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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정의 르네상스(16세기초)
르네상스를 언급하면서 이분들외에도 소개할 분이 수두룩하나 지금까지도 너무 장황한 느낌이 있어 16세기로 들어갑니다!
16세기는 르네상스 미술의 가장 절정기라 할 수 있는데 곰브리치는 이 시기의 르네상스를 설명하기 위해 유럽을 세 지역('토스카나와 로마',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 '독일과 네덜란드')으로 나누어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 당시 위대한 미술가들의 업적과 그 위상을 짐작케 합니다.
토스카나는 피렌체를 주도로 하는 이탈리아 중부의 주로써 우리는 르네상스와 메디치가가 주도한 피렌체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계속 보아왔습니다. 토스카나는 르네상스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지역으로 도나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라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4대 거장의 고향이니 더 이 이상 무슨 언급이 필요하겠냐만은 곰브리치가 선정한 첫 번째 주인공 '다 빈치'부터 살펴봅니다!
다빈치의 직업은 무엇일까요?
인터넷의 자료를 보면 세계적으로 보편적 예술의 기반을 제시한 선구자이자 인류 지성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평가받는 불세출의 천재이자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고 극찬합니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유명하며, 이탈리아의 위인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이름과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모나리자는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죠!
화가라는 측면에서 보면 갸우뚱입니다..
가장 유명한 모나리자와 피렌체의 성당에 "최후의 심판"이 대표작입니다만 그러면 남아있거나 기록되어 있는 작품은?
몇 점이 되지 않는데 말미에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림보다 다양한 방면에 호기심이 많았는지 그를 소개하는 자료에는 "화가,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과학자, 음악가, 작가, 해부학자, 지질학자, 식물학자, 지리학자, 요리사, 수학자 등 다방면에서 완벽에 가깝게 두루 활약한 자타공인 다중천재(Polymath)"로 등록되어있습니다.. 뭐야~~ㅎ
키, 외모, 목소리 등 외적 용모 또한 뛰어났다. 또한 운동을 즐겨 강인한 완력과 쉽게 지치지 않는 근골격계를 가졌으며, 검술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다재다능함과 창의성으로 르네상스 인간(Renaissance Man)이라 불릴 만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을 정도로 요즘말로 끼많은 팔방미인입니다!
다빈치의 대표작은 단연코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입니다. <최후의 만찬>은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이 작품과 함께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위대한 작품으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부속 건물 인 수도원의 식당 벽에 그려져 있습니다.
예약하여 방문해야 일정인원에 한하여 직관이 가능한데 항상 매진이라 최소 한달전에는 예매를 하며 그조차도 시간대는 정하기 힘들정도~~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는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는 단골 소재였으며, 식사를 묵상의 연장으로 만든다는 기대에서 벽에 실물크기로 거대하게 그리곤 했다.
다빈치외에도 동일 그림은 수두룩하고 넘쳐납니다.
#최후의 만찬/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이탈리아어: Il Cenacolo, 영어: The Last Supper)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의 후원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의 요청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이 작품은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마지막 날 있었던 최후의 만찬의 정경을 그린 것이다. 그림은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수도원의 식당 벽화로 그려진 것으로, 가로 880cm, 세로 460cm 크기의 거대한 작품이다. 레오나르도는 1495년부터 제작에 착수하여, 1498년에 완성했다. 대부분의 작품이 미완성이라고 불리는 레오나르도의 그림에서 몇 안되는 완성작 중 하나지만, 가장 손상이 심한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다.
#디르크 바우츠(Dirk Bouts), 1415경-1475, 벨기에 루뱅 성 베드로 성당 소장
#발랑탱 드불로뉴(Valentin de Boulogne), 1591-1632, 로마국립고전미술관 소장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쭈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마태복음 26장 21~23절). 12제자 중 한 명인 '유다'의 배신의 순간을 표현한 작품은 기존의 최후의 만찬 작품들과는 달리 과감하게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나란히 앉혀 12제자를 3명씩 4개의 무리로 인물을 배치시켜 완전한 대칭을 보여주나 결코, 도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해설에 따르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3명씩 네 무리의 제자들이 배치되었다.
예수님 왼편에 나란히 있는 첫 번째 무리는 바돌로매,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안드레인데 예수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두 번째 무리는 베드로, 유다, 요한이다. 성급한 베드로가 요한 쪽으로 기대어 무엇인가를 속삭이고 있고, 요한은 무심코 유다를 앞으로 밀고 있다.
유다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지 않으면서 강조되었다. 가운데에서 깜짝 놀라 예수님 쪽으로 기대는 세 번째 무리는 도마, 야고보(요한의 형제), 빌립이며, 이들은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충성을 확인하느라 열심 내는 것처럼 보인다. 오른쪽의 네 번째 무리는 마태, 다대오, 시몬으로 구성되는데, 그들은 열띤 토론에 빠져 예수님을 보지 않고 있다.
