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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여행,골프,음악 스케치 스크랩 2010.2.7 日 천마지맥길을 졸업하는 날에...(갑산,적갑산,예봉산, 예빈산)
유대준 추천 0 조회 10 10.02.16 18: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마지맥 제4구간 천마지맥 길을 마치며...(먹치고개,갑산, 적갑산, 예봉산, 예빈산, 능내리, 다산생가터)>
1. 산행 개요
 ○ 일자 : 2010. 2. 7 日(07:20~13:56 나홀로 6시간36분)
 ○ 날씨 : 맑음
 ○ 산세 및 위치
   먹치고개에서 갑산으로 이여진 지맥길이 새재고개에 잠시 가라앉았다가는
   적갑산, 예봉산을 타고 서서히 두물머리앞 팔당 한강으로 맥을 다하는 그런 곳이다


2. 산행코스
 먹치고개⇒갑산⇒새재고개⇒적갑산⇒예봉산⇒율리봉⇒율리고개⇒예빈산(직녀봉)
 ⇒동쪽분기 능선⇒6번도로 절개지⇒능내역⇒다산유적지⇒한강 팔당호
<진행도>
 

 

<산행개념도>

<구글궤적>

 <등고선 궤적>

 

duenggo1.gtm 

3. 대중교통
  이번 산행 들머리는 먹치고개인데 덕소역에서 88-3번 시내버스가 있으나 발차시각들이
  일정치 않아서 바로 택시로 새벽에 이동해서 산행을 진행한다
    ※ 덕소역에서 먹치고개까지 택시요금7,500원 약13분 소요

  날머리 능내역앞에는 양평, 양수리나. 팔당으로 지나는 시내버스가 많으 편이라 별도 언급은 생략한다

4. 산행기록
오늘은 지난해부터 이어오던 천마지맥을 마치는 날입니다.
한 번에 만사 제쳐 놓고 지맥산행 길을 완료하고 다음구간으로 이동하고 그런 산행은

제 스타일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능선을 타는 지맥 길을 거닐다 지치면 별도로 산을 가로지르는 산행도 해보고 모르는 산줄기도 공부해서

다녀보곤 합니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또다시 지맥이나 종주산행을 떠나 보구요.
그러다 보니 작년 봄에 시작을 했었는데 이제사 마지막 구간을 거닐게 되는군요

오늘은 일요일이라 중앙선 전철을 이용해야 하겠기에 3호선 양재역에서 옥수역으로 이동을 합니다.
일요일에 출발하는 아침 전철 시각표는 조금 다릅니다.
옥수역에서 06시2분발 덕소행 열차를 이용합니다

중앙선 전철은 덕소역에 6시40분에 도착을 해줍니다.

아침시각이라 지체되는 구간이 없어서 그런가 약35분 정도 걸리는군요.
어둠 속에 덕소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시우리로 들어가는 마을버스 88-3번을 혹시나 하고 기다려 봅니다.


7시까지 약 20여분이 지나도 아니 보입니다.
아침 일찍 청소를 하시는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나를 보고 어디를 가는냐고 묻길래 시우리를 간다고 했더니

하루에 한 대가 배차되어 하루종일 시우리를 왔다 갔다 하며 움직이는데 한시간 간격이라고 하는데

시각은 잘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이러다가는 오늘 산행 첫시작 부터 삐그덕거릴 것 같아서 바로 택시를 타고 먹치고개로 이동을 했습니다.
약13분 정도 걸리는군요. 요금은 7,500원이구요 시각은 7시15분입니다.

지난주에 히치를 했었던 먹치고개에서 행장을 꾸리고는 산행을 시작합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질 않아서 사진이 많이 흔들립니다.



먹치고개에서 야외결혼식장 돌담을 뛰어 넘어 들어가면 좌측에 결혼식장 설비들이 있구요
운동장을 가로 질러 숲 속으로 들어가면 시그널들이 몇 개 보입니다.


능선을 조금 올라가면 좌측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와 합치하면서 등로는 진행이 됩니다.
좌측 아래에는 내치마을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구요.

