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회 송년모임에 다녀와서
탁상위에 마지막 카렌더를 넘겨놓은 지 며칠이 지났다.
엊그제 을미년 신년마지 건배구호를 외쳤던 것 같은데 벌써 송년모임을 갖고 있다.
왜 이렇게 세월이 잘도 가고 있는 걸까?
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그렇게도 시간이 가질 않아 우리가 언제 어른이 될까하고 항상 기다림뿐이었는데 이제 어른이 되고나서는 어찌나 시간이 잘 가는지 고속열차만 타고 사는 것만 같다.
엊그제 단풍잎이 붉게 물들어 가을인가 했더니 언제부터였는지 나무 가지마다 앙상하게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무들은 옷을 벗어버린 나목이 되어 다가오는 추위에 두려워하고 있다.
사실 나무에게 잎은 옷이 아니라 식구였는데 겨울이 먹을 것이 없어 식구를 줄이고 나무 줄기대만 서서 겨울을 난다고 한다.
우리들도 자식들 키우느라고 시끌벅적 정신없이 젊은 날을 살아왔는데 지금은 자식들 또한 그들만의 가족을 이루고 멀리들 가서 살며 이제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노부부만이 추운 겨울을 맞아 살아가고 있다.
나무들은 새봄이 오면 다시 새 식구를 만들고 또 다시 여름이 되면 왕성한 신록의 번영을 맛본다. 그러나 인간은 한번 가버린 세월은 되돌아오질 않고 한번 기울기 시작하면 계속 나락의 길로 들어서기 때문에 더욱 고달프고 서럽다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젊은 날 그 많던 술자리모임이며 사회적으로 인간관계에서 많은 만남과 모임이 있었는데 해가 바뀔 때마다 그 모임들이 줄고 또한 그 만나는 사람도 적어지고 있다.
물론 우리가 언젠가 이 세상 떠나는 날, 모든 사람들과 이별하기 전에 미리 정리를 준비한다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지만 아직은 그렇게 서둘러 주변을 정리해야 할 단계는 아닌 것 같은데 벌써 년 말이 되어 송년모임이 몇 군데 안 된 것 같아 서글퍼진다.
그러기에 동창모임이 가깝고도 부담 없는 귀중한 모임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지역 고등학교 동창송년모임을 가졌다. 이토록 아쉬움 모임에도 몇몇 친구들은 가정사로 또 다른 사정으로 금년 마지막 모임에도 참석치 못하고 있다.
그들이 결코 모임이 많아서 귀찮아서 참석치 못한 것이 아니라 하필이면 그 때 피하지 못할 사정이 생겨나 참석치 못한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멀리서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가 찾아와 송년모임을 더욱 빛내주었다.
사실 내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아니 졸업을 하고서도 한 번도 만나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던 친구였기에 더욱 반갑고 귀중한 만남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대 이름은 “김성수”라는 친구다.
사실은 “김성수”라는 이름을 갖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도 많이 있어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여겨진다.
그 친구는 서울대 농대에 진학하여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사회생활하면서 그동안 동창회 모임에 한두 번쯤 나왔었드라면 얼굴이라도 알고 있었을 텐데 낯선 얼굴이었지만 동창이라는 공통분모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정겨웠다.
사실 대학교수라는 자리가 학문적으로 깊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대인관계를 절대적으로 필요에 의한 유지해야만 하는 자리는 아닌 것 같다.
아마 그도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고방식으로 세상 살다가 퇴직 후에서야 동창이 보고 싶고 모임이 그리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사는 멀리 과천에서 일산에까지 찾아 준 것만 해도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다. 사실 서울 사는 친구들도 선 듯 한 시간이상 지하철을 타고 멀리 이곳까지 오기란 특별히 마음먹고 작정하지 않으면 나서기 어려운 대단한 용기를 부린 것 같다.
그가 단순히 동창카페에 지역모임이 있다는 사실 그 것 하나만을 믿고 예고도 없이 년 말 모임에 참석해 준 것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그의 정의(情誼)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그와 송년 술잔을 기울면서 그의 고향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전북 고창읍내에서도 상당히 멀리 있는 작은 고을 출신답게 순박하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남아있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가 순진해서 그런지 몰라도 야박한 세상에서 살면서도 하얀 백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아니 나와 이야기 하면서 그 백지 속에 아름다운 그림을 함께 그러넣을 수 있는 여지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우리들은 짧고 작은 만남이었지만 젊은 날의 추억 속으로 되돌아가 고생했던 일들이며 즐거웠던 것들을 회상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자리를 통해서 다시한번 어려운 걸음을 해준 김성수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은 전하는 바이다.
한해가 벌써 다 저물어간다.
사람 사는 어느 구석에서도 즐겁고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
그만큼 사람 살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그렇지만 그런 세상 또한 떠나서 홀로 살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일 것이다.
우리가 작정하지 않아도 우리들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 봄여름 가을겨울, 세월의 흐름이고, 병들고 나이 들어 늙어감이다.
제아무리 천하를 제압했다는 진시황제도 일찍 죽었고, 항우장사도 제명에 다 살지 못하고 죽었다. 어찌 우리들인들 그들보다 더 나을 수가 있을까?
바람이 부는 날에는 연을 띄우고 눈이 오는 날에는 연인과 함께 걸었던 추억 속 아름다운 기억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면 그만 큼 행복해 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금년 한 해 아쉽지만 어차피 마무리를 해야만 하는 날 그래도 “내 인생에서 아름다웠던 한해”였노라고 외치고 나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우리가 미리 운명을 안다면 삶은 참으로 싱겁고 재미없을 지도 모른다.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도 열심히 살며 즐거웠노라고 노래할는지도 모른다.
모든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그냥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신은 신에게만 의존하는 사람에게 행복을 내리지 않는다.
내 운명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순간들은 별것 아닌 듯하지만 찰라보다 더 짧은 순간들이 모여서 하루가 되고 일 년이 되고 우리들의 일생이 된다.
지금 이 시간이 내 인생의 가장 귀중한 한 순간들이다.
그래서 나는 년 말 지금 나의 생각과 느낌을 여기 올려본다.
모두들 남은 금년 마지막 하루까지 마무리 잘 짓고 건강하시여 새해에는 보다 달콤한 행복의 꿈을 갖기 바란다.
2015. 12. 5. 한 만 섭
첫댓글 얼마 전 북한산 산행 때는 역사 얘기를 재미있게 풀어주더니
오늘은 친구들 모임 얘기를 재미있게 풀어주네, 그랴!
자네 얘기 솜씨 만큼이나 글 솜씨도 뛰어나다는 걸 알겠네.
연말 뜻있게 잘 보내고 내년엔 또 적절한 시기에 만나
재미있는 얘기들 많이 들려주길 기대하네.
"자네 얘기 솜씨 만큼이나 글 솜씨도 뛰어나다는 걸 알겠네."바람이 부는 날에는 연을 띄우고 눈이 오는 날에는 연인과 함께 걸었던 추억 속 아름다운 기억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면 그만 큼 행복해 질 수 있지" 그 동안 철이 덜 들어 학생들과 노니다 보니 정년이 되어 미안정겨운 자리, 맛 있는 음식 고마웠고"남은 금년 마지막 하루까지 마무리 잘 짓고 건강하시여 새해에는 보다 콤한 행복의 꿈을 갖기 바라며"고마운 글에 깊이 감사하네*^^*
연말 뜻있게 잘 보내고 내년엔 또 적절한 시기에 만나
재미있는 얘기들 많이 들려주길 기대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