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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의 글 >
사람이 되게 하소서...
수원 화서동 성당
한 바오로 (민희)
무엇보다 먼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영으로 숨을 불어 넣으시어
당신을 닮은 보기 좋은 사람으로 만드신
그 본래의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소서.
자주 하늘을 바라보며
아낌없이 내어주고자 하는 한없는 마음
순결한 맑은 마음을 품은
하늘을 닮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세상의 많은 가면들을 쓰고
나의 참 모습을 덮고 위장하며
어리석은 광대로 살아가는
허물들을 벗어 버리고
순수한 어린아이로 살게 하소서.
당신께서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마술사나 초능력을 가진 신의 모습이 아닌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내가 오늘 삶 속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바로 나를 만나고자 새로이 오시는
당신의 얼굴입니다.
힘겨운 삶의 여정에서
지치어 넘어지고 쓰러지고 목마른 당신에게
내 안의 샘에 쉬지 않고 솟아오르게 해 주시는
그 사랑의 생수를 성심껏 떠서 돌려드리는
착한 어린아이가 되게 하소서.
무엇보다 먼저 당신 사랑을 많이 닮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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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글 >
10월은 로사리오 성월
안산 원곡동성당 FB
권 토마 (순)
전례력에 의하면 10월 7일은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10월 7일이 로사리오의 성모 축일로 정해진 계기는 약 400년 전의 사건에 의해서입니다. 즉 1571년 그리스도교 연합 함대가 로사리오의 성모님의 도움으로 레반트 해전(1571. 10. 7)에서 터키 함대를 격퇴할 수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함대가 그때당시 유럽남부를 점유하고 유럽전체를 위협하던 시기입니다. 그 절명의 순간에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개신교신도들은 천주교인들을 볼 때,에 마리아를 믿는 종교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과격한 모습으로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저는 신학적으로 명쾌하게 이를 증빙하거나 이런 사실을 정리할 능력도 그럴 생각도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제가 이일을 가지고 애기할 수 있는 일은 그래도 천주교회가 성모마리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많다는 사실은 분명히 느낍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우리들이 생활하는데 큰 영향력을 주지만, 그분의 활동하심은 우리들이 눈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며 다른 이들의 체험을 듣게 됩니다.
개신교회에서 간증이라고 해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서 한 체험들을 여러 사람 앞에 말하면서 이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개신교회에 어디서도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런 일은 주님으로 직접 그 체험을 갖는 데는 사람에 따라 신심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도바오로도 여행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신심정도에 따라 다르게 대했다고 합니다.
이방신들에게 바치는 제물을 먹어도 상관없지만, 이것으로 신앙이 흔들리는 나약한 사람들 앞에서는 마치 자신도 먹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십니다.
우리가 성모마리아를 따르고 있는 것은 성모마리아가 행하신 것을 통하여 주님의 체험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주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협조자이신 성령인의 작용으로 비롯된다고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시는데, 그 은사는 어느 것이나 우리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들이 주님과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행적이 기록된 성서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이를 통해서 기도드리는 일에 열심이면 우리들안에 작용하게 하는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가 있고 이를 체험하게 되며 여러 공동체에 유익하게 될 것입니다.
놀랍게도 주님을 이 땅에 오시게 한 통로역할을 하신 성모마리아는 구약전체의 고백을 요약하는 냥 마니피캇을 노래합니다.
성서 어디에도 성모마리아만큼 그런 고백을 한 기록이 없을 것입니다.
오래전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고, 많은 교회가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루터, 캘빈을 비롯하며 많은 운동가들이 그러했었습니다.
가만히 그들의 행적과 고백을 들어보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성모마리아를 통한 기도를 그들 역시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개신교회의 정신을 좌우하는 운동가들의 모습을 통해보더라도, 지금 개신교회가 천주교의 성모마리아에 대해 보는 관점이 훨씬 나중에 개신교회가 유럽에서 미국을 거치는 동안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신교회의 수많은 논쟁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수많은 교파들은 이미 주님의 사도인 사도바오로의 고린토교회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모마리아를 통해서 성모마리아처럼 살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성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톨릭신도들에게는 보너스로 성모마리아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을 닮은 인간을 어머니를 통해서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남자들보다 튼튼한 혈관을 주시어서 그 생명이 잉태할 때까지 잘 보존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 !
