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5년 아랍인들에게 '신밧드'로 알려진
명나라 정화 선단이 들려 조공국가로 만들며
인도양 항해 중계 거점기지로 삼아
한때는 80여개국 언어 통용 국제 무역항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차이나타운에 200여개 중국사원과 사찰
종교백화점 온 종일 걸어다녀도 볼거리 지천
중국인과 말레이 사람이 낳은 페라나칸 문화
400연년 식민지배 속에서 독특한 문화 꽃피워
생활문화박물관에 다양한 일상생활 문화 전시
중국기록에는 만랄가(滿剌加)·만랄(滿剌)·마육갑(麻六甲)·마랄갑(麻剌甲)·마육갑(馬六甲) · 문노고(文魯古) 등의 이름으로 나온다. 말레이 반도 서해안의 말라카 해협에 면해 있는 항구도시로서, 현 말레이시아 연방 말라카주의 주도(州都)다. 이곳은 이미 1405년 아랍인들에게는 '신밧드'로 알려진 중국 무슬림 출신의 명나라의 정화(鄭和) 선단의 규모가 대함선 62척에 병사 2만 7800여 명, 선단은 이곳에 들려 조공국가로 만들며, 이곳에 말라카를 인도양 항해 중계 거점기지로 삼았다. 중국을 지나 인도차이나반도의 참파(현 베트남 중부일대)왕국-말라카-인도의 말라바르 해안에 이르는 말라카 해협은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 섬 사이에 있는 깔대기 모양의 해협으로 길이가 900km에 이르지만 , 폭은 상대적으로 적어서 10km가 채 안 되는 곳도 있는 독특한 해협이다. 이 해협은 국제무역에 있어서 오랫동안 중요한 위치에 있어 중국과 인도 등의 대륙을 잇는 해양 실크로드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곳이다.
그의 1차 항해기간은 2년 4개월로 그들이 들른 곳은 지금의 캄보디아, 태국, 자바 섬, 수마트라 섬, 실론, 인도의 캘리컷이 등이며, 이어 1407년의 2차, 1409년의 3차, 1413년의 4차, 1416년의 5차, 1421년의 6차, 그리고 1430년에 시작해 1433년에 끝난 7차까지 모두 합쳐 26여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동남아시아의 참파에서 말라카, 태국, 인도의 캘리컷, 스리랑카, 페르시아의 호르무즈, 아라비아의 아덴,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케냐의 몸바사까지 명나라 깃발을 단 거대한 선단이 가장 빠른 해상로 였기 때문에 33여 개국을 오고 갔을 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한때는 80여 개국의 언어가 통용 했을 만큼 다양한 국가들이 다녔던 국제 무역항구 말라카이다.
그 후 그들의 후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9~10월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순방에서 제시한 전략이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이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뜻하는 말로, 중국이 태평양 쪽의 미국을 피해 육상 실크로드는 서쪽, 해상 실크로드는 남쪽으로 확대하기 위하여 600년 전 명나라 정화의 남해 원정대가 개척한 남중국-인도양-아프리카를 잇는 바닷길을 장악하는 것이 목표로 광저우-선전-상하이-칭다오-다롄 등 동남부 연안도시를 잇는 것이다. 그들은 왜 지금도 말라카에 정성을 들이고 있을까?. 그 만큼 중국의 화교들이 그곳의 경제를 장악 하고 있으며, 이곳은 해양의 요지만큼 다양한 문화가 곁들어 있기 때문이다.
| 이슬람 모스크 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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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 원주민들의 다민족 문화와 인도, 중국, 이슬람,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흔적이 한 덩어리로 이룬 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008년에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차이나타운의 좁다란 골목에는 200여개의 중국사원과 사찰이 있으며, 이슬람의 모스크, 인도의 시바사원, 가톨릭 성당, 교회 등이 종교 백화점처럼 자리하고 있다. 차이나타운의 골목이나 중국인들이 사는 마을은 꼭 당집까지 함께하고 있어 온 종일 걸어 다녀도 볼거리가 지천이며, 말레이인 동네는 그 나름대로 특유의 먹거리가 있다. 인도인 타운은 들어서자 마자 특유의 진한 인도음식과 향이 콧구멍이 벌름거리며, 중국인들의 음식은 뭘 먹어도 역시! 라고 하는 감탄이 나온다, 그 많은 차이나타운의 음식점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단돈 몇 천 원짜리에서 부터 제법 가격이 나가는 고급 음식점까지 풍부해서 좋다.
중국인과 말레이 사람들이 낳은 페라나칸(Peranakan)문화가 존재한다. 말라카는 아시아에서 가톨릭의 세례를 시행한 최초의 도시이며, 400여년의 식민지 지배 속에서 독특한 문화의 꽃을 피운 생명력 있는 도시다. 이주 중국인과 현지 말레이 사람과 결혼하여 '페라나칸'이라는 문화를 만든다. 말레이어로 아이를 뜻하는 아나크(Anak)에서 유래한 말로 해외에서 이주한 남성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후손을 뜻한다. 문득 우리에게 알려진 필리핀 가수 프레디 아길라(Freddie Aguilar)의 아들에게(Anak)란 노래 제목이 필리핀 타갈로그어여서 아마도 같은 부족의 흔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 힌두교 시바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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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래 전부터 해상무역의 발달로 말라카에는 아랍인, 인도인, 유럽인 등 다양한 국가의 선원과 상인 등의 출입으로 인하여 페라나칸 공동체가 형성 되었으며, 이중 대다수가 중국과 말레이 사이에 탄생한 후손으로 독특한 혼합문화를 발생시켰으며, 그중 바바와 뇨냐(Baba & Nyonya)란 문화가 전해지고 있다. 바바는 중국인 남자를 말하며, 뇨냐는 말레이 여자를 의미하며 이들이 결혼해서 만든 문화 인데, 시내 중심가에는 바바&뇨냐 전문 음식점이 있으며, 또한 차이나타운에는 좀 가격이 있는 이들의 생활문화박물관이 있다. 여기에는 우리의 생활박물관처럼 중국인들의 생활양식을 말해주는 가구에서 일상생활의 주방과 요강 같은 도구며, 결혼 예복, 신혼부부의 방, 그들의 놀이문화 등 일상생활 문화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철저하게 사진촬영을 금지 시키고 있다.
| 중국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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