내 발자국 소리가 들렸는지 귀밝은 멍멍군들이 간간이 컹컹 짖어대는 소리가 들리는 전원풍경이 고즈넉한 곳입니다


임도가 끝이 나고 산으로 오르는 길에 묘지가 하나 보이구요.

중간에서 오늘 일출의 장관을 맞게 되는군요.

동편 멀리 용문산 줄기 아래 남향으로 뾰족하게 올린 봉우리가 백운봉일 것 같은데 그 방향에서 일출을 올리고

있는 순간이 목격 됩니다.

멋지군요.

사진 찍는 재주가 없어서 몇 컷을 찍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남향에는 아직 미련이 남은 하현달이 어둠 속에 빛을 발하고 있구요.
아침햇살을 맞아 갑산 능선에 붉으스레 펼치는 모습이 단풍철을 연상케 하는군요
오늘은 유난히도 아침햇살 트면서 붉게 물들이는 모습이 퍽 인상적입니다


갑산에 오르는 능선 진입구간이 조금 가파라서 초반에 힘 좀 빼구요.

그래도 일출의 멋진 광경을 목격해서인지 힘든 줄 모르게 첫 능선 구간에 진입을 했습니다.
이제 오늘 산행은 쉬엄쉬엄 해도 될 듯 합니다.

갑산 만 오르고 나면 오늘 구간의 산의 높낮이는 별것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이제 등로 방향을 좌로 꺽어 남서향으로 아침햇살 가득히 품은 능선을 거닐고 갑니다.

바람이 불어 치는데 고도가 있으니 조금은 싸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하나 넘고 나니 노송들의 모습도 가끔 보이구요.

갑산 정상에 도착을 합니다. 시각은 8시16분입니다. 약 한시간 걸렸습니다.
철망 안에 갖힌 높은 무인감시 카메라인 듯한 설비가 보이는군요.

그 앞에는 태양열 집진 시설 같은 것이 보이구요.

정상입석은 따로 없고 철망에 청량산악회라고 적힌 곳에 해발 표식을 해 놓았습니다


오늘 날씨가 맑고 아주 맑고 청명한 날이군요.

아직 정오의 햇살이 아니떠서 그런지 안개 속에 묻힌 동서남북의 산야의 모습들이 산뜻하게 조망이 됩니다.

북향으로 천마산 쪽만 나뭇가지에 가려서 잘 아니 보이구요.


갑산 정상에서 약 50여 미터 남향으로 능선을 타고 진행하면 바로 우측 서향으로 조조봉으로 갈리는 등로가 나옵니다.

삼거리에 이정목 쓰러진 것을 기대어 세워놓았는데 그냥 스쳐 지납니다.

이곳에서 약 백여 미터 더 직진하여 진행하면 서남방향으로 도심의 뿌연 매연층위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조망이 되는 곳이

나옵니다.  넓직한  헬기장이였습니다.  


헬기장에서 능선을 타고 내리서다가 급히 남쪽으로 꺽어서 등로가 진행됩니다.

경사가 급하구요. 새재고개로 내리 서는 곳입니다.

경사가 급해서 산줄기가 끊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새재고개는 시우리와 도곡리를 연결하여 오가는 고갯길이지요.
이곳 새재라는 곳이 鳥嶺의 뜻인지 사이재의 준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새 조(鳥)로 생각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박새종류가 고개마루에서 뭔가 열심히 먹이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박새보다는 조금 작은 종류의 새인데 이름은 잘 모르겠군요.


새재고개에서 잠시 행장을 다시 꾸리고는 예봉산 방향으로 경사를 치고 오릅니다.
새재고개가 해발340정도의 높이이니까 갑산에서 약200M를 까먹고 내려왔으니 다시 그 정도를

올려쳐야 예봉산 줄기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다시 힘을 내서 발길을 내디딪구요.

이제 예봉산자락이라 등로도 계단으로 잘 정비되어있군요.

