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취업제 2주년' 후퇴 우려 모국 경제난으로 입국 축소
중국 및 구소련 지역 동포들에 대해 입국 문호를 확대하고 종전 특례고용허가제의 불합리한 절차를 개선하기 위해 실시한 '방문취업제'가 지난 3월로 2주년을 맞았다. 방문취업제로 한국에 연고가 없었던 중국 및 구소련 지역 동포들의 한국 입국 및 합법적인 취업이 가능해졌다.
2007년 11월 말 한국어시험과 추첨을 거친 방문취업제 합격자들의 한국행이 진행된 이래로 다시 무연고동포 선발을 위한 한국어시험이 행해지면서 방문취업제는 특히 재중동포들에게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아 왔다. 지난해까지 방문취업제의 긍정적인 영향으로 많은 동포가 혜택을 누렸던 것과 달리 올해는 입국규모를 대폭 낮추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법무부는 지난 3월 30일 "국내 고용상황과 방문취업제의 인센티브 감소 등을 고려해 우리 정부가 6만 명 수준이던 방문취업제 도입규모를 올해 28% 수준인 1만 7천 명으로 한시적으로 축소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조치는 정부가 최근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어 내년 2월까지 외국인 근로자 신규 고용허가 인원을 동포 1만 7천 명, 외국인 1만 7천 명 등 3만 4천 명으로 확정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12월 말을 기준으로 한국에 취업한 재외동포 29만 9천 명 중 재중동포가 29만 4천 명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원화 가치 하락과 국내 취업난의 가중 등 때문에 중국으로 돌아오는 재중동포 숫자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주중 대사관 관계자는 "국내 경기 침체로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5만 4천 명의 재중동포가 중국으로 돌아오는 등 상당수 방문취업 동포가 귀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중국 동포사회에서 한국행 취업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꿈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갑작스런 인원 축소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취업제한'에 조선족사회 긴장
정부가 내국인의 고용 확대를 위해 조선족 등 재외동포의 국내 건설업 관련 취업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조선족 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국내의 중국동포 단체에 따르면 중국동포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이 동포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한 재외동포법에 배치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무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귀한동포연합회의 최길도 사무총장은 "2004년 개정된 재외동포법은 중국이건 러시아건 재외동포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면서 "유독 건설 부문에 종사하는 중국동포를 겨냥해 취업을 막는 것은 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그는 "방문취업제로 합법적 입국이 가능해지면서 많은 재중동포가 한국으로 왔는데 이제 경제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국내 취업을 통제하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중국동포 단체의 관계자는 "중국동포 근로자가 건설 쪽에 쏠린 까닭은 내국인이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인데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공급만 묶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쿼터제로 중국동포의 취업을 섣불리 제한했다가 다시 풀면 정책의 신뢰만 떨어뜨리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조선족 사회는 중국동포의 한국 내 일자리에 제동을 거는 조치가 자칫 반한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의 동포매체인 흑룡강신문은 최근 "방문취업제 등으로 조선족 노동자의 취업에 푸른 등을 열었던 한국 정부가 국내 금융위기로 인한 고용난 해결책의 하나로 조선족 등 재외동포의 한국 내 건설업 취업을 제한하는 등 고삐를 점차 조이고 있다"면서 "그러나 과연 한국인들이 3D업종인 건설 현장에 얼마나 취업할지는 미지수"라고 보도했다.
앞서 정부 당국자는 "건설 부문에 한해서 재외동포들의 쿼터제 비슷한 것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연간초청 1명' 요건 강화
정부가 국적을 취득했거나 회복한 동포에 대해 방문취업 목적의 친족 초청 인원을 지난해 10월 3명으로 제한한 데 이어 최근 '연간 1명'으로 조정, 방문취업제의 요건을 강화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관계자는 지난 1월 20일 "'방문취업제도 개선 및 시행 방안'을 일부 변경해 종전의 '1인당 초청 인원(3인) 범위 내'를 '연간 1명'으로 한정하기로했다"며 "이는 경제난에 따른 내국인의 일자리 보호를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고 밝혔다.
또 초청을 위한 유학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학점(초청 연도 평균학점 B+ 이상) 이상을 따낸 유학생에 한해 초청권을 허용하는 등 유학생의 부모 또는 배우자 초청요건의 수준을 높였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이 4촌 이내의 인척이나 8촌 범위 내 혈족을 초청할 때와 한국에 연고자가 없는 경우 한국어 시험 등 절차를 통해 입국할 수 있도록 5년 기한의 방문취업사증(H-2비자)을 발급해주고 있다.
중국의 동포매체인 인터넷 료녕신문의 한 관계자는 "방문취업제의 요건이 강화되면서 동포의 불만이 적지 않다"며 "한꺼번에 3명을 초청하지 못하고 해마다 1명으로 제한하면 아주 불편해진다"고 말했다.
조선족 사회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방문 기회가 줄어들수록 브로커의 농간이 더 심해지지 않겠느냐"며 "한국어 시험 합격자의 경우 추첨 대신에 다 받아들여 달라는 게 우리의 요구"라고 밝혔다.
한국어시험 커트라인 상향조정
중국과 구소련 동포가 방문취업 비자를 신청할 때 치르는 한국어시험의 합격선이 높아진다. 법무부는 5일 방문취업 비자 신청 시 꼭 치러야 하는 한국어시험의 최저 합격 점수를 현재의 50점에서 2009년부터 70점으로 높인다고 밝혔다. 시험 내용 또한 한국어 지식에 그치지 않고 국내 생활에 관한 기초 소양을 묻는 문제도 20% 정도 포함하기로 했다.
