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뜰에 사는 이웃들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황선미, 사계절, 2014.
황선미 작가는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유명하다.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는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인 부를 다 가진 65세 강노인의 이야기다. 잔잔한 그림도 예쁘고 문체도 가볍고 편하게 읽힌다. 꼭 푸근한 동화를 읽는 맛을 느낀다. 그렇지만 뒷 결말로 갈수록 묵직한 울음이 터져 나오는 포인트도 있기 때문에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게 된다.
등장인물은 외부세계에서 성공한 강노인과 산동네에서 계속 터를 잡고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장영감의 구도로 그려져 있다. 강노인은 결혼도 안하고 자수성가 한 미래건설 회장으로 경제적 성공을 이뤘다. 반면, 장영감은 가난은 하지만 똑똑한 손녀딸이 있다.
공간적 배경은 버찌마을이다. 마지막 버찌나무 한 그루까지 밀어내고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100번지 일대만 개발되지 않은 건 워낙 언덕배기인 데다 드넓은 야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야산자락의 오래된 집, 그 집주인이 고집불통이다. 동네사람들은 집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며 본 적도 없고 아이들은 이 집을 ‘거인의 집’ 라고만 부른다.
강대수는 머리에 뇌종양판정을 받고 아픔이 있는 오래된 집으로 귀향을 한다. 그 집주인이 강노인이다. 이 집은 아픔이 있는 곳. 이 집 창고에 아버지와 단 둘이 살다가 아버지가 주인집 딸 그네를 나무에 매주다가 떨어졌고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 강대수는 홀로 고아가 되어 프랑스로 입양된다. 자수성가 한 후 자신이 살던 그 주인집을 사들인 것이다.
강노인은 첫날부터 머리가 아프다. 뒤뜰에 골칫거리들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 수탉의 기상나팔소리, 강아지 짖는 소리, 아이들이 들락거리고 치매 걸린 할머니는 주인 허락도 없이 텃밭을 만들어 상추를 따 가고 닭을 키우고 병아리를 낳고 야단법석이다.
비상 버튼만 누르면 의사, 회사 경영진이 총출동하는 시스템을 갖춘 ‘거인의 집’은 강 노인의 충실한 비서 미스터 박이 관리를 하고 있다. 미스터 박에게 처음 이 집의 관리를 맡길 때 사 들인 당시 ‘그대로’ 관리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정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뒷뜰을 통해 야산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제집 드나들듯 드나드는 버찌마을 사람들 때문에 강노인은 머리가 아프다. 그야말로 뇌종양 때문에 요양할 겸 쉬러 왔는데 머리가 쑤신다.
강노인에게는 버킷리스트가 있다. 어릴 적 살던 집으로 돌아와 그 시절 못해본 일들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며 소설은 진행된다. 먹고 싶은 것 요리해 먹기(p31), 악기 배워서 연주하기 단 한 곳이라도!(p50), 흠 할 일이 하나 더 생겼군. 내 나무 심기(p107)를 차근차근 실천한다. 강노인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으로 기억되는 자신의 과거에 아픈 기억은 이 집 뒷뜰과 함께 자라서 베어버려야 할 덩어리였다. 주인집 딸 송이는 강대수를 뒷뜰에 출입금지 시킨다. 어린 강대수가 받았을 상처는 커다란 구멍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거인의 집’과 이웃들이 펼쳐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황선미 작가 특유의 따뜻함과 섬세함을 그렸다. 무겁지 않게 읽히지만 다 읽고 나면 묵직한 생각들이 샘솟게 만드는 묘한 소설이다. 과거의 기억들이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그 괴리감의 요소도 묻어 난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오해였음을 밝혔을 때 충돌하는 지점도 독자들은 공감하게 된다. 유년시절 풀지 못한 오해들로 평생 아픈 기억으로 살아야 했던 강노인에게 우리는 어떤 위로를 해야 할까...
진실이라고 믿었던 기억이 오롯이 진실일 수 있는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작은 마을에서 몇 안 되는 어린애들이 겪은 일만도 이렇듯 다른데, 오해와 착각이 그대로 굳어져 평생 어긋나 버린 게 바로 자신의 삶이었다는 것을 강노인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p233)
한 평생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 강노인과 장영감, 송이할머니를 통해 늙는다는 것에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이웃들과 나누는 정, 관계에 대해 다시 재정립할지 모를 일이다.
<서평-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