오르면서 뒤돌아 보니 갑산의 모습이 두루뭉실해 보이구요


등로 옆에 살아가고 있는 노송의 아래 기둥이 참 신기하군요. 양 옆으로 나란히 대칭으로 서로 자라고 있습니다.

신비로운 모습이지요. 서로가 마주 보며 닮고 싶었었나 봅니다
이렇게 우리 살아가고 있는 세상도 서로 서로 닮아 가고픈 마음이 가득하면 불협화음은 별로 없겠지요.


이제 운길산갈림길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좌측 등로는 수종사가 있는 운길산으로 진행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이곳에서부터는 지난해 12월에 카페 송년산행을 했던 길이라 낯익은 길이지요.


직진해서 진행을 하구요.
머지 않아서 좌측으로 세정사가 1.7km거리에 있다는 이정목도 지납니다.

등로를 잃을 염려가 없는 구간이므로 특별치 않은 이정목 구간은 생략하고 진행토록 합니다.

노송이 우뚝 솟은곳과 신갈나무가 한 가운데 서있는 봉우리를 지나갑니다.

시야가 가려 조망이 없어서 스쳐 지나구요.
능선 한 곳에서 우측 서향으로 서울 쪽의 도봉과 삼각산까지 잘 조망이 되는 곳이 있어서

잠시 조망을 즐기고 진행을 합니다.


봉우리가 높은 곳이 보입니다. 정상입석이 보이는군요. 적갑산입니다.
시각은 09시 29분이구요. 정상석을 담아 보구요.

이곳에서는 조망이 나뭇가지에 걸려서 그리 시원치는 않은 곳입니다.


가야할 예봉산 정상을 가늠해 보구요
지나온 뒤편의 산군들도 나뭇가지에 가렸지만 한 번 짚어 봅니다
산군의 공부는 틀리드라도 자꾸 짚어 보는 습관을 들여야 주변 산의 모습들을 익힐 수 있고

시야가 넓혀집니다.


노송이 멋지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한 번 살펴보고 나면 돌무지가 있는 이정표식이 있는 곳을 지납니다.


이곳에서 등로는 잠시 안부로 가라앉습니다.
안부로 떨어진 곳에서 물푸레나무 군락이라는 곳이 있어서 잠시 물푸레나무의 결실 흩날림을 살펴보고 지납니다.

이 물푸레나무는 참 단단해서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인다고 하지요.


나는 기억나는 것이 어릴적 내 살던 동네에서는 이 나무를 도리깨 나무라고 했었습니다.

잔 가지가 있는 작은 나무를 잘라다 도리깨질하는 나무로 사용했었거든요.


활공장을 오르기 전에 북향과 동향으로 조망을 잘 할 수 있는 곳이 나타납니다.

오늘 날씨가 맑아서 제대로 주변의 산군들을 읽어보려 합니다.
대단하군요.


활공장에 도착이 됩니다.
시각은 10시 정각입니다. 이제 몇몇 분들의 산객이 지나치구요
활공장이 있는 곳에는 한 켠으로 천막을 친 간이 매점 같은 것이 있구요.
이곳에서 덕소와 팔당하류지역이 잘 조망되는 곳입니다.


활공장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철문봉이 나옵니다.
철문봉에 들어서니 정약용 형제에 관한 안내판이 있군요


여기서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몇 가지 알고 넘어가면 이해가 쉬운 것들을 기회가 되어 적어 봅니다.

특히 오늘 산행을 해나갈 예봉산과 조안면 능내리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터가 있는 지역이라 이 기회에

개략적으로 적어 볼까 합니다.
 
정약용 선생은 아마 형제가 사형제였던 것 같습니다. 순서대로 약현, 약전, 약종, 약용..
아마도 남자로는 막내였던 것 같구요. 제일 큰형은 배다른 어머니의 손이라고 합니다.

일찍 사별을 했는지 기록이 별로 눈에 띄는 것이 없군요.

고산 윤선도의 직계 후손이였던 어머니 윤씨는 두 번째 부인이였구요.
윤씨 부인에게서 둘째와 셋째형, 정약용 선생과 누이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친가나 외가나 할 것 없이 모든 일가 친척들이 천주교를 통한 실학사상에 깊이 젖어있던 분들이지요.