〈최후의 만찬〉에는 상징적인 요소들도 묘사돼 있다. 베드로의 손에 들린 칼은 예수님을 잡으려는 병사의 귀를 베는 데 사용할 것을 암시하고, 유다의 손에 들린 돈주머니는 은전 30냥에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상징화했다고 한다.[식탁 위에 놓인 떡과 포도주도 단순한 만찬 음식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음 날 십자가에서 찢기고 흘리실 살과 피를 상징한다.
제자들의 동요를 놀라움, 두려움, 사랑, 고뇌, 분노등의 다양한 감정으로 모두 다르게 표현하여 리얼한 생동감을 더했으며, 유다는 멈칫하며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오른손은 예수를 팔아넘기고 받은 돈주머니를 쥔채 오른손으로 빵을 집으려 하고 있는 등 등장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전통적 교리에 따른 표현 대신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을 조명하면서도 주제가 갖는 사상적, 정신적인 진실을 함께 표현하려는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할수 있다.
#12제자들과 4개 그룹(4개 그룹은 성경의 4개의 복음서를 상징)
#모든 선과 밝음이 중앙의 예수를 향해 집중돼 있어 그림의 초점이 확실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구성이나 소묘의 기술과 같은 기법상의 문제를 넘어서서 인간들의 행위와 반응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우리 눈앞에 한 화면을 생생하게 전개시켜 보여준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려놓은 것을 유심히 바라보며 붓 한번 대지 않고
팔짱을 끼고 하루 종일 서 있곤 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색의 결과인 <최후의 만찬>이야말로 인간의 천재성이 만들어낸 위대한 기적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최후의 만찬>보다 휠씬 더 유명한 '다 빈치'의 작품은 모나리자라는 이름을 가진 피렌체의 한 부인의 초상인 <모나리자> 일 것이다. 곰브리치는 이 작품의 설명에 앞서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모나리자>와 같이 지나치게 유명한 명성은 그 예술작품을 위해서 반드시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엽서나 광고에서조차 이 작품을 보아왔으므로 그것을 실제 화가가 살과 피를 가진 실존 인물을 그린 그림으로 참신한 눈을 가지고 보기 어렵다. 그림에 관해서 아는 것이나 안다고 믿었던 것을 다 잊어버리고 처음보는 사람처럼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조르조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에 의하면, 이 그림은 1503년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라는 상인이 새로 지은 집 거실에 걸어 두기 위해 자기 부인의 초상화를 의뢰해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의뢰자에게 전달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보관하며 틈틈이 작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방식인 유화기법을 사용했으며, 윤곽선을 부드럽게 하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
을 사용하여 엷은 안개가 덮인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인물의 입가와 눈가에 두드러지게 사용하여 <모나리자>만의 애매하고 미묘한 미소를 띠게 한다.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 속으로 뒤섞여 들어가거
만들어 무엇인가 상상할 여지를 남겨놓는 희미한 윤곽선과 부드러운 색채에 의해 피사체를 빛과 그림자로만 표현함으로써 진짜 살아있는 듯한 입체감과 현실감을 느낄수 있게 한다.
작품의 신비로움을 더하는 배경 또한 수평선을 모델의 목 높이가 아니라 그녀의 눈과 일치하도록 의도적으로 선택하였고 지평선을 비대칭으로 그려 인물을 주변 풍경과 밀접하게 연결하여 그 효과를 배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아득한 옛날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초상화를 보았다.
왜냐하면 미술가가 형상을 보존함으로써 그가 묘사한 사람의 영혼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위대한 과학자인 다 빈치는 태초의 형상 제작자들의 꿈과 두려움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는 그의 마술 붓으로 색채 속에 불어넣는 주문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유명한 다빈치에 대한 언급은 이정도로 간략하게 지나갑니다!
왜? 워낙 유명한 예술가가 되다보니 인터넷상에 자료가 수두룩하여 조금만 검색하여 보면 모두가 전문가가 될수 있어서..ㅎ
다만 전반부에 다빈치의 회화 작품을 언급했는데 제가 찾은 자료로 다빈치의 회화 작품을 소개하며 총총~~
인류의 3대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은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홀딱 벗은 이름 모를아저씨 비트루비안 맨, 루브르에 있는 세례요한, 13년 동안 무려 두작품이나 그린 "바위산의 성모" 정도가 화가로서 한 일입니다!
