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은 동아시아를 통치하는 철강 제국이었다.
작성일 2023.07.04.
한국역사문화 바로잡기 시리즈(8)
글쓴이: (사)한국역사문화운동본부 이사, 김건수 역사문화해설사.
삼한은 일본식민사관에 의한 50여년 동안, 그것도 국가로 인정하기 어려운 부족 국가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BC 400년에 레위지파
제사장들이 한반도에 왔었던 해로부터 청도 이서국이 AD 297년 멸망될 때까지 장장 700년 가까이 현재의 남한의 크기와 유사한 위치에 78개국
나라가 연합한 동아시아를 통치하는 철강 제국이었다.
제사와 정치가 명확하게 분리된 유태교의 전통을 갖고 있었으며, 1년에 두 차례 큰 제사를 드리는 것도 유태교와 유사했다.
낙동강 주변에 26개의 제철소가 있었고 주변의 나라들에 철을 주거래 물품으로 무역한 것이 수 없이 발굴되는 당시 유물과 유적들로 철강
제국이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삼한을 뒤이은 가야와 백제가 또 705년을 이은 고리(후에 고구려라 함)가 철의 나라로 주변국에 철을 수출했다는 사실은 삼국사기와 가야사,
그리고 중국 역사가 입증해 주고 있다.
가야와 백제, 그리고 신라에 철 산업을 물려준 나라가 바로 삼한이라는 거대 철강 제국이었던 것이다.
경상도 포항과 광양에 세계적인 제철소 POSCO가 현존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철은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에서 쉽게 출토 되는 흔한 광물이다.
그런데 이 철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어떻게 가공해 내느냐에 따라 그 용도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나며 이는 국방력과 직결된다.
그러므로 철기 시대에 어떤 철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느냐가 핵심이며, 단순한 농기구나 가구가 아닌 창검과 방패로 사용했다면 이는 하드 파워인
국방력인 것이다.
삼한은 어떻게 강철 제국이 되었는가?
필자는 인하대에서 금속 공학을 전공했기에 금속, 특별히 철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고 있다.
가야사를 비롯한 삼국의 역사 문화 전문 교수인 오순제 교수 역시 한양대 금속공학 출신으로 역사를 연구하고 있기에 그분의 강의를 참고해 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역사는 철을 사용한 시기를 BC 1450~1200년경 아나토리아에서 시작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BC 4000년 이짚트에서 만들어진 철제 구슬이 발견되었고,
성경에서는 창세기 4장에 철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창세기 4:22)
*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레위기 2:5)
* "금, 은, 동, 철과 주석과 납 등의 불에 견딜만한 모든 물건은 불을 지나게 하라" (민수기31:22-23)
이런 기록으로 보아 일반 역사가 말하는 것 보다 훨씬 오래 전에 철을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19세기 덴마크 국립 박물관의 톰센(Thomsen.C.J)과 그의 제자 월사에(Worsaae)가 선사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구분하였다.
철기 시대는 지역마다 약간 다르게 전개되었으며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BC 13세기, 이집트는 BC 12세기, 이란은 BC 10세기, 유럽은
이보다 약간 늦은 BC 9~8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는 철기문화는 BC 200년경 북방으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일반화 되었으나, 낙동강 유역의 유물 유적은 이보다 앞선
BC 400년경 남방에서 전해진 것으로 또 일반 철이 아닌 강철을 만들어 내 주변국에 무역한 흔적들이 출토되고 있다.
낙동강 주변에 한 두개도 아닌 26개의 제철소가 존재 했었다는 것, 일반 쇠가 아닌 강철을 생산했다는 것은 주변에 영향을 주는 거대한 강철
제국이 있었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쇠는 해변의 모래나, 강변의 모래나, 산의 모래에서 채취되는 사철을 녹여 만들었다.
금, 은, 동, 아연, 주석, 납 등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여러가지로 만들기가 용이하다.
그러나 철은 1,200도 에서 1,600도 사이에서 녹거나 가공되기 때문에, 흔한 광물임에도 이런 높은 열을 올리고 이를 담아내는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싸구려 기술이 아니다.
철을 얼마나 높은 온도에서 만들어 내고 탄소와 불순물을 어떻게 제거해 내느냐가 제철 기술의 핵심이다.
철에 탄소가 얼마나 포함되었느냐에 따라, 주철, 강철, 순철로 구분된다.
아래 Fe-C상태도에 보이는 대로 탄소 량 1.7% 이상이면 주철이고 이하이면 강철이다.
가마솥 같은 주철은 단단하나 쉽게 깨진다.
강철은 두들겨도 깨지지 않고 더욱 단단해 지며 창검과 방패 같은 무기로 만들 수 있다.
이 강철에 티타늄 같은 특수 원소가 들어가면 일반 강철보다 몇배 가볍고 강한 무기도 만들어 진다.
철강석과 유연탄인 코크스를 용광로에 넣어 섭씨 1,500도에서 1,600도로 가열하면 액체로된 쇳물과 스래그라는 쇠똥이 나온다.
이를 다시 전로에서 산소를 불어 넣어 탄소를 제거하여 형틀에 넣어 잉고트를 만든다.
이 잉고트가 강철의 원료로 갖가지 철제품을 만드는 소재이다.
삼한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 이 잉고트에 해당하는 철정이 다량 출토되어 삼한이 철강 제국인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사철을 통나무나 석탄 등으로 가열하여 얻게되는 쇠는 무쇠라 하여 그대로 사용 할 수 없다.