그래서 모든 식구들이 참 기구한 운명을 살았던 분들입니다.

저 강 건너 퇴촌 천주교 성지에 가보면 천주교 창립 성조로 받드는 이벽, 서양선교사에게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

셋째형인 약종 등의 묘역이 있지요. 이벽이란 분은 정약용 선생의 큰형수 동생으로서 사돈관계인데 8살 연상으로서

정약용선생이 정조 임금때 관직에 있을 당시에 政務 집행 자문과 학문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준 분이라 합니다. 

또한 이승훈은 매형 관계이구요.

그 당시의 진보세력으로서 서학을 받아들이려는 실학사상이 家內에 진하게 흐르고 있었던 一家가 였겠지요.

정약용 선생은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하던 영조 임금 때 태어나서 정조 때에 관직에 들었었구요.

수원성축조에 일익을 담당했었습니다. 정조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왔지요.

순조 때부터 천주교 박해가 심해지면서 형제들이 귀향과 처형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구요.


결국은 18년 동안 강진 귀양지에서 옥고를 치루면서 실학의 선구자로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500권의

왕성한 저술활동을 선각자이시지요~
오늘 시간이 된다면 천마지맥이 가라앉는 곳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철문봉을 지나고 나면 안부에 헬기장이 나오는데 그곳은 가을에는 은빛물결 출렁이는 억새가 향연을 하는

멋진 곳이 였습니다. 억새 대신 오늘은 남향으로 한강 건너편에 검단산 줄기를 조망하면서 지나갑니다


헬기장에서 예봉산 정상을 오르는 길은 조금 급한 경사입니다.
예봉산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지나치는 산객들이 많군요.
아직도 경사면에는 얼음 깔려있어서 상당히 조심을 해서 올라야 합니다.
몇 분이 내려오다가 엉덩방아를 찧던데..조심해야 겠습니다.
낙엽이 살짝 덮혔는데 아주 미끄럽군요.

예봉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많은 산객들이 올라와서 자리잡고 있구요.
시간은 10시22분입니다. 정상석이 예전 것과 두 개 자리하지요.
나도 얼른 정상석을 사진에 담아냅니다.


이곳에서 오늘 북향으로 멀리 화악산까지 조망을 해보구요.

동향으로은 치악산의 뾰족이 올린 비로봉이 조망됩니다.

남향으로는 검단지맥의 용마산과 백마, 태화산 능선까지도 선명하구요



[▼ 당겨 본 용문산방향]


이제 조망을 마치고 벚나무 쉼터가 있는 방향으로 동쪽 경사진 등산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경사가 급하지만 양지 바른 곳이라 언 땅은 별로 없어서 쉽게 내리설수 있었습니다.
벚나무쉼터에 이정목이 있군요. 율리봉이 약 200여 미터 남았구요


경사를 급하게 올려치고 나니 율리봉입니다.

율리봉은 정상입석이 있는 것이 아니구 안내판과 쉼터용 윈기둥 쉼터 의자가 세워져 있네요


율리봉에서 율리고개로 가는 능선주변의 우측 남서향 경사로에는 산불이 났었나 봅니다.

나무가 밑부분에 끄을음 흔적들이 있는데 다시 잘 살아났네요.

다행입니다.

우리 모두 불조심..우리 강토 우리가 잘 지켜야지요.

요즘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상기온들이 자연생태파괴에 의한 기후변화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율리고개 하산 길에 동향으로 멀리 제대로 조망되는 곳이 한 곳이 있었네요
지맥이 가라앉는 두물머리가 선명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천마지맥만 두물머리에 가라앉은 형국이 아니구요.

한강기맥양자지맥 길도 모두 팔당호라는 인공호수 속에 지세가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팔당댐 조금 아래 하남시 창모루에는 검단지맥도 가라앉는 곳입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한자로는 兩水頭(양수두)라고도 합니다.