#모나리자
#비트루비안맨
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인체 비례도 그림 중 하나로, 인체의 비례와 대칭을 연구하기 위해 그려졌습니다. 그림에는 인체를 둘러싼 원과 사각형이 그려져 있으며, 이것은 수학적인 원리와 삼각함수의 개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원과 사각형은 서로 다른 형태이지만, 그 둘 사이의 관계는 매우 특별합니다. 이 관계를 이해하려면 삼각함수의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삼각함수는 삼각비를 이용해 각도와 변의 길이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함수입니다. 다빈치의 그림에서 원은 인체의 둘레를 나타내며, 반지름의 길이를 r이라고 합니다. 이때, 사각형의 높이는 인체의 머리에서 발까지의 길이, 너비는 팔을 벌린 길이와 같습니다. 사각형의 높이를 h, 너비를 w라고 할 때, 삼각비를 이용하면 원과 사각형의 관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원의 지름인 2r은 사각형의 대각선 길이와 같으므로, 대각선의 길이는 2r입니다. 이때, 대각선의 가운데 부분을 연결하면 직각삼각형이 만들어지며, 직각삼각형에서의 각도는 90도입니다. 이 각도를 기준으로 사인(sin), 코사인(cos), 탄젠트(tan)의 삼각비를 이용하여 다음과 같은 수식으로 원과 사각형의 관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sin(45도) = h / 2r cos(45도) = w / 2r tan(45도) = h / w
이러한 수식을 이용하여 다빈치는 인체의 비례와 대칭을 연구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수학적인 원리와 삼각함수의 개념을 반영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수학자와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바위산의 성모 2점
#살바도르 문디
최근 경매에서 역사상 가장 비싼 금액으로 팔리고 "빈 살만"이 구매한 것으로 알려진 "살바도르 문디"는 다빈치의 그림이라는 확증도 없는 상태~~
#세례받는 예수(도제시절 그린 것으로 알려진 작품)
#아부다비 루부르 전시중인 "세례요한"
67년 평생 그린 작품이라고는 알려진 것은 14~15점이며 붓질 한 번이라도 한 작품에 논란이 많은 작품까지 다 해도 많아야 50점 정도가 남아있습니다. 딸랑 14점을 그리고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16세기 이탈리아 미술을 빛낸 두 번째 피렌체 미술가는 미켈란젤로이다. '레오나르도'와 같이 해부학에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으나 해부학을 인간에 대한 수많은 수수께끼로 인식한
'레오나르도'와는 달리 창작을 위한 수단으로 오직 하나의 문제만을 완전하게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그를 모든 각도에서 인체의 표현을 가능하게 성장시켜 롤모델이었던 고대의 거장들을 능가하며 23살 연상인 '레오나르도'와 필적한다는 평가를 받게하여 우리는 흔히 "인류 최초 만능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로 엄지척~~
로마를 다녀오시면서 바티칸의 "슈퍼스타"의 작품에 많이 감탄하셨죠?
'미켈란젤로'는 <피에타>, <다비드> 등을 만든조각의 거장이면서 시스티나 성당의 <아담의 창조>가 포함된 천장화, <최후의 심판> 등의 회화와 세계 최대 성당인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을 직접 설계하는 등 바티칸의 "슈퍼스타"이지만 본거지는 피렌체..
#미켈란젤로의 작업 상상화~~
1511년 로마,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를 그리고 있었다.
천정화는 천지창조, 아담과 이브의 창조/타락/추방
노아 이야기 등 구약성서의 주요 내용을 3묶음 9장면으로 구성하였다. 이 작업은 약 30m 높이를 올라가 비계에 드러눕듯 몸을 짓이겨야 했고 회반죽을 펴 발라 물기가 마르기 전에 빨리 색을 칠해야 하는 중노동으로, 신경통과 관절염을 한 동안 몸에 달고 살아야 했으며, 조각가에게 프레스코화를 요청한 교황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경험하기도 한 그에게는 다사다난한 작업이었다
천정화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4번째에 위치한 <아담의 창조>로, 천정화 작업 막바지에 그려졌다.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알몸의 아담이 아련하게 보며, 왼팔을 뻗어 생명의 기운을 하나님으로부터 건네받으려는 장면이다. 둘의 손가락은 아직 닿지 않아 아슬한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데 인간의 창조가 완성되지 않았음을 암시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불완전성을 상징한다.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 중 아담의 창조 / 1511년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 작품으로 <피에타>, <다비드>, <모세>를 꼽는다. 특히, 프랑스 추기경의 의뢰로 제작된 <피에타>는 이 3대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당시 그의 나이 24세에 자신의 기술과 예술적 야망을 드러내기 위한 작품이기도 했다
#피에타(이탈리아어: Pietà, 1498-1499)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조각한 것으로 현재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 보관되어 있는 르네상스 시대 조각 예술의 대표적인 명작품이다. 그의 많은 피에타 상 중에서 최초의 것으로, 당시 로마에 체류 중이었던 프랑스 추기경 장 드 빌레르의 의뢰로 만든 것이었다. 커다란 대리석을 깎아 만든 이 조각상은 장 드 빌레르 추기경의 장례 미사 기념비로 제작되었지만, 18세기에 지금의 성 베드로 대성전 입구 오른쪽에 있는 경당으로 위치가 옮겨졌다. 이 피에타상은 유일하게 미켈란젤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새긴 작품이기도 하다.
