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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淸原] - 푸른 청원과 첨단 청원
충청북도 서부에 있는 군. 동쪽은 괴산군과 보은군, 서쪽은 충청남도 연기군, 남쪽은 대전광역시, 북쪽은 천안시·진천군·괴산군과 접해 있다
청원 문화관광 http://tour.puru.net/main.php
공군박물관
대청호 미술관
상수허브랜드
예뿌리민속박물관
옥화9경은 미원면 달천천을 따라 곳곳에 숨어 있는 9개의 경승지
1경 청석굴, 2경 용소, 3경 천경대, 4경 옥화대 5경 금봉, 6경 금관숲, 7경 가마소뿔, 8경 신성봉, 9경 박대소로 구성되어 있다.
운보의집
청남대[靑南臺]
한국잠사박물관
공군박물관 http://www.afa.ac.kr/
공군박물관은 군사전문 박물관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특히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방문이 부쩍 늘어나는 곳이다. 공군사관학교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실내전시실의 규모가 6백30여평, 야외 항공기 전시장의 규모가 5천평 정도 된다. 공군박물관의 전신은 1979년 서울 대방동에 공군사관학교가 있을 당시 문을 연 공군기념관으로 그때는 규모도 2백평 정도로 작았고 소장품도 3백여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5년 12월 지금의 공사 캠퍼스로 이동하면서 명칭도 공군박물관으로 변경됐다. 현재 소장품은 3천2백여 점이며 이 가운데 1천2백여 점이 늘 품목을 바꿔가며 전시되고 있다.
단재 신채호사당 및 묘소[丹齋申采浩]
신채호는 1880년 12월 8일 대전에서 출생하여 평생을 일제에 대항하여 싸우다 1929년 체포되어 1936년 2월 21일 중국의 뤼순[旅順]감옥에서 옥사했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주필(主筆)로 활약하면서 민족혼을 지키기 위해 힘썼다. 단재 신채호선생 생가지는 대전에 있다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내걸어 민족사관을 수립, 한국 근대사학(近代史學)의 기초를 확립했다.
丹은 붉을 단으로 말 그대로 붉은 빛깔을 의미하는 한자이기도 하고. '정성스럽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한자입니다.齋 재계할 재, 목욕재계.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깨끗이 하려는 하나의 의식입니다. 즉 丹齋 : 정성스럽게 몸과 마음과 정신을 깨끗이 하다. 몸과 마음과 정신을 '독립'에 헌신하려는 태도를 담아 지은 호입니다.
대청댐[大淸] 문의면 덕유리
대청호[大淸湖]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 청원군·옥천군·보은군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 한국에서 3번째 규모의 호수이다.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되어 대전광역시·청주시의 식수와 생활용수·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저수면적 72.8㎢, 호수길이 80km, 저수량 15억t
대청호 미술관 http://museum.puru.net/
2004년 청원군 문위면에 소재하는 '문의문화재단지'내에 개관되었습니다. 충청북도 최초의 공립미술관으로 청원군에서 직영하고 있다.
문의문화재단지[文義文化財團地] 문의면 문산리 산 6-1번지
문산관과 양반가옥, 민속자료전시관을 비롯하여 10동의 고건물이 있고, 장승, 연자방아, 성황당 등 옛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수집되어 있다. 1998년 11월에 개관한 기와박물관이 있는데, 백제시대부터 근대까지의 기와를 전시해 놓았다.
문산관[文山館] 1978년 2월 22일 충북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 1666년(현종 7)에 세워진 문의현의 객사. 객사에서는 전패를 모시고 초하루 보름에 지방관아 책임자가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해 절을 하던 곳이며. 손님을 유숙하게도 한다
문화유물전시관 낭성면 무성리에 있는 영조대왕태실 조성을 기록한 지방유형문화재 제70호인 영조대왕태실가봉의궤를 비롯하여 군내에서 수집한 유물을 전시한 유물관과 백제부터 근대까지 기와를 시대별로 분류한 기와전시관이 있다.
대청호미술관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미동산수목원[米東山樹木園] 미원면 미원리 20번지
벌랏마을
벌랏마을의 한지 제작은 1975년이 마지막이었다. 한옥의 문지방이 아파트의 유리로 바뀌는 시점이었다. 70년대 70가구였던 것이 현재는 22가구만 남아 있다. 다시 마을에서 한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당시 마을에 살던 화가 이종국씨가 전통을 살려 한지를 다시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입소문을 타고 체험객이 마을을 찾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 100선’에도 뽑혔다.