두 강줄기가 합수하는 강줄기라는 뜻입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각자 이리 저리 휘청이며 이여 온 긴 여정을 끝내고 나서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몸을 섞어버립니다.

이렇게 사랑이 무르익는 곳입니다.

이제 한강이라는 새로운 젖줄로 태동이 되어 유유히 너울 치는 물살을 가르며

수도 한양 땅으로 여정을 떠납니다.


율리고개 하산하는 중간에서 상팔달로 빠지는 길이 하나 있었는데 그리 중요한 등로가 아니라

그냥 지나쳐서 내려옵니다. 율리고개에 닿았습니다.
시각은 11시 정각이군요.


이곳에서 지체 없이 바로 치고 올라갑니다.
중간 경사지역에는 음지라 많이 미끄럽습니다.
멋진 노송이 경사면에 살고 있는 모습을 이리 저리 살펴 보구요.


능선에 올라서니 예봉산장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에 이정목이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예빈산을 오르는 구간은 제법 경사가 급한 구간이였습니다.
나는 갑산에만 오르면 오늘 산행길이 쉬울 것이라 생각을 하고 거닐었었는데 작은 산줄기의

표고차가 제법 가파르게 있었습니다.

이제 예빈산 직녀봉에 올랐습니다.

정상에 헬기장이 있구요. 동쪽 구석에 직녀봉 안내판이 있구요.

서향으로 팔당댐하류 방향으로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전망암이 있군요.
이곳에서도 조망이 뛰어납니다.
시각은 11시25분입니다. 잠시 이곳에서 간식을 하면서 휴식을 취해 봅니다.


예빈산 직녀봉에서 잠시 등로 결정을 위해 고민에 빠졌습니다.
능내리 천주교 묘역으로 능선을 타고 내리는 길로 천마지맥을 마칠 것인지,

아니면 좌측 동으로 뻗어 내린 줄기를 타고 능선을 조금 더 거닐어  茶山 정약용 선생 생가터까지 이어보는

산행을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천마지맥의 마무리 의미는 있는 길입니다.
내가 개념도를 그려 볼 때 등고선 따라 줄기를 그어 보니까 능내리 천주교묘역으로 가라앉더군요.

동쪽으로 돌아가는 것은 맥의 줄기 이어나감이 좀 이상한 것 같구요.

천마지맥의 마지막 구간의 길은 정석의 길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나름대로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운길산 방향으로 진행하면서 천마지맥을 마친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따라서 천마지맥의 마지막 구간은 자기 자신이 마음속으로 지맥 길을 거닐었다 생각하면 되는 것이

생각하고 싶습니다.

고집스럽게 이것 저것 따질 필요 없이...

요즘 정맥이나 지맥이나 끄트머리에 다다르면 온통 21세기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땅덩어리로 변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파헤치고 뒤집혀지고 위로 솟아 오르고, 가로막고...

우리 국토의 산경표는 이제 마음속에서나 잘 잡아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도 교과서에 백두대간이란 산경표를 못 집어 넣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이 우리국토를 동서로 가르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태백산맥이 우리나라를 동서로 가른다고

지금도 사회과탐구 지역화교재에서는 가르키고 있는 실정이거든요.

현재 시각을 보니 아직 이릅니다. 좀 더 길게 거닐어 보는 등로를 택합니다.

좌측 동편으로 등로를 꺽어 진행을 해봅니다.

이제 나침반을 목에 걸구요. 등산지도를 손에 움켜잡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이제 산객이 뜸해집니다. 아~ 경사가 장난 아니게 급하군요.

이것 괜히 이곳으로 등로를 정했나 후회가 되는군요.

급한 경사를 치고 내려오니까 약한 안부로 떨어졌다가 올려 솟은 암봉이 있구요.

노송이 한 그루 멋진 자태를 하고 있어서 위치를 올립니다.


이곳에서 아래 남향으로 방위각 약160도 잡아 놓고요.

앞이 시야가 가려서 능내리 다산생가터쪽이 잘보이질 않습니다.