성모마리아의 행적을 통해 저희들이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체험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간에 그 씨앗이 이웃 어디에게나 퍼져 그 향내가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 !
103위 순교성인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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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일 (군인주일)
2010. 10. 3
루카 17,5-10
♠ 복음 연구
* 5-6절 : 믿음은 전능하신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하찮은 믿음이라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지금 하느님을 의지하는 믿음은 장차 역사의 종말에 엄청난 기적을 이룩할 것이라는 해설이다. 종말의 엄청난 기적에 비하면 지금의 믿음은 제아무리 큰 믿음이라 할지라도 한낱 "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금 지닌 믿음의 작음과 종말에 있을 기적의 큼을 대조하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 7-9절 : 믿음을 증대시켜달라는 사도들의 요청에 대한 대답이 이어지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관대함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자고로 품꾼은 보수를 요구할 수 있지만 종은 무상으로 일하는 법이다. 종이 들에서는 농사짓고 목축일을 하고 집안에서는 부엌일을 했다고 해서 보수나 사례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잘 지켜 공덕을 쌓아 그에 해당하는 보상을 하느님께 받겠다는 인과응보 사상에 젖어있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이것을 종과 주인의 관계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계신다. 즉 사도들이 사도직을 충실히 수행했다 해서 보상을 계산하거나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제자의 소임을 다할 때 그들은 오직 맡은 바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될 뿐이다.
* 10절 :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시는 보상은 그 사람이 한 일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우리가 보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하심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무상의 선물인 것이다. 여기에서의 표현은 하느님께 대해 취해야 할 인간의 태도를 말하고 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라도 하느님께 무엇을 요구할 아무런 권리가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종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런 후 "저희는 오직 저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라고 말씀드려야 한다.
♠ 복음 요약 :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는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의 믿음에 비하면 종말에 받게 될 엄청난 영생은 가히 기적과 같은 놀라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남보다 더 많은 기도와 봉사를 했으니 더 큰 복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하느님께 요구하거나 하느님을 위해서 정열을 다 쏟았는데 돌아온 건 무거운 십자가뿐이라고 불평한다면 그리스도님의 의도와 얼마나 다른가? 하느님께서 이미 주신 것들을 헤아려보면 죽을 때까지 다 갚지도 못할 것이다.
♠ 대화 방향 : ①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과 상거래식의 약속을 한 일은 없는지 나눠봅시다.
②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명심이나 세상 축복을 전제로 봉사활동을 한 일은 없는지 나눠봅시다.
♠ 참고 문헌 : ▪ 가톨릭 주석성서(신약) <성요셉 출판사>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분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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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일
2010. 10. 10
루카 17,11-19
♠ 복음 연구
* 11-13절 : 원래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다. 당시 나병환자들은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가까이 오는 사람이 있으며 오른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하고 큰소리로 외쳐야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나병이라는 힘든 재앙과 같은 병을 앓고 있어서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주님께 자비를 청하고 있다.
* 14절 :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여라고 말하신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서 안수해 주시고 치유해주시길 바랐는데 치유도 해 주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이미 치유해 주신 것처럼 사제에게 보여라고 하신다. 그 이유는 사제에게 몸을 보임으로써 사제가 진찰한 다음 깨끗하면 정결예식을 거쳐 공동체 안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사제에게 가라고 하신 것은 그들의 병이 나을 것을 전제하신 행동이었다.
* 15절 : 그런데 그들 모두 믿음으로 예수님께 순명하고 사제에게 가는 동안 몸이 깨끗해졌다.