칡소 1920년 이전까지 칡소(Tiger Cattle)는 전국적으로 사육됐다. 일제강점기 털빛깔을 하나로 한다는 정책 때문에 황색우만 남고 나머지 토종소는 대부분 사라졌다. 칡소는 지금 전국적으로 1,000여 마리에 불과하다. 얼룩송아지는 젖소 송아지가 아니라 칡소 송아지입니다. 얼룩배기 황소가 무얼까요? 바로 칡소랍니다
상수허브랜드 http://www.sangsooherb.com
손병희 선생 유허지(孫秉熙先生 遺墟地) 북이면 금암리 385-2번지
안심사[安心寺]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 271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영산전·산신각·충혼각·요사채 2동이 있다. 대웅전(보물 664) 안에는 흙으로 빚은 소조상(塑組像) 형식의 삼신불상과 후불탱화·신중탱화 및 근래에 제작된 동종이 있다. 후불탱화는 1891년(고종 28)에 한봉 창엽이 그렸고, 신중탱화는 1998년에 새롭게 봉안한 것이다
영산전 불단 앞에 마련된 괘불함에는 1652년(효종 3)에 제작한 괘불(국보 297)이 보관되어 있다. 이 괘불은 석가여래상을 주존으로 주위에 불보살과 제자·성중 및 사천왕의 호법신들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
예뿌리민속박물관 http://www.yehpuri.com/
많은 이들에게 옛 것의 아름다움과 예(藝)의 뿌리를 알리기 위해 그 동안 수집한 3,000여 점 가운데 민중들의 손때가 묻은 1,000여 점을 골라 개관하였다. 전시품은 선사시대의 정령숭배 대상물부터 청동기시대의 청동검, 무속문화에 융화된 불교·도교·유교 등 여러 종교와 사상이 담긴 미술품,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의 화로와 요강 등 각 시대의 유물이 망라되어 있다.
대표적인 전시물로는 1882년(고종 19) 무렵 만들어진〈해좌전도(海左全圖)〉가 있다. 울릉도 동쪽에 독도가 그려져 있어, 독도가 조선 땅임을 명확히 밝혀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장승공원
또 두레농요 시연, 노래교실 합창, 색소폰 공연과 같은 문화행사와 함께 장승 깎기, 민화 그리기, 도자기 공예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마련돼 있다.
풍광이 좋은 대청호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2㎞가량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청남대[靑南臺] http://chnam.cb21.net/
제5공화국 때 지은 것으로 대청댐(대전-청주) 일대에 대한 국립공원 훼손 등의 말썽이 있어 1988년 5공비리특별위원회에서 현지조사를 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별장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김해를 비롯해 4군데가 있었으나, 김영삼 대통령 시절 모두 폐쇄하고 청남대 한 곳만 남겼다.
그동안 청남대의 전경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다가 1999년 7월 1일 사진이 처음 공개되었다. 청남대는 김영삼 대통령이 공식휴가나 비공식적인 휴식을 위한 장소로 자주 애용하기 시작해 현재는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는 전용 휴양지로 정착되었다(88회). 이런 이유로 대통령의 청남대에서의 휴가기간이 끝나면 새로운 정국구상이 있을 거라는 의미에서 '청남대 구상'이라는 정치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그밖에 청남대에서 국빈을 영접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인 2003년 4월 18일 청남대는 20여 년간의 베일을 벗고 일반인에게 전면 개방되었다.
1980년 12월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장세동 안기부장이 극비리에 2년여를 준비하고 1983년 6월 착공해 6개월만인 12월에 만들어 낸 게 대통령 전용별장 청남대. 청남대 진입로(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초가정 국민의 정부 초기에 초가집과 정자를 짓고 김대중 대통령 생가인 하의도에서 가져온 농기구와 문의지역에서 수집된 전통생활 도구 70여 점을 전시하고 주변에 야생화 단지와 울타리를 조성하였다. 주변경관이 빼어난 청남대 제2경으로 정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면 섬에 와있는 느낌이 들어 김대중 대통령은 정자에 앉아 사색을 즐겼다.
1993년 8월 여름 휴가기간 동안 금융거래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8월 13일 아침 전격적으로‘금융실명제 실시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표한 곳이 바로 청남대다
청원 소로리 유적[淸原小魯里遺蹟] 옥산면 소로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윗부분의 토양쐐기 구조가 발달한 옅은 갈색 찰흙층과 굵은 모래질 찰흙층, 그리고 황갈색 찰흙층에서 석기가 출토되었다. 석기의 돌감은 규암과 석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출토된 석기는 격지떼기에서 비롯된 몸돌과 격지, 돌조각이 많으나 잔손질된 석기는 드물다. 석기의 종류가 비교적 단순하며 자갈돌 석기는 출토되지 않았다. 또한 당시의 자연환경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 나무 자료와 꽃가루 자료도 발견되었다. 토탄층에서는 식·생물 화석과 볍씨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 볍씨(59알) 자료는 적어도 13,000년 전에 형성된 토탄층에서 검출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료로 꼽힌다.
