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타세요. 다음에 한 번 더 내시면 되잖아요.
남상선 / 수필가
뿌리공원으로 가는 312번 버스를 타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새해 들어 대전효문화진흥원 첫 근무일, 긍지를 갖고 하는 일이라 그런지 걸음이 가벼웠다.
잠시 후에 기다렸던 버스가 왔다. 승차하고 보니 교통 카드를 가져오지 않았다.
늘 폰 케이스에 꽂혀 있는 카드였는데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당황한 모습으로 호주머니를 모두 뒤져도 카드는 없었다. 안색이 변할 정도 초조해하고 있었다. 외투주머니를 뒤지고 양복주머니를 또 뒤져도 희망은 없었지만 구사일생이었는지 지갑 속에서 현금 2만원이 나왔다.
허나 순간 잔돈이 아니고는 승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만 원짜리를 내면 피차간에 거스름돈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죄인 같은 심정으로 기사님한테 카드를 집에 놓고 왔다고 했다.
< 만 원짜리 현금밖에 없는데 이걸 어떡하죠? > 하며 난색을 표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연기가 아닌 실동작으로 보이고 있었다. 사람이 일순간에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자존심이고 뭐고 다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기사님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한 마디 건넸다.
“ 그냥 타세요. 다음에 한 번 더 내시면 되잖아요.”
하는 것이었다.
순간 그 한 마디는 안절부절 못하는 나에게 구세주의 말씀과도 같았다.
짤막한 한 마디였지만 그 속에는 배려와 이해하는 마음이, 딱한 처지를 가엽게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들어 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을 덜 미안하게 하려는 아량과 관용도 숨 쉬고 있었다. 순간 나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겸연쩍고 미안한 마음이면서도 많은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자리에 앉았다. 위기를 면하게 해 주신 기사님의 그 한 마디를 반추하듯 되새기며 승강장 여섯 개를 뒤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절박한 처지의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마음과, 관용으로 포용하고 보듬으려는 그 아량은 보기 드문 희귀 보석을 만난 기분이었다.
좌석에 앉아 침묵으로 몇 승강장을 더 지났건만 머릿속을 맥질한 고마운 생각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냥 하차하기엔 마음이 내키지 않아 기사님 앞으로 갔다.
나라는 사람을 소개한 후 따뜻한 배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했다.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기사님 성함과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알려 주셨다.
이 분이 바로 그 존경스런 312번 버스 염구환 기사님이다.
앞으로 연락도 하고 카톡 자료도 보내드리겠다고 약속을 했다. 한 순간 쩔쩔매기는 했지만 운수 좋은 날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천사 같은 분이 내 지인이 됐으니 말이다. 앞으로는 이 희귀 보석 같은 분을 평생 친구로, 스승으로, 놓치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타고 있는 버스는 어쩌면 지상의 또 다른 천사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자비와 사랑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내려오신 또 다른 부처님, 예수님의 현존을 뵙는 느낌이었다. 승차권 하나로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무르녹다니 행복은 큰 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다사로운 숨결이, 그 자비가, 보듬는 사랑으로 숨 쉬고 있으니 그 느꺼움을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기사님이 운전하는 이 버스는 휘발유나 가스의 힘으로 가는 차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따듯한 가슴으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는 마음으로, 관용의 마음으로 자가 발전하여 용광로 가슴을 만들어 가는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따뜻한 가슴의 훈기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고,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근무를 했다. 아마도 나비효과라는 것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얘기 같았다.
“ 그냥 타세요. 다음에 한 번 더 내시면 되잖아요.”
어느 금언보다도, 어떤 금과옥조의 말보다도 향기가 나는 한 마디가 아닐 수 없었다. 촌철살인의 한 마디에 숨 쉬고 있는 배려, 이해, 관용, 포용의 그 따듯한 마음을 방부제 처리하여 오래오래 보존하고 싶은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어쩌면 길가에 나 있는 쑥이 삼밭의 삼을 만난 느낌이었다.