* 16-19절 :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인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발아래 엎드려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예수님은 탄식하셨으며 그를 보고 기뻐하셨다. “도대체 유다인은 한명도 보이지 않고, 이 외국인만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왔단 말이냐?” 다른 사람 9명은 육적인 질병 치유만 받았지만 감사를 하러 온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선물, 영혼의 구원까지 받게 된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믿음에 대한 정의를 내려 주고 계신다. 믿음이란 예수님 말씀을 믿고 순명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반드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감사가 필수적인 것이다. 유다인의 인생독본인 탈무드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라고 써 있다.
♠ 복음 요약 : 똑 같은 은혜를 입었지만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은 왜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여기에는 감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이스라엘 유다로부터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던 사람들이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감사할 거리가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육신의 병 고침을 받은 사마리아인은 한걸음에 달려가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다. 우리는 흔히 일에 실패하거나, 경제적 형편이 어려울 때, 사업에 성공하도 잘 나가는 사람들이나 감사하지, 나같이 안 풀리는 사람이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어!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잘되고 성공한 사람들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아나뷤(윔)의 사람이 감사하는 것이다. 부자가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겸손한 사람이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는 겸손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고귀한 선물이다. 그러나 이렇게 진정으로 감사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는 늘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평생 주님만 믿고 따르겠다며 도와 달라고 간청하다가 막상 일이 잘 풀리게 되면 그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예전 생활로 돌아가 감사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런 우리의 모습은 9명의 유다인들과 닮아있다. 아홉 명에 속하기는 쉬어도 한사람에 속하기는 어렵다. 감사생활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는 데는 참으로 인색한 우리의 모습이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기적의 주인공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축복의 사이에는 감사의 사다리가 놓여 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축복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대나무가 매듭을 지으며 자라가듯 감사의 매듭을 지으며 사는 삶이 필요하다. 그래야 갑절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거룩한 미사에서도 영성체후 기도하는 모습을 성모님께서 지적하신다. 하느님께 먼저 감사는 드리지 않고 청원기도만 하는 모습을 나무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 대화 방향 : 주님께 감사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서로 나눠 봅시다.
♠ 참고 자료 : ▪ 참소중한 당신 <10월호> ▪ 평생감사 <생명의 말씀사>
▪ 거룩한 미사 <아베마리아 출판사>
♠ 묵상 보조 자료
- 하느님을 찬미하십시오.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기뻐하며, 하느님의 현존을 감사하십시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작은 형제자매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렇게 하게 되면 자기를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과의 일치가 어떤 상태인지는 생각지 마십시오. 자기가 완전하지 못하다고, 또 자기 죄를 발견하고 슬퍼하는 것은 인간적인 감정일 뿐입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의 현존, 하느님의 광채는 무궁무진하십니다. 영혼이 순결한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영혼이 순결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을 믿고 온갖 비천함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감사하며 하느님의 선하심에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것을 이탈해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에게는 하느님이신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로써 그는 완전한 평화와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뵙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며 자신을 여는 만큼 하느님께서는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허무를 받아 들이면, 하느님 창조의 자리가 우리 안에 더욱더 마련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관상하고, 하느님을 발견하여, 모든 걸 초월하시는 하느님의 완전무결하심을 기뻐하십시오.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 사랑이신 하느님을 찬미하십시오. 이것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불어 넣어 주시는 사랑의 의무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 성 프란치스코 - 가난한 이의 슬기 / 분도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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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일
2010. 10. 17
루카 18,1-8
♠ 복음 연구
* 1절 : 지칠 줄 모르고 끈기 있게 기도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당신의 이 가장 큰 약속의 실현을 얻어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착한 삶을 영위한다면, 회개하고 끈기 있게 기도한다면, 주님의 날은 앞당겨질 수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오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인들이 갈망하는 구원은 사람의 아들이 영광중에 오실 때에 시작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아들이 오시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자신의 기도가 들어지지 않을 때나, 지치고 싫증이 나서 그만두고 싶을 때에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 2-5절 : 그 재판관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으로서 매우 사악한 사람이었다. 그는 마치 해명을 드려야 하는 하느님도 없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재판관 직무를 이행하였다. 과부는 가난한 사람의 전형적인 표본으로, 의지할 남편도 없고 억눌린 자였으며 방어할 힘도 없었다. 어떤 소송이 금전이나 유산에 대한 권리 주장에 관련되는 것일 때, 공인 재판관은 재판을 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과부는 그 소송이 들어질 수만 있다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였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듭 그에게 가서 집요하고 끈덕지게 탄원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하였고 그 재판관은 점점 그녀를 귀찮게 느끼게 되었다. 그는 평화롭기를 원하였다. 그는 그 과부가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달림에 염증이 났다. 그 재판관이 일을 처리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성가신 주장을 없애려는 바람 때문이었다.
