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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료는 2006년 11월02일자 <프리존뉴스> 기사의 일 부다. 전대협 출신의 전향우파 인사인 이동호 북한민주화포럼 사무총장 주도로 이뤄진 당시 기자회견에서 황성준 전 월간조선 기자는 서울 올림픽 개최 전 북한이 국내 좌익세력에게 올림픽서 소련 팀을 응원하라는 지령을 내렸음을 폭로했다. 세계 네티즌들로부터 가장 감동적인 올림픽 2위에 오른 서울 올림픽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당시 기사의 일부를 다시금 게재한다. <편집자 주>
[조갑제] 올림픽 비화: 한국을 도와주고 뺨 맞은 미국 | |||||||||||||||||
한국인들은 미국-소련 경기에서 소련팀을 응원했다. | |||||||||||||||||
이런 사실은 1988년 6월8일 청와대로 盧泰愚 대통령을 예방한 프랭크 칼루치 미 국방장관의 보고에서도 잘 드러난다. 칼루치 장관은 크라우 합참의장 등을 대동했다. 그는 그 직전에 있었던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에 대해서 보고하면서 서울올림픽의 안전문제에 대해 거론했음을 밝혔다. <북한문제와 올림픽 안전에 관해서는 수차 소련 측에 의견을 개진하였는 바, 셰바르드나제 외상은 오찬시 레이건 대통령께 북한은 도발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대하여 미 측에서는 그렇다면 다행한 일이나, 분명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슐츠 장관은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소련 측에 북한이 최근 SA-5 미사일을 전방배치 한 것을 지적한 바 있고, 본인도 만찬석상에서 옆에 앉은 그로미코 의장(과거 25년간 외상을 지냄)에게 촉구하였던 바, “그는 북한에 알아본 바, 올림픽을 방해할 하등의 의사가 없다고 하더라” 고 하였으며, 본인이 한국 측에 그렇게 전달해도 되겠냐고 문의한데 대해서 좋다고 확답을 하였습니다. 후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소련 외무부는 북한에 올림픽 방해책동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 건에 관한 소련의 언질은 단호한 것이 아니고, 항상 약간의 회피성을 보였는바, 예컨대 “북한은 독립주권국가이다” “우리의 영향력엔 한계가 있다” “우리도 참가하므로 똑같이 안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는 등, 단서가 붙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그 전해인 1987년 11월에 김현희와 김승일은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한 대한항공 858편 여객기에 時限폭탄을 두고 중간 기착지 아부다비에서 내렸다. 김현희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 승객들을 둘러보고는 “이 사람들이 몇 시간 뒤에 죽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으나 “조선혁명을 위해선 이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가르침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바그다드 출발 KAL858기에 올라 김승일이 폭파용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액체폭약이 들어있는 비닐쇼핑 백을 좌석 위 선반에 올려놓는 것을 보고 사업결과 총화시 보고할 목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탑승객은 1백여명 정도 되는데 거의가 중동근로자들로서, 중동에서 일하기가 힘들다면서 소속회사에 대한 불만을 많이 털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귀국하는 것이 좋은지 즐거워 하다가 기내식이 끝난 뒤에는 거의가 잠에 들었습니다. 아부다비에 도착하여 내릴 때, 이 근로자들이 죽을 것을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양심의 가책이 왔습니다만 김일성이 지시한 혁명과업의 완수를 위해서는 이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마음먹고 내렸습니다』 바레인 공항에서 경찰이 체포하려고 하자 김승일은 독약을 깨물고 현장에서 죽었다. 김현희도 독약을 깨물었으나 기절만 했다. 한국으로 압송되어온 김현희는 안기부 수사를 받았다. 처음엔 일본인으로 행세했으나 자신의 정체를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현희는 안기부 수사관과 함께 남대문 시장을 둘러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남대문 시장에 진열된 풍부한 상품과 상인들의 생동하는 모습을 보고 북한에서 교육 받은 것이 다 엉터리였음을 금방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독자적으로 김현희의 신분을 조사하여 북한 공작원이란 결론을 내리고 레이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미국에서 근년에 나온 레이건 일이 567페이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1988년 1월14일 목요일에 쓴 일기이다. <백악관 안보회의를 열었다. 한국의 스파이 이야기가 보고되었다. 바레인에서 잡힌 24세의 여성은 대한항공 폭파용의자인데 자신이 북한공작원이며 올해 열리는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도록 명령을 받았다는 자백을 했다고 한다.> 레이건은,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석 달 전인 1988년 6월28일 화요일에 쓴 일기에서도 올림픽을 언급했다. <최근 정보에 따르면 한국의 휴전선엔 북한군이 10개 사단을 더 배치했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위협하는 도박을 벌이려 할지 모른다. 소련은 그런 도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했다.> 미국은 올림픽 기간중 對테러요원들을 한국으로 보내 안전조치를 도왔다. 항공모함 미드웨이 戰團을 한국근해에 배치하여 북한의 도발을 경계했다. 북경 올림픽 기간을 틈타 그루지아를 짓밟고 있는 러시아를 바라보면서 서울올림픽이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었던 레이건 행정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올림픽 경기중 한국인들은 미국과 소련팀이 붙으면 소련팀을 응원했다. 이에 미국인들이 분개했으나 표현은 하지 않았다. 올림픽이 끝난 뒤 미국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 등 요인들에게 해명 겸 사과를 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
첫댓글 박아줌마를 저격한 북한을 요즘 베이징 방송보도에 북한 옹호 칭찬방송하는데 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