓은 그 웅장함이나 건축물 자체에서 풍기는 신비함 못지않게 세부적인 조각의 아름다움이 전체를 엮어 나아갔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60도 정도 되는 계단을 신하들은 네발로 기어서 올라가는데 수리야 바르만 왕은 날아다녔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데 그것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통로를 통해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추측이 되고 왕권을 차지할 때 100여명의 4촌 형제들을 죽인 죄의식으로 천국에서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이 사원을 건립하였을 것이라는 추측과 하룻밤 만에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이곳은 엄청난 위용과 섬세함, 그리고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많은 신비함이 앙코르를 더 매료시키고 있다.
약 1,000년 전 승녀가 지은 여인의 성으로 쉬바신을 위해 건립 되었다. 붉은색 사암에 쉬바신의 전설인 자기 몸을 뜯어먹는 도깨비, 뱀, 건달이라 하는 깐다바, 가루다, 원숭이등과 힌두교의 신인 부라만신, 가네샤, 비와 바람의 신인 인드라 신, 활로 비를 막은 크리시나 신의 홍수설화 등을 정교하고 복잡.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보는 이마다 감탄을 하게 만드는 이 사원은 동 서 축을 중심으로 남북 대칭형 구조로 되어있고, 사원내부의 기둥은 화려한 나뭇잎 장식이 있다. 특히 중앙 탑 부분에 조각된 여신상의 모습이 동양의 비너스라 불릴 정도로 완벽한 형태로 조각되어 있는 것을 관람하고 밖으로 나와 코코넛 야자를 1달러 주고 사서 마셨는데 달작 지근한 맛이 났다.
꼬레가든에서 돼지불고기로 저녁식사를 하고 40달러를 주고 전신 맛사지를 받았는데 맛사지를 하는 아가씨가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알고 있는데 맛사지는 시원찮아 잠이 올 정도였으나 수고비로 2달러의 팀을 주었다.
○ 외국인 거리, 야시장 거리 방문(21:00)
과일가게 들렸다가 서울의 명동거리라 불리는 외국인 거리에 갔는데 우리나라의 나이트클럽 같은 음악이 아주 시끄럽게 들렸는데 이곳의 땅값은 평당 40만원 정도 간다고 하며 미래의 캄보디아 모습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어느 가게에 들어가 생맥주 3잔을 마시고 나와 야시장 거리를 갔는데 우리나라의 재래시장 같은 모습이었다. 이곳은 교통질서가 무질서하여 돌아다닐 때는 교통사고에 조심을 하여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가이드가 노래를 하는데 색스에 대한 가사로 20대는 이판사판하고 30대는 삼삼하게 하고 40대는 사정없이 하고 50대는 오기로 하고 60대는 육갑떨고 있고 70대는 칠칠맞게 하고 80대는 팔딱 섯다 자빠지고 90대는 구경만 하고 100대는 백번해도 안 된다.고 하여 모두가 한바탕 웃으며 23:00경 숙소로 돌아왔다.
캄보디아의 국화는 연꽃이며 1,000년이 넘는 뽕나무가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한국의 자원봉사의사가 있다는 자야바르만 7세의 1달러 아동병원을 지나 대자연장황 무역공사에 도착하니 한국인 사장이 나와 상황버스의 효능과 좋은 점을 설명하여 일행 중 몇 사람이 산 것 같았는데 경험상 여행을 다니면서 물건을 사면 귀국해서 꼭 후회를 하게 되어 가능하면 안 살려고 하나 가이드의 체면을 보아 몇 가지를 사주곤 한다.
○ 왓트 마이 사원(09:00)
킬링필드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원으로, 당시 죽은 사람들의 사진과 당시 크메르 루즈군의 잔혹한 살인 현장을 볼 수 있었다. 학살의 주범인 폴포트는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 온 인테리로 프롬펜에 있는 여고를 접수한 후 16세에서 20세정도 되는 어린 학생들을 크매르 루주군으로 가입시켜 기득권층은 모두 썩었다, 계급이 없고 노에가 없는 사회,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선동하여 자기 부모형제를 고발하여 체포하고 죽이게 만들고 교도소장을 시켜 죽기 전 사진을 찍고 죽인 후에 사진을 찍어 보관을 했으며 고문하고 죽이는 방법도 앙코르 왓의 그림에 나와 있는대로 드릴로 머리를 뚫어 죽이고 양발에 쇠사슬을 묶어 굶어 죽게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는 일종의 정신병자인 망상가였다. 입구에 들어서면 게시판에 당시의 만행 사진이 있었고 중간에 추모탑과 유골을 보관해둔 탑이 있었는데 ‘빨간색 해골은 결혼을 한 사람이고 하얀색은 미혼의 해골이다.’ ‘현재 캄보디아를 움직이는 지배층이 그 때 당시 크메르 루주군이다.’라는 설명을 들으며 화장실에 가니 1달러를 내라고 한다.
웨스트 바레이로 가던 중 시골의 장터인 시장을 방문하였는데 냄새가 나고 시설이 열악하였는데 그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장사를 하고 있었고 조금 큰 아이들을 돈을 달라고 따라다녀 사탕을 주고 웨스트 바레이로 갔다. 이곳은 도시성립의 필수요소인 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약 1,000전 앙코르시대에 만들어진 가로 2.2km, 세로 8km의 인공호수로 원래 4개가 있었는데 3개는 모두 메워지고 이곳만 남았다고 한다. 물은 깨끗하지가 않았는데 수원지로 활용된다고 하며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과 배가 있었고 저수지 둑에는 장사 하는 사람들이 고기구이 등을 팔고 있었으며 초등학교 학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 10여명이 목걸이 등을 팔려고 1달러, 1달러하며 따라 다니자 가이드가 모두 모이게 하여 노래를 시키니 아리랑, 아기곰, 대한민국의 응원구호 등을 제창하여 모두에게 각 1달러를 주었다.