* 6-7절 : 이 비유의 핵심은 끈기 있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가 들어진다는 확실성에 있다. 그 재판관의 이기심, 오직 평안을 얻으려는 바람이 그 과부가 집요하게 빌었을 때, 그 재판관으로 하여금 그녀를 도와주도록 하였던 것이다. 분명히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백성의 탄원을, 억압당하는 백성의 끈기 있는 기도를 훨씬 더 가까이 들어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 지체 없이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며,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다가오는 그 어려운 시기를 단축시켜 주실 것이다.
* 8절 : 고난의 시대에 큰 유혹은 신앙을 버리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하신다고 해서, 그가 안전하다고 느끼고 나태하게 되어도 되는 권리가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반대로,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를 택하신 하느님의 뜻에 맞게, 한 번 내린 결단을 끊임없이 새롭게 할 것을 요구한다. 하느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실 것이지만 너희들은 어떠한가? 구원은 올 것이다. 힘들여 싸우지 않고는, 굳게 인내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 복음 요약 : 뇌물과 힘 없는 자는 거들떠보지 않던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끈질긴 간청에 못 견디어 올바른 판결을 해주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우리의 청을 어김없이 들어주시는 분이다. 항구하게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빨리 응답해 주지 않는다고 기도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확신이 부족해서 이다. 세상종말에는 믿음을 버리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많은 시련과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날을 기다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항구하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확신과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있어 그렇다.
♠ 대화 방향 : ① 내가 주님께 끊임없이 간청 드려야 할 기도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② 나에게도 믿음의 시련은 비껴가지 않을 것이다. 무엇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영적독서를 위한 루카복음 <성요셉 출판사>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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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일 (전교주일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2010. 10. 24
마태오 28,16-20
♠ 복음 연구
* 16-17절 : 제자들은 여인들이 전해준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 그들은 갈릴레이로 간다. 예수의 예언대로 배반한 한 제자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다시 결합되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을 풀었다는 말로,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몇몇 제자의 의심을 언급한다.
* 18절 :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이 아버지에 의해 그분에게 주어졌다. 아버지께서는 이들의 순명을 넘치도록 후하게 보답해 주신다. 이제 부활한 예수님의 권한은 어떤 영역에만 속하지 않을 만큼 확대되었으며 하느님과 사람사이에 유일한 권위를 지닌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 19절 : 이제 제자들이 부르심 받은 직분에 모든 민족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에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세례를 받는 것이며 세례는 믿음을 필요로 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요한이 베풀던 회개의 세례도 아니며, 예수께서 사람들을 위해 겪어 내셨던 죽음의 세례도 아니다. 이 세례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생활로 이끌어 주는 세례인 것이다.
