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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1일부터 3월 1일에 걸쳐 8박 9일 동안 주임신부님을 모시고 31명으로 구성된 순례 단이 거룩한 성서의 땅, 예수님의 고향 이스라엘로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느껴보지 못하고 만나보지 못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느끼고 만나기 위해 이스라엘을 찾아간 순례 단 모두 성실하게 순례에 임해서 주님을 더욱더 느끼고 새로움과 놀라움의 은총을 가득 얻고 돌아왔다.
성지 이스라엘 땅으로 초대해주시고 성지순례를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도록 함께 하시며 보살펴주시고 이끌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순례 여정을 담아온 사진들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며 정리해본다.
이스라엘 성지순례 첫째 날(2월 21일 금)
아시아 대륙 동쪽 끝 한국에서 7시간을 거슬러 11시간 동안 비행하여 아시아 대륙 서쪽 끝 중동 한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긴 시간 이동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오랫동안 순례를 준비하면서 기도 중에 염원하고 희망해왔던 성지 이스라엘 땅에 드디어 발을 디뎠다는 기쁨에 마음은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기쁨이 몰려왔다.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하늘을 날 수 있도록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지혜를 선물로 주시어 당신 구원의 발자취를 남기신 땅, 교회가 시작된 이스라엘 땅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심에 감사를 드렸다.
이스라엘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55분이었다.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은 이스라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되는 둘째 날인 내일은 이스라엘 북쪽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을 순례하기로 되어 있다. 긴 비행으로 몸들이 무거워져 있는 상태라 북쪽 나자렛으로 이동하지 않고 공항에서 멀지 않은 헤르쩰리아라는 도시 호텔에서 이스라엘에서의 첫 날 밤을 보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 둘째 날(2월 22일 토)
이스라엘에서의 둘째 날,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되었다. 첫 순례지는 카르멜산에 있는 엘리야 기념 성당이다. 카르멜산을 향하여 가다가 일정에 없었던 지중해 카이사리아를 잠깐 들러서 가기로 했다.
이스라엘 북쪽 단이라는 곳에도 필립보의 카이사리아가 있지만 우리가 잠깐 들른 카이사리아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와 하이파 시의 중간 지역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다. 이 도시는 로마제국 황제의 도움으로 유다의 왕위에 오른 헤로데가(기원전 40년~기원후 4년) 로마제국 식으로 건설한 도시이다. 헤로데는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에게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아름다운 도시와 항구를 지어 헌정하면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카이사리아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곳은 예수님 당시에 로마의 총독부가 주둔하던 곳이었다(사도 12,19). 또 베드로가 이탈리아 부대라고 불리는 군대의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에게 세례를 준 곳이고(사도10,1-43), 바오로 사도가 로마로 압송되기 전 2년간 이 도시의 감옥에 갇혀있었으며(사도24,27) 그때 로마의 총독 펠릭스와 후임자 포르키우스 페스투스, 그리고 유다왕 헤로데 아그리파스 2세 앞에서 변론을 펴기도 한 장소이다(사도25-26장). 바오로 사도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면서 이 카이사리아와 작별하였던 것이다.
지중해 연안 백사장 위로 지어진 수도교. 맨 위는 수로, 아래는 사람들의 이동로이다.
우리가 들른 지중해 카이사리아에는 해안에서 북쪽으로 아취가 연결된 수도교가 있었다. 이것은 헤로데가 카이사리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카르멜산 남쪽의 샘으로부터 약 19Km에 이르는 상수도 시설을 건설한 것이다. 다리 모양과 비슷해서 수도교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물의 낙차를 이용한 구조물로서 로마시대의 대표적인 구조물이다. 수도교 건축물을 보더라도 당시의 웅장하고 화려한 카이사리아의 모습과 건축 기술을 추측할 수 있게 했다. 눈이 부시도록 화창한 날씨에 지중해의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모두들 즐겁게 순례를 하였다.