초정약수[椒井藥水]
한국잠사박물관 http://mus.silktopia.or.kr/
자연과학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생생한 학습현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첨단산업으로서 잠사업의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곳으로 농경문화관, 잠상미래관, 잠상산물관, 역사문화관 등 4개의 전시실과 체험학습장인 실크하우스가 있다.
현암사[懸巖寺] 절벽 바위에 매달린(懸) 듯하다는 뜻의 현암사. 현도면 하석리 50
대통령 별장으로 쓰이던 청남대가 2003년 개방되기 전까지, 현암사엔 청남대 경호대원들이 상주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청남대 쪽을 관찰하는 데 최상의 위치였기 때문이다. 원효대사가 이 절에 머물며, 천년 뒤에 절 앞에 세 개의 호수가 생기고 ‘임금 왕’자 지형이 생기면 왕이 옮겨와 나라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산세가 아홉 마리 용이 강줄기를 향해 달려가는 형국이라 해서 구룡산. 가파른 절벽에 매달(懸)여 있어 현암사(懸巖寺) 라는 이름을 지었다. 원효는 절집 앞 강물이 '호수가 되는 날 나라의 왕이 머물 장소가 된다'는 예언도 했다고 한다.
원효는 이곳에 세개의 커다란 호수가 생기면서 임금 왕(王)자의 지형을 만들어 장차 국왕이 거처하게 된다고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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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뫼자연놀이학교 청원군 낭성면 갈산리 341-1
갈뫼자연놀이학교는 곤충, 파충류에서부터 다양한 식물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내 문화마을[강내 연꽃마을] 강내면 궁현리
1991년부터 추진된 정부의 농어촌구조개선대책에 따라 당시 농림수산부 소관으로 문화마을조성사업이 진행되었다. 청원군은 2001년 10월 강내면 궁현리를 강내문화마을로 조성하였다. 주민들이 2001년부터 쌀 대체작물로 연(蓮)을 경작하기 시작하여 2004년 농촌관광육성마을·2005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면서부터 ‘청원연꽃마을’로 더 잘 알려졌다. 약 1만 9,835m²의 연밭과 황토찜질방·연꽃마을체험관 등의 숙박시설, 다목적광장이 있다. 연잎과 연꽃으로 만든 음식을 제공하고, 각종 농촌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옥화구경[玉花九景] 미원면 운암리
좌구산(657m)에서 발원하여 미원면 옥화리·운암리·월용리·금관리·어암리·계원리를 흐르는 달천(일명 박대천) 주변 청석굴·용소·천경대·옥화대·금봉·금관숲·가마소뿔·신선봉·박대소 등 아홉 곳의 경승지를 말한다.
청원 상수 허브랜드. 충북 청원군 부용면에 있는 허브 전문 관광 농원이다. 동양 최대라고 하는 약 5만평 규모의 실내외에 다양한 식물들과 여러 시설들이 갖춰져있고, 허브 관련 판매장과 레스토랑도 자리하고 있다. 단체관람의 경우 가이드를 해주기도 하는데, 전체를 둘러보는데 약 40여분이 걸린다. 다양한 허브와 화초 구경이 볼만하기도 하다. 벼락 맞은 천년된 은행나무 레스토랑 한복판에 서있다.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 꽃밥. 주 재료는 새싹, 식용 꽃잎과 견과류 들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점 100선 선정의 집
피반령 괴목공원 피반령 정상 못 미쳐 송대장님의 뒤를따라 들어간 “피반령 괴목공원”에는 강아지 한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할아버지가 조망하기 좋은 구릉 한켠에 돌과 나무를 이용하여 기괴한 형상들의 조형물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현도 오박사마을 현도면
보성오씨들만 사는 마을. 한 집 건너 한집에서 박사 5명을 배출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됐다
흥수아이(구석기시대 아이)
1983년 청원군 두루봉 동굴, 석회석 광산을 찾기 위해 산을 헤매던 김흥수. 약 4만 년 전의 후기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흥수아이는 5살 때 이 동굴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아이의 머리 크기는 1200~1300cc, 키는 110~120cm 정도이다. 발견자인 김흥수 씨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흥수아이가 특별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것은 흥수아이가 장례 풍습에 의해 매장되었기 때문이다. 1983년 발굴당시 흥수아이는 편편한 석회암 낙반석위에 누워 있었는데 일부러 시신을 바로 펴놓은 후 고운 흙을 뿌렸다는 사실이 관찰되었다. 주검을 아무렇게나 버리지 않고 고이 장례를 치러 주었다는 뜻으로 더욱 놀라운 것은 흥수아이의 주검 곁에서는 여러 종류의 식물꽃가루가 채집되었다는 점이다. 이들 꽃가루 분석에서 국화꽃가루가 가장 많았는데 학자들은 이것이 주검주변을 치장한 장의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런 흥수아이는 한반도인의 직접적 조상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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