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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의 저조함이나 기능의 우수함으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support(지원하다)는 '지지한다, 북돋아준다, 도와준다, 인정한다' 등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전문 분야에서 사용되는 support 라는 용어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건축분야에서는 구조물을 지지하는 기둥, 철재구조, 아치 등의 요소들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예술과 스포츠 분야에서는 팬들이 보내는 응원을, 경제나 회계분야에서는 금전적 예산을 지급할 때 support 라고 합니다. 군사 분야에서는 엄호(사격)를 뜻하기도 하고, 사회심리적 관점에서는 지지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최근 지역별로 자생적으로 조직되고 있는 발달장애 부모들의 소모임인 자조모임 또는 발달장애 당사자들의 자조모임은 영어로 self-help group 보다는 self-support group 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원이라는 말이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든 관계없이, 그것의 공통적인 함의는 지원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조직을 직접 변화시키는 방법은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 우리의 특수교육 및 재활과 복지 현장에서 ‘지원’이라는 이름하에 실행되고 있는 서비스들의 상당 부분은 그 실제 내용상 지원보다는 '교육·훈련'이나 '재활' 또는 '치료'라는 말이 더 어울려 보입니다.
발달장애는 다른 장애와 마찬가지로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 아닌 ‘장애’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재활치료들도 근본적으로는 치료라기보다는 훈련과 교육활동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의 현재 시점에서 발달장애인에게 제공되는 대다수의 교육 및 복지 서비스의 내용은 실질적으로는 이상적인 ‘지원’의 의미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현재 발달장애인을 위한 학교 교육과정 재활치료, 발달장인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들이 지원과 대척점에 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교육학 개론에서는 고전적으로 교육을 ‘인간행동의 계획적인 변화(긍정적인 방향으로)’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재활이라는 용어는 치료와 유사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기능과 능력을 회복시키는 일 또는 그 회복을 돕는 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치료라는 말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상처나 병을 낫게 하는 일’을 말합니다. 손상된 기능을 회복시킨다는 의미에서는 재활이라는 말과 유사한 용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의를 전제로 한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재활치료 서비스와 복지, 고용, 교육 등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와 중재 프로그램들은 지원이라는 패러다임보다는 교육과 훈련의 패러다임에 근거하여 실행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교육·훈련 중심의 접근방식은,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사회적 모델'을, 실행가능한 제도와 서비스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접근방식과 매우 다릅니다. 거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장애가 아니라 장애인 외부의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 장벽이 문제이고, 그것을 제거하거나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신체 장애 분야의 변화와 비교해 볼 때, 발달장애인의 기능을 변화·개선·회복시키고자 하는 현재 우리의 접근방식은 '지원'이라는 용어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기능이 습득되고 능력이 갖춰져야 이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언뜻 보면 당연한 상식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생각은 개인의 가치나 삶의 질을 그 사람의 능력이 결정하며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가져가야 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은 가치도 그만큼 없는 사람으로 보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우리의 관념 속 깊은 곳에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은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발달장애인의 기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은연중에 그 기능에 인간의 다양한 능력과 잠재력을 모두 포함시키지도 않은 채, 말을 하거나 글을 읽고 쓰거나, 계산을 하거나, 혼자서 길을 찾아가거나, 타인들과 문제없이 잘 지내는 능력 정도만을 포함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능력에 있어 기능적으로 큰 손상이나 제약이 없습니다. 신체기능에서 중복장애가 없는 다수의 발달장애인들은 신체를 사용하는데 장애가 없습니다. 특정 영역에서의 기능이 부족하거나 습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달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것은 우리의 편견입니다.
정신적인 기능에 장애가 없고 신체적인 기능에 장애가 있는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지원은 편의제공 또는 편의시설 제공을 통해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이제는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의무적인 서비스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전에는 신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웠던 이동, 정보의 접근과 사용, 지역사회 생활, 소비생활 등이 정상화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신체기관을 사용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발달장애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고 그것을 사용하고, 의사를 표현하고, 대인관계를 맺고, 지역사회의 자원을 이용하고, 소비생활을 하고, 이를 통해 자립을 하거나 지역사회에 적절히 적응하여 통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과 대안을 만들고 있지 못합니다.
심지어 발달장애인의 가족이나 관련 전문가들조차도 이러한 접근방식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실행할 수 있는 수준까지 구체화하기 위한 인식과 관심이 부족합니다. 뿐만 아니라 관련 전문가와 현장의 종사자들조차 눈에 보이는 하나의 결과물로 이런 지원 또는 편의제공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발상과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발달장애인이 그 장애의 정도와 관계없이, 기능이 저조하거나 우수하거나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비장애인과 같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방안과 전략, 그에 관계된 참조할 만한 모델에 대한 연구, 실용적인 매뉴얼과 가이드, 관련 제도가 아주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의 발달장애인 재활과 복지 분야의 현실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도록 지원하기 위해 경사로를 만들고 장애인 주차장을 만들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택시와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이를 더더욱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엘리베이터 버튼에 점자를 새기고, 보도블럭에 엠보싱을 만들고, 음성해설방송을 만듭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다수의 청중이 함께하는 공연, 집회, 방송 등에 수화통역 또는 문자통역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신체장애인을 위한 편의제공 서비스는 아직도 모든 장면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긴 합니다. 여전히 이것을 최대한 많은 일상의 공간과 상황에서 적용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며 불철주야 활동하시는 장애 당사자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형태로 이러한 편의제공이나 정보접근성을 확보하고 이를 제도화하고 서비스 전략과 방법으로까지 적용되도록 하는데 있어서는 아직 시작도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식당에 들어가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주문을 하고 결재를 하는 매우 일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입구의 경사로와 휄체어가 이동하고 자리잡을 정도의 공간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글을 읽을 수 없고 말로 대화를 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게는 사진이 함께 표시된 메뉴판과 결재를 위한 카드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지체장애인을 위한 이러한 편의제공의 의무는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법적으로 일정한 정도와 범위까지는 강제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적인 환경, 도구, 서비스 방식, 추가적인 정보양식(글자▶사진,그림)의 제공 등은 편의제공이라는 범주에 동등하게 포함되어야 하는 권리일 수 있음에도 이것을 강제하는 법이나 제도나 정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사실상 우리가 ‘일상’이라 부르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장애인으로서 당연히 제공받아야 할 지원을 마련하는 일은 그 장애인의 기능이나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제도로써, 시행방법으로써, 매뉴얼로써 구축되어 있지 못하다면,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이나 자립이나 직업 또는 지역사회 통합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누군가의 도움이나 보조로 몇 달 혹은 몇 년 정도 해보고 마는 경험에 그치게 되고 말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에게 기능과 능력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일은 발달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애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구호나 문구만으로는 구현되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겐 그 구호가 실제 삶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구현되도록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