사진 정기환 마티아
사진 정기환 마티아
이어서 북쪽으로 카르멜산에 있는 엘리야 기념 성당을 향하여 갔다. 성경에서 카르멜 산을 접하면 우리는 흔히 산봉우리 하나만을 상상하는데, 카르멜산은 발원지를 이루고 있는 지중해 해안의 하이파 시에서 시작해서 이즈르엘 평야까지 약 25km에 이르는 산맥 전체를 일컫는다.
엘리야기념성당 전망대에서 바라본 저 멀리 이즈르엘 평야
카르멜은 하느님의 정원, 하느님의 포도밭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카르멜 산지 안으로 버스가 들어가니 나무들이 울창해 아름다웠다. 사막과도 같은 척박한 나라에 많은 나무들이 있는 것에 놀라웠다. 또 카르멜 산 지역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라고 한다. 이 카르멜 산에서 내린 비가 아래쪽으로 흘러 키손천의 물길을 따라 이즈르엘 평야로 내려가기 때문에 이즈르엘 평야가 비옥한 것이다. 카르멜 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이즈르엘 평야가 쫙 펼쳐져 보이는데 구약의 백성들이 왜 이스라엘을 약속된 땅, 가나안 복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일컬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빵공장, 빵바구니라고 불리우는 중동지역 최대의 곡창지역인 이즈르엘 평야를 수많은 민족들이 서로 빼앗겠다고 전쟁과 각축이 벌어지는 이유가 너무나 비옥하고 탐나는 땅이기 때문이다.
'불의 제단' 므흐라카라 불리는 카르멜산 수도원 입구
엘리아 기념성당
카르멜 산에서 있었던 가장 유명한 사건은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의 거짓 예언자들과 대결해서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낸 사건이다.(1열왕 18,20-40)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을 쳐 죽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상이다. 마치 우리에게 "너희들은 악마의 유혹을 능히 물리칠 수 있는 하느님의 군대냐!" 라고 호령하시는 듯 했다.
북왕국 이스라엘 아합 왕 때 바알숭배에 빠져 타락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엘리야는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친 채 절뚝거릴 작정입니까?”(18,21) 라고 꾸짖으며 바알 예언자 450명에게 제단을 쌓고 제물을 올린 뒤, 불로 대답하는 참 하느님이 누구신지 내기를 걸었다. 바알 예언자들이 먼저 황홀경에 빠져 칼과 창으로 몸에 피까지 내면서 신을 부르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엘리야는 야곱의 지파수 대로 12개의 돌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제물을 올린 다음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 3번이나 제물과 장작에 갖다 부었다. 그리고 주님께 간구했더니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을 삼키고 물까지 핥아 버렸다. 이곳을 '무흐라카’라 부르는 것은 ‘불의 제단’, ‘불이 내려온 곳’이라는 뜻이다. 참 하느님이 증명되고 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느님께로 돌아왔다.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들을 카르멜 산 아래 키손천으로 끌고 가서 모조리 죽였다. 그리고 북왕국을 짓누르던 오랜 가뭄도 해소된다(18,41-46). 카르멜산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참신앙의 불을 다시 붙인 곳이다.
또 카르멜 산 전망대에서 보면 지중해 카이사리아가 보인다. 엘리야가 거짓 예언자들의 목을 쳐버리고 시종에게 “올라가서 바다쪽을 살펴보아라.”(18,43) 하자 시종이 “바다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올라옵니다.”(18,44) 하고 말했던 것이 바로 지중해를 보고 한 말씀인 것이다.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돌 제단
현재 카르멜 수도원에서 관리하는 엘리야 기념 성당 안에는 12개의 굵은 돌로 이루어진 제대가 봉헌되어 있다. 이 제대는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며 쌓은 제단을 재현한 것이다. 이곳은 구약성경에 얽힌 성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들이 함께 찾아오는 종교적 화합 장소이기도 하다.