유명한 작품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후에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놓여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묘사한 것이다. 원래 피에타를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은 북방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조각상이 제작될 당시만 해도 아직까지는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에서 유행을 하였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표현은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마리아의 얼굴이 매우 앳되게 표현되었다는 점이나, 예수의 몸에 비해 마리아의 신체 비율이 매우 거대하게 표현된 점, 그리고 사망한 후 사후 강직이 일어났어야하는 예수의 몸이 부드럽게 늘어져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점 등 매우 독창적으로 제작되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르네상스 시대 당시의 이상과 자연주의의 균형을 이룸으로써 예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또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생전에 만든 거대한 조각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완성을 끝마친 작품이기도 하다.
부연하면 피에타(Pieta)는 '자비를 베프 소서'라는 뜻으로 자식의
죽음으로 슬프지만 이 또한 하느님의 뜻임을 알고 순종
했던 마리아의 경건한 믿음을 일깨워 준다. 당시 마리아
의 얼굴을 젊은 여자로 표현하여 비난을 받기도 하였는데 '미켈란젤로'는 영원한 마리아이기에 얼굴 역시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말해 논란을 종식시켰다고 한다.
조형적으로 보면, 마리아는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어 무게 중심이 오른쪽인 예수와 균형을 맞추고 있으며 마리아의 오른 다리를 약간 높게 함으로써 예수의 몸도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여 그의 축 쳐진 팔의 느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또한, 마리아의 크기를 실제보다 크게 하고 치맛자락을 섬세하고 풍성하게 조각하여 예수의 몸을 자연스럽게 감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균형감을 보여 준다.
예수의 얼굴은 아래에서 보았을 때 고되고 힘든 표정처럼 보이지만 위에서 보았을 때는 평화롭게 잠든 것처럼 보여 마술 같은 그의 표현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미켈란젤로는 처음부터 그가 작업을 하고 있는 대리석속에 인물들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조각가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은 단지 그들을 덮고 있는 돌을 제거하기만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다.(이것은 불교 사상에서 나온 이야기를 인용한듯하며 불교 석공들이 돌속에 숨은 부처님을 내보인다고 생각했으며 전통적인 표현으로 "부처가 나투신다"라고 언급)
조각상들의 윤곽 속에는 본래의 대리석 덩어리의 단순한 형태가 반영되어 있어서 그 인물상에 제아무리 많은 동작이 포함되어 있다하더라도 명료한 전체적인 통일성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다비드 / 1504년
다비드(David)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1501년부터 1504년 6월 8일까지 제작한 대리석상으로, 높이는 5.17m이다.
미켈란젤로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청년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위엄있게 표현해냈다. 현재 피렌체의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에 소장되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1501년 피렌체에서 시청의 부탁으로 다비드를 3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보존등의 필요성을 고려하여 1879년부터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전시중이며 광장에는 모조품이 있다.
#모세/ 1516년
모세(이탈리아어: Mosè)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다. 로마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 위치해 있다. 1505년 교황 율리오 2세가 자신의 묘를 위해 주문된 이 상은 성경 인물 모세를 묘사하고 있다.
1505년에 주문된 이 동상은 1545년에 완성되었고 율리오 2세는 1513년 사망했다.
'미켈란젤로'는 단순히 고전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비드>의 당당함, <모세>의 힘찬 표정과 자세 등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창조하였고 때로는 감정과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신체 비례를 왜곡하여 극도로 이상화된
조형미를 추구하며 '후기 르네상스 매너리즘'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르네상스는 이런 것이야'라고 정의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극복한 '르네상스적 인간의 전형'으로 평가받으며 예술적 영감과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미켈란젤로도 다빈치외 같은 이유로 간략하게 서술합니다~~
뻔히 아는 이야기는 잘못 적으면 오류가 많아서..ㅎ
1504년,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가 피렌체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을 때 한 젊은 화가가 우르비노라는 작은도시에서 피렌체로 왔다. '라파엘로 산치오'였다.
라파엘로로 "절정의 르네상스"를 또 만납시당~~
글을 적다보니 유명한 예술가가 한결 편하고 쉽네요!ㅎ.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