이곳 능선에서 두 갈래로 등로가 갈라지는데 좌측 동남향은 조안리로 빠지는 길이구요.

우측 길 남향 경사 급한 곳이 오늘 내려갈 등로입니다.
처음 오는 분들이 조금은 등로 찾기가 좀 난해할 것 같은 지역입니다.

이제 또 급한 경사를 내리치고 나면 솔 숲의 완만한 능선으로 바뀌구요.

이곳에도 산불의 흔적들이 조금 있네요.

관리되지 않은 주인 없는 무덤가를 지나치구요. 송전철탑이 나옵니다. 철탑이 10번이군요.

이곳에 도착했으면 우선 등로는 제대로 찾아 내려온 것이라 안심해도 됩니다.


이곳 송전철탑을 지나고 나서는 고도가 약200m급의 완만한 능선을 거닐어 갑니다.

솔 숲이 간간이 나있는 산책길 수준의 등로입니다.

등산하는 산객은 없어도 동네 분들이 거닐었었던 길의 흔적이 확연하게 나 있습니다
산객들의 시그날도 가끔 하나씩 펄럭이고 있구요.


능선 등로에서 지도에 나와있는 199봉의 삼각점을 찾아야하는데 못 찾고 그냥 지나칩니다.
고도를 조금 더 낮추었는데 삼각점 형상을 한 것이 있는데 많이 마모가 된 듯합니다.

위로는 길쭉하게 올렸는데 삼각점을 누가 이리 옮겼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곳의 고도는 약180m정도입니다.

199봉하고는 위치 상으로 맞지도 않구요.


이름 없는 삼각점을 지나고 다시 고도를 약60여 미터 좀 급히 낮추는 능선내리막길을 거닐다

보면 등로 좌측으로 잘 정리된 묘지를 지나구요.

묘지 바로 아래에 사거리 갈림길 흔적이 희미하게 나타납니다.

좌측으로는 키 큰 낙엽송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지역이군요,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고 마을주변 길로 등로가 변하다가 보니 묘지가 많이 나타납니다.

이젠 여러 묘역들이 있어서 등로에 각인 시킬 것이 못되어 제외하구요.
몇 개의 묘역을 지나고 나서 꽤 큰 고개 길이 나옵니다.


위치상으로  조안리와 능내리를 통하는 고개길인데 요즘은 몇 명이나 지나다닐지는 의문이구요


고개마루에서 직진방향으로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등로 중앙에 접도구역 표식같은

시멘트 직육면체입석이 낮게 뭍혀 있습니다. 이것도 그냥 지나치구요.

또 가로지르는 작은 고개를 지나고 능선을 이어나갑니다.

다시 솔숲이 무성한곳에 도착이 되는데 남서향으로 팔당댐 배알미리 방향을 보고 있는

잘 정리된 묘지를 보게 됩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능선을 타고 내리면 시멘트길 고개가 나오는데 전신주에 다산농장600m라고 적혔구요.

그냥 마루금으로 진행해 나갑니다


마루금을 따라 올라서면 능선에 우측 서향으로는 벌목이 되어 있어서 휑한 느낌을 주고요.

저 앞으로 6번 국도가 봉안터널에서 나오는 것이 시야에 잡히기 시작합니다
등로 좌측으로는 연두빛 건물에 창고 같은 것을 스쳐 지나구요. 우측으로는 멀리 팔당댐쪽도 보입니다.


여기서 팔당 이름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야겠군요.
팔당(八堂)은 호수처럼 이어진 두물머리 주변으로 당(堂)집이 여덟 개가 있어서 팔당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한강에 넓은 나루가 있어서 "바다나루", "바당이"라고 하다가 부르는 소리가 팔당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지만

현재 팔당이란 지역이름이나 나루명 사용은 상당히 익숙해져있는 지명이 되었습니다.