* 20절 : 예수께서는 여러 방식으로, 즉 산상설교로부터 최후의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이제 당신의 가르침에 신적인 힘을 부여하며, 열한 제자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신다. 부활한 예수께서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현존을 약속하신다. 예수께서는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요셉에 의해 선포된 것처럼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시다. 그 옛날 야훼께서 당신의 현존을 약속하시며, 그들을 돌보셨듯이 이제 부활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도 자신의 교회와 늘 함께 하며 우리를 돌보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 복음 요약 : 우리는 마태오복음 저자가 보도하는 예수 부활이야기를 묵상하며, 참으로 솔직하게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야한다. 성서속의 인물들이 직접 목격했던 부활체험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저자는 우리 한가운데 계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선언할 때, 비로소 예수 부활에 관한 진리가 온전한 것이 된다고 하였다. 그는 이 최상의 진리를 마음에 간직하고 복음서를 기록하였으며, 복음서 전체를 이 기쁜 소식이 선포되어 있는 마지막 줄을 향해 이끌어 갔다. 우리의 주변에는 부활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구체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계절의 변화와 새 상명의 탄생, 선행을 통한 기쁨 용서하고 용서 받는 마음, 미움을 이기는 사랑, 더 큰 가치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것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는 예수 부활의 신비를 조금씩 체득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현세의 삶에서 갖가지의 방법으로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는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그분과 함께 항상 삶을 새롭게 살아가며, 이것이 곧 부활신앙의 완성이다.
♠ 대화 방향 : ① 우리에게 신앙은 '기쁜 소식'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②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할지 나눠 봅시다.
♠ 참고문헌 : ▪ 영적독서를 위한 마태오복음 <성요셉 출판사>
▪ 기초교회공동체의 복음화를 위한 길잡이 <가톨릭대학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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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일
2010. 10. 31
루카 19,1-10
♠ 복음 연구
* 1-3절 : 자캐오는 "하느님께서 기억하셨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고, 그는 예리고라는 세관도시이자 향 수출 도시에서 세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세리 중에서도 높은 자리에 앉아 남을 부렸으며, 부자였기에 더욱더 유다인들에게 죄인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자캐오는 예수님을 열렬히 보고 싶어 하였다.
* 4절 : 자캐오는 키가 작았고 군중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보려고 애를 쓰다 예수님을 앞질러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기다린다. 이것은 마치 예리고의 소경이 시끄럽다고 제지하는 사람들 틈에서 큰 소리로 주님을 부르는 것과 같이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장애를 극복하는 적극적인 행동인 것이다.
* 5-6절 : 예수님은 예언자이시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신다. 자캐오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신 그 순간, 그분이 구원자이심을 즉시 깨닫게 되고 기쁨에 겨워서 자신의 집으로 모셔간다.
* 7-8절 : 유대인들은 세리나 공적인 죄인들과는 결코 한자리에서 식사하는 일이 없었다. 예수님의 예기치 않은 행동이 유대인들을 불편하게 하였으나, 예수님은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지 않으신다. 자캐오는 회개하였고 그 회개의 마음을 율법규정을 최대한 이행함으로써 입증하였다. 그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진심으로 들었고, 율법의 요구 이상으로 이행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죄인 편에 서시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심을 보여준다.
* 9-10절 : 구원이 자캐오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유대인들은 그 세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도무지 인정하려들지 않았지만, 그의 믿음과 그가 예수께 드린 환대와 회개에 대한 율법 이상의 보속으로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임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환영하실 때 그분은 당신의 사명을 이행하시고 계신 것이다. 단죄가 아니라 구원을,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세사에 오셨기 때문이다.
♠ 복음 요약 :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려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스스로 경건하다고 믿는 유다인들을 에집트에서 이끌어내신 하느님께 끊임없이 불평하던 그들의 조상들처럼 자신들의 요구와 이해에 맞지 않는 예수님께 불평을 한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예기치 않은 행동은 하느님의 뜻에 따른 구원계획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오늘 자캐오의 집에서 보여주신 것이다. 예리고는 구원의 역사가 절정에 이르게 되어있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이며, 이곳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이간에 대한 선한 의지가 넘쳐흐를 정도로 드러났다. 바로 죄인인 자캐오의 집에서, 그리고 그 죄인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삼아 구원해 주신 것이다.
♠ 대화 방향 : ① 공동체 안에서 편견을 가지고 누군가를 죄인으로 단정 지으며, 그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 적은 없는지요.
②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님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 적이 있었는지 함께 나누어 봅시다.
