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우도 지방으로 지금은 경상남도 거창으로 남명학파의 중심지이다. 여기 금원산(金猿山)밑에 초계
정씨 정온의 고택이 있다.
금원산은 이름 그대로 금으로 된 원숭이란 뜻이다.앞에 箕白山과 문필봉이 있고 뒷편에 祖山으로 금원산이 아래 자리 잡고있다.草溪 鄭씨의 시조는 고려 우왕때 장원급제를 한 鄭준이며 거창,봉산,안음에 살다가 조부 鄭淑(1501-1563)때 이곳 강동마을 에 정착하였다.
정온(鄭蘊)(1569-1642)은 거창 초계 정씨로 鄭惟明의 아들로 사간원 정언의 자리에 있을때 광해군에게 상소 하기를 영창대군을 죽인 강화도 군수 정항(鄭沆)을 참소하라고 하였다가 제주도 대정현으로 10년간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 때 영창대군은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하기위해 죽였는데 이를 문제 삼는것은 광해군 자신의 왕위계승에 문제를 제기 하는것이 되기 때문에 누구도 말 할 수 없는 금기 사항이였다.
그 뒤 1636년 병자호란때 화의 에 분개하여 고향 거창으로 가지않고 덕유산으로 들어가 중국의 백이 숙제처럼 은거하며 살다가 죽었는데 이 때 동계는 덕유산에서 나는 미나리와 고사리만 먹고 살았기 때문에 지금도 초계 정씨들의 제사때는 꼭 미나리와 고사리를 제물로 쓴다고 한다.
1728년 영조 4년 무신년 정온의 현손인 정희량(鄭希亮)은 1694년 숙종 20년 갑술환국이후 남인세력이 정권에서 완전히 배제되자 밀풍군(密豊君)-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의 손자이자 宗室 임창군 이혼의 장남-을 왕으로 추대하고 청주지역의 이인좌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이른바 무신난이다.
이때 청주지역에서는 우암 송시열 문도를 중심으로한 노론들이 청주지역의 대표적 서원인 신항서원에서 지금까지 모서온 남인계열 문중들을 배제시킨 일이 일어나 노론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경상도에서 정희량,충청도에서 이인좌,전라도에서 나숭대들인데 이들 모두 남인과 소론과 혼맥을 이루고 있었다. 이인좌는 세종의 아들 임영대군의 후손으로 그의 할머니는 남인 영의정 權大雲의 딸이며, 또
이인좌의 부인은 우암 송시열의 정적으로 사약을 받은 윤휴의 손녀가 된다. 3대에 걸친 원한과 당쟁의 연속이었다고 보면된다. 물론 정변은 실패하고 모두 역적으로 몰려 전멸하고 만다.
정희량의 어릴적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하루는 금원산에서 불이났는것을 보고 "하늘이 솥이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그의 조부가 왜 그런가 물으니 "죽을 써서 굶주린 배성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겠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때는 흉년이 심하여
백성들이 끼니를 굶는 일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또한 무신난이 일어나기 30년전 선대의 묘를 이장할 때의 일이였다.
주역을 공부한 姑母가 한분 있었는데 이렇게 당부하였다고 한다.
"이장을 할때 下棺할 자리에다 쌀 서너말을 묻어 놓고 여자가 갓을 쓰고 그 앞을 지나 갈 것이니 그 것을 보고 두 시간 후에 下棺하라 일러주었다". 그 이유를 묻자
"훗날 우리 집에 많은 군사가 필요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날씨가 비가 쏟아질것 같아 서둘러 하관을 하고 나니까 아낙네가 참을 이고 음식에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솥뚜껑을 덮고 지나가는 것이 흡사 여자가 갓을 쓰고 가는것 처럼 보였다. 이미 하관을 하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비가 내린 후면 쌀이 불어 금방 썩는것 처럼 군사가 자기 몸을 바쳐 죽도록 싸워준다는 것이였는데 생쌀을 묻었으니 정희량의 반란군에게 몸을 바쳐 싸워주지 않고 모두 도망가고 배신한 부하에 의해 체포되어 사형되고 말았다.
이리하여 초계 정씨는 역적의 집안이 되었으나 (1800-1860) 그 후손 야옹 정기필이 영양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배풀어 죄를 사면 받고 동계 정온의 충절의 기상을 되 찾았으니 가상하고 높이 평가 되고 있다. 동계 고택의 15대 종부는 전주 류씨 정재 류치명의 후손으로 명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청주지역 사림의 중심지 신항서원의 모습)
( 동계 선생의 신위를 모신 사당)
(동계 고택 입구에서 본 솟을 대문과 정려문-인조때 하사하였음)
( 강동마을 안산격인 기백산 정상)
(강동마을 조산 격인 금원산 정상- 뒷쪽이 거창 수승대임
첫댓글 좋은 글과 사진 잘 보았네.
미나리와 고사리만 먹고 살았다는 강직한 동계 정온(鄭蘊)의 기개가 현세에 배워야 할 덕목인가, 아니면 웃어야 할 덕목인가?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도 백이 숙제가 있었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