엘리야에게 임하셨던 주님께서 저희에게도 임하셔서 악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주님의 전사들 되게 해주시기를 청하며 카르멜산 순례를 마치고 나자렛으로 갔다. 나자렛으로 가는 길에 겨자꽃이 만발한 들녘이 보였다. 유채꽃과 똑같은 과여서인지 언뜻 보기에 유채꽃과 비슷해보였다. 순례를 간 2월이 우기인 봄이라서 초목들과 활짝 핀 겨자꽃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나자렛은 해발 370m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나자렛은 구약성경에 한 번도 언급이 없었고, 신약성경에 12번 나온다. 요한복음에서 나타나엘이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할 정도로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장소로 여겨졌던 곳이다. 그러나 나자렛은 천사 가브리엘이 어린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소식을 전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이 시작된 장소가 되었고, 예수님께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내면서 성가정을 이루고 살았던 곳이다.
나자렛 시가지 멀리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첨탑이 보인다. 60m 높이의 성당 첨탑은 지혜와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꽃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습으로 지붕의 빛을 제대까지 내려준다.
주님탄생예고기념성당은 이런 시장 거리를 200m정도 지나 오른쪽에 있다.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작은 마을 나자렛이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하고 거룩한 마을로 변했다. 현재 나자렛은 8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나자렛은 유다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장 큰 동네 중의 하나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분포가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유는 마리아가 구세주 예수님을 잉태하는 구원의 도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 탄생 예고 기념성당 정문
우리는 먼저 주님탄생예고기념성당 맞은편 골목에 있는 건물 지하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사건을 기념하여 세운 주님탄생예고기념성당으로 갔다.
점심식사 후 식당 건물이 멋있어서 찰칵!
사진 정기환마티아
사진 정기환 마티아
주님탄생예고기념성당은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만났다고 하는 동굴로 된 성모님의 집 터 위에 세운 성당이다. 5세기 초에 이곳에 성당이 세워졌으나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십자군 시대에 다시 재건되었으나 1263년 이슬람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 그 후 1632년, 1730년, 1877년에 성전이 지어지지만 지진과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다. 1969년 프란치스코회에서 현재의 기념대성당을 다시 지었는데 중동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화려하고 웅장하며 아름다웠다.
성당 정면 맨 위에는 예수님께서 자리하고 계시고, 바로 아래 왼쪽에 천사 가브리엘, 오른쪽에 성모 마리아가 있고 그 밑에 라틴어로 ANGELUS DOMINI(주님의 천사가) NUNTIAUIT MARIAE(마리아께 아뢰다) 라고 삼종기도의 첫 구절이 쓰여 있다.
삼종기도 밑에 4복음사가의 조각상이 있는데(왼쪽에 마태오, 마르코, 오른쪽에 루카, 요한) 4복음사가가 증언하는바 VERBUM CARO FACTUM EST ET HABITAUIT IN NOBIS(말씀이신 창조주께서 살을 취하셔서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다) 라는 글씨가 아래에 쓰여 있다. 바로 이 장소가 삼종기도의 기원이 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종기도를 처음 교회 안에 도입하신 분이 프란치스코 성인이시며, 이 장소를 프란치스코 회원들이 관리하고 있다.
1층 성당 중앙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만났던 주님탄생예고동굴이다.
1층 성당에는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만났다고 하는 동굴로 된 성모님의 집이 있다. 1층 성당은 십자군 시대에 지은 성당의 일부를 밖으로 내어놓은 모습이다. 바로 위층에 1969년 프란치스코 회원들이 새로 완공한 대성당이 있다. 그러나 모든 성당의 중심은 바로 이 자리이다.