물론 주형이라는 틀에 넣어 농기구나 간단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으나 칼이나 창 같은 무기를 만들려 하면 탄소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련
과정이 필수 이다.
삼한에서 강철을 만들었다면 고도의 이 기술이 누군가에 의해 전해졌어야 하는데,
자신을 레위지파 제사장 천군의 후손이라고 하는 도마박물관장 조 국현 박사는 도마에 의해 이 기술이 삼한에 전해 졌다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조 박사는 도피성인 소도 5곳을 직접 발굴해 냈으며 1988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36년가까이 삼한 역사 문화 복구를 위해 전재산을 들여 발굴해 내고 있는 것이다.
사도 도마는 돌과 쇠를 다루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인도에서 왕궁을 짓고 삼한으로 와서 제철소를 운영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천군 조슈아가 사도 도마를 초대했으며, 사도 도마가 김수로왕과 인도 허황옥 공주를 중매하여 가야국이 시작되도록 도움을 준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대구 달성 토성을 처음으로 쌓은 이유도 제철소를 보호하기 위해 목책과 조개로 성을 쌓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한에서 강철을 만들어 주변에 공급했다는 사실은 오늘날로 치면 반도체 기술이나, 탱크와 각종 첨단 무기에 해당되는 하이테크 기술이며 이는 하드 파워를 보유했다는 구체적 증거이다.
또 정치와 분리된 제사와 종교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다는 뜻은 소프트 파워인 문화와 내치가 잘 다스려지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 드려야 한다.
고구려가 705년, 백제가 678년의 왕위를 이어 온 것은 모두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가 강대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나라들은 잠시 있었다 사라졌을 뿐, 삼한, 삼국, 고려, 이씨 조선 등은 대부분 500년 이상 이어 온 나라들이다.
자료 제공
도마박물관장 조국현 박사,
가야사 조순제 교수
첫댓글
김건수 한국 기독교 역사 문화 해설사와 한국 고대 철기 역사 해설
글쓴이: 임원주 (스토리텔링 작가, 저서: 허왕후 스토리텔링)
순천노회(통합) 장로회 78명이 2023.7.7.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사도 도마 성지순례를 하였습니다.
국립대구박물관 고대문화실에서 법궤가 삼한시대(신구약 중간기) 한국에 있다가 AD 142년 일본으로 건너간 역사를 해설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가 한국에서 변한의 철을 강철로 만들어서 수출하였던 역사를 해설 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인하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김건수 해설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조국현 도마박물관장은 직접 붓글씨로 시전지에 기록한 작품을 많은 증인들이 보는 가운데 김건수 장로님께 선물 하였습니다.
Ⅱ. 선사 시대의 문화와 국가의 형성 역대 국사 교과서
7차 교육과정
1. 선사 시대의 전개
2. 국가의 형성
단원의 길잡이
선사 시대는 문자 기록이 없었던 시대이므로 현존하는 유물과 유적을 통하여 당시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선사 시대는 세계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구분된다. 역사가는 남아 있는 유물과 유적을 바탕으로 고고학, 인류학, 지질학, 고생물학 등
인접 학문의 도움을 받아, 이 시기의 역사를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서술하기도 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추론하여 구성하기도 한다.
청동기 시대부터 국가가 형성되고, 이어서 철기 시대가 전개되었다. 이 시기부터 문자를 사용한 역사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역사가는
유물이나 유적 이외에 남아 있는 기록을 참고하여 역사를 서술할 수 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하였고, 곧이어 철기 문화를 발전시켰다. 철기 문화가 보급되면서
만주와 한반도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 여러 나라가 등장하였다.
선사 시대와 국가의 형성에 관한 학습을 통하여 역사가가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을 익히고, 우리 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어 발전하였는지 역사의
뿌리를 살펴보자.
주요 연표
약 70만 년 전 구석기 시대 시작
B.C. 8000년경 신석기 시대 시작
B.C. 2333 고조선(단군 조선)의 시작
B.C. 2000 ~ B.C. 1500년경 청동기 시대의 전개
고조선의 발전
B.C. 400년경 철기 문화의 보급
B.C. 194 위만 집권
B.C. 108 고조선 멸망
B.C. 1세기경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의 등장
13809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86 국사편찬위원회
COPYRIGHT ©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ALL RIGHT RESERVED.
위는 인터넷 검색으로 가져온 글입니다.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한국 고고학 연표와 맞지 않습니다.
위 댓글란의 한국 고고학 연표(사진)는 경북대학교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청동기가 세계 기준의 청동기 시대(BC 20~15세기)에 있지 않고 한국의 초기 철기시대(BC 300년 ~ 기원전후)에 있습니다.
이는 삼한시대(BC 400 ~ 원삼국시대) 레위지파 제사장들이 한국에서 사용했던 유태교의 의기(儀器) 및 위세품 청동기이기 때문입니다.
철기도 세계 기준의 철기시대에 있지 않고, 한국의 원삼국시대(AD 1세기 ~ 3세기)에 있습니다.
이는 사도 도마가 1세기 한국에서 강철기술을 전수해 주었고, 가야국은 철의 왕국이 되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가야국은 철제 농기구가 보편화 되면서 낙동강 하구에 토사가 많이 내려와 김해만 4천만평이 김해평야가 되었습니다.
가야국은 철의 왕국으로 1세기부터 해상교역국이었으나 AD 3세기에는 농업국가가 되었습니다.