마중지봉(麻中之蓬)이란 한자성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쑥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삼(대마초)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아무쪼록 염구환 기사님과 같이 삼으로 사는 분들로 인해, 길가의 키가 크지 않는 무수한 민초의 쑥들이, 키가 큰 삼을 닮아 그렇게 동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중지봉(麻中之蓬)1)이
우리 시람 사는 현실로 탈바꿈하여
마냥 따뜻한 용광로 가슴으로 살맛나는 세상이 되게 하소서.
주1.마중지봉(麻中之蓬)
: 봉생마중 불부이직(逢生麻中不扶而直)이란 한자성어에서 온 말로 < 삼밭 가운데 나 있는 쑥은 누가 붙잡아 주지 않아도 삼을 닮아서 곧게 자란다.> 는 뜻으로 선한(훌륭한) 사람과 사귀면 그 감화를 받아 자연히 선하게 됨(훌륭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근묵자흑(近墨者黑)
첫댓글 저도 나비효과를 얻어갑니다....ㅎㅎㅎ
나비효과로 음지가 양지로 변화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임당 선생님 응원 주시어 감사합니다.
정말 마음씨 좋은 기사님을 만나셨네요^^ 정말 난감하셨겠어요 따뜻한 기사님을 만나 추운날씨에 언 몸이 사르르 녹으신 기분을 느끼셨겠어요 저도 그런기분을 다른사람에게 느끼게 해주고싶네요^^
세상 거칠다지만 천사같이 사는 분도 많아보입니다. 이런 분들께 박수를 보내드리고 따뜻한 가슴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김정아님 성원 주시어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1월이 왜 이리 빨리 가는지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새 이 글을 읽노라니 세월이 가도 이런 훈훈한 이야기로 느끼는 감동은 잔잔한 행복감까지 느끼게 하여 시원 섭섭한 생각을 잊게 합니다. 언젠가 처음 운전을 시작한 그 날 차를 잘못 회전하여 좌회전 하는 택시 코앞에 대어져 겁도나고 운전사 아버씨가 화를 내시지 않을까 난감해 하고 있는데. 차 문을 여시고 아주 친절하게 아주머니 그리하시면 사고납니다 ㅎㅎ 하고 친절하게 농담조로 부드럽게 말씀하시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몇번을 고개숙여 감사의 말을 전했던지요 지금까지 감사한 마음입니다. 얼마나 감사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전화와
역시 세상은 살만한 곳입니다. 훈훈한 가슴을 사람들이이 종종 살 맛 나는 꿀팁을
주기 때문이죠. 임께서도 역시 감동적인 계기가 있으셨다니 저도 함께 하는
공감입니다.. 우리 살아가면서 훈훈한 가슴으로 힘이 되어야겠습니다.
ahrghk 님 글로 통할 수 있는 친구가 돼 주어서 감사합니다.
성함을 알려하시어 지금도 좋은글 공유하고 계시니 참으로 흐믓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각박하고 냉소적인 정서가 메말라 악의적인 일이 많이 일어나고 폭력과 싸움으로 증오와 불신의 세상으로 있는것 같아 심히 걱정되 되지만 이처럼 아직은 세상은 살만하지 않은가 이런 아름다운 마음들이 있으니 좀더 좋은 세상은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안심해 봅니다
작가님 감사 합니다
가슴으로 통할 수 있는 좋은 분들과 임과 같은 분을 만나 마냥 흐뭇한 마음입니다..
우리 훈훈한 가슴으로 살면서 사회의 향기가 되는 삶으로 같은 길 오래오래
걸었으면 합니다. ahrgh 님 진솔한 마음 주시어 감사합니다.
기사님 훌륭 하시네요. 선생님께서도 칭찬과 격려 기사님 뒤지지 않아요 저는 선생님 닮아 갈래요
선생님은 삼 저는 쑥 글 잘보고 갑니다 항상 감사 드립니다.
훌륭한 분을 팬으로 모시게 되어 영광밉니다.
응원 댓글 보약을 먹은 기분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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