주님 탄생 예고 동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주님의 탄생을 예고했던 성모님의 동굴 집은, 하느님의 잉태 소식을 들은 어린 마리아가 적극적으로 겸손하게 순종적인 대답을 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이 시작된 장소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거룩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주님 탄생 예고 동굴 제대에 “VERBUM CARO HIC FACTUM EST” “바로 여기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라는 뜻의 라틴어가 쓰여져 있다. 여기서 'HIC'이라는 단어는 이스라엘 외에는 다른 성지들은 절대 쓸 수 없는 단어라고 한다. 이유는 ‘바로 여기’라는 뜻이므로 다른 데서는 기념하는 것일 뿐이므로 이스라엘 외에는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이곳이 성모님의 집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성모님께서 교회의 어머니로서 사도들에게 이 자리에서 가브리엘 천사를 만났다고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그 말씀을 사도들이 기억을 하고 전하면서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예수님 시대의 일반적인 거주형태는 동굴에서 거주를 했다. 초기 교회의 그 생생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이곳이 성모님의 집임을 알고 비잔틴 시대에 이곳에 성당을 지었던 것이다.
이 곳에서 발굴된 3세기경의 시나고그 건물 일부에서 그리스어로 “마리아, 찬미 받으소서”(XE MAPIA)라고 새겨진 돌기둥을 발견함으로써 마리아에게 봉헌된 경당이었을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당 우측의 벽면에 성모찬송이 쓰여 있다. 가운데 성모님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 성모님의 모습을 나자렛의 마리아라고 얘기한다. 일반적으로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이나 혹은 교회 역사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셨던 발현사건의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이곳의 성모님은 당시의 아주 어린 성모님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라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답을 했다는 의미에서 한쪽 발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 하느님의 뜻에 순명한다는 표시로 손을 벌려 받아들인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느껴볼 수가 있다.
성모님 모자이크들이 걸려있는 회랑
성당 바깥쪽 회랑에는 세계 각 나라에서 봉헌된 성모님 모자이크가 순례자들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한국에서 봉헌된 성모님 모자이크도 있는데 한국 조소계의 거장이었던 고 이남규 교수님의 작품이다.
회랑 오른쪽 편에 그리스정교회 아테나고라스 총대주교와 교황 바오로 6세 동상이 있다. 1054년 동방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가 서로 단죄한 후 갈라져나가는 뼈아픈 단절을 겪게 되었었다. 1964년 1월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동방정교회 아테나고라스 총대주교를 910년 만에 만나 분열의 시간을 용서 청하면서 서로 화해의 악수를 하였다. 그 모습을 기념하는 상이다. 파문되고 갈라져 단절의 상태에 있던 모든 종파들이 화해와 용서를 하고 모든 공동선을 위해 다함께 기도하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신 분이 바오로 6세 교황님이시다.
2층 대성당 내부. 오후 5시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2층 성당 북쪽에 위치한 출입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오면, 예수님 당시 나자렛 마을의 터가 발굴되어 보존된 장소가 있다.
일단 여기까지 순례를 하고 우리는 카나로 갔다. 카나의 혼인잔치기념성당에서 오후 2시 30분에 순례를 온 부부 6쌍의 혼인갱신 식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지에는 약속한 시간을 맞추어 가지 않으면 허용이 안 되어 혼인갱신 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혼인갱신 식을 하고 다시 이곳 나자렛으로 돌아와서 오후 5시에 2층 주님탄생예고기념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해야 한다. 우리는 서둘러서 카나로 갔다.
② →
첫댓글 그날의 벅찬 환희가 고스란이 전해집니다. 감사하고 수고하시네요
마음으로 함께 하였던 이번 성지순례를 꼼꼼하게 올려주시니 정말 아주 편안하게 기쁘게 들러보고 갑니다~~^^감사드립니다~~♡♡
사진과 아울러 설명 내용이 자세하고 정확하게 하시어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시 다녀 온 느낌입니다. 사진을 정리하시고 설명 내용을 쓰시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성당 카페에 올려 주시니 우리 성당 모든 교우님께서도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 온 것과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진과 함께 설명 사진은 올려주시려니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