♠ 참고문헌 : ▪ 영적독서를 위한 루가복음 <성요셉 출판사>
▪ 루카복음 읽기 <성바오로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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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연수회 강의 기록 노트 >
아나뷤의 삶
광주 FB
장 도미니꼬 사비오
안녕하세요. FB 형제자매님들...
저는 믿음이 연약합니다.
그런데 하계연수회에서 강의하신
최 프리스카(월란) 선생님은
믿음이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성경 유딧서에 나오는 유딧 처럼
보였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연약한 믿음을 가진
저에겐 감명 깊은 강의였습니다.
강의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최 프리스카(월란) 자매님 (중간)과 한컷>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누구든지 내 말을 영광스럽게 여기면 나도 그를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사무엘상 2;30).
이번 하계 연수회에서 프리스카 선생님은 강의 중에 두 권의 책을 소개하였습니다. 예전에 어떤 신부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본훼퍼 목사가 쓴 ‘나를 따르라’는 책을 통해 알았던 본훼퍼의 신앙을 강의 중에 소개하였습니다.
이 책은 복음말씀에 나오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살았던 그의 신앙을 나타냅니다. 본훼퍼는 독일 사람입니다. 그는 히틀러 통치하에서 목숨을 걸고 반나치 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1945년 8월 15일 두 달 전에 사형을 당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이 물음은 오늘을 사는 현대 신앙인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불의와 싸우며 양심과 말씀에 따라 산 본훼퍼가 일생동안 고민했던 물음이었습니다. 이러한 크리스천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그는 예수님께서 요구한 "나를 따르라"라는 제자의 삶의 명령을 순명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는 나찌즘 체제하에서 말씀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제자의 삶이란 불의에 도전하며 저항하는 양심에 따라 사는 삶을 말하며,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명하는 삶입니다. 자신의 고통과 멍에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까 9:62)
반나찌 지하조직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1945년 플로센부르크 포로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져 그의 생애는 39세로 마감되었습니다. 본훼퍼의 교수대 처형을 지켜본 피셔 박사는 "본훼퍼가 죄수복을 벗기 전에 열정적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교수대에 오르는 그의 모습은 매우 대담했고 침착해 보였다"고 당시를 회고하면서 "내 50평생에 하느님의 뜻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본훼퍼 같은 사람을 결코 본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 오 하느님, 이른 아침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저에게는 어두움이 있지만 당신에게는 빛이 있고, 저는 고독하지만 당신은 결코 고독한 저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저는 당신의 방법을 이해 못하지만 당신은 저를 위한 최상의 길을 알고 계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은 인간의 모든 고통을 잘 알고 계십니다. 제가 당신을 알고 당신께 돌아가는 것이 당신의 뜻입니다. 주여, 제가 당신의 부르심을 듣고 따르겠사오니, 저를 도와주옵소서."
하계연수회에서 프리스카 자매님이 소개한 두번째 책은 저도 대학생시절 감동 깊게 읽었던 책입니다. 제목은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입니다.
미국 예수회였던 취제크 신부는 로마 유학중에 무신론이 팽배한 소련 선교를 위한 바티칸정책에 따라 일단 폴란드로 갑니다. 그런데 곧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그가 사목한 폴란드지역은 나치 점령 지역이 되고 그 와중에 본래 목표대로 소련으로 신분을 속이고 잠입합니다. 전쟁물자 창고인 우랄산맥지대 노동자 모집에 자원해 갔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비밀경찰에 감시당합니다. 우랄지역에서 1년간 신앙의 불씨를 일으키다가 비밀경찰에 의해 모스코바 정치범형무소 루비안카로 끌려가 오랜 심문과 취조를 받고 시베리아 강제노동에 수용됩니다. 그것도 최악의 지역인 북극에 가까운 혹독한 추위가 정신과 육체를 할퀴는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은 형기를 마치고 풀려 나는게 기적이란 소문이 파다한 소련의 악명 높은 강제 노동 수용소였습니다. 취제크신부는 ‘바티칸 스파이’란 낙인이 찍혀그런 험한 곳에서 15년형을 마치고 석방된 후에도 이른바 ‘제한 자유인’으로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1963년 간첩교환으로 미국으로 귀환했으며 1984년 사망했습니다. 모두 취제크 신부에게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 남았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그때마다 신부님은 “하느님의 섭리겠지요” 하고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그분의 대답에서 성경에 나오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느님을 섬기라’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용기있게 사제로서의 삶을 살아간 취제크 신부님을 통해 러시아에도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을 보게 됩니다.