1974년 5월에 준공한 인공호수 팔당댐이 있기 전에는 두무머리에 합수 하는 물길 흐름이 많이 급해서

뱃길 사고가 많아서 죽은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당집들이 많이 있었다는 설에 나는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지금에도 유원지로 변해서 회집이나 매운탕집 오리고기집들 여러 음식점의 천국이 되었었지만 예전에도 이런 경치

좋은 곳에 양반님들 노닐던 유원지 터는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건너편엔 하남시의 배알미리가 있는데 예전에 한강을 오고가는 모든 사람들이 임금이 계신 삼각산 쪽을 바라보고

배알(拜謁: 높은 어른을 만나뵈다)의 예를 갖추던 곳이란 뜻에서 배알미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배알미리는 신정일님이 쓴 다시 쓰는 택리지에 실린 내용임) 

아~ 이제 6번도로가 지나치는 지점에 도착을 했습니다.

절개지가 나오구요. 쌩쌩내달리는 고속화도로네요.
건너편에는 능선위쪽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 같구요.

마루금은 어차피 여기서부터 흉내나 내면서 비슷하게 밟아가야 하겠습니다.


절개지에서 우측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면 6번도로를 지나치는 봉안대교를 아래지역으로
돌아나갈 수 있는 곳이 있군요. 다리밑을 통과해서 건너편으로 올라서서 군부대 들어가는 곳으로 내려갑니다.

도로변에 노점이 있는곳이 군부대 입구입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13시08분이군요.


이제 남향으로 나있는 군 도로를 따라가다가 군도로가 휘어져 올라가는 곳에서 숲으로 들어갑니다.

숲에 시그널이 두 개 정도 있어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숲을 지나면 비닐하우스 둘러친 것 같은 몇 가구가 있는 곳인데 멍멍군 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사람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우측 경사면에는 잘 정리된 묘역이 보이구요.


이곳에서 좌로 직진하여 마루금을 타려다가 막혀서 되돌아 나왔습니다.

오늘 첫 알바구간입니다.
오른편 직진 길을 헤집고 나가면 비닐하우스 우측 경사면에는 잘 정리된 묘역이 보입니다.


우측 묘역까지는 콘크리트 수레길 같은 것이 나있어서 들어올 수 가 있는 것 같군요.
이제 콘크리트길에 올라서서 길을 따르면 넓은 밭이 보이고 정원수 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건너편까지 우측 콘크리트도로가 이여져 있습니다. 그 위편에 능선 마루금이 보입니다.


능선 마루금을 따라 오르면 솔 숲이 무성합니다. 여기서 능선이 희미하게 갈리는데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서 좌측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젠 사람들이 다녔던 흔적이 있는 길로 진행을 합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솔 숲을 헤치고 등로를 찾았어야 제대로 능내역 방향으로 나올 수가 있었는데

나는 우측방향으로 능선을 이어갔습니다.
하긴 마지막 마루금인데 어디로 가나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제 마음 편하게 거닙니다

조그만 고개마루를 또 하나 건너 봉우리에 오르니 운동시설들이 있는 곳이 나옵니다.
운동설비를 지나고 나니 45번국도가 지나고 앞에 예전에 사용하던 녹슨 철길이 보입니다
철길넘어는 팔당호구요.


앞에 보이는 산 마루가 마재일것으로 추정되구요.

그 너머는 다산정약용선생의 생가터가 있는 동네가 되겠군요.
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아~ 능내역쪽에서 약200여 미터 벗어난 지점입니다.


도로에 내리서서 좌측 동쪽 능내역 방향으로 거닐어 올라갑니다.
도로 좌측에 한확선생 신도비라는 유적이 있습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127호군요.


누각안에 신도비의 비문이 새겨져있었는데 내가 들여다 보았는데 많이 마모가 되어서

잘 해독이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100여 미터 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능내1리 마을 입석이 보이구요
그냥 지나치면 옛 능내역사가 어디인지 알 수 가 없겠습니다.
바로 능내1리 입석 안으로 들어가면 예전 능내역사가 초라한 모습으로 눈에 띄입니다


능내역을 통과하여 철길을 건너서 산줄기가 이여지는데 올라서는 길이 없습니다.