시험에 반영될 국내 생활정보는 해외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KBS 한민족방송이나 중국 중앙인민방송국(CNR) 라디오 방송에서 들을 수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응시자의 98%가 한국어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방문취업 추첨에 참여함으로써 시험의 타당성과 변별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출제범위를 넓힌 것도 입국 전에 국내 제도를 이해하도록 해 불편을 덜 겪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국 입국 브로커 비용 급감
중국동포 등에게 입국 시 최장 3년까지 체류를 허가, 취업 기회와 한국 왕래의 문호를 넓혀 주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방문취업제 시행 이후 브로커 비용이 줄어들고, '계절노동(seasonal labor)' 양상이 뚜렷해진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이는 법무부가 용역 보고서 '방문취업제에 대한 실태 및 동포 만족도 조사'에서 중국동포 설문조사(1천656명)와 심층면접(30명)을 진행한 결과 드러났다.
2007년3월 방문취업제가 시행된 이후 법무부가 실태조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문조사 응답자 1천656명 가운데 출입국사무소에서 응답한 1천명은 대부분 2007년 이전에 입국했고, 산업인력공단 교육장에서 응답한 656명은 거의 2008년 이후 입국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한국에 들어오면서 쓴 브로커 비용이 각각 5만 2천669위안과 4천106위안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입국과정에서 브로커 비용을 지불한 비율도 35.7%와 17.5%로 두 배 정도 차이가 났다. 중국과 한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계절노동에 종사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중국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방학 기간에는 한국에서 일하고, 겨울처럼 건설 분야 일자리가 없을 때는 중국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는 '연속적 이중의 삶'을 산다는 것. 이들은 한국의 급여 수준이 중국의 7.1배라고 답했다.
'방문취업제 한국어시험 교육' 방송
KBS 라디오 한민족방송 '한민족 하나로'(AM972Khz)가 방문취업을 준비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무연고 동포를 위해 한국어능력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사전교육을 시행했다.
KBS에 따르면 법무부 외국적동포팀의 전달수 사무관이 출연하여 3월 말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8시10분에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인터넷(www.kbs.co.kr)으로 다시 들을 수 있다. 법무부는 올해부터 기존의 시험 문제에 한국 생활과 체류에 관한 기초소양 평가를 20% 포함했다.
2008년 11월 말 현재 방문취업 자격으로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과 구소련지역 동포는 29만 9천명이며 이 중에 무연고 동포는 2만 9천683명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친지의 초청으로 입국할 수 있는 연고 동포와 달리 무연고 동포는 한국어능력시험을 통과하고 컴퓨터 추첨을 통해 당첨돼야만 방문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임시조치 점차 나아질 것 기대
중국 동포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방문취업제가 3년차에 접어들면서 'KBS 한민족방송'과 '중국동포타운신문'은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2009년 1월 10일~2월 말까지 설문을 조사했다.
지난해 10월 15일 방문취업제 개선 방안이 시행되면서 동포사회는 여기저기 떠도는 소문으로 한동안 혼란을 겪었고 정부의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동포타운 신문의 김용필 편집국장은 "경제위기의 여파와 현행 시행되고 있는 까다로운 취업 신고 때문에 취직의 어려움에 봉착한 동포들의 고초를 헤아리고 정부 정책에 대한 그들의 바람을 묻고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설문조사결과 방문취업제 제도변화와 취업신고 강화 정책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조치(15.5%)', '후퇴한 동포정책(13.3%)', '앞으로 좋아질 것(22.3%)'으로 응답했다. 전체적으로 방문취업제가 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83.6%에 달했다. 반면 취업신고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의견이 56.9%에 달해 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신고가 강화됐음에도 고용주가 취업절차를 모른다는 의견이 44.2%로 나왔으며 고용허가 인원 제한으로 고용주가 못해준다는 의견도 43.4%에 달했다. 특히 건설업 등에서 동포할당제가 시행될 경우 불법취업 동포가 늘 것이라는 의견이 55.8%에 달했다. 설문에 응한 사람들은 방문취업제도 개선이 필요한 분야로 '직업 찾는 방법(28.7%)'을 제일 우선으로 꼽았다.
중국 랴오닝성 국제인재노무교류중심의 한국 담당 전윤정 소장은 "요즈음 재중동포들이 한국 방문취업제에 대해 문의가 많은데 이에 대해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세계적인 경제불황으로 한국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일시적으로 입국문호를 좁혔지만, 다시 한국 경제가 회복되면 방문취업제도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방문취업사증은 연고동포(친척에 의한 초청자)와 무연고동포(한국어 능력시험 합격자)로 나눠 발급되는데, 지금까지 연고동포 발급률이 현저히 높았지만, 앞으로 무연고 동포들의 사증 발급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최근 연고동포 취업사증을 적정하게 관리해 무연고동포에 대한 방문사증 발급을 지난해 수준(약 2만 3천명)을 유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동포들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면 모두 한국에 갈 수 있는데 일부 이번 조치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동포들이 있다"며 "한국의 방문취업제는 한국 정부의 동포 포용 정책임을 알고 경제위기로 인한 임시조치임을 이해해줄 것"을 당부했다. 방문취업제가 한국의 경제 발전에 일조하고 해외동포들에게 취업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게 하려면 동포사회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상호불신을 제거하는 것이 재외동포와 모국이 함께 하는 첫 걸음이라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한인테트워크 2009.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