신부님은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후속편으로 ‘나를 이끄시는 그분’이란 책을 내셨는데, 거기에는 모스코바 감옥에서 생활이 자세히 나옵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소련 안기부 KGB 고문 앞에서 공포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허위자백을 하고 신앙심이 흔들렸다고 고백한 신부님의 솔직함을 말했습니다.
그는 모스코바 루비안카 형무소에서 지낸 5년간의 시간을 연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그는 그동안 모든 것에 대한 고삐를 쥐고 있던 것은 하느님이 아닌 자신이었음을 아주 단순하고 명백하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가장 절망적이고 존재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순간에야 말로 비로소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분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내 생활과 미래의 운명에 대한 일체의 통제권을 최종적으로 완전히 포기해 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모든 책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로써 나는 근심 걱정과 갖가지 긴장에서 풀려나 하느님이 떠받쳐 주시는 섭리의 흐름 속에서 영혼의 평화를 구가하며 고요히 떠다닐 수 있었다.”
그 후 신부님은 매일 매 순간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받겠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두려움의 처지를 견뎌내셨다고 합니다. 본훼퍼 목사와 취제크 신부님은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사신 분 들입니다. 우리는 두 분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절망적인 공포 앞에서 오로지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만 자신의 십자가는 바라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자세라고 생각됩니다. 그 평화는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엄마 품에 안긴 새끼 갈매기는 태풍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엄마만 의탁하며 엄마 가슴속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프리스카 자매님은 ‘대체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 하고 3일간을 십자가 앞에 엎드려 예수님께 물어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섬광처럼 마음속에 스친 레마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10장 5-6절이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프리스카 자매님의 강의는 아나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생 여정에서 순간순간 다가오는 일들 중에서 결국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식별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이 겸손 가난, 순명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복음의 핵심 단어인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아나뷤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예레미아 31;33-34.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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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서동 성당
한 바오로 (민희)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 루카복음 6,43
잠시 눈을 감고 지금 내 나무의 모습은 어떤지 바라봅니다.
그래도 주님의 크신 사랑을 받으며 겉으로는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많은 곳에 상처가 나 있고 썩어있는 곳도 많이 보입니다.
그동안 나의 삶 안에서 나 자신이 알게 모르게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저지른 죄와 잘못 남에게 준 상처들의 모습이란 생각을 깊게 해봅니다.
또한 주님을 안다고 하면서 삶 안에서 외면하고, 주님의 뜻을 실천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바라봅니다.
그동안 많이 입으로만 회개하고 고해하고 반성했지만, 깊은 마음으로는 씻어내지 못한 독소들이 내 안에 많이 있음을 느낍니다.
이제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회개가 아닌 주님의 크신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내안의 아주 깊은 곳의 독소를 빼어낼 수 있는 깊은 회개의 눈물로 그 나쁜 기운들을 씻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결심해봅니다.
그래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겉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깊은 곳의 뿌리도 겉으로 드러난 기도와 신앙생활만이 아닌 깊은 침묵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양분을 잘 받아먹고 튼튼해져 어떤 비바람과 역경에도 견딜 수 있는 그런 좋은 나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모든 것 주님께 의지하며 간구해봅니다.
" 성령님이시여, 나의 깊은 혈관 속에 감추어져 흐르는 악의 독소들을 모두 씻어주옵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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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재정 회계 보고 >
✟ 2010년 8월 1일 ~ 30일 수입 지출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