산길로 올라 붙으려해도 동네 마을 집들이 산줄기를 뒤로하고 이어 달라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선답자들이 도로를 따라서 그냥 걸었다는 것이 이해되는 군요


소로를 따라 거닐어 가면 산을 넘어가는 콘크리트도로가 산허리를 잘라 넘어갑니다.
산을 넘어가니 삼거리인데 승용차가 빈번히 다니는 다산로와 연결됩니다.
이곳이 마로 마재입니다.


이제 우측 남향으로 빈번히 승용차가 질주하는  도로를 따라 거닙니다
능내역에서 약15분거리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터가 있는 마현골이란 동네가 나오는군요
생가터는 도로 좌측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시각은 13시 52분입니다.


나는 정약용선생의 생가터는 일단 천마지맥을 마무리하고 나서 올라오면서 살펴보기로 하고

두물머리 합수된 팔당호가 있는 남향으로 약500여미터 지점의 한강변으로 진행을 합니다.
천마지맥이 가라앉은 한강에 도착을 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는 곳이군요
시각은 13시56분입니다.
한강변에 팔당호는 아직도 한 겨울입니다. 꽁꽁 얼어있군요.
강 건너 퇴촌 땅 뾰족한 무갑산이 아른거립니다


<천마지맥을 마치며>
수원산 길목
명성삼거리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길다란 줄기

능선을
오르내리며
숱한 거친 숨을 토해냈다

보고픈 임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끊임없이 옮겨 디딘 발자욱들

산이름 하여
주금산, 철마산, 천마산, 백봉, 갑산, 적갑산,
예봉산, 예빈산
산산산....

이제 저기 한 곳
내 눈에 펼쳐 보이는 곳
가까이 다가왔다

굽이쳐 흘러 내려 온
북한강과 남한강이

이리 걸치고
저리 걸치고
피로에 지쳤는가
꽁꽁 얼어붙어 창백한 얼굴이네

그대들이여~
두물머리 얼음장 밑으로
한 몸이 되어 태어나거라

머언 길
그리움 가득 담고 내려온 길
이젠 그 애틋했었던 기다림
모두 이 곳  두물머리에 풀렸어라~

꽁꽁 얼어붙은
파릇한 얼음장이
넘실 넘실 너울 너울
반사되어 되 비친다

새롭게 태동한 한강물
늘 한결같이 흘렀으면 좋겠구나


내 마음도 편하게 얼음장 밑으로
유유히 흘러 보낸다
그리고 또 다른 산길을 나는 찾는다

-이천십년이월칠일 천마지맥을 마치며....aspiresky/청랑-

이제 지맥을 마치고 다시 마현골로 올라옵니다
이제 마지막에 들리는 곳은 다산 정약용선생이 태어나서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75-1번지이지마는 예전에는 광주군 초부읍 마현리 소내라는

마을이였지요. 마현(馬峴)이 마재라고 불리기도 하구요.

정약용선생은 75세에 눈을 감으셨다니 역으로 계산을 해보면 이곳 마재에서 지천명 반백이 넘어 17여 년을 보냈었고

이전 18년은 茶山(나중에 정약용의 호가 되었음)이 있는 강진에서 40세 이후를 보낸 것 같군요.

그리고 관직은 18세에 생원에 등과 했었다니 약20여년을 했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겠네요

유적들을 이것 저것 몇가지만 올려 보겠습니다

[천일각]


[기념관]


[거중기]

정조임금때 수원성 축조에 사용된 것이라 합니다


[여유당]


[묘소]


이상과 같이 개략적으로 다산 정약용선생의 생가터를 돌아보고 능내역이 있던 곳으로 도보로 되돌아 거닐어 나옵니다.

약15분거리입니다.
능내역앞에는 시내버스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라 팔당이나 덕소, 강변역으로 나가던지 양수리,

양평쪽으로 나가든지 하여 전철을 연결하면 됩니다.

2000-1번 버스에 올라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오늘 천마지맥의 긴 산행길을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오늘도 산행중에 스쳐지났던 여러인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aspiresky/청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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