○ 민가방문(11:40)
길옆 민가를 방문하니 3층 높이의 집을 지어 놓았는데 이는 지열과 우기의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하고 모계사회인 까닭에 머리를 삭발한 할머니와 어머니, 딸들이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으며 할아버지는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집에 심어진 바나나는 한달에 1,000개씩 수확을 하고 모아둔 야자열매 껍데기는 번개탄 같이 연료로 사용하며 이곳의 농사는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을 한다는 설명과 함께 이곳은 음주운전이 가능하고 교통사고가 났을 때는 힘센 놈이 이긴다는 말을 들었다.
○ 라택스 매장(13:00)
꼬래가든에서 점심을 먹으며 소주를 한잔하고 라택스 매장에 가니 고향이 영암이라고 하는 아가씨가 라택스의 장점을 설명하며 사도록 하는 것을 보고 난 라택스 침대에 누워 한숨을 잤다.
캄보디아 면적의 15%를 차지하면서, 동양 최대의 호수로 불리는 톤레삽 호수로 이동하는 가운데 우기 때 물에 잠겨버린다는 초라한 가옥들 사이에 장례행렬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상을 당하면 망자가 고통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하여 슬퍼하지 않는다고 하며 자손들이 머리를 깍아 망자와 같이 화장을 해주는 풍습이 있으며 반대로 결혼식에는 신랑 집에는 초상집 같은 분위기인 반면 신부 집에는 3일간 잔치를 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우리나라 수원에서 학교를 지어주고 도와준 수원마을을 지나는데 길 양옆 논에는 건기로 물이 빠져 상류에는 벼를 수확하고 하류에는 모를 심는 동시패션을 보며 열대지방 외국에 왔다는 실감을 하였다. 이곳은 건기인 10월에서 3월까지는 상류에서 호수의 물이 프놈펜 쪽으로 흘러 메콩강과 만나 베트남으로 흐르지만, 우기인 4월에서 9월까지는 메콩강 물이 역류하여 이 호수로 흘러들어 호수의 수표면은 3배까지 넓어지며 호수의 면적이 25,000㎦ 까지 이른다고 한다. 또한 우기때 물고기들은 호수로 흘러 들어와 물 속에 잠긴 나뭇가지에 알을 낳으므로 고기가 많아 캄보디아 인에게 60% 이상의 단백질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 선착장 입구에 들어서니 붉은 황토물 위에 떠있는 배들이 있어 우리는 배를 타고 호수 가운데로 나가는데 우기때 물이 잠기는 지역과 해로를 표시해주는 약 10m 높이의 이정표, 목수들이 배를 만드는 모습, 대나무 다발을 묶어 그 위에 수상가옥을 짓는 모습, 고기를 잡는 모습, 철공소 같은 상점을 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호수 가에는 수상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저 멀리 끝도 보이지 않는 바다와 같은 황톳물 호수 위에 배들이 떠 있었으며 배를 이용하여 이배에서 저배로 이동식 장사꾼, 철공소 같은 배, 상점 같은 배, 천주교 성당 배, 학교 교실 같은 배도 있었다. 배 안에는 그네 같은 것에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 밥을 먹는 사람,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있었으며 개도 키우고 관광객 배를 따라 다니며 구걸하는 배도 있었다. 특히 아버지가 배 운전을 하면서 아기는 가운데 앉히고 뱃머리에는 목에 구렁이를 목에 감은 어린 딸을 싣고 손짓을 하며 구걸하는 모습은 불쌍하게 보여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1달러를 주었다. 여기 사는 수상족은 물고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나무로 불을 때고 황톳물을 식수로 사용하며 가진 게 없지만 부족함을 모르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톤레샵 호수를 보고 기념품 가게에 들였다가 황금박쥐들이 많이 산다는 박쥐공원에 도착하니 입구에 조그마한 힘이 없는 왕의 별장이 있었고 그 안에 잔디가 아닌 잎이 약간 넓고 키가 작은 풀밭이 있었으며 우리나라의 천리향 같은 향이 좋은 나무와 키 큰 아름들이 나무에 이파리가 넓은 넝쿨풀이 올라가고 그 위에 배가 빨간 황금박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우리 일행 14명은 거기서 단체사진을 찍고 17:00경 보석가게에 갔는데 보석이 관절염과 신경통에 좋다고 사라고 유혹하였으나 사지 않고 나왔다.
○ 아이스 파크(18:55)
한국인이 운영하는 Ice park에 와서 가이드가 서비스 해주는 발 맛사지와 닥터피쉬라는 고기의 마사지를 받으며 앙코르왓 다큐멘터리를 보고 샤워 후 나왔다.
○ 비행기 탑승(22:30)
가이드는 공항에 들어 올 수 없도록 되어있어 입구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와 티켓팅을 하고 출국심사를 하는데 또 다시 십지지문을 찍으라고 하여 찍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1달러를 달라고 하여 주었더니 지문도 찍지 않고 출국심사를 해 주었다고 한다. 역시 돈의 위력은 어디에서나 대단한 것 같았다.
○ 무안공항 도착(한국시간 05:10)
22:30에 비행기에 탑승하여 4시간 40분을 날아 무안공항에 도착하니 03:10, 한국시간으로는 05:10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 일행들과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집에 와 버렸다.
* 사진은 따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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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인데 우리친구가 먼저 갔다 왔네 그려.... 다음 여행 때 많은 참고가 될 듯 싶네...고생했네! 사진 기대함세~
언제 시간나면 여행 같이 하세. 특히 차마고도 여행을 내년 7월 말경에 예정을 하고 있다네. 생각 있으면 동참하게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